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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외전 7화


외전 7화 “혹시나⋯⋯ 시끄럽지는 않으셨나요?” “그건 잘 모르겠고 무척 좋은 느낌이더군. 그대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매일 이런 기분으로 식사를 해 왔겠지? 그대가 가족을 그리워했던 게 충분히 이해되는 시간이었소.” 그의 얼굴을 보건대, 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제 어머니와 무슨 대화를 나누셨어요?” 이참에 나는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별것 아니었소. 그대의 성정은 어머니를 빼닮았더군.”     나는 그가 더 말해 주길 기다렸으나 그는 그대로 입을 닫았고, 그것으로 감상은 끝이었다. 그렇게 된 까닭에 우리 가족과 공작님, 그리고 아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쯤 모여서 함께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그가 우리 가족과 섞이기 위해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식사 자리에서 그를 관찰해 본 결과 공작님은 정말 이 식사 자리를 즐기는 것 같았다. 하루에 있었던 이런저런 일,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약간 소란스럽다면 소란스러운 식사 자리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아니었고 묻는 말에 곧잘 대답을 하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진정으로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더불어 뜻밖에도 우리 가족이 이곳에 정착하고 난 이후로 내가 갖고 있던 한 가지가 절로 해결되었다. 그 고민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아나의 새 가정교사를 고용하는 일이었다. 처음 다시 이곳에 왔을 땐 내가 계속 아나를 가르쳐 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시간이 잘 나지 않았다. 결혼식 준비도 준비였지만 공작저의 안주인으로서 알아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아나의 가정교사를 뽑는 건 나의 권한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뽑아야 아나가 만족할까? 고민의 시간은 나날이 길어졌다. 그런데 고민을 풀 열쇠는 의외로 가까운 사람이 쥐고 있었다. 내 동생, 안이었다. 어느 날 차를 마시며 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녀가 먼저 흔쾌히 제안해 왔다. “내가 해 보면 안 될까, 언니가 정식으로 가정교사를 구할 때까지?” “그래 줄 수 있겠어? 네 시간은?” 안이 이곳에 와서 다시 새로운 작품을 쓰는 데 매진하고 있던 걸 알고 있던 나는 놀랐다. “괜찮아. 어차피 글은 해가 져야 잘 써져서 낮에는 할 일이 별로 없는걸.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아나도 좋아. 너무 귀엽잖아. 내가 언제나 동생이 있으면 하고 바랐던 거 알지? 물론 난 늦잠을 자니까 수업은 점심 식사 때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가 될 테고 나는 언니처럼 궁중 예법은 잘 모르지만⋯⋯.” “너라면 믿을 수 있지!” 결은 다르지만 안의 학식도 나 못지않았다. 어쩌면 안이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나보다 훨씬 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이라면 아나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정교사를 구할 때 가장 염려하던 부분이 모르는 사람에게 아나를 맡길 수 있는가, 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곧바로 공작님께 전했다. “안은 저만큼 아는 것도 많고, 또 성정이 밝아 아나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누군가를 가르쳐 보는 건 처음이지만 저는 그 아이가 잘 해낼 거라 믿어요. 만약 원하신다면 제게 그러셨던 것처럼 면접을 봐도⋯⋯.” “아니. 나는 그대의 안목을 믿소. 아나가 이미 안을 좋아하니 오히려 잘되었군.” 그는 안이 아나의 새 가정교사가 되는 것을 선선히 허락했다. 허락을 받은 뒤부터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틈틈이 동생에게 내가 그동안 아나에게 가르쳤던 수업에 대해 인계했다. “그런데 나도⋯⋯ 춤을 춰야 해?” “그럼 좋지. 배워 두면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지 않겠니?” “내가?” “예를 들면, 네가 쓰는 소설에서라든가⋯⋯.”     그러는 사이에 결혼식 날짜는 성큼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혼식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벽난로의 난롯불이 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슬리퍼를 신고 창가로 다가갔다. 묵직한 커튼을 열어 보니 세상이 뿌옇게 흐리고 무엇인가 흩날리고 있었다. 하얀 눈이었다. 그랬다. 바깥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 안에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다 창을 열고 두 손을 뻗었다.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내게 몰아닥쳤지만 나는 손안에 예쁜 눈송이가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오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축복처럼 느껴져서였다, 그래, 마치 꽃을 뿌리는 것처럼. 첫눈은 바닥을 살짝 덮을 정도로 쌓인 뒤에 그쳤다. 내가 단장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하객인 어머니와 동생, 아나도 한방에서 단장했는데 동생은 처음으로 본 눈에 내내 호들갑을 떨었다. “손에 꼭 쥐면 얼음이 되는데 그 전에는 포슬포슬하다니까, 그런데 차갑고. 그러고 보니 여기 얼음 값이 싸겠네. 프랑에서 얼음은 금처럼 귀하잖아.” 아무래도 신부이기 때문인지, 내 단장은 셋보다 좀 더 오래 걸렸다. 이 일을 위해 초빙된 전문가들은 내 머리를 솜씨 좋게 틀어 올리고 화장에 수 시간 공을 들였다. 마침내 드레스를 입고 결혼 예물을 모두 걸치고 나자 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기진맥진했다. 어머니와 동생, 아나는 한껏 꾸며진 내 모습에 탄성을 내뱉었다. “세상에, 정말로 공주님 같으세요!” 아나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실제로 전신 거울 앞에 선 나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모습을 두 번은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이후 거행된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솔직히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오늘 처음 본 귀빈들에게 수없는 손등의 입맞춤과 선물을 받았고, 찬사에 응했다. 그리고 공작님⋯⋯. 그의 모습만큼은 뚜렷이 기억나는데 그날 처럼 공작님이 잘생기게 보인 적이 없었다. 사실 요즈음의 그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빠서 잘 보지도 못했다. 공작님은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름답소. 정말이지⋯⋯.” 그는 눈빛으로는 무어라고 더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자줏빛 우단 길을 행진했다. 이후 신관에게 축복을 받은 뒤에 열린 연회에서 우리는 이곳의 관례에 따라 얼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투명한 수정 잔에 담긴 벌꿀술을 마신 뒤, 또 잔을 바꿔 서로의 잔에 담긴 술을 나누어 마셨다. 이곳에선 미드라고 불리는 꿀술은 과연 달았다. 술을 마시고 나서 그가 말했다. “결혼식에서 우리가 마시는 이 술은 예전 스카디가 선조들의 결혼 후 풍습에서 비롯되었소. 결혼 후 사람들은 신혼부부를 한 달 동안 방에 가두고 외출을 금지시켰는데 그동안 신랑과 신부의 몸이 상하고 체력이 동날까 봐 우려해 벌꿀로 된 술을 주었다고 하지.” 나는 그 풍습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왜 몸이 상하고 체력이 동나지요?” 그 말에 잠시 동안 그는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한 달간 신혼부부가 갇혀서 할 일이란 게 달리 뭐가 있겠소?” “⋯⋯” “체력이 동날 만하지 않겠소?” 그는 나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오늘이로군.”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들고 있던 수정 잔의 술이 넘칠 정도로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그렇다. 연회가 끝난 후에는 첫날밤이 시작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어 나는 딱 죽을 것 같은 지경이었다. '원했잖아. 이 순간을 기다렸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무서운 거지?' 마차에서의 키스 이후 우리는 단둘이 있는 상황만 되면 서로에게 닿고 싶어 안달이었다. 대체 지금까지 이 감정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서로에게 닿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기만 해서, 아무것도 막을 게 없어진 지금 감정이 폭발한 것일까? 우리는 방에서 서재에서, 그리고 산책을 하다 말고도 서로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갈증이 난 사람의 혀에 고작 물방울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갈증을 해소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나는 오히려 애가 타 죽을 것만 같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만 나날이 달아오를 뿐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물론 아예 지식 자체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고, 결혼식 며칠 전에 어머니께서 찾아와 아주 조심스럽게 오늘 내가 어떻게 해야 하 는지 일러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머니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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