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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8화


#8 “애들이 아직 어리잖니.” “보모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게 아니라 유아 돌연사가 얼마나 흔한지 너도 알 거다. 2황녀도 사고로 세상을 그리 떠났었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황손이 더 필요했다. 가능하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게 그 여자의 할 일이었고. 오레스터의 의무이기도 했다. 오레스터는 제 모친을 빤히 응시했다. 그녀는 그 시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서궁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오레스터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여자를 안는 일이야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할 수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가능했다. 하고 나니 그 일이 얼마나 덧없고 열없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구멍에 박고 허리를 흔들면 되었다. 그러다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감각이 들면 싸면 되는 것이다. 그 여자를 취하는 것은 그렇게 오물을 배출하는 일과 같았다. 그 일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은 대상이 스타테이라였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 여자는……. “서궁에서도 애는 태어날 수 있어요.” “칼.” “태어난 애는 다시 황궁으로 옮기면 되고.” “그러면 굳이 그 여자를 홀로 둘 이유가 없잖아. 지금 처소도 충분히 외진 곳에…….” “그 여자가 내 집에 있는 게 싫으니까.” 오레스터는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여자가 테아와 같은 곳에 있는 게 싫었다. 같은 지붕 아래 같은 이름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언젠가는 도려내어 내던지리라 생각했고. 지금이 적기일지도 몰랐다. 사실은 그 애. 그 여자를 닮은 아이가 죽었을 때 그렇게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애의 죽음으로 죄를 묻든, 무슨 이유를 들어서든 궁에서 내보냈어야 했다고. 그러지 못한 것은 모후의 반대가 강했기 때문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 더 생각해 볼 문제야.” 조피는 씁쓸한 얼굴로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녀라고 하여 그 애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에버하르트 공작이 한낱 시녀를, 아니, 시녀조차 되지 못할 미비한 신분의 민인을 양녀로 삼아 황후로 천거했을 때 그녀는 공작의 따귀를 날릴 뻔했다. 분명 지밀 시녀가 그녀의 팔을 붙들지 않았더라면 욕지거리라도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차라리 민인 신분의 여자가 낫지 않나 싶었다. 황후를 배출할 만큼의 귀한 가문이라면 에버하르트만큼의 대단한 집안의 고귀한 아가씨일 텐데. 스타테이아를 잃고 비뚤어진 황제의 성정을 누가 감당할 것이며. 마음 하나 얻지 못하고 생산의 의무만 다해야 하는 황후 노릇을 그 어느 어린 아가씨가 감당하겠는가. 게다가 동침한 후 황후의 얼굴을 보면 말을 못 할 정도였으니……. 그 손찌검하는 버릇을 그대로 대가문의 여식에게 그대로 했다면……. 상상도 싫었다. 그러니 황제의 계후 자리에는 난나가 안성맞춤이었다. 천한 피이긴 하지만 머리가 나쁜 핏줄은 아닌 모양인지 황태자인 슬란 또한 곧잘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고. 1황녀인 스텔라 또한 고약한 면이 있긴 하지만 꽤 사랑스럽고 또, 어리지만 상당히 미인이니 자라고 나면 정략혼에 이용하기 좋을 것이다. 그러니 난나를 조금 더 대우할 필요가 있었다. “황후의 거취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에버하르트 공작과도 그리하기로 했으니 모후께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 “그만 일어나 보지요.” 오레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피는 불쾌한 얼굴로 그를 찌르듯 쳐다보고 있었다. 노려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늘 그렇듯 익숙하게 뒤를 돌았다. 시종이 곧장 그를 뒤따르며 입술을 뗐다. “황후께서 에버하르트 공과 접견을 하고 계시다 합니다.” 단정한 음성이 그의 귓가를 울렸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시종을 흘긋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어린 남자는 두려움에 고개를 퍼뜩 숙였다. 오레스터는 여자를 떠올렸다. 스타테이라의 아버지와 함께 있는 여자 말이다. 그 여자가 어떤 얼굴로 그 남자에게 매달리고 있을지는 뻔했다.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고. 그리 매달리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 너저분한 어린애들 때문일 것이다. 그 애들을 데리고 나가게 해 달라고. 즉 그 여자의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나가는 게 싫은 것도 아니고 폐출이나 유폐에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알고 있는데…… 왜 거슬리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가학적인 마음이 드는지 늘 알 수 없었다. 오레스터는 언제나 그 여자가 싫었다. 그 여자가 웃거나 볼을 물들이는 게 끔찍했다. 보고 있는 것도, 옆에서 숨을 쉬는 것도……. 빤히 보이는, 그 여자가 제게 품은 마음마저 우습고 주제넘게 느껴졌다. 울고 있는 게 익숙한 여자였다. 사실은 그 여자를 이렇게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는데……. 모후 역시 그러지 않았나. 알고 보면 죄가 없는 여자라고. 그러나 스타테이라를 대신하여 죽지 않았다. 그날 죽은 게 그 여자가 아니라 스타테이라였기 때문에……. “……공작. 아이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와 에버하르트 공작은 백합의 방에 머물고 있었다. 백합의 방은 두 황자와 황녀를 위한 방이었다. 그는 2황자를 품에 안고 있는 공작을 응시했다. 황가와 마찬가지로 ‘에다’인의 피가 섞인 공작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젊고 건장했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공작을 그와 같은 연배로 보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타테이라의 생부였고 그의 장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2황자의 생부라고 주장할지도 몰랐다. 그는 우두커니 여자를 응시했다. 여자는 공작의 품에 매끈한 달걀처럼 웅크린 어린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작의 커다란 두 손이 당장 그 어린애를 내동댕이치기라도 할 것처럼 위태로운 시선으로. 그러나 그는 어딘가 유쾌하지 못한,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장이 뒤틀리는 것처럼 기껍지 못한 감각이 그를 야금야금 좀먹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계집이 공작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 않나. 그는 미간을 좁히는 대신 날카롭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홧홧한 열기가 그의 명치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름 모를 낯선 감정에 잠식되어 형형히 그들을 보다가 픽 웃었다. 스타테이라가 죽음과 다름없는 ‘깊은 잠’에 들고 공작은 제 딸의 시녀이자 비밀리에 두었던 제 시침녀를 양녀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의 계처로 천거했다. 그는 달리 거부하지 않았다. 에버하르트 공가에는 스타테이라 외의 달리 딸이 없었다. 그와 가까운 사촌들, 혹은 뜻을 함께하는 형제들이 낳은 딸은 모두 어리거나 시집을 가 아이를 낳은 상태였다. 그렇지 않은 형제들은 지난날 구제국의 편에 선 채 형장의 이슬이 되었고 그들의 딸은 고관대작의 첩이 되었다. 그러니 패를 잃은 셈이다. 적당히 순진하고 말귀를 알아듣기 좋을 만큼 영리한 것이 필요했으리라. 그 여자가 공작의 침실 시녀였다는 것은 의외로운 일이긴 하였으나……. “폐하?” 문득 여자가 뒤를 돌았다. 공작의 앞에서 난색을 표하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딱히 황후답지 않은 태도였으나 언제고 제 앞에서 그 지위에 걸맞은 품위를 지킨 적이 있던가. 그는 개의치 않고 나아갔다. “신성이 수호하는 팔코메르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공작이 가볍게 묵례했다. 여전히 품 안에 아이가 갇힌 채였다. 그는 제 아들을 보았다. 이제 막 8개월이 된 아이는 한눈에 봐도 생모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공작이 더 미련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보았자 제 아들로 키울 수도 없는 것을……. 게다가 황제는 2황자의 생부가 그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눈앞의 여자가 낳은 아이는 당연히 모두가 자신의 아이였다. “애를 좋아하는구나, 공작. 하긴 이맘때 젖먹이는 하염없이 사랑스럽지.” 오레스터는 가볍게 웃었다. 무심하게 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자 아이가 바르작거림을 멈추었다. 그러다 다시 제 엄마에게 가겠다고 버둥거렸다. 공작은 머뭇거리다 결국 그 아이를 여자에게 넘겨주었다. 아이를 건네받은 여자가 입술을 달막거렸다. 그만 자리를 떠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재혼이라도 하는 게 어때?” 막내를 보던 그가 공작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입술을 뗐다. 에버하르트 공작은 첫 부인. 그러니까 스타테이라의 모친을 잃은 후 단 한 번도 재혼을 한 적이 없다. 그녀를 잃었을 때가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음에도 그랬다. 지위가 지위이다 보니 현재도 혼사 제안은 꾸준히 받고 있다고 들었다. 그의 지위와 막강한 세력을 생각하면 적당한 여자를 물색하여 안주인을 맞이하는 게 옳았다. 정 비위에 맞는 여자를 찾지 못했다면 처와 정부를 따로 두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공작은 어느 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필요 없는 것처럼……. 그 같은 순정을 지키는 게 일생에 있어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 ‘그리 지조를 지킬 수 있음이 부럽군.’ 그는 짤막한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공작이 그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문득 옆방에서 예절 수업을 듣던 스텔라가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망아지 같은 딸을 생각하다가 자리를 옮기길 권유했다. 여자는 잠시 울적한 표정을 짓더니 딸아이를 살피러 가 보겠다고 했다.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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