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 3급살수 74호는 천마를 꿈꾼다.
#4. 3급살수 74호는 천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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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게임을 시작하면 캐릭터나 진영을 설정하고 커스터마이징을 한다.
풍운무림전은 삼손 특유의 하드코어 게임답게 시작하면 소속이 랜덤으로 결정되는데, 이는 아바타의 능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헌터일수록 명문 정파나 사파의 소속이 될 확률이 높았고, 대게는 낭인으로 플레이 한다.
내가 갖춘 신체능력은 무협세계관 NPC들에 비하면 형편없었던 탓인지, 외우기도 힘든 어디 지방의 세가나 녹림채,장강수로채,하오문,낭인이 대부분 걸렸다.
시간을 계속 돌려 반복하다 보니 천 번에 한 두 번 꼴로 정파에서 유명한 9파 1방이나 5대 세가 혹은 유명한 사파의 검문이라던지가 걸리기도 했다.
한 때 열풍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게임인 만큼, 인터넷에는 관련한 자료가 아직도 떠돌아다닌다.
9파에 소속된 무인이라 해서 모든 무공을 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쓸데없이 큰 땅덩어리를 가로질러 하등 보탬 안 되는 임무를 나서거나 하루 종일 수련만 하도록 처박히기 일쑤였다.
1방에 속하는 개방은 그중 최악이다. 방주나 장로들이 취팔선보, 강룡타구봉법 등 일류로 분류되는 무공들이 있으나, 절대 쉽사리 알려주지 않는다.
일례로 개방존버 라는 닉네임을 가진 BJ가 현실시간으로 1년 게임시간으로 3년이 넘도록 개방에서 구걸하며 시간을 떼우는 컨텐츠는 아직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지금은 금지게임에 속하며, 그런 뻘 짓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규제가 약한 외국에서는 아직도 풍운무림전을 즐기는 변태적인 플레이어가 다수 존재한다고 한다.
내가 여기 풍운무림전에 목숨 걸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S급 각성자들 중 중국에서 활동하는 진웨이라는 할배가 있다.
세간에는 신체강화 능력자로 알려져 있다.
TV방송에서 능력을 시연하는 행사 같은 곳에서 찍힌 영상을 우연찮게 봤는데 은연중에 분명 무공을 배운 티가 났다.
깊이 연구를 하며 최근 알아낸 사실이지만 그것은 마치 소림에서 가르치는 천수여래장의 초식과 동일했다.
내 사륜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풍운무림전의 정보를 닥치는 대로 모으고, 외워뒀다.
모아둔 용돈은 그렇게 계정을 3번 구매하는 과정에서 다 털렸다.
첫 번째는 뭣도 모른 채 녹림채로 소속되어 산적들과 형님놀이를 하다 지나가는 낭인의 칼에 목이 베여 뒈졌다.
두 번째는 진영 설정 시 회귀능력을 사용하여 무림의 태산북두라 일컬어 지는 소림사를 선택했다.
하루 종일 넓은 소림사 마당이나 쓸고 청소를 한 뒤에, 밤에 좀 쉴라치면 태권도 품새와 다를 바 없는 나한장의 초식을 익혀야 했다.
진웨이의 천수여래장의 초식을 눈치챈 이유도 이때의 경험에 기인한다.
익힐수는 없으나, 몇 번 지나다니며 구경할 기회는 있었다.
예상이 확신이 되고 가설이 현실이 되었다.
초식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 뿐이야 당연히 가능한 거라지만, 마력을 내공처럼 운기하고 이를 초식과 접목하여 나한장과 한 쌍으로 작용하는 나한기공을 운기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제대로 된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무협세계에서는 초보들이 사용하는 기본공에 불과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다.
혈도를 익히고, 게임에서 보고 배운 내용대로 똑같이 따라하면 마력이 언제나 역류하면서 마력회로를 뒤틀어 놓았다.
예상컨데 현실의 마력은 회로를 따라 항상 흐른다.
피가 항상 핏줄을 따라 흐른다고 그걸 어딘가로 많이 보내고 그것을 느끼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운기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마력이라는 걸 느낄 수조차 없었지만, 틈 날 때마다 시간을 계속 돌려 맞는 정답을 찾기를 몇 주.
몸 전체에 흘러 녹은 마력을 하단전이라 볼 수 있는 기해혈에 티끌만큼 모을 수 있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대충 비슷하게 현실에서 나한기공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
나한기공의 운기와 흡사하게 마력을 운용하면 단전에서 풀려나와 맞는 혈도에 해당하는 마력회로를 통해 미세하게 흐르는 마력이 권과 각을 내지르는 타이밍에 뭉친다.
아마도 이런게 가능한 이유는 마력회로가 혈도보다 더 빼곡하게 온 몸 곳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됐건 그렇다.
나. 박선호만이 회귀능력을 이용해서 리스크없이 무공을 온전히 익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목적은 단 하나였다.
최고의 무공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는 많은 언쟁이 오갈 것이다.
소림의 달마삼검, 달마역근경 무당의 태극혜검,태극신공 화산의 매화삼십육검형 곤륜의 태청검법 등등
최고라고 불릴 만한 무공은 당대에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최강의 무공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는 누구라도 한마디로 귀결된다.
천마신공
최초의 천마는 9대 문파와 팔대 세가를 멸문하고, 황군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마교천하를 이룩했다고 한다.
탈마(脫磨)하여 승천(昇天)하기 전까지 마교는 세상의 중심으로 군림하였으나, 천마가 승천한 이후 제대로 된 명맥을 이은 후인이 없다 보니 지금과 같이 영락하고 쇠퇴하였다.
그것이 내가 마교로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 단 한 가지 이유이다.
어째서 천마신공이 최강인가.
일반적인 무공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나한기공을 기반으로 내가 만들어낸 운기법 과는 얼마 만큼의 차이가 발생할 것인가.
나한기공의 성공으로 이미 헌터로써의 첫발은 훌륭하게 디뎠다고 볼 수 있다.
천마 신공의 존재를 몰랐다면 아마도 이걸로 대충 만족하고 나한기공을 발전시켜 써먹고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그 존재를 알아낸 순간,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얻어낼 것이다.
남자의 가오는 어쭙짢게 세워서는 큰 코 다치는 법이다. 이왕 시작한 거 최고,최강의 무공을 습득한다.
천마의 경우처럼 최강으로 군림해서 정상에 오른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써는 게 아니라 세상을 썰어내야 한다.
***
살풍경하다.
숙소에는 오래되고 낡은 옷장 하나와 거적떼기나 다름없는 이부자리가 끝이다.
3급 살수 74호
마교에서의 내 이름이다.
마교는 패도를 추구하고 오직 강함을 숭상한다.
강함이라는 결과를 위해 그 과정에 있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때문에 비인간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했고, 이에 사파와 달리 마교라 따로 분류되었다.
공훈을 쌓아서 등급이 오르거나, 비무로 인해 1호까지 승급 전을 진행할 수 있고, 1호부터 3호까지는 2급에 도전할 기회가 부여된다.
침구에 누워서 고민을 시작했다.
'왜 천마는 후인에게 천마 신공을 전수하지 않고 승천해 버렸을까?'
현재 마교의 1인자는 천마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교주라고 불릴 뿐이다.
역대 교주들은 마도 천하의 꿈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 혹은 자기 영달을 위해 세력을 풀어 천마 신공의 흔적을 찾아왔다.
갖은 의혹들과 증거들이 발견됐지만, 정작 비급과 이어지는 결과는 없었다.
게임사에서 제공하는 배경 스토리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통합하여 연구한 바에 의하면 천마 신공이 있을 거라고 예측한 곳은 두 군데.
천마동과 복마전이다.
천마동은 과거 천마가 극마의 경지에 이를 때 머물렀던 수련동이었으나, 현재는 과거에 마도 천하 시절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에서 빼앗은 비급과 마교의 무공을 모아둔 일종의 비급창고로 쓰인다.
교주와 소 교주, 8인의 장로들까지만 자유로이 출입이 가능하고 나 같은 살수는 언감생심 꿈에도 못꾼다.
복마전은 마공을 익히다 미쳐 버린 놈들,죄인들, 외부에서 납치해온 정파의 무인들을 가두는 감옥이다.
천마가 승천한 뒤 남은 육신을 복마전 최심처에 보관했다고 설정을 통해 보았다.
NPC들에게 복마전에 관해 천마의 육신에 대한 내용을 물어봐도 뭔 개소리하냐는 표정으로 딴소리만 한다.
나름 딥러닝 된 인공 지능이 NPC들과의 대화를 조율하다 보니, NPC들과 깊은 대화는 안 되더라도 일상적인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에 비해 뭔가 수상쩍다.
그래서 나는 복마전을 의심하고 있다.
배경 스토리에 기입 될 정도로 중요한 정보, 거기다 천마의 육신이라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당사자들이 모르고 있을까..
아무래도 유저들을 위한 이스터에그 그런 게 아닐까하는 막연한 의심이 든다.
복마전에서 천마 신공을 얻고 마교를 제패하면 천마동의 비급들은 언제든 익힐 수 있다.
우선은 복마전에 들어가 보는 것이 먼저다.
인터페이스의 시간을 보니 오전 8시를 가르키고 있다.
9시부터 12시까지는 역혈마공과 흡성대법을 익힌다.
일과 퀘스트이다.
쓸데없이 디테일한 설정인데, 내공을 운기할 때는 인터페이스 상으로 혈도가 표현 된 인체가 나오고 리듬 게임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맞는 길로 보내야 한다.
나한기공은 단전에 응고 된 내공을 조심스레 풀어 기해를 거쳐 회음을 통해 다리 앞쪽에 위치한 혈해,태백,귀움을 통해 뒤 쪽 다리에 위치한 구허,양능천 환조를 통해 다시 기해로 돌아오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처음 풀어 낸 내공은 다리에서 1회 순환, 다시 단전에서부터 시작하여 팔로 순환한다. 몸의 앞쪽에 위치한 임맥과 뒤쪽에 위치한 독맥을 모두 거치는 소주천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 간단한 내공의 순환으로도 나한 장의 초식을 펼치기 위한 초식에는 안성맞춤이다.
내공이 다리로 순환되는 동안 각력이 향상되므로 보법을 펼쳐 상대에 접근하거나 회피 기동을 한 뒤, 다시 팔로 순환이 시작되어 어깨에 위치한 거료, 팔꿈치의 천정,손목의 양지를 지나 중저에 도착하는 순간 타격한다.
나한 장이 왜 기본공이겠는가, 이처럼 기본적인 무공들은 내공을 혈도를 통해 이동하는 속도가 느리고 공격하는 순간이 정해져 있다.
나한기공을 모르더라도 초식만 눈에 익는다면, 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없다.
반면에 역혈마공은 닉값을 제대로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존의 기경팔맥 운기법을 개무시하고 단전에서 풀어낸 내공을 양관, 신주, 대추를 통해 가속하여 백회로 보내버린다.
현실에서 따라 했다가 머리에 뇌출혈이 일어난 듯한 느낌에 즉사할 뻔한 뒤로 절대 시도 안 한다.
정수리의 숨구멍이자 머리의 가운데 위치한 중요한 혈인 백회를 이렇게 사정 없이 두들기는데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마교의 주구들이 괜히 마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이것은 익힐수록 미쳐가는 무공이다. 뭐 게임상에서는 나는 보정을 받는 지라 아무영향이 없도록 돼 있지만 나한기공처럼 현실서 고쳐 쓸 엄두도 안난다.
열심히 딴생각하면서 일과퀘스트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갔다.
이것이 무아지경의 경지인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오후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복마전의 청소를 하러 가야 한다. 미친놈들이 처먹으라고 넣어 준 개죽 같은 밥을 던지고 침을 뱉고 난리도 아니다.
밥이나 침은 다행이다. 저번에는 똥을 던지는 놈도 목격했다. 일종의 탄막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진행해야 한다.
복마전은 천마동에 비해 덜하지만 그래도 나름 뛰어난 보안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3급 살수들은 노예들과 비슷한 처지이다.
큰 울타리에 갇혀 있다시피 거처들이 모여 있으므로 여기서 나가기 위해선 1차로 길을 막고 선 경비들을 지나쳐야 한다.
"3급 살수 74호입니다. 복마전의 청소를 위해 출문하려고 합니다."
대충 이렇게 말하고, 퀘템으로 받은 복마전 출입증을 두 명의 경비에게 꺼내 보여 주었다.
여타 게임처럼 NPC 이름같은 게 머리 위에 안 뜨다 보니 벌써 세 번째 방문이지만 경비 이름도 모른다.
경비한테 퀘스트가 없을 때 지나가겠다고 헛소리라도 했다가는 바로 개처럼 처 맞고 감옥에 며칠을 갇힌다.
실제 경험해봤으니 조심스럽다.
"들어가도록."
퀘탬을 받은 경비가 길을 열어 주었다.
이어진 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2차로 커다란 요새처럼 장원이 쭉 줄지어 서 있다.
마교의 4대 무력 단체의 하나인 혈랑검대의 숙소다.
혈랑검대는 4대 타격대의 하나이기도 했지만, 무공에 자질이 뛰어나지 않은 일반 무사들이 대부분 소속되는 곳이다.
인원이 많기는 하나 12개로 이루어진 조장들이 이류에서 일류, 대장이 절정 무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최강의 타격대인 수라혈검대는 30인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원 절정이상이다.
대장은 초절정이라고 알려져 있고, 그것을 지휘하는 이는 서열 10위안에 들어가는 장로 중 1인이 맡는다.
기억에 단기천이라는 이름에 아직 극마의 벽은 넘지 못했으나 곧 넘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복마전은 혈랑검대의 숙소 뒤편 산꼭대기에 있다.
지나가는 길에 혈랑검대원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들이 막아 설 때마다 퀘탬을 보여 줘야 한다.
마의(麻衣)에 털에 피를 잔뜩 머금은 듯한 붉은 늑대의 형상이 수놓아져 있어서 식별하기 쉽다.
잃어 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그날로 사망이다.
그렇게 2시간을 산을 타면 꼭대기 아래쪽 절벽 한가운데 절정 무인 2인이 대기하고 있다. 보이진 않지만 1급 살수들도 여럿 배치 돼 있다고 한다.
'와.. 씨발, 복마전이 이 정도면 천마동은 뭐 어떻게 되는 거여. 쇠퇴한거 맞아? 소림사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속으로 탄식을 삼키며 열심히 절벽을 기어올라 겁나 강력한 경비에게 퀘템을 보여주고 드디어 복마전 안으로 들어 섰다.
지금의 선호는 마교는 대부분의 인원이 한 군데 모여있고, 소림사의 땡중들은 여러 임무를 위해 대다수 소림사 외부로 나가있는 상황이라는 걸 미처 상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