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9화
#9
스텔라의 이름은 황제의 정후이자 그의 유일한 연인이었던 ‘스타테이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스타테이라라는 이름의 역사를 살피자면 먼 옛날 구제국의 본원이었던 고대 왕국이 섬겼던 여신의 이름이었고 또한 왕국의 정복왕이 아내 삼았던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이기도 했다.
에버하르트 공작 세르미온은 그 이름을 아내의 모친이자 장모였던 게오르크 후작 부인의 이름에서 땄다고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아내가 숨을 거두기 전에 딸의 이름을 짓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스타테이라는 제 길고 장황한 이름을 ‘테아’라고 줄였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며 친구들은 모두 그녀를 ‘테아’라고 불렀다. 약혼자도 그리 불렀고 훗날 황후가 되어 그녀를 모셨던 시녀들과 하녀들 또한 ‘테아 황후님’ 하고 불렀다.
난나도 가끔은 그녀의 미천한 시녀이던 시절에 ‘테아 아가씨’라고 불렀었다. 그러다 그녀가 황후에 책봉되고 나서는 그저 ‘황후님’ 하고 불렀다. 그때는 자신이 낳은 딸의 이름이 ‘스타테이라 2세’가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가 섬기던 주인 아가씨의 남편과 배를 맞추어 자식을 낳을 줄도 몰랐다.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바란 적도 없었다. 그를 홀로 사랑한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으흐, 흐아앙-”
스타테이라 2세. 그러니까 테아와 구분하기 위하여 난나가 직접 ‘스텔라’라고 애칭을 지어 준 딸아이는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두려워하던 아버지를 마주하자 잠깐 울음을 그쳤으나 이내 그녀의 품에 덥석 안겼고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알렉시스를 안고 있던 그녀는 당황하여 딸을 내려다보았다.
황제는 그저 무심한 시선이었다. 직접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따 붙여 준 제 딸임에도 무관심한 눈이었다. 그 무정한 눈이 하루이틀도 아닌데 난나는 또다시 울컥했다. 그러나 이리 울화가 치밀면 무얼 하나. 난나는 하녀에게 잠시 아이를 맡긴 후 스텔라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만 울렴. 스텔라. 폐하와 공작께서 흉을 보실 거야.”
“……싫어. 싫어.”
스텔라가 그녀의 가냘픈 몸을 끌어안으며 도리질 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스텔라는 예절 수업 선생을 정말 싫어했다. 엄격한 데다 고리타분한 중년 여자를 누가 좋아할까 싶긴 하지만 스텔라는 그 정도가 조금 심했다. 그러나 보모인 슈발렌 자작 부인과 달리 한 번도 선생을 교체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두 번 이상 교체했고 스텔라는 그녀 외에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녀와 제 오빠, 그리고 어린 동생을 제외하면 모두 싫다고 했다. 아버지인 황제도 싫고, 할머니인 황태후도 싫고. 보모인 슈발렌 자작 부인도 싫고. 자신의 전속 시녀인 ‘낸시 메이플’도 싫다고.
‘그럼 친구인 리리안나는?’
‘걔도 싫어.’
‘뭐?’
‘걔도 싫다고. 리리안 싫어!’
‘하지만 리리안하고 자주 놀잖아. 이틀 전에는 리리안한테 인형도 선물했으면서.’
‘몰라. 걔도 싫어. 걔도 나 싫어할걸?’
‘그렇지. 않아. 스텔라.’
난나는 친구마저 싫다는 딸의 발언에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주 노는 친구마저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스텔라는 꽤 격하게 부정의 말을 반복 중이었다. 그녀는 음울하게 아이를 보다가 ‘우리 스텔라는 왜 싫은 게 많을까?’ 하고 물었다.
스텔라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엄마는 좋아. 슬란 오빠랑 알렉시스도 좋고.’ 하고 작게 말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게 그뿐이라고. 보통 이 나이대 여자아이들은 다 그런 걸까. 좋아하는 게 극소수고 싫어하는 건 아주 많은 걸까. 모르겠다. 난나는 음울한 얼굴로 딸의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슬란보다 황제를 닮은 얼굴이 꼭 황제의 축소판 같았다. 아버지가 미남이라 그런지 스텔라 역시 상당한 미소녀였다. 평소 탐미주의자로 사교계에서도 유명했던 황태후 역시 제 까칠한 손녀를 두고 인형처럼 예쁘다고 했다. 숙녀가 되면 대륙을 뒤흔들 미녀가 될 거라고.
검은 물결처럼 풍성한 머리에 빛나는 벌꿀색 눈동자. 하얀 꽃송이 같은 얼굴과 자두빛 뺨과, 붉고 봉긋한 입술. 스텔라는 정말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러나 그럼 무얼 하나. 이렇게 제멋대로에 울보인데. 황제가 ‘망아지’라고 부르며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리리는 스텔라를 좋아해.’
‘아냐. 그 애랑 그 애 엄마가 그랬어. 어, 엄마보고…….’
스텔라가 울먹거렸다. 상처받은 듯한 작은 얼굴이 잘 익은 사과 같았다. 스텔라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려는 듯한 얼굴로 봉긋한 입술을 꾹 다물다가 스텔라, 하고 달래는 모친의 음성에 결국 입을 열었다.
‘차, 창녀라고 했어.’
‘뭐?’
‘몰라! 나 리리 싫어. 엄마도 싫어! 미워!’
스텔라가 그녀의 가슴을 밀어 내더니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달아나지는 않으려는지 소매로 두 눈을 가리며 펑펑 울었다. 난나는 딸아이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물끄러미 그녀를 보다 뒤늦게 자그마한 몸을 안았다.
스텔라는 어린아이답게 모친의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랬던 게 언제였던가. 며칠이나 지났나. 난나는 스텔라가 결국 딸아이라 이렇게 자주 우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유년 시절은 어땠는지 떠올리다 이내 어깨를 늘어트렸다.
난나는 어릴 때 울어도 안아 줄 엄마가 없었다. 생모가 살아 있긴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난나에게 가혹했다. 그러니 없느니만 못하다. 주정뱅이 아버지는 또 어땠고……. 난나는 피곤한 얼굴로 두 남자를 돌아보았다.
황제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싫어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라고 하면 으레 우는 게 일인 존재였다. 그게 생존 수단이었고 하고자 하는 말의 표현이었다. 스텔라 같은 어린 소녀도 마찬가지다. 스텔라가 나이에 비해 과하게 투정이 심하고 표현이 미숙하긴 하지만 예닐곱 먹은 어린애란 거기서 거기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황제는 어린아이의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했다. 하여 근처도 오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에버하르트 공작은 또 어떻고. 그는 자신의 딸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녀의 임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알렉시스를 자신의 아들이라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
난나는 어둑하게 공작을 보다 시선을 돌렸다. 딸이 우는 것을 본 황제는 그녀를 직접 달래지 않고 보모를 불러들였다. 황녀와 함께 제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보내 버리리라 생각했던 황제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슈발렌 자작 부인에게 황녀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
난나는 딱딱하게 낯을 굳혔다.
“저도 이만…….”
“황후는 짐과 할 말이 있을 텐데?”
황제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가 먼저 뒤를 돌았다. 난나는 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에버하르트 공작을 보았다. 공작의 녹색 눈은 평온했다. 난나는 어두운 낯으로 그들을 뒤따랐다.
공작이 향한 곳은 구제국의 마지막 황후가 몹시도 사랑했던 온실 정원이었다. 구제국의 이름을 따 ‘발로칸 정원’이라 불리는 곳은 정제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절제된 구조물과 자연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물풍금을 지나 등나무 시렁으로 갔다. 이제 막 보랏빛 꽃봉오리가 솔방울처럼 맺히기 시작하여 몹시도 아름다웠다.
난나는 서늘한 바람에 목덜미가 조금씩 식는 것을 느끼며 황제의 가슴팍을 응시했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작과 그녀가 접견을 한다고 할 때마다 그는 크든 작든 반응을 보였으니까. 난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골랐다.
그가 무엇을 묻기 전에 이런저런 답을 준비하는 것은 그녀의 버릇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스타테이라의 시녀이던 시절부터 간직해 온 습관이다.
“공작을 그렇게 의지하는 줄 몰랐어. 역시 양부와 양녀라도 부녀지간이라 그런지 아주 오붓한 모양이야.”
“폐하.”
난나는 옆에 선 에버하르트 공작을 흘긋 보며 입술을 달막거렸다. 그는 감히 황제의 앞에서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파이프를 물었다. 난나는 그 불경한 태도에 소스라치는 대신 죽을 듯이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