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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42. 원초적 본능 (3)


[지하 주차장은 말이야. 범죄에 취약한 곳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대표적인 장소들 중의 하나거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빨리 벗어나려고 한단 말이야. 어둔 밤에 동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는 거랑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돼.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뭔가를 하기에 딱 적당한 장소야. 키스같은 거 말이야. 뭐, 장소에 따라 더 한 것도 할 수 있고.] 강시연의 조언대로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부터 이곳을 오늘의 승부처라고 결정한 오하영이다.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잡은 것도 언제고 강시연에게 들었던 말 때문인데, 유명한 인사들이 드나드는 고급 레스토랑 같은 경우 CCTV의 설치를 최소화 하는 곳이 많다고 들은 까닭이다. 그런 곳까지 온 마당이니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했고, 차를 향해 다가가면서도 끊임없이 용기를 내자며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그런데 정작 차에 올라타자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 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바보. 멍청이.’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여 버린 못 난 자신을 질책한 오하영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플랜 B를 떠올렸다. “잠시 드라이브나 좀 하다 갈까요?” “그럴까요?” 강호의 대답을 들으며 오하영이 곧바로 강변북로를 향해 차를 몰았다. 플랜 B는 간단했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싶으면, 으슥한 곳에 차를 세우고 키스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다. “근데 운전을 잘 하시네요?” “운전요?” “네. 의외로 운전 못하는 연예인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아! 그렇죠. 저처럼 어릴 때부터 아이돌을 시작한 사람들은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있어도 그냥 장롱 면허라서 운전을 못하는 건 예사고요” 운전이라는 것이 은근히 힘든 노농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면허를 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겠지만, 설령 면허가 있어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처지에 직접 운전까지 하면서 다니다가는 과로사를 할지도 모른다. “근데 면허는 언제 땄어요?” “성인이 되고 바로요.” “일찍 땄네요.” “시연이 언니가 그랬거든요. 연예인이 되어서 나중에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고 몰래 연애까지 하려면 운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요. 그 말에 바로 학원에 등록했어요.” 그녀의 말에 강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강시연다워서이기도 했지만, 그걸 또 곧이곧대로 듣고 면허를 딴 오하영도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래 연애는 해 봤어요?” “왜요? 해 봤을 거 같아요?” “하영씨 정도면 대쉬하는 남자들이 많았을 거 같아서요.” 보통 좋아하는 남자 앞에선 이럴 때 곧이곧대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강시연과 다른 의미에서 솔직한 오하영은 그런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아이돌들도 몰래 다 연애를 하고 그러긴 하는데, 전 딱히 연애는커녕 썸을 탄다고 할 만한 단계까지 나아가 본 적도 없는 거 같아요.” “그 말은 마음에 드는 남자는 있었다는 말이네요?” “그게... 딱히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니라, 그냥 어릴 때 호기심 같은 거, 그런 거죠.”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하듯이 대답하는 오하영의 모습에 강호가 미소를 지었다. 한남대교를 지나 곧바로 강변북로에 차를 올렸다. 강변북로를 따라 계속 가면 뚝섬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 곳의 야경이 좋은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좋고, 분위기를 잡기도 좋은 곳이다. 그리고 뚝섬을 지나 한 참을 내달리다 보면 은근히 차를 세우고 딴 짓을 하기에 좋은 곳이 꽤 많다는 것을 강시연을 통해 익히 들은 적이 있었던 오하영이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과 함께 강변북로를 내달리자 기분이 색다르다. 이래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드라이브를 하는 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 좋은 기분을 만끽하던 오하영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오늘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으슥한 곳... 으슥한 곳...” 조바심 탓인지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네? 뭐라고 했어요?” “네? 뭐가요?” “방금요.” “방금 뭐요?” “으슥한 곳... 하고 중얼거린 것 같았는데.” “으... 으슥한 곳요? 누... 누가요? 제가요?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서... 설마요.” “그렇죠? 전 또 으슥한 곳이라고 말하길래,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하려나 하고 걱정했거든요.” “무... 무슨 나쁜 짓이요?” 나쁜 짓이라는 말에 속내가 들키기라도 한 것 같아 얼굴이 화거리며 붉게 달아올랐다. “호러 영화를 보면 이렇게 데이트를 하는 척 하다 으슥한 곳으로 가서 칼로 슥!....” 그렇게 말하며 강호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할 때였다. 강변도로를 탄지 얼마 되지 않아 뚝섬을 앞둔 영동대교 부근을 막 지나칠 무렵, 오하영의 차 앞으로 외제차 한 대가 칼치기를 하며 끼어 든다 싶더니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악!”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 온 차로 인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오하영에게 진정할 틈도 주지 않은 채로 또 다른 두 대의 차량이 옆을 스치듯이 빠르게 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부아아앙! 부아아아아앙!] 차량에서 들려오는 굉음이 두 사람의 귓속으로 파고 들기도 전에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며 저 만치 멀어가는 차것을 보며 강호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새끼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가 저녁 시간이 되면 이따금씩 불법 카레이싱을 즐기는 이들이 출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화면으로 볼 때도 아찔했었는데, 막상 실제로 겪고 보니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와 눈깜빡할 사이에 멀어지는 차량의 속도는 얼핏 보기에도 150Km는 가뿐히 넘어 보였는데, 아직 10시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다 보니 강변북로는 제법 많은 차량들이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곳을 저런 속도로 칼치기 하며 레이싱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고 달리는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영씨 괜찮아요?” “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괜찮아요.” “미친 새끼들.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잠시 욕설을 내뱉은 강호가 오하영을 살폈다.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쾌 크게 놀란 것인지, 핸들을 쥐고 있는 손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인지를 하지 못했지만, 방금 전 상황은 정말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빠르게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급제동을 하면 순간적으로 크게 회전을 하거나 미끄러지면서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오하영이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기라도 했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뒤따르는 차량과 추돌사고로 이어지면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보통 사람이 크게 놀라게 되면 처음에는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게 되면 그때서야 온갖 감정의 쓰나미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게 된다. 오하영도 마찬가지여서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온 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나가며 손이 떨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다음 교차로에서 나가요. 어디 잠시 차를 세우고 진정부터 해야겠어요.” 강호의 말에 오하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상황은 두 사람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탄 차는 뚝섬 부근을 지나던 중이었기에 도로를 빠져 나가려면 잠실대교 근처까지 가야한다. 그런데 잠실 대교 근처에 이르기 전, 낙천나들목 근처에서 큰 사고가 난 것을 목격한 것이다. “사... 사고가 났나 봐요.” 저 멀리서 보이는 사고 현장의 모습에 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카레이싱을 하던 외제차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변북로는 고속화도로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고속도로는 아니다. 당연히 80Km의 제한 속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단속 구간을 제외하고는 이 규정 속도를 제대로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고질적인 정체를 부르는 러시아워가 지나고 늦은 시간이 되면 속도를 즐기는 이들이 자주 출몰하기도 한다. 사고가 난 곳은 뚝섬을 지나 잠실대교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벌어졌는데, 두모교에서 잠실대교에 이르는 구간은 거의 일직선 도로인데다가 지형도 평탄한곳이다. 사고 다발 구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구간의 특성으로 인해 이처럼 과속을 하거나 레이싱을 하다 사고가 이따금씩 벌어지는 구간이기도 했다. 하물며 이제 겨우 저녁 10시를 조금 넘김 시간이다. 주말인데다가 러시아워에 비해 통행하는 차량이 비교적 적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레이싱을 즐길 정도로 한산하지는 않다. 그런 곳에서 200Km에 가까운 속도로 과속을 한다는 것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지름길인데, 하필이면 그런 사고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십여 대의 차량들이 전복되고 크게 파손되어 뒤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사고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이 상당히 어수선했는데,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와주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119에 전화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차량에서 빠져 나와 비틀 거리는 사람을 부축하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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