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169화
169화
“혹시 어제 일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지?”
장모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장모가 차에서 내리며 나에게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마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 내심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 그럴 일은 없어. 다만,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되길 바란 건 사실이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말이야. 뭐라고 할까? 정말 오기를 바라는 손님이 있는데, 그 손님이 갑자기 방문한 상황? 이렇게 표현하면 지금 내 심정이 좀 전달이 될까?”
“그 손님이 당신 집에 온 게 싫은 건 아니지?”
“물론이지. 엄청나게 원하고 있었던 거라 당연히 너무 반갑고 좋지. 다만, 언제올지 몰랐던 거라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 것 뿐이야.”
“그럼 내가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는거지?”
“응! 당연하지. 내가 이 상항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나서 당신의 의견을 물을 때까지 편하게 생각하고 잘 지내기만 하면 될 것 같아.”
“응. 알았어. 난 당신이 우리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잘 지내고 있을게. 물론 내 입장에서도 미리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있으니 한가하게 지내고만 있지는 못할 것 같기는 하지만.”
“준비할 게 있어?”
“응. 나도 생각할 것도 준비할 것도 많아.”
“뭐?”
“음... 지금 당장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줘.”
“응. 알았어. 이틀 동안 고생했는데, 오늘은 푹 쉬어.”
“뭐야~ 당신이 훨씬 더 고생했지. 난 당신 건강이 걱정돼. 이렇게 무리해서 어디 병 나는 거 아닌가 하고.”
“으응? 무리? 난 무리한 적 없는데, 싱싱하고 탄력이 넘치는 여자를 이제까지 실컷 따먹고 왔는데, 그게 무리일 리가. 오히려 몸보신 한 거지. 크크크”
“호호호. 정말 못 말려. 그래도 내 몸을 좋게 표현해주니 좋기는 하네. 그런데 오면서 내 몸에 손을 안대는 건 솔직히 조금 적응이 안됐어. 호호호.”
“아~ 맞다. 오면서 장난도 못쳤네. 아... 아쉽네.”
“호호호. 그게 아쉬울 거야? 정말 못 말린다니까~ 다음 만날 때 실컷 장난치면 되잖아.”
“응응. 좋아. 다음에 두 배로 장난칠 테니 각오하고 있어.”
“호호호. 기대하고 있을게.”
“그런데 다음은 언제 만나지?”
“음... 그 부분은 내가 연락할게. 나도 당신이랑 조금이라도 오래 같이 있고 싶어. 그래서 되도록 온전히 하루 동안 같이 있을 수 있을 때 연락할게. 이제 가봐요~”
“응. 그렇게 해. 그런데 키스도 안 해주고 보내는 거야?”
“응. 여기서는 안돼. 조금이라도 위험한 건 이제 안 할 거야. 그런 사소로운 것 때문에 우리 관계가 누군가에게 들키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을 거야. 그게 우리를 위해서도 훨씬 더 좋을 것 같아. 특히 당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절대,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조금은 아쉬웠지만, 장모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배려에 고마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별로 내키지도 않는 장난으로 인하여 내 계획을 방해하는 새로운 복병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응. 그런 이유라면 나도 동의해. 앞으로 힘든 난관이 얼마나 많을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데, 이런 것들로 새로운 난관을 만들고 싶지 않네. 당신 말에 완전히 동의해.”
“그럼 잘 가요. 내가 여유가 있어 보이는 날이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요.”
“응. 그래. 잘 쉬고.”
우리는 그렇게 아주 건전한 인사만을 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헤어지기는 처음인 것 같고, 이러한 헤어짐은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휴... 이제 어떡해야 하지?”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숨을 쉬며 다음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뭐라고 할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은 진행되는 것 같은데, 내가 바라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그러한 느낌으로 인하여 내 기분은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불편한 기분을 난 찝찝함으로 표현했다.
정확히 맞는 표현은 아니었지만, 지금 단어의 정확함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있어서 그런 건가?’
이런 기분이 어디 삼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듯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전혀 그렇지는 않다. 이건 그런 종류의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그렇다.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은 그녀의 분에 넘치는 사랑에 대한 양심의 흔들림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상황이 나도 알아채지 못하게 약간, 약 5도 정도 틀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마치 자세를 똑바로 누웠는데, 내 어깨가 바닥에서 약 2도 정도 틀어졌기에 눈으로 봐서는 모르지만 오른쪽 어깨가 찝찝하게 불편한 상태가 된, 그와 같은 불편함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난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을 털어버리고자 고개를 크게 저었다.
이 찝찝함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지는 모른다.
하지만 파악하기 힘든, 더 정확하게 말해서 파악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막연히 고민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난 고개를 다시 한 번 크게 저었다.
이 모든 것을 내 뇌에서 털어버리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음... 이번 장모와의 만남에 목적은 초과 달성하였지만, 내 몸도 꽤 무리를 한 것 같군.”
장모를 내려다 주고 복잡했던 생각들도 덮어두고 나니 내 몸에서는 엄청난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집에 가기는 싫은데...”
오늘은, 적어도 오늘은 지금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게 되면 밑집 여자를 만나야 할 것이고, 제수씨도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니, 백퍼센트 찾아올 것이다.
물론 제수씨는 이번 일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기에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래도 내 아내가 떠나고 내가 변하면서 맺어진 관계이기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금은 아내라는 단어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는 그런 사람, 환경 등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일단 핸드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핸드폰까지 자신의 임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큭.”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로든 갈 데가 없다는 사실에 난 웃음이 흘러 나왔다.
분명히 썩은 미소였을 것이다.
지금 내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는 아내라는 사람으로 인하여 만들어졌고, 그 단어를 빼면 아무도 내 주변에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진짜 아무도 없네.”
난 아직도 아내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내의 중심으로 더 뛰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있을까?”
마땅히 갈 때도 만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장모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약간은 도심지 같은 곳이 있었고, 난 아무런 계획 없이 그곳에 있는 깨끗해 보이는 모텔 주자창에 차를 주차시켰다.
“참~내. 이제 모텔에 들어오는 게 아주 자연스럽구만.”
이제는 여기에 주차하는 것이 능숙해진 내 자신을 보며 다시 한번 씁쓸한 웃음이 났다.
난 키를 받고 방을 확인한 뒤, 그 길로 바로 밖으로 나왔다. 장모의 집과 내 집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곳이지만, 난 여길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동네였다.
중간 정도의 번화가...
없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인파가 다니는 곳은 아닌, 그런 곳이었지만, 지금 복잡한 심정의 나에게는 이렇게 한가하지만, 적당한 문명의 혜택이 있는 이런 곳이 더 좋았다.
“영화나 볼까? 아. 맞다.”
난 영화관을 찾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다 차 안에 던져둔 것을 기억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매우 불편하네.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지는 않으니 단순하게 생각해서 오늘은 그냥 푹 쉬면서 보내자.’
난 다시 모텔로 돌아오면서 눈에 띄는 마트에 들어가 맥주와 약간의 안주 거리를 산 뒤 모텔로 돌아왔다.
모텔에 들어와서 바로 맥주의 사은품으로 들어있던 컵을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는 그곳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부었다.
“꿀꺽꿀껏~ 크~ 이 맛이지. 이런 게 진짜 여유지.”
백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최근 이런 휴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맥주의 시원함이 더더욱 강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이렇게 모텔 안에서 먹는 것도 좋은데, 배달이나 시켜볼까? 아... 핸드폰이 없지. 크크크.”
난 모텔을 나와 직접 돌아다니며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고 마트, 편의점에서 각종 주류와 음식 거리를 잔뜩 사 들고 다시 모텔로 직행하였다.
그리고 카운터에서 하루치를 더 결재한 다음 방에 들어와 OTT를 연결한 뒤 틀어놓고 사 온 음식을 테이블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족발, 보쌈, 치킨, 떡볶이 등 각종 분식류 그리고 맥주, 하이볼, 소주 등 각종 주류들의 향연이 테이블 위에서 펼쳐져 있었고, 난 본격적으로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 즉 호캉스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 모텔이니 모캉스인가?”
아무튼 이렇게 밀린 영화, 드라마 등을 보면서 술과 음식을 먹고, 그게 지겨워질 때면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또 보고 그러다 잠이 오면 자고, 일어나면 또 먹고 마셨다.
얼마나 정신없이 이 생활에 빠졌으면, 둘째 날에는 지금 낮인지 밤인지 모를 정도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사라질 정도였고, 정말 말 그대로 충분한 휴식 속에 날 담궜다가 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정말 상쾌하다.”
꽤 많은 술을 먹었지만, 충분한 휴식으로 숙취보다는 개운한 내 몸을 느낄 수 있었고, 샤워 후에 차에 탔을 때는 정말 날아갈 만큼 몸이 가볍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집으로 가야지. 이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거야. 마음 약해지지 말고.”
난 마음을 가다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삑.삑.삑.삑. 삐리리~
“어? 이거 뭐야?”
집의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자마자 현관 앞에는 세 켤레의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세 켤레? 뭐지? 어? 어? 헉!”
지금 내 앞에는 3명의 여자가 날 노려보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