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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EP0064-0060화-승전 연회 2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귀족들의 찬사와 환호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은 이 연회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그들이 주인공이 맞았다. 이토록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었으니까. ​ “당연한 말씀입니다!” “두 분이 함께하시는 편이 훨씬 보기 좋겠군요.” “토벌전의 영웅들이 함께 입장하는데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 귀족들의 외침과 동시에 시종장이 크게 손을 흔들자 연회장 한쪽에 자리한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승전곡 특유의 활기차고 밝은 음악 소리가 연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레오폴트는 루크레치아에게 바짝 다가가 몸을 살짝 숙여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귀족 영애들의 들뜬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 “꺄악! 속삭이고 있어! 정말이지 두 사람…. 잘 어울리지 않아?” “황태자 전하께서 저렇게까지 가까이 속삭이시다니….” “그리고 루크레치아 영애가 입은 드레스 좀 봐. 수수한 흰색 드레스긴 하지만 저 금박 장식은 황실에서나 쓸 법한 문양이잖아.” “설마 황실에서 준비한 걸까?” “그렇다면 두 분이 정말……?” ​ 그들은 끝맺지 못한 말을 서로의 눈빛으로 대신하며 즐거운 상상을 이어 갔다. ​ 몰락한 북부의 맹주, 로엔하임의 하나뿐인 후계자. 그녀를 제국의 중심으로 이끈 황태자. ​ 두 사람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이미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던 레오폴트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입가엔 느긋한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마치 원하는 걸 얻은 것 같은 만족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어떤 말을 속삭인 걸까…. ​ -루치아. 오늘 더 아름답군. 이따가 내 침실로 오너라. -네… 전하. 그때처럼 제 안을 가득 채워주세요. ​ 머릿속에는 삼류 연극에서 나올 법한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찢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아마 레오폴트의 침실에 찾아간 루크레치아는……. ​ ​ 상상속의 루크레치아는 쾌락과 행복에 차올라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몸을 안는 것도 나보다 레오폴트가 어울릴지도 몰랐다. 그 주둔지에서 눈물로 애원하던 그녀는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한 게 아닐까…. ​ 수도로 올라오면서 그 날 이후 생겼던 어색한 기류에 별다른 말조차 섞지 못했으니 그녀의 마음을 알 순 없었으나…. 만약 그게 맞다면…. ​ 그때 멈춰 있던 루크레치아와 레오폴트는 천천히 연회장 안쪽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갈때마다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내가 서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 루크레치아의 흰 드레스 자락이 내 시야의 끝에 스쳤다. 하지만 나는 차마 고개를 들고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 없어 푹 숙였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운 거리였는데…. ​ 그들의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멀어질 때쯤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두 사람은 저 멀리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 이게…. 이게 그녀의 대답인걸까…. ​ ‘루크레치아….’ ​ 뒤에서 바라보더라도 아름다운 한쌍이었다. 누구보다 어울리고 뭇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나같은 평민과는 태생부터 다른 존재들. ​ 어쩌면 이게 맞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원하는 가문의 복권도, 곧 되찾을 가문의 영지와 영광도 모두 레오폴트의 곁에 있다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 저 구석진 곳에서 두 사람을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는 북부 출신 귀족들도 고개를 조아리겠지…. 그럼 로엔하임의 이름은 다시 제국 북부에 떨쳐질테고, 그녀는 잃어버렸던 걸 다시 되찾을 수 있다. ​ -후배님. 내게 남은건…. 고작해야 이 천박한 몸뿐이에요. 남자들의 눈요깃거리에 불과한…. ​ 불현듯 루크레치아가 아카데미에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전 제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 언젠간 북부로 돌아갈거에요. 그걸 위해서라면 전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그래…. 그동안 그녀가 나와 함께 있어줬기에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잊은 척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 루크레치아는 원래 저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수많은 귀족들의 시선과 박수 속에서 잃어버린 가문의 이름을 되찾고 북부로 돌아가 로엔하임의 깃발을 다시 세워야 할 사람…. 그런 그녀를 내 곁에 붙잡아 둔 건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족쇄였을지도 몰랐다.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평민 기사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거창한 영지도 가문의 명예도 그녀가 되찾고 싶어 하던 북부의 영광도 아니었다. 그저 옆에 있어주겠다는 말뿐이었다. ​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있다. 특히 내 안에 있는 옛 신의 저주가 그녀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면….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루크레치아가 더 망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 차라리 지금이라도 멈추는 게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나는 한때의 청춘으로 남으면 된다. ​ 아카데미 시절, 아무것도 없던 평민 후배와 잠시 길을 함께했던 추억. 언젠가 로엔하임의 주인으로 돌아간 그녀가 아주 가끔 떠올리고 희미하게 웃을 수 있는 정도의 기억….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른다. ​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인 걸까…. 루크레치아는 로엔하임으로. 나는 다시 평민 카엘로. ​ 나는 고개를 들어 황태자와 함께 서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루크레치아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기쁨도, 불편함도, 그 어떤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 그때 레오폴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끈적한 열기와 함께 가슴 속에서 욕망이 피어올랐다. 그의 품 안에서 신음을 토해내고 박힐 때마다 가버리는 천박한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 눈 앞에서 연인이 다른 남자의 손에 안겨 있는데, 나란 놈은 그것보다 더 나아가 천박한 상상이나 하고 있었다. ​ 역겹다. 그리고 동시에 견딜 수 없이 초라해졌다. ​ 그때 연회장 한편의 악단이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 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 파트너의 손을 잡고 넓은 연회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과 망토가 선율에 맞춰 천천히 회전했다. ​ 레오폴트 역시 루크레치아에게 고개를 기울여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보던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저열한 열등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 아름답고 뛰어난 두 연인 때문에 잊고 있었던 내 본성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평민인 내가 빈약한 체구와 부족한 재능으로 낙제를 받았던 아카데미 입학 시절. ​ 검술 평가에서는 늘 뒤처졌고 마력 운용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내 이름은 언제나 아래쪽에 가까웠다. 그때의 나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게 내 본성이었다. ​ 쥐뿔도 없는 평민. 능력마저 없어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아카데미에서마저 낙제. 그런 내게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가 있었기에 애써 그 열등감을 지울 수 있었는데…. 이젠……, 잠깐…. ​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걸까…. 어째서 그런 나에게 그녀들이 곁에 있어줬던거지? 번개가 스치듯 예전에 루크레치아가 아르세인에서 데이트하던 날 꺼냈던 말이 생각났다. ​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내 몸을 내던질 수 있어요. 당신이 날 아카데미에서 구원했던 날 이후로……. ​ 그 말과 함께 마치 샘솟듯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댄 게 아니라 그 열등감이 너무 싫어서 누구보다 늦게까지 검을 들었다. ​ 손바닥이 터지고 팔이 움직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았다. 악착같이 앞만 보고 달려나갔다. ​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정신없이 달리다가 멈춰서보니 어느새 나는 저 앞에서 뛰고 있었다. ​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시기와 질투는 다른 이의 몫이 되었다. 비록 최선두에 서진 못했으나 어쩌면 그걸로 충분했다.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으니까. ​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가다보니 어느샌가 내 옆에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가 있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보다도 못한 존재처럼 느껴졌던 내가 이제는 빛보다 아름답게 빛나던 그녀들 사이에 서 있던 것이다. 어두운 미래따위, 나 때문에 찾아올 나락따위,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미 그녀들은 나를 위해 결심하고 수도 없이 내게 맹세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가득 차 정작 그녀들의 결심을 외면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찾아올 어두운 미래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그녀들의 결심을 외면한 채 가만히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 두근…! 두근…! ​ 가슴이 조금씩 크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멈춰 있던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때의 나처럼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다. “루크레치아” ​ 읊조리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춤을 추는 귀족들 사이를 지나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가까워지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 투명한 벽안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는 두 사람 앞에 멈춰 서서 예법에 맞게 레오폴트에게 고개를 숙였다. ​ “황태자 전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레오폴트는 나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웃었다. ​ -내 암캐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 울렸다. 가슴속에서 다시금 저열한 욕망이 들끓었지만 아카데미의 그 시절처럼, 열등감을 억누르던 그때처럼, 밟고 누르고 밀어냈다. ​ 그리고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레오폴트에게 말했다. 어쩌면 주위에서 춤추던 귀족들에게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 “전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이번 연회의 주인공이자 제 연인인 루크레치아와 첫 춤을 추고 싶습니다.” ​ 주변의 몇몇 귀족들이 시선이 재빠르게 이쪽을 향했다. 순식간에 소근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회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와 레오폴트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즐거움과 흥미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 정작 내 제안을 들은 레오폴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평소와 다르지 않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 “로엔하임 영애.” ​ 그가 루크레치아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 “그대의 연인이라는 자가 첫 춤을 신청하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루크레치아는 레오폴트를 바라보다가 몸을 잘게 떨었다. 그러다가 곧 고개를 돌려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걸음 가볍게 발을 옮겨 내 앞에 다가왔다. ​ 그녀의 손이 내 손 위에 살며시 올라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 쪽으로 이끌었다. 내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는 순간 뒤편에서 레오폴트의 손이 허공을 천천히 움켜쥐는 것이 보였다. ​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루크레치아뿐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 “로엔하임 영애.” ​ 나는 떨리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 “저와 춤춰 주시겠습니까?” “기꺼이…….” ​ 그것으로 레오폴트에게 해줄 대답은 충분했다. ​ 짝! 짝! 짝! ​ 그 순간 악단의 연주를 뚫고 선명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고 또렷한 소리였다. 그 박수 소리가 이어질수록 연회장 안에 있던 귀족들의 시선이 하나둘 같은 곳으로 향했다. ​ 연회장 한편에 있는 2층 계단이었다. 그곳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 화려한 황금빛 예복을 걸친 노인은 연회장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난간을 따라 이어진 계단을 향해 한 걸음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 악단의 연주가 뚝 끊겼다. 순식간에 연회장 전체가 고요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연회장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 수많은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져 대연회장을 울렸다. ​ “폐하의 빛 아래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 나 역시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 고개를 내린 시야 끝에 내 앞에 서 있던 레오폴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잠시 꼿꼿하게 서 있다가 이내 느릿하게 허리를 숙이며 황제를 향해 예를 갖췄다. ​ 묘한 침묵이 흘렀다. 황제의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와 연회장 바닥에 닿았다. 이윽고 황제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 “고개를 들라.” ​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연회장에 있던 귀족들이 천천히 허리를 들었다. 나 역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 아카데미를 졸업하던 날, 단상 위에서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에게 훈장을 내려 주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나…. 기억이 왠지 모르게 흐릿했다. ​ 하지만 이런 인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딘가 퀭하게 충혈된 눈은 불안하게 번들거렸고 무언가 씹어삼키듯 목은 계속 꿈틀거렸다. 거기다가 삐쩍 마른 얼굴…. ​ 이게 제국의 황제…? 물론 그에게 묘한 위엄이 서려 있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내 흐릿한 기억속의 황제는 조금 더 강건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는데…. ​ “아아…. 이토록 아름다운 영웅들이라니…. 로엔하임. 그리고 자네가….” “카엘이라고 하는 평민입니다. 폐하.” ​ 내 앞에 있던 레오폴트가 대신 입을 열어 나를 소개했다. 잠시 황제의 눈이 레오폴트를 향했는데 그의 눈은 과연 정말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정도로 무미건조했다. 순간 황제의 눈을 마주친 레오폴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 “으음…. 내 아들이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친 것 같군. 카엘. 그리고 로엔하임. 그대들이 제국을 위해 계속 헌신한다면 언젠간 또 볼 날이 있겠지….” 황제는 짧게 웃은 뒤, 천천히 몸을 돌려 연회장 전체를 바라봤다. ​ “여기 있는 모두에게 고하노니.” ​ 그 한마디에 연회장 안의 공기가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 “로엔하임은 이제 지난날의 죄에서 벗어났다.” ​ 수많은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루크레치아에게 향했다. ​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과거의 죄는 오늘부로 씻겼으며, 북부의 맹주로서 지켜 온 오랜 공적과 이번 남부 토벌전에서 세운 충의를 황실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 황제의 목소리가 대연회장 전체에 낮게 울려 퍼졌다. ​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는 늑대는 다시 제국의 북문에 설 것이다.” ​ 그는 지팡이 끝으로 대리석 바닥을 가볍게 짚었다. ​ “그러니 그대들은 모두, 제국의 오랜 방패이자 북부의 수호자로 돌아온 로엔하임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라.” ​ 한순간의 침묵. 그리고 곧 귀족들이 하나둘 루크레치아를 향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 “어….” ​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얼이 빠져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황제와 레오폴트 모두 이미 연회장을 빠져나간 뒤였다. ​ “악단은 다시 연주하라!” ​ 그리고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멈췄던 음악이 다시 흘렀다. 누군가 내 손을 부드럽게 잡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당연하게도 루크레치아였다. ​ “아까 하려던 말이 끊겼던 것 같아요. 카엘.” “루크레치아.” “기꺼이 당신과 춤을 추겠습니다.” ​ 우린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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