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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174화 아스를 쥬지로 제압했던 장면은 다행히 비공개처리


인천국제공항의 활주로가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착륙의 충격이 기체를 흔들었고,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푸른 하늘. 축축한 공기. 낯설지 않은, 그러나 잠시 잊고 있던 풍경이었다. ​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활주로의 불빛을 머금고 흘러내렸다. ​ 비가 온 모양이었다. ​ 마계의 건조하고 타는 듯한 공기와는 다른, 눅눅하면서도 어딘가 편안한 습기가 기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 “으음.” ​ 옆에서 꿈틀거리는 귀여운 푸른 무언가가 눈을 떴다. ​ 비행 내내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던 그녀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워서 잘 수 있음에도 같이 누울수 없다는 말에, 앉기를 고수한 그녀였다. ​ 푸른 단발머리가 흐트러져 볼에 걸쳐 있었고, 같은 색의 푸른 동공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몽롱하게 빛났다. ​ “헤헤.” ​ 미레가 나른하게 웃었다. 볼에 베갯자국처럼 주름이 살짝 잡혀 있었다. ​ “좀 잤어?” “응.” ​ 그녀가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며 몸을 쭉 폈다. 작은 체구가 좌석 위에서 움츠러들었다 펴졌다. ​ 출국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 VIP 통로 특유의 고요함이 발밑에 깔렸다. 대리석 바닥이 형광등 불빛을 차갑게 반사했고, 먼 곳에서 여행객들의 웅성거림이 벽에 부딪혀 희미하게 들려왔다. ​ 야니가 통로를 걸을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흠칫 멈춰 섰다. 무리도 아니었다. ​ 2.5미터에 달하는 장신, 갈색 피부 위로 드러난 단단한 근육,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갈색 장발. 오크종 특유의 강인한 체격이 이 평범한 공항 통로에서 이질적으로 빛났다. ​ 하지만 그녀는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묵묵히 내 뒤를 따를 뿐이었다. 안내에 따라 이동하다보니 길드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보였다. 시은과 샌이 선봉으로 그곳을 가는걸 보니 추측이 맞았다. ​ 공항 VIP 출구. 검은색 SUV. 선팅이 짙게 된 창문. ​ ‘한결 같네.’ ​ 새삼스레, 한국에서 다시 마주하니 반가웠다. 정말로 돌아온 기분. ​ 차 문이 열리자 가죽 시트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에어컨이 적당히 가동되어 있었고, 컵홀더에는 생수병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사소한 배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 '일상'이라는 감각을 되살려주고 있었다. ​ 뒷좌석에 올라타자 미레와 야니가 양옆에 앉았다. ​ 미레는 가죽 시트를 손끝으로 쓸어보더니 신기한 듯 푸른 눈을 깜빡였다. 야니는 좌석에 앉자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녀의 넓은 어깨가 좌석 폭을 가득 채웠지만,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경계를 풀지 않는 것이다. ​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미레가 창밖의 빌딩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여기가 전부 오빠 영토야?” “응?” ​ 순수한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 창밖으로 고층 빌딩들이 쏜살같이 스쳐 지나갔다. 유리 외벽에 석양빛이 부서지고, 도로 위로는 수천 대의 차량이 질서정연하게 흘러갔다. ​ 마계에서라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강한 자는 마땅히 규모 있는 영토를 거느렸다. 그러니 그에 근거한 질문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 “아하하.” ​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 “아니야. 내 영토는 아니고. 내가 속한 국가야.” “헤엑. 그럼 오빠보다 쌘 사람이 있는거야? 상상도 안가는데.” ​ 미레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마왕급 존재들과 대등하게 싸우는 자였다. 그런 내가 '그저 시민'이라니, 마계의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 “아니아니. 난 그저 여기의 국민일뿐이야.” ​ 미레가 고개를 갸웃했다. 푸른 단발이 어깨를 스치며 흔들렸다. “국민?” “응 그냥 평범한 시민이지.” “에?” ​ 미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리라. 마계에서 힘은 곧 서열이었고, 서열은 곧 지배권이었다. ​ 강한 자가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알던 세상의 전부였다. “여긴 힘으로 우열을 나누지 않아.” ​ 내가 차분히 설명했다. ​ “귀족 같은 건 일부 나라에서만 쓰고.” ​ 세계사의 분쟁 원인을 꼽으라면 '이 나라'를 지목하면 거진 맞다는 말이 있다는 게 스쳐갔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음, 그럼 무력이 필요하면? 제일 강하지 않은 지배자가 나서서 싸우는거야? 외적이 침입하거나, 반란이 일어나면?” ​ 미레가 감탄과 혼란이 뒤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녀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잡혔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마계에서 전쟁이란 곧 강자들의 충돌이었다. 왕이 직접 검을 들고 전장에 나서는 것이 당연했다. ​ “아……그땐 강력한 무기가 있어. 직접 싸우지않아.” ​ 나는 마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헬기를 턱짓했다. 회색빛 동체가 구름 사이로 미끄러져 갔다. 프로펠러 소리가 희미하게 유리창을 두드렸다. ​ “직접 싸우지 않아. 버튼 하나로 도시 하나를 날릴 수 있는 무기도 있고.” “……아.” ​ 미레가 작게 탄식했다. ​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복잡한 빛이 어렸다. 아마 자신이 알던 세계의 상식이 하나씩 무너지는 느낌이겠지. 힘이 곧 정의인 세상에서 자란 그녀에게, 힘이 있어도 지배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 야니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 무표정한 얼굴. 갈색 피부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그녀의 강인한 턱선을 더욱 날카롭게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노란 눈동자가 지나가는 모든 것을 빠르게 훑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건물의 높이, 도로의 구조, 차량의 밀도. 그녀는 지금 이 낯선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 오크족 전사의 본능일까. 낯선 영역에 발을 들이면 가장 먼저 지형을 파악하는 것. ​ 한 시간쯤 달렸을까. ​ 차창 밖의 풍경이 서서히 바뀌었다. 빽빽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외곽 지대로 접어들었다. 가로수가 도로 양편으로 늘어서 있었고, 석양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 차량이 서울 외곽의 어느 지점에 멈췄다. ​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기업 사옥 같았다. ​ 열두 층짜리 건물. 유리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현대식 외관. 로비 쪽에서 은은한 조명이 새어 나왔고, 건물 외벽에는 기업 로고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 하지만 건물 주변으로 드문드문 서 있는 경비원들의 눈빛은 평범하지 않았다. ​ 정장 차림. 이어폰. 그리고 재킷 안쪽으로 불룩하게 솟은 무언가. 훈련받은 자들 특유의 긴장감이 그들의 어깨선에서 느껴졌다. ​ 이윽고 차고같아보이는 통로로 들어가더니 땅이 푹 꺼지며 지하로 깊숙하게 내려갔다. ​ 엘리베이터의 진동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층수 표시는 없었다. 그저 어둠 속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느낌만이 이어졌다. ​ 야니가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이 좁은 금속 상자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 ‘그 부족들은 넓은 곳에서 살았지.’ ​ 기억을 떠올렸다. 오크족은 탁 트인 평원같은 곳에서 살던 종족이었으니까. ​ 차량용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난 뒤, 멈춰서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 차가운 공기가 먼저 밀려들어왔다. ​ 지하 특유의 서늘함과 함께 콘크리트와 금속이 뒤섞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차에서 내려 강철을 통째로 뽑아낸 듯한 통로를 걸었다. ​ 벽면이 무광 회색 금속으로 뒤덮여 있었다. 천장의 LED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빛을 내뿜고 있었고, 발소리가 메아리 없이 바닥에 흡수되었다. 방음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김남주 길드마스터님을 뵙습니다.” ​ 임지유.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 깔끔한 정장 차림. 그녀가 단아하게 미소 지었다. 피로의 그림자가 눈가에 옅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것을 감추려는 듯 미소가 한층 또렷했다. ​ 그 옆으로 길드원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다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 몇몇은 야니를 보고 움찔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갈색 피부에 단단하게 조여진 근육,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갈색 장발. 그리고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체구. 처음 보는 이에겐 위압감 그 자체였을 것이다. ​ ‘하하 우리 셋 중에 가장 약한게 야니일껀데. 겉모습이 중요하긴 해.’ ​ 웃음지으며 지유에게 인사를 건넸다. ​ “오랜만이야.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일행분들도 같이 오셨네요.” ​ 지유의 시선이 잠시 야니에게 머물렀다가 미레에게로 옮겨갔다. 프로답게 동요를 금세 감췄지만,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던 건 숨기지 못했다. ​ “응.”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시은과 샌은?” “잠시 뒤에 합류하실꺼에요.”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유가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 로비와 안내 데스크. ​ 대리석 바닥이 조명을 반사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오직 기능만을 위한 공간.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곳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통제실. 유리벽 너머로 수십 개의 모니터가 보였고, 근무 중인 요원들이 실시간으로 무언가를 감시하고 있었다. 던전 경보 시스템, 길드원 위치 추적, 인근 게이트 상황. 각종 데이터가 화면 위를 흘렀다. 붉은 점, 푸른 점, 노란 점들이 지도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 미레가 신기한 듯 유리벽에 코를 들이밀었다. ​ “우와, 뭐야 저거. 반짝반짝해.” ​ 정보부. ​ 각종 서류와 서버실, 그리고 분석관들이 상주하는 공간. 폐쇄적 구조가 보안의 엄중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벽면. 출입구마다 설치된 생체인식 장치. 그리고 복도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열렬하게 돌아가는 환풍구의 날 소리만이 고요히 스며들어왔다. ​ 공기가 순환하는 소리. 기계의 윙윙거림.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이 지하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 이윽고 익숙한 공간이 시야 가득히 잡혀왔다. ​ “아. 여긴.” ​ 아스가 포탈을 이용해 기습했던 공간. ​ 순간 그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 마계의 독기가 공기를 물들이던 순간. 바닥이 부식되고, 벽면이 녹아내리던 광경.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악마의 형상. ​ 야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크족 특유의 후각이 무언가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청소해도 남아있는, 마계의 잔향 같은 것을. ​ 그날 당시 마계의 공기에 오염되고 부식된 장소들은 말끔히 정돈된 상태였다. ​ 새로 깔린 바닥재가 조명을 반사하고 있었다. 벽면도 새로 도장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구석구석에 미세한 균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상처. ​ 길드원들은 각자의 임무를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그때 정말 정신 없었어요.” “맞아.” “모든 연합길드에 긴급소집령을 내렸었어요.” ​ 지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 “그 전에 길드마스터님께서 그 악마를 처리하셨지만요.” “아하하…….” ​ 지유가 손짓해 귀를 가져다대자 속삭였다. 그녀의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 샴푸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 “당연하지만 CCTV장면들은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퍼질 일은 없을 꺼에요.” ​ 이 귀여운 숙녀는 걱정하나 보다. 한편으로 미레가 귓속말하는 지유를 노려봤다. ​ 푸른 눈이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입술이 살짝 삐죽 나와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상 아닐 것이라는 이성적인 판단과 감정이 뒤섞이나 보다. ​ 결국 ‘흥’ 하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다. ​ “그래. 잘 관리해줘.” “아 그리고 여기.” ​ 임지유가 건넨 바구니엔 내가 두고 간 소지품들이 담겨 있었다. 대나무로 엮은 작은 바구니. 그 안에 가지런히 놓인 물건들. 그래 봤자 얼마 없었지만. ​ 내 폰과 지갑, 그리고 민창기에게서 받았던 증명 가능한 동전. ​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폰 화면에 미세한 지문 자국 하나 없었다. 지갑의 가죽은 윤이 날 정도로 닦여 있었다. 누군가 정성 들여 관리해 왔다는 게 느껴졌다. ​ 지갑을 열자 당시 발급받은 플레이어를 증명하는 카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폰은 미리 충전해뒀어요.” “아 정말? 오~ 센스.” “그리고 부 길드마스터님께서 부탁한 물건입니다. 이걸 이렇게 귀 밑에 대면 됩니다.” “아! 이거구나.” ​ 지유의 설명대로 신기한 번역기를 귀 밑에 갖다대자 피부안으로 스며들었다는걸 느끼며 받아든 소지품들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 그것을 보던 지유가 말을 이었다. ​ “어떻게 하시겠어요?” ​ 하실것이 있느냐, 없다면 내게 무언가 말을 하곘다는 뜻인것 같았다. ​ 할 게있어. 지유에게 미리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 “길드하우스엔 당연히 아이템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쪽으로 모실까요?” “응. 지금 바로.” “알겠습니다.” ​ 삼엄하면서도 철저한 경비들, 복잡한 과정들이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나와 지유의 앞에선 가벼운 절차 정도가 되었다. ​ 복도를 지날 때마다 길드원들이 묵례했다. 그들의 시선에서 존경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어떤 이는 고개를 깊이 숙였고, 어떤 이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야니를 보고 놀라서 뒷걸음질치는 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야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앞만 보고 걸었다. 익숙한 반응이라는 듯이. ​ 그 앞을 지키던 길드원이 우릴 보며 묵례했다. ​ 젊은 남자였다. 짧게 깎은 머리, 다부진 체격. 손에 든 패드를 꼭 쥔 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 “어떤 용무이십니까? 반출입니까 반입이십니까?” “둘다 아니야. 이번은 좀 특별해.” ​ 그는 손에 든 패드를 허공에서 멈췄다. ​ “길드마스터님의 시찰이야.” ​ 두 동공이 크게 떠졌다. ​ “……알겠습니다. 길드마스터님의 시찰로 기입하겠습니다.” ​ 그러곤 내가 아닌 야니를 힐끗 쳐다봤다. 아, 야니가 가장 크니 착각한 걸까. 2.5미터의 장신에 갈색 장발, 단단하게 조여진 근육, 그리고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누가 봐도 '강자'의 포스가 넘쳤다. ​ 오히려 내가 야니의 수행원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 그런 착각을 했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 “아, 절대 길드마스터님을 못 알아본 것이 아닙니다. 크흠. 실례했습니다. 김남주 길드마스터님.” “괜찮아. 눈이 절로 가지?” “맞습니다. 플레이어…아니 인간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군요.” “하하하, 맞아. 뭐. 오크여성이야.” “설명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처음봅니다.” “그보다 내 이름을 아네?” ​ 그의 목소리에 경외가 담겨 있었다. ​ “당연합니다. 저는 출입가능한 모든 인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 경고성을 띄는 문구가 크게 적힌 문이 열렸다. ​ -허가 없이 출입 시 즉각 제압 -무기 사용 구역 ​ 붉은 글씨가 금속 문 위에서 위협적으로 빛났다. ​ “김남주 길드마스터님, 임지유 참모님 외 동행자 2명. 입장시간 19시 38분입니다.” ​ 기계음이 울려 퍼졌고,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도 길드원이 있었다. ​ 중년의 남자였다. 안경을 쓴 얼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학자 같은 인상. 그가 앉아 있다가 패드를 몇 번 만지곤 설명을 시작했다. ​ “이곳은 등급이 적혀있지 않아 D등급으로 분류된 아이템들을 모아놓은 곳 입니다.” ​ 공간이 넓었다. 천장이 높았고, 형광등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선반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각 칸마다 투명한 유리로 닫혀 있었다. 그 안에 갖가지 아이템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 야니가 주변을 훑어봤다. 전사로서의 본능이 작동하는 것인지, 각 선반 사이의 간격과 출입구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 지유가 허리춤에 걸려져있던 권총을 들곤 내게 허락의 눈빛을 보냈다. ​ “보여드릴게요.” ​ 고개를 끄덕이자 팔을 일자로 뻗었다. ​ 탕. ​ 소음기가 소리를 대부분 먹었음에도 공간 전체에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지나갔다. ​ 미레가 귀를 막으며 움찔했다. 하지만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야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유리에 맞은 자리. 선반들은 각 칸별로, 투명한 유리로 닫혀있었다. ​ “보시다시피 특수강화유리로 보관되어있기때문에 현대화기로는 어림도 없어요.” ​ 총탄에 맞았음에도 아주 미세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유리 표면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총알은 어디로 갔는지, 바닥에 떨어진 흔적도 없었다. 나름 철저하게 관리해 온 과정들을 알려주는 그녀를 보며 그 자긍심이 느껴졌다. ​ 지유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온 것, 정시은과 함께 쌓아 올린 것에 대한 자부심. 그것이 그녀의 어깨를 곧게 펴고 있었다. 보답할 차례였다. ​ “야니주변을 경계해줘.” “네.” ​ 야니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노란 눈동자가 천천히 공간 전체를 훑었다. 포식자가 영역을 살피는 것 같은 날카로운 시선. 갈색 장발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며 그녀의 강인한 옆모습을 감쌌다. ​ “미레야 내 옆에 딱 붙어서 대비해줘.” “응!” ​ 미레가 활짝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푸른 단발이 살랑거렸고, 그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두 주먹을 쥐었다. 작은 체구지만 그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 그렇게 내 주위를 엄호시켰다. 공기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긴장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성벽이 세워진 것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 가장 첫 번째 칸의 아이템을 쳐다봤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 신체 + 1 가장 낮은 스탯의 포인트 + 1 ​ 낡은 가죽 장갑이었다. 손가락 부분이 닳아 있었고, 손목 부분에는 희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에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었다. ​ “D급에도 보관할만한 가치가 있는 템이 있는거야?” “네. 그렇지 않은 템들은 포탈안에서 각 구역기지에 있다고 들었어요.” “이곳의 아이템들은?” “인포탈에서 얻거나, 경매로 낙찰받은 물건들이에요.” “그렇구나.” ​ 손을 뻗어 강화를 시작했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을 강화하시겠습니까?] ​ 그래. ​ 그 순간 아이템의 전신에서 짧은 황금빛이 번쩍였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 + 1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1)] 신체 + 2 가장 낮은 스탯의 포인트 + 1 ​ 좋아. 계속 진행해. ​ [간결한 차임식 장갑 + 2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 + 17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17)] 신체 + 17 가장 낮은 스탯의 포인트 + 8 ​ … [간결한 차임식 장갑 + 38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 + 60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간결한 차임식 장갑(+60)] 신체 + 60 가장 낮은 스탯의 포인트 + 30 ​ [더 이상 강화할 수 없습니다.] ​ 다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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