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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외전 2화


외전 2화 “때문에 유배령이 풀려서 공작령을 떠나게 되었을 때, 저는 이 일을 마음을 접을 기회로 여겼습니다. 공작님께 저 보다 훨씬 더 나은 혼처가 있을 것이라 여기면서⋯⋯. 구태여 붙잡지 않으셨기에 공작님 또한 같은 마음인 줄로만 짐작했고요. 그런데 프랑의 집에 머물던 중 공작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연락도 없이, 제게⋯⋯ 청혼을 하시러요.” 내 말을 가만히 듣던 폴린느 부인은 숨도 쉬지 못하겠다는 듯 그대로 굳어 있었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제가 공작님에게 좋은 혼처가 아니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저도 공작님을 원했기에 청혼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설명을 마치면서 폴린느 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부인은 여전히 돌로 변한 듯이 미동도 없었다. '역시 마뜩지 않겠지.' 나는 부인의 마음을 최대한 헤아려 보았다. 도련님 시절부터 모시던 주인께서 수준이 맞지 않은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게 좋게 느껴질 리 없을 터였다. 더군다나 사면되었다 해도 유배자와의 혼인이 아닌가. 고용인 입장에서야 드러내 놓고 어깃장을 놓을 순 없겠지만, 이 청혼을 반대할 수 있는 위치라면 충분히 반대하고 싶지 않을까? '혹시⋯⋯ 공주님과도 혼인할 수 있는 주인이 발목을 잡혔다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목이 타는 기분이 들어 차를 마셨다. 찻물은 이미 식어 있었고, 분명 알맞게 우러나왔을 텐데도 씁쓸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정말 어떤 분이신가 했더니⋯⋯.” 그때였다. 폴린느 부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가씨셨군요?” “예?” “저는 정말 어떤 분인가 했답니다.” '무슨 뜻이지?' 그녀의 말이 조롱의 의미인가 싶어 나는 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부인의 얼굴에선 그 어떤 경멸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놀라움뿐이었다. 부인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저는 공작님이 도련님일 적부터 이곳에서 지내 왔지만, 그분이 다른 분에게 마음을 두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아름다운 아가씨일수록 꺼려 하고 피하기만 하셨지요. 마치 가까이 가면 병이라도 옮는 것처럼요.” “⋯⋯.” “그래서 저는 정말 궁금했답니다. 이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아가씨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 이 저택의 안주인 자리는 대체 언제 채워질지 말이에요. 하도 아무 소식이 없기에 이대로라면 제가 죽기 전까지 그분을 보지 못할 줄로만 알았건만⋯⋯.” 부인이 말했다. “⋯⋯바로 아가씨께서 공작님의 임자셨던 거군요. 세상에, 공작님을 한밤중에 뛰쳐나가 청혼하게 하시다니! 그 점잖은 분을 고삐 풀린 말처럼 만드시다니! 그걸 나는 또 한 지붕 아래에 있었으면서도 눈치도 못 채다니요⋯⋯ 아니, 이제 보자,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 그래. 이제야 알겠어요. 공작님께서 아가씨께 정말 어찌나 관심이 많으셨는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그걸 지금까지 아나 아가씨 때문인 줄 알았지 뭐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부인은 자신의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내 정신 좀 봐, 이제 마님이시죠?” “예? 마님이요?” 마님이라니⋯⋯. 갑자기 불린 새로운 호칭에 나는 얼떨떨해했다. “물론, 아직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공작님의 청혼을 받아들이셨으니 제겐 마님이시지요! 마님, 그럼 이제 결혼식을 준비해야겠지요? 결혼식은 언제쯤으로 생각하시나요? 특별히 정해진 날짜가 있나요? 참, 결혼식 준비는 정말 오랜만이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는지⋯⋯ 맞아! 드레스! 마님은 결혼식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싶으세요? 아무래도 신식 드레스를 입으려면 프랑의 재단사를 초빙해야겠지요! 그리고 요리사! 피로연에는 무엇보다 요리사가 중요 하지요! 지금 저택의 요리사도 실력이 좋은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피로연 음식을 많이 만들어 본 사람은 아니라 결혼식을 위해 사람을 더 뽑아야겠어요. 그리고⋯⋯.”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화제는 결혼식 준비로 넘어갔다.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나열하는 폴린느 부인의 두뺨은 상기되어 있었고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이대로 새로운 화제에 묻어가는 것도 좋겠지만, 묻지 않고 넘어 갈 수 없는 궁금증이 있었다. 나는 머뭇대며 부인에게 물었다. “저, 부인.” “예.” “부인께서는 제가 이 공작저의 안주인이 되어도⋯⋯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 말에 폴린느 부인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괜찮으냐니요? 마님께선 공작님께서 선택하신 분이신걸요? 저는 오히려 기쁘답니다. 지금까지 내내 안주인 없이 안살림을 꾸리는 일이 힘에 부치던 참이었거든요.” 그리고 부인은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내게로 기울여 속삭였다. “사실 마님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둘만 있으니 하는 말인데, 전에 이곳을 방문한 공주님이셨다면 제가 정말 제 명에 못 살 뻔했지 뭐예요?”     부인의 방에서 이루어진 티 타임이 끝난 이후 나는 예전의 방이 아닌 다른 곳에 짐을 풀었다. 욕실이 딸린 침실뿐만 아니라 거실 겸 응접실과 침대가 있는 방 두 개가 더 딸린 크고 호화스러운 방이었다. 방에는 이미 내가 전에 이곳에 놓고 간 물건까지 놓여 있었다. 방을 구석구석 훑어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미 전에 이 방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긴 이전에 스카디에 방문한 공주님이 쓰시던 방이었다. '⋯⋯.' 크리티엔 드 랑시스 공주님. 그녀와 얽혔던 얼마 되지 않는 기억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공주님과의 첫 만남과 짧은 대화, 초대받을 수 없었던 무도회에서 나오는 창밖의 불빛을 보고 느꼈던 심상들. 나중에 전해 들은, 공주님께 일어난 불행한 일들도. '만약 공작님께서 그분의 청혼을 받아들였더라면⋯⋯ 그분은 좀 더 늦게 왕궁에 도착했을까? 만일 그랬더라면 그 역병을 피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나의 앞날도 모르는데 공주님의 앞날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그저 불행한 줄만 알았던 일도 나중에는 행운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그분 또한 그러기를 바랐다. '그분의 불행 속에도 행운이 깃들어 있기를.' 그보다도 일단은 목욕이 절실했다. 나는 하녀에게 부탁해 목욕을 마치고 이곳의 두툼한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곳에 두고 왔던 포근한 겨울옷을 입고 나니 다시 한번 돌아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나가서 문을 열어 보니 공작님만큼이나 보고 싶었던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아나였다. “선생님!” 아나는 이보다 더 반가워할 수 없는 얼굴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 또한 아나를 꽉 끌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오셨단 소식을 듣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아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고개를 들었다. “공작님께서 선생님을 모셔 오셨다고 들었어요!” 나를 바라보는 아나의 두 눈이 한없는 기쁨과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으로 빛났다. “공작님께서 선생님을 설득하신 거죠? 제 가정교사를 계속해 달라고요.” “⋯⋯.” “선생님, 이제 저를 떠나지 않으실 거죠?” 나는 아나의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아랫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렸다. 폴린느 부인과 달리 아나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나를 끌어안고만 있었다. “선생님? 계속 여기 계실 거죠⋯⋯?” 아나는 불안한 듯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내게 확답을 요구했다. 나는 턱을 간질이는 아나의 머리칼을 한참 느끼다가 아나를 끌어안은 두 팔을 풀었다. “아나, 잠깐 이리 와 봐요.” 나는 아나를 응접실의 소파에 앉히고 옆자리에 앉았다. 소파에 앉은 아나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또 가세요?” “그게 아니라⋯⋯ 그건 아닌데,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요?” “아나⋯⋯.” 어떻게든 운을 떼었지만, 내 머릿속에선 도저히 다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듯한 아나의 표정을 보니 가능한 한 빨리 아나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고 싶어 애가 탔다. 그러나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아나가 상처받지 않게 이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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