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라희
033
명수가 말하는 ‘라희를 울리는 기술’은 다른 것이 아닌, ‘라희에게서 휘둘리지 않는 기술’이기도 했다.
라희는 명수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합의금으로 주었던 금액의 일부를 돌려준다고 했었다.
그 결과, 라희가 구린 일을 할 때마다 뒤처리를 해주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라희가 구조 요청을 하면, 간다고만 하고 무시하면 돼.”
“정말 그거면 됩니까?”
“밖에서 망을 봐주면 더 좋고.”
“.........”
명수가 내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왜. 내가 진짜 범죄라도 저지를 거 같아?”
“그렇게 되면 전 공범이 되겠죠.”
“걱정하지 마. 이미 합의금으로 6천만 원 뜯겼다는데. 거기서 더 뜯기진 않을 테니까.”
명수는 평온하다고 보일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너 표정 변화가 거의 없구나?”
“진지한 게 매력이라는 말 많이 듣습니다.”
지이잉-
나는 한 손에 들린 전화를 확인했다.
아직도 라희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슬슬 전화를 받아보려는 나를 명수가 막아 세웠다.
“강간하거나, 폭행하거나. 그런 건 아니신 거죠?”
“거기까진 내 취향이 아니라.”
“취향에 문제인 겁니까?”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나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거든.”
법이 정한 선은 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규범과 도덕적인 잣대는 넘나든다.
이런 내 취향은 이전부터 한결같았고 확고했기에. 명수에게 확답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뒷말은 해주지 않았다.
“그럼 됐습니다.”
내 말을 들은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근데.”
이번에는 내가 되물었다.
“너는 때렸다며. 그건 범죄 아니야?”
그래서 6천만 원이나 뜯긴 사람이 범죄에 왜 이렇게 민감해.
‘아, 그래서 민감한 건가.’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명수가 말했다.
“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로 하죠.”
웃기는 놈일세.
나는 명수와 함께 다시 라희가 있는 장소로 향하며, 도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몰라 도연에게도 말을 해뒀었다.
라희의 조력자가 우리의 계획에 방해될 거 같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여자면 내가 상대하고 남자면 도연이 상대하기로 했었다.
뭐.
지금 돌아가는 상황 봐서는 딱히 상대하지 않아도 될 법했다.
“아. 너 말고 다른 피해자는 봤어?”
“봤습니다.”
“언제?”
“두 달 전이요.”
명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저 이전에도, 저처럼 경호를 맡기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랬겠지.
명수가 라희에게 합의금을 뜯긴 건 얼마 전이라고 했었다.
“그 남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데.”
“수감 중입니다.”
“어쩌다가?”
“라희가 특수강간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나는 명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뭐할 건지 물어봤던 거야?”
혹시라도 내가 라희를 강간할까, 걱정돼서?
“예.”
명수의 말에 나는 손으로 턱을 쓸었다.
“걱정되십니까?”
“아니. 생각 중.”
걱정할 시간에 라희를 어떻게 처리하면 확실할지 생각하는 게 나았다.
“이 나이부터 교도소 들어가고 싶지 않거든.”
***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던 도연이 공원 나무에 기대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조력자 쪽은 해결.]
주혁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도연이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공중화장실 앞에서 라희가 씩씩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가 땅을 짓밟더니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하는 것에 반복이었다.
저 전화가 어디로 향하는지 도연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지켜보는 게 맞나.........’
도연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렇게 라희를 지켜보길 몇 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라희가 휴대폰 화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일그러뜨렸던 표정을 펴고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도연에게 대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라희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조력자가 또 있나?’
도연은 혹시 몰라 주혁에게 말해주려 휴대폰을 꺼냈을 때였다.
지잉-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은 주혁의 문자였다.
[라희 이동할 때, 주변에 또 누가 따라붙는지만 봐줘.]
이동? 이라는 단어에 도연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문자를 읽기 무섭게 라희가 표정을 굳힌 채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연은 주혁에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라희의 뒤를 밟았다.
***
[지금 모텔로 들어가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찰그락 거리며 열쇠고리를 돌리며 도연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따라온 사람은?]
[못 찾았어.]
공원에서 라희가 들어간 모텔까지 거리가 꽤 멀다.
도연이 못 찾았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라희가 제 발로 들어온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정말 됩니까?”
“라희가 경찰을 부르진 않았을 테니까. 너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해도 못 들어와.”
뒤를 봐주는 사람이.
아니,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제 발로 들어간 모텔 방문을 딸 수는 없을 테니까.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명수는 말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뭐가 궁금한데.”
“솔직히 저는 라희가 올 줄도 몰랐습니다.”
라희를 모텔로 부른 것은 명수였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그 열쇠가 뭐라고.........”
“있어. 지금 라희한테 절실한 거.”
명수의 휴대폰으로 정조대의 열쇠를 찍어 보냈다.
그리고 모텔 주소와 호수를 찍어주기만 했다.
그랬더니 바로 라희에게 전화가 왔고.
명수는 어색한 말투로 ‘할 말이 있으면 와서 해라.’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알아차리지 않았을까요?”
“네 연기가 어색했다는 거?”
“예.”
“지금 걔는 그럴 정신이 아닐걸.”
내가 본 라희는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남을 끌어내리기만 해와서일까.
제 감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가,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았다.
“네 문자를 받자마자 딱 생각했을 거야.”
열쇠를 명수가 갖고 있네?
이제 내 약점을 명수가 쥐고 있네?
그럼, 명수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요구할 건 당연히.........”
“그래. 합의금이겠지.”
라희는 이미 명수의 약점을 쥐고 흔들었던 적이 있으니.
그녀는 명수가 이런 태도로 나오는 것을 보고, ‘명수도 나와 똑같이 약점을 쥐고 위협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터였다.
“나와 달리 너는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하겠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믿었을 때의 이야기잖아요. 라희가 이 모든 게 형님이 시킨 거라고 알아차렸으면요?”
“그건 안 중요해.”
“예?”
명수는 그럼 뭐가 중요하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희가 스스로 모텔로 걸어 들어갔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지.”
처음부터 명수의 어색한 연기 때문에 작전이 들통나도 상관없었다.
라희는 어차피 명수가 말한 곳으로 올 것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정조대의 열쇠를 돌려받을 가능성이니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라희가 들어간 모텔로 향했다.
***
라희는 명수가 보낸 문자를 확인하며 방을 찾았다.
607호.
명수가 말한 방의 문이 열려 있었다.
라희가 살짝 열려 있는 문을 열었다.
기름칠을 잘해둔 것인지, 끼익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문이 무거워서 한 손으로 열다가 양손으로 열어젖혔다.
문이 활짝 열릴 때까지도 인기척은 없었다.
“야, 전명수.”
라희는 복도에 서서 컴컴한 방 안으로 명수를 불렀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없었다.
인기척이 아예 없는 거 같기도 했다.
“뭐 하자는 거야.”
라희는 신경질을 내며,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텔 특유의, 담배 냄새와 방향제가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라희는 이 냄새가 싫었다.
아니, 그냥 이 상황이 싫은 걸지도 몰랐다.
“빨리 안 나와??”
안쪽에서 대답이 없자.
라희는 다시 걸음을 옮겨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라희의 등을 툭-하고 밀었다.
“악!!”
라희가 단발의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입구의 벽으로 넘어지듯 부딪힌 라희가 곧바로 등을 돌려 소리쳤다.
“씨발, 뭐야!!”
쾅-
무거운 방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가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했다.
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아까 자신을 농락하듯 사라졌던 주혁이었다.
“너, 너는......... 여기, 왜.........”
“아. 표정을 보니 진짜 속았나 보네.”
주혁은 손가락으로 열쇠고리를 돌리며 씩 웃었다.
“네 세상에선 속은 놈이 병신 아니야?”
라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문이 너무 강하게 닫혀서 그런 것일까.
아님, 현관의 등이 너무 미약하게 앞을 밝혀줘서 그런 것일까.
어두컴컴한 지금 상황에서 라희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뒷걸음질을 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인이야? 한국말 되게 잘하던데.”
주혁은 그런 라희를 보며 키득거렸고, 한 걸음씩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 자, 자, 잠깐만.”
“왜. 쫄려?”
자신이 아까 한 것 같은 말에 라희가 손을 뻗으며 뒷걸음질 쳤다.
“너, 지금 이러는 거. 범죄야.”
“남녀 단둘이 모텔에 있는 게? 그게 범죄면 숙박업소 사장들은 다 나가 뒈져야겠네.”
“가녀린 여자 가둬놓고 위협하는 거.”
“너, 무고가 아니라 ‘진짜 범죄’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어떻게 되는지 알아?”
주혁은 입가에 짓고 있던 미소를 지워버리고선, 카드키를 꺼내 꽂았다.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어둡기만 했던 방의 불이 켜진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서 정상적인 삶을 잃어.”
화장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주혁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범죄자들은 별다른 처벌 없이 살아가겠지.”
“.........”
“초범, 심신미약, 반성문...... 뭐 다른 것들도 같이 해서 변호사 사면 끽해야 징역 몇 년 받을까.”
주혁의 무심한 말투가 라희의 귓가에 때려 박혔다.
“길어봤자 15년이 최대야. 그럼 나는 서른 중반이겠지? 다시 나오면 그땐 제대로 죽이면 돼.”
주혁이 말을 다 내뱉고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 넌 무조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라희는 헛바람을 삼켰다.
주혁의 말이 전혀 안심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부터 누군가의 복수를 해줄 거거든?”
주혁이 한 걸음씩 방 안쪽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누군지 맞추면 살살 해줄게.”
라희는 뒷걸음질을 치다 못해 주저앉아 버렸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주혁의 발걸음이 천둥처럼 들려왔다.
“아, 아.........”
악귀.
라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혁이 한 마리의 악귀처럼 보였다.
그 단어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어딘가를 향한 흉흉한 눈빛은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눈빛과 대조되는 익살스러운 미소 또한.
누군가의 복수를 말하고 있지만, 자신을 위한 일인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이 모습이 악귀가 아니면 무엇일까.
***
“아, 아............”
언어를 담당하는 뇌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라희가 주저앉아서 턱을 벌린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공에는 초점이 점차 사라진다.
누구의 복수인지. 전혀 맞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맞췄어도 살살 해준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남의 등쳐먹고 세상 편하게 살려고 하는 년을 평생 봐와서 그런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어쩌면 나는.
인두겁을 쓴 어미의 복수를 타인에게 풀려고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한평생 괴물의 배에서 나온 놈이 사람이리라 여겼던 적이 없었다.
나 또한 어미처럼 성장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닮았더라면, 어미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성인이 되고, 어미가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것을 도로 내가 훔쳐 달아났을 때.
그때 나는 다짐했다.
어차피 악인이 될 핏줄이라면.
악인을 잡아먹는 더 큰 악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