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미궁6
27화. 미궁6
벽면에 남은 푸른 얼음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이곳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다.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차갑고 강한 눈빛으로 언제나 길을 찾아내던 그녀라면….
설령 이 거센 지하수에 휩쓸렸다고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 절망하는 게 아니었다.
위쪽에는 아직 엘레노아가 있었다.
촉수 마물에게 붙잡혔다가 간신히 떨어진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층층이 무너져 뚫린 미궁의 구멍 너머로, 위쪽의 어둠이 아득하게 보였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바닥 사이에는 검붉은 촉수 마물의 몸이 기둥처럼 솟아 있었다.
놈은 미궁의 바닥과 벽 사이에 뿌리를 박은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저것조차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나는 검을 고쳐 쥐고, 벽면과 마물의 몸을 번갈아 밟으며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질척.
발밑에서 불쾌한 감촉이 느껴졌다.
촉수 마물의 몸은 살아 있는 살덩어리처럼 꿈틀거렸고, 발을 딛는 곳마다 검붉은 체액이 배어 나왔다.
우웅!
“……?”
갑자기 위쪽에서 거센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미궁의 천장과 벽을 뒤흔드는 수준의 마력.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다음 순간.
콰아아아앙!
위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촉수 마물의 몸통이 안쪽에서부터 찢겨 나가며 검붉은 체액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젠장!”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바로 위에서 부서진 석재와 마물의 살덩어리가 한꺼번에 떨어졌다.
콰직!
방금 전까지 내가 붙잡고 있던 촉수 기둥이 짓뭉개졌다.
검붉은 체액이 사방으로 튀고, 부서진 돌덩이가 어둠 속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벽면의 틈에 간신히 몸을 밀어 넣고 충격을 피했다.
미궁 전체가 흔들렸다.
한동안 귀가 멍해질 정도의 굉음이 이어졌다.
“큭…….”
위를 올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위로 이어지던 길은 사라져 있었다.
거대한 돌덩이와 검붉은 살덩어리가 뒤엉킨 채 구멍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빌어먹을.”
나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억지로 뚫을 수 있을까….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잔해가 얼마나 두껍게 쌓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턱대고 건드렸다간 위쪽 전체가 다시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
사방에서 마물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투시로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벽 너머 곳곳에서 마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개중에는 서로 마주치자마자 아귀다툼을 벌이는 놈들도 있었다.
방금 전의 굉음과 마력의 충돌이 미궁 아래쪽에 있던 것들을 전부 자극한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야를 더 넓혔다.
먼저 확인한 건 지하수 쪽이었다.
거센 물살 너머로 루크레치아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는 것은 어둠에 잠긴 물길과 그 위를 간간이 떠내려가는 푸른 얼음 조각뿐이었다.
루크레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악문 채 이번에는 엘레노아가 떨어졌던 방향을 확인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무너진 층과 잔해, 그 사이를 가로막은 수많은 벽과 기둥을 억지로 꿰뚫어 보느라 시야가 빠르게 흐려졌다.
눈 안쪽이 타는 것처럼 욱신거리고, 머릿속의 마력도 급격히 깎여 나갔다.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저 위쪽에 희미하게 떠오른 세 개의 인영뿐이었다.
엘레노아 그리고 아마도 볼프람과 세레나.
그 정도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더 붙잡고 있다가는 위치를 확인하기는커녕 움직일 힘까지 잃을 것 같았다.
그래도 방향은 알았다.
“후우…!”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투시를 거두었다.
루크레치아를 찾지 못한 건 뼈아팠지만, 지금 당장 닿을 수 있는 곳에는 엘레노아가 있었다.
나는 검을 고쳐 쥐고,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최대한 접근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후욱!”
거친 숨을 토해냈다.
검을 쥔 손이 저릿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마물들과 맞닥뜨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원래라면 서로의 구역을 피해 움직였을 놈들이 지금은 완전히 뒤엉켜 있었다.
마물끼리 부딪히며 통로마다 혼란이 번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대혼돈이었다.
나는 벽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
하지만 오래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다시 투시를 사용했다.
시야가 벽 너머로 번져 나갔다.
무너진 잔해와 겹겹이 이어진 미궁의 벽 너머, 저 위쪽에 희미한 인영 세 개가 보였다.
엘레노아 그리고 볼프람과 세레나로 보이는 두 사람.
거리가 너무 멀어 자세한 움직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 인영은 아직 같은 구역 안에 있었다.
“…….”
이제는 마물보다 볼프람이 더 신경 쓰였다.
엘레노아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볼프람으로 보이는 인영은 엘레노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
나는 투시를 거두고 다시 검을 고쳐 쥐었다.
눈 안쪽이 욱신거렸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세 인영이 있는 방향을 머릿속에 새긴 채 다시 어둠 속으로 발을 옮겼다.
얼마나 더 움직였을까.
중간중간 투시로 확인한 세 인영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거리는 있었지만, 적어도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 하나에 의지한 채 무너진 통로와 잔해 사이를 지나 계속 위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한참을 더 움직인 뒤, 다시 한 번 위치를 확인하려고 마력을 끌어올리던 찰나였다.
“…….”
앞쪽 통로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즉시 투시를 멈추고 검을 고쳐 쥔 채 벽에 몸을 붙였다.
발소리가 들린다.
최소한 둘 이상이었다.
규칙적인 호흡과 걸음걸이가 느껴진다.
긴장감을 완전히 놓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미궁에서 이런 기척을 낼 자들은 한 부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모퉁이 너머에서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제국 기사 정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1학년의 푸른 정복을 입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 다 겉으로 보이는 액면가로 보건데 나보다는 상당히 윗 기수의 졸업생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무기를 들려다 말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 제국 기사였군.”
“깜짝 놀랐잖아. 마물인 줄 알았어.”
둘 중 키가 큰 남자가 먼저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 경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 역시 검끝을 조금 내렸다.
“당신들도 이번 미궁 의뢰를 받은 기사들입니까?”
“그렇지. 그쪽도 아까 그 난리에 휘말린 모양이네.”
“아까 그 난리라면…….”
“위쪽에서 무슨 거대한 마력이 터지더니 갑자기 바닥이 무너지고, 마물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온 일 말이야. 덕분에 우리도 죽는 줄 알았어.”
옆에 있던 남자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물들이 서로 물어뜯고 난리도 아니더라고. 원래는 지휘관 개체 흔적만 확인하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미궁 전체가 뒤집힌 것처럼 변해버렸어.”
“저도 그 일 때문에 동료들과 흩어졌습니다.”
“동료들과?”
“예. 미궁 지하에서 바닥이 무너졌습니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지하수에 휩쓸렸고, 저는 지금 그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엘레노아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투시로 희미하게나마 확인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방향을 맞춰가며 접근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그녀가 있는 곳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크레치아는 달랐다.
“으음….”
내 말에 두 기사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거 큰일이군.”
“혼자 다니기엔 지금 미궁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나는 곧장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아, 잠깐.”
내 말을 끊은 건 키가 큰 기사였다.
그는 옆에 있던 동료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찾는 동료가 여기사는 아니지?”
그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 묘한 기색이 스쳤기 때문이다.
당황도 아니고, 걱정도 아니었다.
입가에 걸린 건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음흉한 미소에 가까웠다.
마치 방금 떠올린 여기사가 단순한 동료 기사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는 듯한 표정.
그걸 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한 감각이 치밀어 올랐다.
“……아닙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여기사는 아닙니다.”
“그래?”
키 큰 기사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럼 아니겠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가라앉힌 채 물었다.
“그런데 여기사를 봤습니까?”
“아, 뭐. 봤지.”
“어디서 봤습니까?”
“이 근처 아래쪽 공동에서. 혼자 있더라고.”
“혼자요?”
“그래. 정확히는 혼자 싸우고 있었지.”
그는 동료를 한 번 돌아본 뒤 말을 이었다.
“미노타우르스랑 말이지.”
“그 여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키 큰 기사는 잠시 말을 흐렸다.
옆에 있던 남자가 대신 입을 열었다.
“우리도 도우려고는 했어. 그런데 상황이 영 아니더라고.”
“상황이요?”
“그 여자도 이미 많이 지쳐 보였어. 혼자 떨어진 모양인지, 장비도 엉망이었고 숨도 제대로 못 고르고 있었지.”
키 큰 기사가 급히 덧붙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비겁하게 도망쳤다는 건 아니야. 미노타우르스였다고. 그것도 보통 놈이 아니었어. 우리 둘이 끼어들었다간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만 잡았을 거다.”
“맞아. 만약 거기서 우리가 개입했으면 더 소란이 일어나서 다른 마물들이 더 달려들었을 거야.”
그의 말투에는 변명 같은 기색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 여기사가 무슨 능력을 썼습니까?”
내 질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키 큰 기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얼음….”
“…….”
“얼음으로 만든 송곳 같은 걸 쏘더라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루크레치아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에는 버티는 것처럼 보였어.”
키 큰 기사가 말을 이었다.
“바닥을 얼리고, 미노타우르스의 다리를 묶어두려고 했거든. 나쁘지 않았어. 솔직히 우리 둘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런데요?”
“미노타우르스가 들고 있던 몽둥이를 휘둘렀어.”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피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이미 많이 지쳐 있었던 모양이야. 정면으로 맞은 건 아니었지만, 몽둥이 끝에 몸이 걸리면서 그대로 날아갔어.”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기사가 낮게 말했다.
“엄청난 소리가 났어. 사람이 아니라 고깃덩이를 벽에 던진 것 같았다니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뒤에는요?”
“……일어나지 못했어.”
키 큰 기사가 시선을 피했다.
“움직이려고는 했는데,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더라고. 능력도 제대로 못쓰더군.”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걸 보고 미노타우르스가 다가갔는데….”
그 대답에 나는 숨을 삼켰다.
“죽이진 않았어. 놈은 자기 몸에 치렁치렁 감고 있던 쇠사슬을 풀더니, 그 여자를 그대로 묶어버렸어. 팔이랑 다리까지 전부.”
“…….”
“마치 전리품처럼 자기 몸에 매달아 끌고 가려는 것처럼 보였지.”
그 말에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마물들이 여성을 산 채로 끌고 가는 이유는 대개 비슷했다.
놈이 그녀를 먹잇감이 아니라 번식에 이용할 대상으로 봤다는 뜻이었다.
순간 내 안의 마력이 꿈틀거렸다.
처음 겪었을 때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미래시가 아니었다.
심연의 사도로 인해 오염된 내 미래시가, 평소와는 다른 미래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미래.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장면.
하지만 동시에 내 안의 저주가 갈구하는 가장 끔찍한 가능성.
나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억눌렀다.
하지만 내 염원과 달리 마력은 요동치며 내게 미래를 보여주었다.
기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스쳤다.
-미노타우르스가 여기사를 들어올려서 거의 사람 다리만한 자지를 그대로 꽂아넣는거야
“끄윽! 끅! 끅! 흐읍! 그마아안…!”
어느새 나는 미궁의 낯선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눈앞의 모퉁이 너머에서 마치 내장이 뒤틀리고 뱃속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박자마자 온몸이 부르르 떨면서 액을 쏟아내던데?
“하악! 학! 학!”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숨이 넘어갈 듯 다급했고 거칠었다.
내 몸은 천천히 모퉁이 너머로 향해 움직였다.
-거의 신음이 아니라 울부짖는 소리였어.
“하악! 학! 살려…, 오오옥!! 우웨엑!”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천박하고 짐승같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나는 힘겹게 모퉁이를 지나 털썩 주저앉았다.
거구의 미노타우르스의 몸에 묶인 루크레치아는 이미 놈의 번식용 장난감이 되어있었다.
푸슈슈슛! 푸슛!
-아카데미에서부터 여기사들이 음란한 건 알았지만 미노타우르스의 자지에 박히면서 가버리는 건 의외였단 말이지.
“오옷! 어오옥! 으옹오옷! 간다! 간다! 가버려어허헛!”
“쿠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는 미노타우르스는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잡고 미친듯이 허리를 쑤셔넣기 시작했다.
방금 가버린 그녀의 몸은 일말의 배려조차 없었다.
마물답게 그저 원하는대로 쑤셔넣을 뿐이었다.
그녀의 배 위로 거대한 미노타우르스의 자지가 불룩 솟아올랐다.
동시에 그녀의 음부에서 미친듯이 애액이 뿜어져 나왔다.
푸슈슛!
-거의 무차별적으로 박아대는데, 그럴때마다 배가 불룩해지더라고
“죽…엇…! 억! 억! 제바알… 살려줘엇…. 부서져…! 자궁이 부서져!!”
내가 아는 그녀는 언제나 차가웠고, 단단했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그녀는 누구보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어떤 위기 앞에서도 냉철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루크레치아가 지금은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
냉철하던 목소리는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언제나 상대를 꿰뚫어 보던 푸른 눈동자에는 공포와 쾌락만이 가득했다.
그녀가 쌓아 올렸던 고결함, 기사로서의 긍지, 무너진 가문의 이름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차가운 각오, 그 모든 것이 눈앞에서 짓밟히고 있었다.
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이 미노타우르스의 거대한 손에 완전히 뭉개졌다.
-체구가 다르니까 한 손에 그냥 젖을 아주 뭉개버리더라고
“오옥! 오옥!!”
나는 무의식적으로 투시 능력을 사용해버렸다.
그녀의 몸 안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기둥이 보인다.
저게 과연 자지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미노타우르스의 자지는 그대로 그녀의 질을 박살내듯 안으로 뚫고 들어가 자궁구까지 침범해 있었다.
“아아…….”
나는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몰락을 지켜봤다.
“……!!”
그녀는 이제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다.
그저 박힐때마다 온몸을 비틀며 천박하게 무너지는 얼굴을 보여줄 뿐이었다.
쿵!
미노타우르스는 그녀를 매단 채 미궁 안으로 사라져간다.
한걸음 내딛을때마다 마물의 자지가 그녀의 몸을 긁어버리며 빠졌다가 다시 자궁구까지 밀고 들어간다.
-사정당해서 다리 사이에서 정액이 줄줄 흐르는 채로 그대로 안쪽으로 데려가던걸…. 나중에라도 구하지 못하면 아마 평생 마물의 새끼나 낳을거야.
“웩! 우웩!”
루크레치아는 그럴때마다 입에서 위액을 토하며 온몸을 바둥거린다.
그녀의 눈에는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영원히 이 미궁에서 마물의 모태가 되어 살아갈…….
“이봐…. 괜찮아?”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준 거 아니야?”
순간 눈앞의 광경이 산산이 무너졌다.
모두 물속에 비친 풍경처럼 일그러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헉!”
나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는 두 명의 제국 기사가 서 있었다.
“괜찮은가?”
“안색이 엄청 안 좋은데.”
나는 말없이 이마를 짚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방금 본 광경이 너무 생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 여기사 말인데.”
나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외모를 조금 더 자세히 기억하십니까?”
두 사람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키는 꽤 컸던 것 같은데.”
그리고 옆에 있던 기사가 손짓하며 말했다.
“머리카락이 눈에 띄긴 했어.”
“무슨 색이었습니까?”
“적갈색.”
순간 굳어 있던 가슴이 조금 풀렸다.
적갈색.
루크레치아가 아니다.
루크레치아의 머리카락은 밝은 금발이다.
아무리 기억이 흐릿해도 적갈색과 착각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여자는 다른 기사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방금 미래시가 보여준 광경이 곧바로 현실이 된 것은 아니다.
“도움이 됐습니다.”
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동료를 찾으러 가봐야겠습니다.”
“혼자 움직일 생각이야?”
“지금 미궁 상태가 영 좋지 않은데.”
“그래도 가야 합니다.”
두 기사도 더 말리지는 않았다.
“그럼 행운을 빌지.”
“살아서 나가자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렸다.
뒤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다시 혼자가 됐다.
사방에서는 여전히 마물들의 울음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너진 통로를 넘고, 갈라진 바닥을 뛰어넘고, 중간중간 마물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점점 엘레노아가 있던 방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벽 너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무너진 층과 통로,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마물들.
그리고 내가 찾던 엘레노아의 모습이 정확히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적어도 내가 가장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볼프람이 엘레노아를 유린하고 있는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모습 또한 아니었다.
엘레노아는 결코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