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16. 청혼 (1)
"리타야!!"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리타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었다.
-서방님 보고 싶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기쁨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도 겁나 보고 싶었어!"
정말이었다.
단 한순간도 리타를 그리워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비록 다른 여자와 몸을 섞고, 내 여자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내겐 그녀가 첫 여자이자 사랑이었다.
-죄송해요…. 여러 가지로 일이 조금 있어서. 그보다 에란텔엔 잘 도착하셨나요?
"당근빠따지! 거기다 그냥 잘 도착한 정도가 아니라 벌써 적응까지 완료했어."
-하… 다행이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계속 나를 캐어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참 서방님! 저 며칠 뒤에는 현세에 강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확히 언제라고는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대략 3,4일 뒤에는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드디어 우리 리타 볼 수 있는 거야!?"
매우 기쁘다!
-최대한 빨리 내려갈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이번에 내려가면 서방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건 내려가서 직접 말씀드릴게요.
음… 뭔가 또 느낌이 싸한 거 같은데. 근데 나도 리타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솔직히 리타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걸 어쩌겠나.
"그래 알겠다. 근데 리타…."
- 네 서방님.
"나도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말이야…."
시발 막상 말하려니 입이 존나 안 떨어진다.
"내가 우리 리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물론이죠! 저도 서방님을 많이 사랑해요.
"나도 우리 리타 마음 잘 알지 암! 알고 말고. 근데 말이야…리타…."
진짜 말이 안 나온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나.
내가 리타를 사랑하는 만큼 세라도 에나도 나 사랑하는 내 여잔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 뒤.
마치 선생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먼저 실토하는 아이처럼 말했다.
"너 없는 동안 다른 여자들을 만들어 버렸거든…?"
심장이 존나 쫄깃하다.
아무리 내 능력이 그런 쪽이고, 나 또한 내 능력으로 즐기며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리타 입장에서는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자기가 없을 때 다른 여자를 만들고 다녔다는 걸 알면 존나 패고 싶을 거다.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리타의 눈치를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내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 저, 정말 미안하다 리타!"
보이지 않는 리타를 향해 무릎을 꿇고, 땅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진정한 사나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는 법.
그 상대가 자신의 아내라면 더더욱 숙여줘야 한다.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리 리타의 마음씨가 고와도 이번만은 왠지 화가 많이 났을 것 같다.
짧은 정적 끝에 그녀가 마침내 서두를 열었다.
- 고개를 드세요 서방님.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는 리타. 그럼에도 나는 쉽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괜찮으니 어서 고개를 드세요 서방님. 어서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리타야…."
- 저 화 안 났어요 서방님. 오히려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없을 때 서방님의 외로움을 달래 줄 여성이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정도예요.
리, 리타야!!!
정말 리타는 그릇이 다른 여자다.
여신이라 그런가 외모뿐만이 아닌 몸도 마음도 전부 여신 그 자체다!
역시 우리 리타 최고다!!
-물론 아주 조금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서방님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제가 일 순위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아… 물론이지 리타! 내 첫사랑은, 내 첫 와이프이자 정실은 너뿐이야 리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저도요 서방님. 대신 이번에 내려가면 그분들을 소개해 주세요. 아시겠죠?
"암 당연히 소개해 줘야지! 그럼 올 때 얘기해 줘. 아, 참 리타 혹시 이번에 오면 나랑 해보고 싶었던 거 있어? 나 이번에 큰돈 좀 만지게 됐거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이 서방님이 다 해줄 테니까!"
시장이 얼마나 보상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전쟁을 막음과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분쟁까지 미리 해결한 셈이니 결코 작은 보상으로 퉁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서방님이랑 하는 건 전부 좋아요!
이런 예쁜이 같으니라고!!!
"그럼 내가 이것저것 준비해야겠다. 암튼 우리 리타 내려오기 전에 미리 연락해 줘."
- 네 서방님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3,4 일 뒤라…."
안 그래도 리타를 만나게 되면 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마침 큰돈도 생길 것 같으니 미리 준비를 좀 해둬야겠다.
***
다음 날.
- 똑똑.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와중, 노크 소리가 나의 단잠을 깨웠다.
"아 시바… 대가리야."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정장 차림을 한 미모의 여성이 서있었다.
"성귀남 씨 본인 맞으신가요?"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가 말했다.
"맞는데요. 근데 무슨 일이시죠?"
"저는 시장님의 수석 비서 베이린 이라고 합니다."
아… 시장 그 양반이 보낸 사람이구만.
아마도 저번에 말했던 포상 건 때문에 찾아온듯하다.
"우선 안에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작 침대 하나만 달랑 놓인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서 그녀를 침대에 앉게 하고 나는 바닥에 앉았다.
그녀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간략히 설명한 뒤, 시장이 내게 준 포상에 대해 얘기하였다.
"우선 성귀남 씨의 이름으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뒀습니다. 그리고 그 계좌에 금화 500골드가 들어가 있죠. 은행에 가셔서 신분증만 보여주시면 바로 사용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오, 오백!? 실화냐?
내가 알기로는 100쿠퍼가 1실버의 가치를, 10실버가 1골드의 가치를 지닌다.
내가 처음에 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돈이 3골드고, 그 돈이면 내가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이 여관에서 60 일 정도는 그냥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거기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성귀남 씨는 이 도시의 공공시설을 3년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으며, 세금 또한 3년간 면제입니다."
와… 확실하게 보상해 주겠다더니 시장 이 양반 됨됨이가 된 사람이었네.
베이린은 자신의 가방 속에서 멋지게 장식된 모범 시민의 상패와 증서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살다 살다 오크로 전생해서 모범 시민 상 같은 걸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이 모든 게 나의 용사의 로망 덕분이다.
뽀뽀해 줄 수만 있다면, 내 귀두에 수천 번도 넘게 뽀뽀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끝으로 시장님께서 다시 한번 도시를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단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뭐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뭘."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아무튼 그것으로 용건이 끝난 베이린이 방을 나갔다.
나는 500골드의 영향으로 인해 단번에 술이 깨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깨질 것 같던 머리가, 마치 한 겨울 밤하늘처럼 맑아졌다.
서둘러 준비한 뒤, 은행으로 향했다. 베이린의 말처럼 신분증만 제시하니 바로 계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우선, 20골드 정도만 찾은 후, 처음으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모처럼 리타가 온다는데 거지꼴로 만날 수 없지 않겠는가? 해서, 먼저 내가 들른 곳은 테일러 샵이였다.
가게 안에는 각양각색의 정장들이 즐비해있었다. 마음 같아선 맞춤형으로 깔쌈하게 맞추고 싶었지만, 리타가 빠르면 내일쯤 현세에 강림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했다.
하는 수없이 점원을 불러 기성복 중에서 내게 어울릴 만한 옷을 추천받았다.
어두운 녹색 피부에 상반되는 아이보리 색 정장이었다.
"손님은 몸이 워낙 좋으셔서 옷 태가 잘 받으시는군요."
점원의 아부성 발언을 듣고 그러려니 했지만, 전신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본 후에 그 발언이 구라가 아닌 진실임을 깨달았다.
떡 벌어진 어깨, 큰 키, 거기다 오크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에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렵한 턱 선.
시발… 전생 시절의 나보다 잘 생긴 거 같은데?
조금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인 거 같다.
그래도 전생에는 멀쩡한 인간이었는데….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봐도 절로 미소 지어질 만큼 마음에 들었다. 최강 좆방망이에 이 정도 비주얼이면 오크로 전생해도 개 쌉이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고 있는 옷을 포함해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을 두벌 더 구매했다.
지출액은 1골드하고도 7실버였다.
니미 존나 비싸네.
솔직히 물가가 개씹창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비싼 정장은 졸라 비쌌으니 좋은 옷에 돈 좀 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다음 내가 향한 곳은 쥬얼리 샵이였다. 이번 생에서는 물론이고 전생 시절에도 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나는 본디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진정한 남자는 그런 금붙이 따위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개뿔 사실 돈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샀다.
그렇다고 여자한테 액세서리를 선물해 준 적도 없었다.
만났다 하면 오래가지 못했던 탓에 선물이고 뭐고 해줄 기회조차도 없었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아내가 무려 세명이나 있다.
물론 내 여자가 된 과정이 썩 낭만적이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적어도 내 아내들한테만큼은 자그마한 이벤트를 선물해 주고자 한다.
보석상에는 다양한 보석들과, 장신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점원들도 하나같이 단 안경을 끼고,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고객들을 응대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점원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결혼반지 좀 보려고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점원을 따라 반지가 진열된 곳으로 다가갔다.
점원은 여러 반지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런 쪽으론 잘 몰라서, 설명을 들으면서도 한참을 고민하던 찰나.
진열대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백금색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자인은 눈을 사로잡을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은은한 멋이 있었다. 보석의 크기도 딱 적당하니 마음에 들었다.
"저 혹시 이 반지에 박힌 보석 바꿀 수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어떤 보석을 원하시는지요?"
나는 내 아내들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나를 바라봐 주는 그 눈동자들을.
완전히 매혹되어 암컷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도, 그 뜨거운 욕정을 해소한 뒤 나를 애틋하게 바라봐 줄 때도 그녀들의 눈동자에는 고유의 색과 아름다움이 담겨있었다.
리타의 맑고 푸른 눈동자는 블루 토파즈와 같았고, 세라 특유의 자애로운 붉은 눈동자는 루비 같았다.
그리고 에나의 강인한 눈동자는 마치 가넷을 닮아있었다.
나는 보석의 이름을 하나하나 점원에게 말해주었다. 그는 잠시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능합니다. 바로 준비해 드릴까요?"
"네 그래 주십시오. 아, 그리고 반지 4개 중 한 개는 에메랄드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피부색처럼 짙은 녹색의 에메랄드를 선택했다.
이것으로 내 아내들에게 선사할 작은 이벤트의 준비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틀 후.
내게로 리타를 데려다준 새하얀 빛기둥이 내 앞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