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32화 라희


032 공중화장실 특유의 악취와 싸구려 디퓨저 향이 뒤섞인 냄새가 콧속을 찔러왔다. 그 속에서 흐르는 정적을 깬 것은 라희였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선 말했다. “그래서?” 분위기가 돌변한다. “뭐.” 팔짱을 낀 채로, 무표정에 섞인 거만한 눈빛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작 그거 하나 갖고 기고만장한 거야?” 그녀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너, 그게 지금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살짝 입꼬리까지 올라가는 게, 저 표정은 명백한 비웃음이 분명했다. “착각도 대단하네.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라희는 숨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도를 넘어가면 범죄야. 알긴 해??” 나는 그런 라희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왜 말이 없어. 범죄라니까 쫄려??” 아까까지만 해도 뒤로 물러섰던 라희는 이젠 한 걸음씩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라희가 타일을 밟고 다가오는 소리가 화장실을 울렸다. “주제 파악 못 하는 것들이야.” 다각- “지금 네가 내 약점을 쥐고 있다고??” 다각- “하,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 졌네.” 다각- “내가 너한테 안 오고 경찰서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나 해??” 어느새 다가온 라희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밀려 하다가 멈칫했다. 이내,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펴며 말했다. “그러니까, 좋게, 말로 할 때 빨리 열쇠 내놔.” 어디서 새는 것인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다가온 라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여 비틀었다. 삐딱해진 고개 탓에 내 시선에 담긴 라희의 모습도 삐딱했다. 찰그락- 나는 손가락에 걸고 돌리던 열쇠고리를 단번에 낚아채듯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그때까지도 라희는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픽 웃으며 말을 툭 뱉어냈다. “배우는 안 하는 게 좋겠다. 너.” 그 말에 라희의 표정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뭐?” “감정 조절이 전혀 안 되잖아.” 아주 찰나의. 미세한 안면근육의 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관성이 있어야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싶었다면. 중간에 흐트러짐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태도로 일관했어야 했다. 나는 삐딱한 시선으로 라희를 위아래로 훑다가 고개를 돌려 불투명한 화장실 문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안 갔나 보네.” 내 태도에 차분해졌던 라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너 사람하고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거야??” 덩달아 목소리도 높아졌다. “어렸을 때 국어, 아니. 화법을 안 배웠어?? 아까부터 나랑 대화하는데 흐름도 안 맞고, 내가 앞에 있는데 다른 말만 하고, 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나는 래퍼라도 된 것처럼, 숨 쉴 틈조차 없이 말을 쏟아낸 라희를 구경하다 픽 웃어버리고선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폭발하듯 라희의 고함이 들려왔다. “야, 강주혁!!”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장실 문으로 다가가 잠가 두었던 잠금장치들을 전부 풀어버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씩씩거리는 라희의 숨소리에 화장실 문의 낡은 경첩 소리가 뒤섞였다. 문이 전부 열렸을 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툭 말을 내뱉었다. “대화는 사람하고 하는 거지.” 그리곤 화장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 지린내 나는 정조대는 경찰서 가서 풀어 보든가.” 등 뒤에서 고함이 한 번 더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화장실을 걸어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며 라희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어설퍼.’ 저런 어설픈 협박에 몇 명이나 당했던 것일까. 하긴. 대부분 당한 피해자들을 들어보니 20대 초반이었다. 어설퍼도 법적조치를 취한다는 말이 두려울 법도 했다. 한순간에 낙인찍혀 남은 인생을 범죄자로 살 수도 있다는 압박감은 꽤 무거울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내가 당할 거 같을 때나 느끼는 압박감이다. 당하지 않을 거란 걸 미리 안다면. 아니, 당해도 대응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저 흘러갈 뿐이다. -협박은 은밀해야지. 나는 어미라는 작자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모를 정도로 은밀해야 해. 협박할 생각을 했다면. 계획을 세웠다면. 협박하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절대로 상대에게 밝혀서는 안 된다.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면 안 되거든. 마치 암살처럼. 내가 무기를 갖고 있음을 들켜서는 안 된다. 그 무기가 상대를 찌를 용도인 것 또한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찌르기 전부터 ‘나 지금 너 찌를 거야.’라고 요란 떠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흉부에 칼날을 반쯤 쑤셔 넣은 상태에서 협상 테이블을 펼쳐야 한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상대가 고통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게 한 상태로. “.........” 나의 어미는 그렇게 아버지를 무너뜨렸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옛 가정사에 걸음이 멈칫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라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잠깐만 멈춰 서보라는 라희의 목소리에는 악이 서려 있었다. ‘감정을 너무 드러내면 안 되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확실했다. 내가 아닌 도연이 직접 나섰더라도 라희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었을 터다. 명백히 적이라고 판단되는 자에게 저리도 감정을 드러내서야.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주변을 살폈다. 공원 구석. 멀리서 라희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를 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라희를 뒤따라왔던 사람과 옷이 똑같았다.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뭐. 나와는 크게 상관없으려나. 나는 오로지 라희만을 쳐다보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라희의 고함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다시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한 바퀴만 돌까.’ 나는 휴대폰을 확인하고 한 손으로 열쇠고리를 돌리며 길을 걸었다. 여러 사람과 강아지, 비둘기와 고양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운동을 하는 소리 사이를 걷는다. 걸으며 오늘 본 라희를 다시 떠올린다. ‘난이도는 중상에서 중하로 수정.’ 아마 오늘 것만으로도 도연에게 약속했던 1순위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욕구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며 살아가야 한다. 라희라고 다를 건 없었다. 오늘 본 짧은 순간 동안.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궁지에 몰렸을 때 튀어나온 고압적인 태도. 상대방을 내리 깔보는 눈빛과 관계에 있어 우위에 서 있다는 거만한 말투. 라희의 욕구는 우월감이다. 기질적인 우월감인지. 학습된 우월감인지는 아직 모른다. 한가지 알 수 있는 건. 이때까지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올라간 게 아닌 듯했다. 방금 나에게 버럭 화를 낸 걸 보고 깨달았다. 라희는 남을 끌어내리면서 얻는 우월감에 익숙한 거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생기는 관계의 우위를 경험해 본 적은 없어 보였다. ‘그러니 그렇게 화를 버럭 내지.’ 처음엔 더 찍어 누를까도 했지만, 그건 단발적인 효과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한발 물러섰다. 물러선다는 건 져 준다는 게 아니다. 상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요다. 어차피 당장 간절한 건 그쪽이니까. 나영과 도연이 물었었다. 고작 정조대를 채운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냐고. 그냥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부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라희가?’ 어림도 없다. 이미 정조대를 차고 오줌까지 한 번 싸버린 상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사람이면 진즉 청했을 것이고, 부술 수 있었다면 이미 벗어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아마 아까 모자를 쓰고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 또한. 정확한 상황을 모른 채로 5분대기조로 사용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사회적 약자 타이틀을 쓰고, 성적인 것을 이용해 상대의 약점을 잡아 협박했던 게 라희다. 그런 그녀가 반대로 자기가 협박당할 수도 있는 빌미를 누군가에게 내어줄 리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공권력을 지닌 경찰이라 할 지라도. 남을 속이는 삶을 살아온 사람은 남을 쉽게 믿을 수 없다. 공원 한 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지이잉- 휴대전화 진동이 울려왔다. 라희였다. 일단 한 번은 끊어버렸다. 진동이 뚝 끊기기 무섭게, 다시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을 터치해 다시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세 번째 전화가 왔을 때였다. “저기.........”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라희에게 오던 전화를 쳐다보다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보았던 모자를 쓴 남자였다. “라희라는 사람 알죠.” 목소리는 꽤 젊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몸이 꽤 다부져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만두귀였다. ‘도망쳐야 하나.’ 내가 자신 있는 분야는 침대 위였지, 이런 길거리는 아니었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장기를 적출당한 환자였으니까. “혹시 무슨 사이인지 물어도 됩니까.”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한 사람들만이 내는 특유의 딱딱한 어투가 들려왔다. 확실했다. 이 남자와 싸우면 진다. 체격은 비슷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단순하게 헬스로 다져진 몸이 아니었다. 빠르게 눈을 흘겨 주변을 살폈다. 도망갈 경로를 탐색은 해뒀다. 뭐, 눈앞의 사람이 작정하고 따라온다면 도망도 못 갈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계획을 변경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살려달라는 고함을 지를 수 있게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제가 선물을 몇 개 줬는데요.” “선물, 말입니까.” 정조대도 선물이면 선물...... 아닐까? “예, 선물이요.” 모자를 쓴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동시에 그의 팔이 위로 올라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공격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는 듯. 들어 올린 손으로 자기 모자를 벗었다. 남자의 인상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사람이 붐비는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세 번 정도는 볼 법한 얼굴이었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꾸벅 인사를 한 남자가 대뜸 입을 열었다. “저는 육천만 원입니다.” 너무나 두서가 없는 남자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얼빠진 대답을 해버렸다. “이름이 육천만이라고요??” “............” 나는 말을 내뱉고선 뒤늦게 자책했다. 이름이 육천만이겠냐. 아니겠지, 병신아. “저는 명수고, 6천만 원은 뜯긴 돈입니다.” “아, 네. 저는 주혁.........” 통성명 도중, 뒤늦게 명수의 말을 이해하고 그를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6천만 원이요???” “예.” 나는 명수를 다시 훑었다. 캐쥬얼한 복장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돈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코인 하셨습니까.” “.........” 어째 첫 만남이 많이 삐걱거렸지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라희의 또 다른 피해자인 명수가 나와 좋은 비지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때로 적의 적은 아군이 되니까. ‘이래서 살면서 적을 만들면 안 된다니까.’ *** 나는 명수와 함께 공원을 걸으며 명수의 이야기를 짧게 들었다. 도연의 남동생과 레퍼토리가 똑같았다. “그러니까. 라희가 합의금으로 6천만 원을 요구해서.........” “예.” “그 돈을 이미 준 상황이다.........” “예.” 생긴 것과는 달리 명수의 나이는 20살이란다. 20살에 6천만 원을 바로 쏠 수 있는 재력이라니. 물론, 나도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짓이었지만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조차도 합법적이긴 하나 부도덕한 방법으로 손에 넣은 돈이다. 하지만 명수는 그런 거 없이 돈을 벌어들인 듯했다. “혹시 주식 하셨나요.” 주식으로 번 돈이라면 종목이라도 알아내 보려던 내 사악한 계획은 명수의 한 마디에 무로 돌아갔다. “형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아, 맞지.” 그 짧은 사이에 명수는 나를 형님으로 대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중요한 건, 형님이 라희 그년을 울렸다는 겁니다.” “너도 울렸다며.” “저는 때려서 울린 거고요.” 그랬다. 명수는 라희에게 당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라희를 찾아가 대판 싸움을 벌이다가 그녀를 툭 밀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종합격투기를 배웠다는 명수의 툭-은 퍽이 되어 6천만 원이라는 합의금으로 늘어나서 돌아왔다. “그것도 울분에 찬 눈물이었습니다.” “그랬어......?” 나는 그냥 뒤돌아서 나왔으니. 라희의 얼굴까지는 보지 못했다. “형님뿐입니다.” 명수는 갑자기 무릎까지 꿇을 기세로 내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이 부담스러워 뒷걸음질을 치려 했지만, 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저한테도 그 기술을 알려주십쇼.” 역시나. 명수 또한 라희가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보고, 나와 라희의 관계를 파악한 후에 나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지이잉- 아까부터 오던 라희의 전화는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나는 명수에게 잡힌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명수에게 말했다. “알려줄 수는 있지.” “정말입니까??” “대신, 나를 좀 도와줘야겠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