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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55)


468. " 그렇구나.... 난 왜 몰랐을까.... "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는데.... 민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 아마도... 난 좀 늦게 왔으니까.... 오빠는.... 아침 일찍 오지 않았어? " " 그랬지..... "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오전에 일찍 와서.... 무슨 숙제를 하듯 아버지를 뵙고는.... 일찍 자리를 비웠다. 나쁜 아들.... 나쁜 자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외로웠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찾아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때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일이 아니더라도.... 종종 오곤 했다. 그래도.... 생각할수록.... 한편으로 억울했다. 민희를 보고 싶어 했던 그 긴 시간동안.... 마주칠 기회가 매년 주어졌는데도.... 단 한 번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리고.... 조금은..... 가슴이 쓰라렸다. 이렇게 민희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니... 역시.... 심장이 쓰리고 아파올 정도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긴... 공간이 같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엇갈리면 만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었으니까.... 순간 내 시선이 민희의 손에 들려 있는 것에 닿았다. " 그거.... " 내 시선..... 내 질문이 향하는 것을 느끼자.... 민희는 조금 쑥스러워 하며.... 한손으로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겼다. " 아... 이거 유부초밥.... 예전에.... 오빠 아버님이랑 산책 갔었는데 너무 맛있게 드셔서.... 빈손으로 올 수가 없더라.... 여기 올 때면 들고 오게 되네. 훗.... " 언제 갔었는데... -라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알면서 묻는 것은 기만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도.... 내가 유부초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아무 말 없이 희미한 미소를 나누었다. 물론... 민희가 들고 온 그 유부 초밥도 같이 나눠 먹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정말로 맛있었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 아래.... 지금까지 먹어본... 그 유부초밥보다 맛있는....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집으로 가는 길. 올 때는 혼자였는데 갈 때는 둘이 되었다. 민희의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술이라도 함께 마시고 싶었는데.... 그녀는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미안하다면 거절했다. 대신 이번에도.... 집 앞까지 태워주고는 희미한 미소를 남기고 떠나갔다. 또... 언제 보자는 말도 없이..... 그렇게 도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난 또 며칠을 애타는 가슴으로.... 밤을 새우게 될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냥 멍청하게 서서는.... 민희가 사라진 거리 쪽을 바라보며.... 애달픈 숨만 내쉴 뿐이었다. ************** 오빠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술 한 잔 마시자고 했을 때.... 나 또한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선약이 있었다. 절대.... 깰 수 없는.... 선약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만나야 할 사람이.... 술 한 잔하고 가도 되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나온 말 한 마디. " 아.... 어머니 벌써 오셨어여? " 빨리 온다고 했는데도....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있으셨다. 코리안 타임이라고 30분 늦는.... 우리나라 사람들 시간관념에 대한 말이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절대 그런 분이 아니셨다. 오히려 30분 더 일찍 오셨으면 오셨지..... 절대 늦지 않으셨다. 늦는 법이 애초 없었다. " 왔냐. 어여 앉거라. 식사는 미리 시켰는데 괜찮겠지? " " 네에.... " 하긴 이 가게는 어머니가 즐겨 오시는 집인데..... 내게 선택권이 있을 리 없었다. 남편이 편하다고.... 시댁이 대하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할 때도.... 석진씨가 도맡아서 시댁의 일을 처리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시집살이라는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힘들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비싼 가격....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면서도.... 편히 먹을 수는 없었다. 왜 불렀는지 이유를 알고 있으니.....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 주제를 앞두고는....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 너희.... 아직도니? " " 네? " "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느냐고.... " " 아... 네... 아직은. " " 흐음.... " 딸그락. 어머니가 단지 젓가락을 놓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 그 보약을 먹었는데도 안 들어선다니? 하아.... 이게 무슨 일이데.....? " 보약. 몸에 좋은 것이라고.... 시댁에서 보내주신 약. 갑자기 불러서 한의원에 갈 때 이미 눈치는 챘지만... 아기 들어서는 약이라고 한 상자 보내주시는 것을 받고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른이 보낸 것이라 먹었지만.... 비위에 맞지 않고 자꾸 속이 뒤집어져서 결국....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것을.... 남편이 어느새 모두 치워버렸다. 깨끗이.... 하나 남김없이. " 매달 생리는 잘 하고? " " 네..... " " 산부인과는 갔다 왔니? 저번에 말한 거기. " " 네... 검사 받고... 이상 없다고 했어여. " " 아휴.... 대체 그럼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구나. 나중에 연락할 테니 시간 내서 다시 한의원에 가자꾸나. 효험이 없으면 다른 약으로 바꿔보자고 했으니까.... " " 네..... " 진맥이다 뭐다.... 또 번거로운 일이 뻔히 기다리고 있겠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하긴.... 시집와서 애를 못 낳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말씀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외아들. 딸만 셋 있는 집인데.... 얼마나 자신의 친손자를 보고 싶어 할지는.... 충분히 머리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전 시누이들과 하셨던 말을 들은 뒤로.... 더욱 함께 있는 자리가 힘들었다. 사람에 대한 생각.... 언제나 나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 독이 묻은 검처럼 흉한 말로 깎아내리는...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 들어가세요. " " 그래. " 어머니가 모시는 차가 떠난 뒤에야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잠시 가게 앞 벤치에 앉을 수 있었다. 고작 한 시간 남짓.... 단순한 식사 자리였는데도.... 힘이 쭈욱 빠져서 맥을 쓸 수 없었다. 하긴.... 많이 먹지도 못했다. 억지로 먹은 것도... 결국 화장실에서 모두 토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드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를 이런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 나쁜 며느리라 생각하지만.... 역시.... 본심을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 하아.... "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 구름이 가뜩 끼어.... 회색빛으로 물들고 점점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검회색 하늘. 아까는... 정말..... 파란 색으로.... 너무 예쁜 하늘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칙칙하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 어렸을 때.... 남자애들에 대한 내 생각은..... 좀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였던 것 같다. 하긴... 어리고 활력 넘치는 남자애들이 다 그렇겠지만.... 괜히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장난을 걸어오는 그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자애들과도 도란도란 얘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비글이나 코카 스파니엘 아니면 미니어처 슈나우저 같은 활력으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애들은..... 피하고 싶은 대상 1위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남자란.... 그냥 멀리하고 싶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물론 사춘기가 되면서.... 잘 생긴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보며 옅은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그건 멀고 먼 세상 속 존재로서.... 단순하고 희미한 동경이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남자.... 이성에 대한 경계.... 여자로서 몸조심 등등을 엄마에게 들으면서.... 더욱 경계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덩치도 크고 우루루 몰려다니며 여전히 시끄러운 그들을 보면서.... 살짝 피해가며 또래.... 여자애들과의 만남만 이어갔을 뿐이었다. 또래끼리 어울린다고 했을까. 만나던 친구들도 이성교제에 관심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나 드라마..... 아니면.... 영화에서 살짝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연애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까르르 웃으면서 수줍어하던 그런 애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 남자와의 만남은..... 역시나 조금 무서웠다. 그냥.... 길거리에서도.... 내 곱절은 커 보이는 남자애들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면서.... 그간 여중, 여고를 다녔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부쩍 내가 윈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남자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렸을 때 기억했던 멍멍이의 느낌 보다는... 왠지... 귀여운 면을 많이 보게 되었던 것 같았다. 조금은 모자라 보이고... 조금은 순진한 듯.... 쑥스러워 하는 애들을 보면서.... 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걔 중 능글거리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남자보다는..... 여자애들과 대면하는 것에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애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꼭.... 남동생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어쩔 땐 남자라는 것을 뽐내고 싶어 하는 듯.... 팔짱 걷어붙이고 앞장서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우습기까지도 했었다. 그러면서.... 김우태 선배..... 우태 오빠를 만났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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