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42. 원초적 본능 (4)
“하영씨! 저기 잠시 세워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차를 대자 주변을 살피며 차에서 내린 강호가 오하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위험하니까 하영씨는 내리지 말고 여기 있어요.”
“강호씨!”
“괜찮아요. 잠깐 보고 올게요.”
한국인들을 두고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이 말은 괜히 끼어 들 필요가 없는 일에도 쓸데없이 끼어들고 간섭하는 한국인들 특유의 성향을 빗대어 하는 말이지만 이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런 오지랖으로 인해 때론 모르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기도 하고, 이렇게 사고라도 나면 제 일이 아닌 데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강호는 오지랖이 넓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모른 척 외면하고 지나칠 정도로 모진 사람도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현장에 다가가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했다.
얼추 세어만 보아도 십여 대 이상의 차량이 한 곳에 뒤엉켜 있었는데, 그 중의 몇 대는 차체가 크게 파손되거나 찌그러져 있었고 도로에는 파편들이 사방에 널려있기 까지 했다.
늦은 밤이다 보니 자칫 후속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만한 상황인데, 몇 몇 사람들도 이를 인지한 것이지 어느새 경광봉을 들고 나와 멀리서 다가오는 차량들에게 수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여기요. 누가 여기 좀 도와줘요.”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한 중년의 남성이 차량들 사이에 끼어 옆으로 누워 있는 차위에 올라타서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차가 폭발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엔진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경우도 있고 새어나온 휘발유에 스파크가 튀면서 일어난 화재가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가 많아지면서 추돌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금방 화재로 이어지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 폭발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곤 했다.
사고 현장에도 이미 몇 대의 차량에서 연기가 나고 있어 화재나 폭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도와달라는 소리에 주변의 사람들은 망설임도 없이 달려갔다.
그 사람들 속에 섞여 달려간 강호가 몇 대의 차량과 뒤엉킨 채로 옆으로 누워 있던 차 위로 단숨에 뛰어 올라 안을 들여다보았다.
운전석 쪽에 젊은 여성이 꽤 크게 다친 채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차의 전면부가 거의 걸레짝이 될 정도의 추돌 사고가 났음에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에 일순간 분노가 치솟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뒷자석에 있는 아기였다.
“문이 낀 것 같아요.”
다른 차량과 추돌하고 뒤엉키는 과정에서 자체가 일그러지며 문짝이 끼여 버린 모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차량이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주유구에서는 기름까지 새어 나오고 있는 중인 데다가, 엔진에서도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칫 화재로 인한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누가 창문 깰 것 좀 찾아봐요.”
모르는 사람들은 차량이 크게 추돌사고를 일으키면 유리창이 쉽게 박살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차량의 앞부분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추돌하거나 차체가 찌그러진 상황인데도 의외로 유리창이 멀쩡한 경우가 간혹 있다.
미튜브에서 자동차 사고 영상 중에는 SUV가 공중으로 3미터 이상 튀어 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져서는 몇 차례나 굴렀음에도 문짝의 유리창이 멀쩡한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문짝이 끼이고 유리창 까지 멀쩡한 상태에서는 유리창을 박살내야 하는데, 문제는 이 유리창이 생각처럼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디서 들고 온 것인지 도와 달라고 외친 중년의 남성이 차량 위에서 돌덩이 같은 것으로 유리창을 두들기고 있지만 퉁퉁 소리를 내며 튕겨 나올 뿐, 요지부동이다.
그 모습에 강호가 얼른 그의 움직여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비켜 보세요.”
강호가 주먹을 쥐는 시늉을 하며 다가서자 중년의 남성이 기겁을 하며 말렸다.
“이봐요. 차 유리창이 그렇게 쉽게...”
하지만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먹을 움켜쥔 강호가 어깨 위로 치켜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치자, 뒷좌석 유리창의 한 가운데에 구멍이 뻥하고 뚫리는 것이다.
그 모습에 중년의 남성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마저 멍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돌덩이로 아무리 내치려도 꿈쩍도 하지 않던 창문이 고작 주먹 한 방에 창호지 뚫리듯 쉽게 뚫려버리자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하지만 더 놀란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구멍이 뚫린 창문을 손으로 잡아서 뜯어낸 강호가 문짝을 쥐고서 힘을 주자 팔뚝의 근육이 한순간에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으으읍!”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근육의 혈관들이 툭툭 솟아오르는 것과 함께 별안간 문짝의 철제 프레임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사고가 나서 문짝이 끼이게 되면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절대로 쉽게 열수가 없다. 요즘 차가 아무리 종잇장처럼 가벼워서 잘 뒤집어지고 찌그러진다고는 하나 그래도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끼기기기긱! 카각! 콰직!]
하지만 사람들은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철판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대번에 문짝을 뜯어내어 버린 강호가 재빨리 뒷좌석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서는 아이의 상태부터 살펴보았다.
두 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기는 유아용 보조 카시트와 벨트로 몸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덕분에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시고로 인한 충격에 놀란 듯 크게 울고 있기는 했지만 이정도 큰 사고에도 아무런 상처 하나 없는 모습에 강호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중년의 남성이 아이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카시트를 소파에서 분리하여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중년의 남성이 빠르게 넘겨받아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넘겨준다.
아이를 먼저 빼낸 후 조수석의 등받이를 잡고서 강하게 당기자 이번에도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등받이가 뒤로 힘없이 누워버린다.
그 모습에 중년 남성이 또 다시 놀란 얼굴을 했지만, 운전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내 표정이 심각해졌다.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성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상처가 가볍지 않아 보였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는 바람에 어딘가에 충돌을 한 것인지 안면부 쪽에 상처가 크게 나서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는데, 그 정도 충격이라면 다른 부상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조심해요. 내부 장기가 파열되었을 지도 모르니까. 가슴뼈가 부러졌다면 장기를 찌를 수도 있어요.”
그 말에 강호가 고개를 들어 다시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의삽니까?”
“의사는 아니고 한의삽니다. 그래도 외과 지식이 좀 있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그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운전석 옆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몸을 지탱한 뒤 여자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이 숨은 쉬고 있다.
“내부 장기가 다쳤으면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구조대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차량의 앞쪽을 힐끗 하자 그의 시선을 따라 강호의 시선도 돌아간다.
조금 전부터 희미하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확연하게 짙어졌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언제 화재로 번질지 알 수 없다.
강호가 조심스럽게 여자의 상체를 한 손으로 고정하고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부상이 꽤 컸지만, 그나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 즉사에 이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안전벨트를 푼 강호가 조심스럽게 여자의 상체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 움직임을 느낀 것인지 낮은 신음성과 함께 여자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애 강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아기... 아기가...”
큰 부상을 입고도 자신의 안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아기부터 먼저 찾는 여자의 모습에 강호가 살짝 울컥해졌다.
최근 뉴스에서는 존속 살인이나 자식을 살해한 엄마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가 죽을 정도로 구타하는 것은 예사고, 아이를 여행 가방에 넣어 질식사 시키거나, 아예 갓 태어난 영아를 죽이고서는 쓰레기통에 내다버리는 사태마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세상이 말세라며 한탄을 쏟아 부었고, 해당 부모를 극형에 처하라는 청와대 청원에 수만 명이 서명을 하며 분노를 직,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엄마라면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식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사실 부모의 숭고한 사랑은 당연하다는 말로 일반화 하거나 저평가되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아기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죽은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한 강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기는 괜찮습니다. 무사합니다.”
“다... 다행...”
그러고는 힘없이 고개가 떨어지는 모습에 강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행이 그녀는 의식을 잃은 것뿐이라는 것을 파악한 강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지만 조심스럽게 여자의 등 쪽으로 팔을 넣고서 당기자, 가볍게 딸려 온다.
“목 조심해요.”
교통사고를 당하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크게 부상을 입는 부위중의 하나가 목이다. 교통사고만 당하면 목부터 잡고 바닥에 눕는 것도 일종의 현실고증인 셈이다.
목을 조심하라는 말에 강호가 그녀의 머리와 어깨를 가슴에 밀착시키고는 한 손으로 고정시킨 뒤 다시 잡아 끌었다.
조심히 여자를 운전석에서 빼낸 강호가 그녀를 안은 채로 일어나자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년 남성이 다시 팔을 뻗어 왔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고정하듯이 양손으로 쥐고는 강호의 움직임에 맞추어 여자를 위로 끌어 당겼다.
“빨리 나와요. 언제 불이 붙을지 몰라요.”
중년의 남성을 도와 같이 여자를 꺼내던 젊은 남자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차 밖으로 빠져 나갔다.
“여기도 좀 도와줘요. 사람이 끼었어요.”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전복된 차량에 사람이 끼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차량의 일그러진 보닛 쪽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