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42. 원초적 본능 (2)
안 그래도 욕구불만 게이지가 풀차지 상태에 근접한 강호는 저도 모르게 오하영의 몸을 대놓고 위아래로 시선을 더듬었는데, 거의 시선강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아이돌 가수로 한창 활동할 때 꽤 많은 남자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몸을 더듬는 시선을 받았던 적이 꽤 있다 보니 강호가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 챈 오하영이다.
과거에는 이런 시선을 받으면 당연히 불쾌했고 그들의 시선이 몸을 더듬을 때마다 마치 온 몸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다.
특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빤히 보이는 음탕한 눈빛을 접할 때면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나 당장이라도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느낌이 싫어 평소에는 일부러 더 헐렁하고 몸매를 감추는 옷을 입었던 오하영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가 다르다.
강호의 시선은 그동안 겪었던 그 어떤 남자들 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몸을 더듬고 있음에도 불쾌하다거는 감정은 일체 없다. 오히려 그의 시선이 가슴과 몸을 쓸어내릴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뛰고 들뜨는 느낌이다 보니 오하영마저도 스스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제...제가 조금 늦었네요.”
“네. 네? 아...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유난히 룸 안에 크게 울린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두 사람이 어색하게 서서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 앉을까요?”
“네? 네.”
오하영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서도 강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과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전에도 도발적인 옷차림을 하고 나온 적이 꽤 있었지만 오늘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특히 빨간 드레스와 대비되는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는 너무나 깨끗하고 매끈해 보여서 혀를 내밀어 핥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욱씬!]
새하얀 목덜미를 혀로 핥아 올리는 상상을 하기 무섭게 아랫도리가 대번에 성질을 내며 머리를 치켜 든다.
어색한 시선이 오고가는 것처럼 어색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침묵을 먼저 깨뜨린 것은 오하영이다.
“미안해요. 이런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제 욕심에 이쪽으로 약속을 잡았어요.”
“괜찮습니다. 하, 하영씨 덕분에 이런 곳도 구경하고 좋네요. 하하.”
그 누가 보아도 어색한 웃음.
아이돌 가수를 하면서 항상 웃는 훈련을 받았고, 항상 연기를 하며 살아온 오하영이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어색한 웃음에 긴장감이 살짝 풀어진다.
“괜히 저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낸 건 아니죠?”
“그럴리가요. 하하하! 그리고 약속이 있더라도 하영씨가 부른다면 그깟 약속이 대수겠습니까.”
“시연이 언니랑 약속이 있어도요?”
긴장감이 조금 풀어져서일까.
평소의 오하영 답지 않게 직설적이면서도 꽤 도발적인 질문에 강호가 살짝 당황하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피! 역시 그런가 보네요. 하긴 같은 여자가 보아도 언니가 매력적이기는 하죠.”
“하영씨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강호가 다급하게 대답하자 오하영이 눈을 샐쭉거렸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다.
“주문부터 할까요?”
“하영씨가 알아서 해 주세요. 이런 곳은 처음이라 메뉴판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강호의 말에 오하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하영이 매우 능숙하게 디너 스폐셜 코스와 오늘의 코스 두 가지로 주문을 했고, 와인도 한 병 주문했다.
“차 안가지고 오셨죠?”
“네.”
“그럼 와인 한 잔 정도는 괜찮겠네요.”
“하영씨는요?”
“전 차를 가져와서요. 그냥 마시는 척만 할게요.”
주문을 하고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무알콜 식전주를 포함한 에피타이져를 시작으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비싼 곳이어서 그런지 맛은 더없이 훌륭했다. 다만, 아까도 생각했던 것처럼 어째 이놈의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것들은 가격은 더럽게 비싸면서 하나같이 모기 눈알만큼 찔끔 찔끔 나오는지, 강호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었다.
그것을 오하영도 눈치를 채고는 다시금 미안한 얼굴을 했다.
“미안해요. 오늘은 그냥... 강호씨랑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이런 곳에 꼭 한 번 같이 오고 싶었거든요.”
이번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대놓고 하는 말이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얼른 받아먹는 강호다.
“그 말은 제가 마음에 든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하지만 강호씨한테는 언니가 있잖아요. 전 남자를 두고서 언니랑 싸울 생각은 없어요.”
뭔가 말의 뉘앙스가 조금 묘하다.
강시연과 싸울 생각이 없다는 말은, 강호를 이성으로서 여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강시연의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식당엘 데리고 왔다.
어떤 의도를 숨긴 그녀의 말에 강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시연이 언니. 미국에 간 거 알고 있죠?”
“네. 아침에 통화 했습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잠시 다녀온다더군요.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서 늦어도 다음 주 안에는 돌아온다고 하네요.”
“흐음! 그렇군요.”
대답을 하면서 오하영의 머릿속으로 강시연이 남긴 문자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잘해봐!]
그동안 강시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하영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그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강시연이라 해도 한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 누가 보아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강시연의 그 말이 농담 따위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하물며 강호와 질펀한 섹스를 벌이는 중에 한가연을 얼른 따먹으라는 말까지 하기도 했다.
남자의 품에 안긴 채로 사랑을 나누면서 다른 여자를 따먹으라고 재촉하는 강시연의 모습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가 되어서도 안 되고 이해를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분명 그랬는데 그날 이후로 심경에 변화가 생겨났다.
그동안 강시연이 그동안 했던 말들이 왠지 이해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니, 이해를 하고 싶은 기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지난 며칠 동안 오하영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고민하게 만들었던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하는 것을 두고 고민할 정도로 과연 강호라는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동시에 이러한 마음을 품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일어나며 오하영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잘해봐!]
그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지난날의 고민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강시연의 마지막 한마디가 오하영에게는 모든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용서를 받게 되는,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자리가 매우 중요했고, 인생의 큰 부분을 희생하고 감수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신이 필요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즐겁니?]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그래, 즐거워.’
흔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별다른 대화 없이 그저 한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냄새도 좋았고, 그의 목소리는 귀를 즐겁게 했으며, 의미 없는 말조차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화를 하는 내내 음심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힐끔거리고 온 몸을 더듬고 있는 강호의 시선에 오하영은 마치 알몸으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러한 시선에 오히려 짜릿한 흥분마저 생겨나고 있다.
그의 시선이 좀 더 은밀한 곳을 더듬어 주기를 원했고, 숨결과 손길이 온 몸을 어루만져주기를 갈망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일까?’
‘아니면 그저 사랑을 가장한 욕정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 과거 방송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아이돌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사랑? 그러니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음, 그걸 확인하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키스를 해 보는 거야. 키스라는 건, 누군가를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야.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때의 말을 떠올리기 무섭게 키스의 의미가 대번에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지 확인하기 위해 하는 행위.]
쏘아진 화살이다.
이제 남은 것은 확인해 보는 것뿐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9시가 다 되어 간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시간이 너무나 짧다고 하더니 정말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강호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계산을 마치고 잠시 화장실에 들려 최후의 성전을 위한 준비를 했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입 냄새가 나지 않게 구강청결제로 가글도 하고 혹시나 치아 사이에 뭐가 끼여 있지는 않은지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옷을 살짝 내려 어깨선을 돋보이게 만들었고 가슴골이 좀 더 깊이 패여 보이도록 옷매무새도 고쳐 잡았다.
그렇게 확인을 마치고서 거울 앞에 서자 본격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하... 하는 거야. 진짜로...’
계산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내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거칠게 뛰었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8부 능선을 넘었고 고지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남은 것은 마지막 한 발을 내딛기 위한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언니가 주차장이 그런 일을 하기에 제일 좋은 곳이라고 했었는데.’
강시연과 오래 지내다 보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주워 듣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연예인으로서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할 때 새겨들을 만 한 내용들도 꽤 많았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남자를 만나는 방법이라거나, 혹은 밀회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 대표적이었는데, 지하 주차장이 그런 장소 중의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