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19)
432.
#12. 처음을 맞이하는 남녀의 자세 셋.
무용담처럼...
자신이 잔 여자에 대해....
떠드는 녀석들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대부분 뻥이라고 생각했고....
있다고 해도 그 허황됨에....
쉽게 웃음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은밀히 귀 기울였다.
정말이든....
아니든....
그 사실 만으로도
꼴릿한 기분을 나누며....
이때도 낄낄 웃을 수 있었다.
대학교 들어오면서...
성인이 되면서....
이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오히려 숨기고 감추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동정을 지키고 있는 것이....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경험을 한 녀석들 또한....
그 까짓것 뭔데 아직도 못했냐..고 말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물론....
경험 있는 애들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고....
없는 자들은 쪽팔리고 알 수 없는 열등감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타오르는 갈증을....
술로 대신 했다.
가깝고도 멀고 먼....
성인의 관문은.....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남녀 관계에서도 존재했다.
**************
민희의 어깨와 내 가슴 사이....
둘을 덮고 있는 이불이 텐트처럼 들린 상태에서....
그 안의 공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점점 크고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내 것인지....
또는 민희의 것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태.
숨을 쉬고 있는 민희의 어깨도....
나처럼 점점 들썩이는 간격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숨이 답답해졌다.
휴우우우.....
하아아....
조용히 소리 없이 긴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아까와는 또 다른 갈증이....
나를 엄습했다.
마른 침을 삼켜도....
숨을 아무리 들이쉬고 내쉬어도....
오히려 머리가 쭈삣 서고....
지끈거리는 두통마저 생기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와 같은....
그런 두통이 아니었다.
좀 더 강하게 압박하고 눌러대는 듯한 느낌...
마치 머리 혈관이 직접 두근두근 거리며....
그 안에서 맥이 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바로 옆.....
민희의 등 너머....
작은 숨소리 또한 분명....
점점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혼란과 혼돈의 시간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뻔한....
청춘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와 민희도 그렇게....
우리 둘만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서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위적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
남자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간사했던 것일까.
하긴....
아래에서 누워있을 때에도....
그리 깨끗한 마음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로 민희의 옆에 누워있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불가했다.
남자의 본능.
여자를 안고 싶어 하는 욕심.
욕망이라는 말이 더욱 맞을 것 같은.....
뜨겁고 끈적거리는...
이 갈망.
짝짓기....
교미...
생식본능이라고 하기엔....
그 의미가 퇴색 되어버린 채.....
쾌락과 음란한 욕구 만이 가득한....
행위가 이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날 흔들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는 침대가 벽이 되어....
나의 뜨거운 욕구를 막아 주었는데....
지금은 그녀와 나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하는 공기 만이....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이불 아래 빈 공간으로도...
민희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싶었다.
이상하게도.....
아까부터 후끈거리는....
묘한 열기가 오른쪽 어깨로 전달되고 있었다.
물론...
민희는 여전히 벽을 보고....
등을 돌린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는 가슴 위에 모았던 양손을 풀고는....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스스슥....
스륵....
이불 속감을 스치는 손에서....
천을 긁어대며 나는 소리가....
내 가슴을 찔러왔다.
그리고....
그녀의 몸 쪽에서도....
순간 움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욕망의 불꽃이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침대 시트로 내려온 내 오른팔은....
이제 그녀와의 거리를 한 뼘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손끝....
바로 몇 센티미터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민희의 엉덩이가 있었다.
부들부들 떠는 듯한....
진동이 느껴지는....
그 아슬아슬함.
생각해보면...
그녀와의 첫 키스....
그 때는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었다.
그냥....
서로 이끌리는 대로 입을....
맞추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둘만 같이 영화를 보았다.
조장과 삼총사의 조합이 아닌....
김우태와 서민희....
두 사람 만이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뭐 선배와 후배의 조합으로 시작된 것이긴 했지만......
난 아침부터 뛰는 가슴을 주체 못할 만큼....
그녀와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
로맨틱한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애매하게 만나버린 시간 탓에....
보고 싶은 영화는....
바로 앞에서 먼저 시작해버렸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공포영화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을까.
무서워서 덜덜 떠는 민희의 손을....
난 꽉 잡아 주었고 그녀가 얼굴을 숨길 수 있게...
내 어깨와 가슴을 빌려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왔을 때....
우린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기분 좋게 맥주를 나눠 마시고는...
시원한 밤거리를 같이 걸었다.
어느새 우린....
자연스럽게....
손을 마주 잡고 걷고 있었다.
줄줄이 서있는 가로수길....
길게 뻗어있는 도로가.....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즐거운 산책을 같이 하고 있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알딸딸한 알코올의 기운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옆에 민희가 있었기에....
더욱 즐거웠다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온도.
가느다란 손가락이 오가는 설레임.
그리고....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가로등 아래에서....
난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약간 놀라는 듯한 민희의 눈동자가....
살짝 젖어드는 듯 하더니....
이내 눈꺼풀 아래로 숨어 버렸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몸 속 깊이 느끼며 다시 그녀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갰다.
꽤 긴 시간 같았는데....
무려 길거리 한가운데였는데도....
우린 그렇게 첫 키스를 나누었다.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지나가는 이들이 있었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던 것인지...
사실 솔직히 구별할 수 없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그때 그 시간...
그곳은....
우리 둘 만의 공간과 시간 만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
민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녀의 체온을 손바닥 가득 느끼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마음 속에....
그녀가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던....
<< 서민희 >> 의 자리가.....
어느새 커다란 궁궐처럼 커져 있었다.
술기운도 아니었다.
즉흥적인 기분도 아니었다.
살짝 볼이 붉어진 채 기분 좋게 미소 짓고 있는....
서민희 그녀의 입술에 내 도장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녀의 몸이 바로 옆에....
지척에 있는데도....
왜 이리 손을 내밀기 어려운 것일까.
**************
민희가 자신의 옆자리를 허락해주었다.
그것이 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해준 것일까.
아니면....
허락의 의미였던 것일까.
난 분명 말했다.
진심으로.
" 나.... 올라가면.... 늑대로 변할지도 몰라.... "
그때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 그래도.... 올라와..... 오빠...... "
민희의 입가에 번지고 있는 미소가....
점점 진하게 번져가는 것을 떠올리며....
마침내....
용기를 얻은 나는 그녀의 몸을 향해....
망설이던 손을 뻗었다.
슬금슬금....
꼼지락꼼지락.....
손가락이 느리게 기어갔다.
일차세계대전....
수많은 시체 만이 가득했던 참호를 전진하듯....
먹어서는 안 되는 간식에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처럼....
조금씩 느리게....
하지만....
전혀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닿았다.
그녀의 티셔츠.
잠옷으로 가져왔을까....
민희가 입기에는 왠지....
두 치수는 훨씬 커 보이는...
헐렁헐렁한 그리고 부드러운....
티셔츠의 감촉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별 것 아닌 그 천 조각이...
가슴을 찌르르 울렸다.
침대 시트와는 다른 감촉의 재질.
그리고 그곳엔....
긴장한 듯 굳어진 그녀의 등과 흐릿한 갈비뼈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희는 내 손길을 피해 달아나지 않았다.
그녀의 옆구리를 파고든 내 손등을....
가만히 받아주고 있었다.
난 손을 뒤집었다.
손바닥 위에 그녀의 몸이 올려졌다.
따듯했다.
어린 토끼 같이 뜨거운 체온....
그리고 살짝 떨고 있는 그 두려움까지도.....
닮아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망설이고 있을까.
이미 민희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부터....
그녀의 몸에 손을 댄 순간에....
내 마음에 채워졌던 족쇄를....
내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긴 밤....
여자 친구를 지켜주는....
서경덕 같은 평정심을 가진 싸나이 따위는....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물론....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는....
황진이 보다도 훨씬 더 예쁘고....
아름다운....
민희였으니....
존재가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님을...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다.
어찌 됐든....
난 상체를 일으켜서....
그대로 민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흠칫 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내 쪽으로 당겼다.
생각 외로 힘없이....
스르륵 넘어오는 민희의 어깨.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 아래로 천천히 돌려졌다.
희미한 전등 불 아래....
민희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오똑한 콧날....
톡....
튀어나온 입술이 희미하게 보였다.
쫍.....!
난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였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