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18)
431.
마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여자가 막 옷을 벗으려는 순간....
바로 해가 뜨는 장면으로 바뀐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찌 됐든....
약간의 실망과 아직도 계속 되는...
기대 속에서....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하면서.....
엉거주춤....
잠자리를 준비했다.
혼자 떠들어 대던 티비를 열일을 하고 있음에도....
왠지 적막한 공기가 방안을 휘감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서로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서....
우린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피곤한 몸을 녹일 듯한....
따듯한 모텔 방 안....
민희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비볐다.
나는 그간 배웠던 신사도를 발휘해서....
평안한 침대를 민희에게 양보하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솔직한 심정은 물론....
그녀의 옆에서 함께 자는 것이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다.
아니...
좀 더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괜한 허세을 부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민희를 보호해준다며.....
널 지켜주겠다는....
남자다움을 뽐내는....
자만심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 오빠 >>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의젓하게 행동하고 싶은 허영심도....
한몫 단단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 위로 보이는....
민희가 누워있는 침대의 윤곽이....
마치 거대한 담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높은 담.
절대 넘어오지 말라는 듯....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런 담장 말이다.
" 이제 오빠... 우리 자자..... "
틀어놓은 티비에서 나오는 방송을....
나도....
민희도....
집중하지 못하고 기대고 있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동안...
묘하게 높아진 긴장.
하지만....
결국 피곤에 지친 민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 으응.... 그럼 불도 같이 끈다? "
" 으응.... "
작게 들리는 민희의 목소리.
난....
티비를 끄고....
방안의 불도 꺼버렸다.
모두 꺼버리니 완전 캄캄한 어둠이 찾아와서....
민희가 무서울까봐 다시 서둘러 작은 조명등을 켰다.
희미하지만....
그래도 빛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가운데....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엄청 크게 들릴 것 같은...
적막.
민희가 먼저 침대에 눕는 듯한 소리에...
나 또한 내 자리를 찾아....
길게 몸을 뉘었다.
따듯한 방안....
맨 바닥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처음 먼저 자리에 누웠던 민희가...
은연 중 내고 있던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어느새 사라져버린 방 안에는....
적막한 고요 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왠지 숨소리조차도....
크게 내기 미안한....
그런 느낌.
정적 만이 감돌고 있는 방....
무겁게 침묵이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해도....
조금 있다가 보면.....
알 수 없는 갈증과 함께 눈이 떠졌다.
그러면 바로 나를 내려다보는 침대를 올려다보며....
마른 침을 조용히 한번 삼키고 다시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따로 자자고 한 건 나였다.
그녀와의 섹스를 꿈꾸면서도....
막상 그것을 하고자 하는 추진력은....
발휘할 수 없었다.
방에서 어색하게 앉아서 티비 방송을 보면서도...
민희가 같이 장난을 치고 놀던 때와는 달리....
그녀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게 그냥 어깨에 팔을 두르는데도....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갈망했던 순간을...
조금은 더 뒤로 미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꿈꾸었던.....
음흉한 시간은....
시기상조였다.
민희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평안히 잘 수 있게....
그녀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아예 바닥으로 내려왔다.
비록 침대가 있는 방이지만....
그래도 바닥도 같이 난방을 하는지....
누울 만 했다.
베개만 가지고 내려와서....
내 오버코프를 덮고 누웠지만....
충분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 신사답게 행동하는 거라고...
여자 친구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이정도 배려는 하는 거라고....
위로하면서...
불을 끌 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잠의 여신이....
전혀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이제 보면....
잠의 여신이 아니라....
그냥 남자의 성별을 가지고 있는...
신이었던 모양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엿보고 싶은지....
애초부터 내 눈을 감겨줄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관음증에 걸린...
음란한 신 같으니...
어쩌면 완전히....
생각을 잘못했을지도 몰랐다.
난 민희와 따로 누워서 있으면....
그래도 욕정이라는 것이 순순히 포기하고...
물러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와 같은 방에 누워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바로 눈을 뜨면 보이는 침대 위에....
민희가 누워 있다는 생각을 하기만 해도....
아랫도리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는 실망을 가져왔던....
맨발의 민희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며....
내 심장을 옥조여왔다.
끈질긴 욕망의 찌꺼기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모로 돌아누우며....
베개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조금 낮은 듯한 베개 때문인가 싶어서....
그렇게라도 높여서 잠을 다시 청해볼 작정이었다.
근데...
그 순간....
침대 위에서 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빠..... "
너무도 작은 목소리가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더 커진 목소리가....
분명 나를 찾고 있었다.
" 오빠... 많이 불편하지....? "
난 그제서야 서둘러 입을 뗐다.
" 아.. 아니야. 하하... 난 원래 바닥 체질이야. 침대는... 너무 말랑거려서... 허리가 아파서 못 자.... "
" 뒤척이면서 무슨...... 아직도 못 자고 있잖아..... "
" 하하... 아니야.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오나 봐.... 민희 너야말로 왜... 못 자고 그래....? 어서 자..... "
" 오빠가 그렇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 "
" 에이... 신경 안 써도 돼. 곧 잠들겠지 뭐...... "
사실 잠들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은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할 지도 몰랐다.
아마 그건....
민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 오빠..... "
" 응? "
그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그새 잠들었나 싶었는데 작게....
아주 작게 다시 들렸다.
" 오빠.... 침대에 올라와서 잘래......? "
분명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였는데....
나에겐 한여름 밤 폭풍우가 칠 때 나는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고 엄청 크게 들려왔다.
천둥벼락....
어떤 것도....
이보다 클 순....
없었다.
**************
옛날 제갈 공명은....
유비의 부름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고 하지만....
당장 바로 난 그녀의 부름에 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좋은 남자....
좋은 오빠로....
남아있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허세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속으로 욕망에 잔뜩 불타면서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참...
남자의 허풍과 자만심은....
끝도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소설 같은 것에서 봤던 주인공을....
동경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춘기 소년 시절 보았던....
알퐁스 도데의 << 별 >>에 나오는 양치기를 보며....
나도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똑같이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같은 방에서 자면서도....
연인을 지켜주는 그런 남자를....
어쩌면 동경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처음부터 같이 누웠으면....
어쩌면 늑대로 변했을 나였는데....
지켜주겠다고 마음먹고 따로 누워서 잠을 청하면서....
그때 먹었던 그 치기어린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 훗.... 아니야. 괜찮아...... "
점잖게 사양했다.
하지만 민희의 권유는 계속 되었다.
" 괜찮긴.... 불편하잖아... 오빠.... 올라와..... "
으으....
천사의 유혹....
아니...
이건 악마의 유혹이다......
" 여기도 편해. 괜찮아...... "
" 춥잖아...... "
" 아니야. 온돌인가 봐 . 바닥도 따듯해. "
그 순간....
침대가 출렁이는 듯 하더니 그녀의 머리가 빼꼼 나타났다.
높은 담처럼 보이던 그것이 무너져 내렸다.
민희의 긴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흘러 내렸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희미하게 피어있었다.
" 오빠.... 그러지 말고 올라와..... "
나를 보고 있는 민희의 눈빛이 마치 우주처럼 느껴졌다.
반짝이는 별들 가운데....
모든 것을 빨아드리는 블랙홀처럼....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 목소리는....
그 마력에 빠져서.....
어느새 흔들리는 중이었다.
" 괜찮은데..... "
" 거기서 오빠 재우기는 내가 싫어..... 올라와..... "
엉덩이에서 늑대꼬리가 쑥~! 튀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민희는....
내가...
침대로 올라가면....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걸까.....?
나를 믿어주는 것도 고맙지만....
그녀의 믿음에 부응하는 남자가 될 자신은 없었다.
이미 바닥에서도 갈등을 했던 나인데...
침대 위에서 민희와 함께 누워 있다간.....
그녀의 믿음 따위는....
산산이 헌신짝처럼 버려질 것 같았다.
" 나 올라가면.... 늑대로 변할지도 몰라.... "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속삭였다.
진심이 담뿍 담긴 말이었다.
그러나....
민희의 미소는 조금 더 진해진 듯 변한 거...
같았다.
" 그래도.... "
살짝 시선을 피하면서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 올라와..... 오빠...... "
마침내....
민희의 말이 내 족쇄를 끊어버렸다.
난....
어쩌면 민희의 허락을 갈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동의를 얻고....
늑대로 변신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민희는 옆으로 자신의 베개를 가지고 움직였다.
난 그녀가 비켜준 자리로....
베개를 들고 천천히 자리를 잡고 누웠다.
출렁이는 침대의 쿠션....
물렁물렁한 스프링의 탄력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드러누웠다.
" 오빠..... 이불 덮어야지.... "
등을 돌린 채 내주는 이불자락을 잡고 내 몸을 덮었다.
옆으로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민희....
그리고 그 옆에....
바로 누워 천장을 보고 있는 나.....
이제....
그녀와의 사이에는....
고작 한 뼘 반의 거리가 있었다.
민희가 숨을 쉴 때....
느껴지는 그 진동이....
내 오른쪽 어깨로....
가느다랗게 느껴지는 듯 싶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