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57)
470.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 먼저 귀가해 있었다.
어머니와의 약속은 얘기 했으니까....
저녁을 먹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부엌....
식탁 위에서 궁상스럽게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미안함....
그리고 조금은....
속상한 마음이 밀려왔다.
" 자기.... 차라리 기다리지. "
얼른 겉옷을 벗고 부엌으로 오는데....
석진씨는 후다닥 남은 밥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렸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섰다.
" 우음... 아니얌... 웁웁.... 글허지 아한도... 웁..... "
얼굴이 붉어지는 그의 얼굴에 얼른 컵에 물을 따라 주었다.
바로 받아서 꿀꺽꿀꺽 마시는 석진씨 목에....
아담스 애플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순간 컵을 식탁에 탁 내려놓고는 하하하 크게 웃었다.
" 아~~~ 미안.... 하하하하.... 자기 오기 전에 후딱 요기하려고 했는데 하하.... 아... 딱 걸렸네. 하하하.... "
" 아휴.... 무슨.... 일찍 오는 거면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그랬음... 빨리 오는 건데. "
어머니와 헤어지고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괜히 이리저리 도로를 따라 헤메이다가 왔기에....
더욱 미안했다.
내 마음이 허전하다는 이유로....
당연히 그가 밥을 먹고 들어올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는....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만 생각했었던 탓에.....
엄한 석진씨만 제대로 저녁 한 끼 먹지 못했다.
그는 얼른 식기를 치우고 개수대에 옮겼다.
그리고는 히쭉 웃었다.
"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옷이나 벗고 씻어요. 그냥 자기가 한 반찬이 먹고 싶어서 바깥 음식 먹고 싶지 않더라고. 이건 내가 치울 테니까 어서.... "
" 내가 할께요. "
" 노노!!! 외출하고 와서.... 씻지도 않고 그러지 말고.... 어서 갈아입고 씻어요. 이거 뭐.... 얼마나 된다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자.... "
거의 억지로 밀어서 부엌에서 나를 내보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었다.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그의 고집.
난 한숨을 쉬고는 미소를 지었다.
" 알았어요... 그럼 저 씻고 올께요. "
" 알았어요. 후훗..... 자. 여긴 나한테 맡겨요. "
안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서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했다.
물기를 닦는데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석진씨의 콧노래가 들렸다.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그가 너무 따듯해서 어쩌면....
어머니가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욕실에서 나와서 부엌으로 가니....
정말 그사이 설거지까지 다 끝내놓고 있었다.
나를 보자 남편은 미소 지으며 물었다.
" 자기.... 커피 한잔 할래요? "
" 네... 그래요. "
남편의 유일한 기호품.
담배를 안 하는 대신....
원두커피 매니아였다.
스스로 원두를 구해다가 로스팅까지 하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였다.
언젠가 커피숍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요새 경기 상황 봐서는 힘들 듯 싶다고....
시무룩해 하기도 했다.
하긴...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별의 별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넘쳐났다.
아무리 맛있고....
싼 커피라고 해도.....
남편이 원하는 커피숍은 전혀 아니겠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여유롭게 장사를 하지는 못할 거 같긴 했다.
어찌 됐든....
식탁에 마주 앉아서 그가 타준 커피를 마셨다.
달달하면서도 쓴 맛이....
쓴 맛 속에서도 고소함이...
그리고 약간 신맛까지 나는....
확실히...
커피숍을 하면 잘 될 듯 싶은데....
한편으로는 원가 생각을 안 하고 팔아서....
돈 벌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그에게.....
가게는 무리일지도.
그래도...
그의 취미 때문에 복 받은 것은 나였다.
언제나....
남편의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 흠... 미안해..... "
뜬금없는 그의 사과.
하지만 이내 왜 이런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
아마도 시어머니와 통화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얘기도 했겠지.
" 아니에요. 머가 미안해요. 훗..... "
" 참나... 어머니는 참.... 아직 우리가 젊은데 웬 조바심은 그리 많아서 그러는 건지... 다 알아서 할 텐데.... 당신.... 신경 쓰지 마.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
말을 마친 남편은 머그컵을 들어 자신이 탄 커피를 음미했다.
" 어머니야... 당연히 욕심내실 수 밖에요.... 우리 결혼한 지 햇수가 얼마인데..... 나야말로 미안해요. 당신한테도 어머님 아버님께도. "
" 아휴.... 무슨. 아기는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잖아. 때가 되면 생기겠지.... 참... "
한때....
아기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남편도....
나도...
산부인과 검사도 하고....
식이요법도 하면서 2세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왜....
아이를 가질 수 없는지.....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실패가 계속 되면서....
남편은 검사를 다시 하는 것에 대해 거북해했고....
그렇다고 인공수정까지 하는 것 또한....
반기지 않았다.
과학이라는 힘.
의학의 도움을 받아도...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우겨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긴 그의 말대로....
아기는 하늘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도 시어머니께 말은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압력은 내게 직접 오고 있었다.
시누이들 또한....
은근히 시댁에 가게 되면....
한두 마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옛날 아이를 낳지 못해서 마음 고생 심했다는....
그 수많은 여자들이 다 이런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애잔했다.
의학의 힘을 빌려서....
검사까지 하고도 이유를 알 수 없는데....
그냥 삼신할미 은총만 바라고 있던 부부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후후...
불며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듯한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둘만 있었다면.....
평화로운 결혼 생활이 되었을까.
나는 커피 잔 너머 석진씨를 보았다.
그 또한 머그잔 너머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다.
입은 보이지 않아도.....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역시....
미안함에 난 눈을 내리깔고....
다시 커피를 홀짝 거렸다.
마치....
진한 보리차 같은....
아니 보약 같은....
커피 위로....
하늘하늘....
내 얼굴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
#20. 돌풍이 부는 날 셋.
언제부터인가....
불면증이 생겼다.
그러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아마도....
그 시작은....
우태 오빠가 군대를 간 뒤부터....
-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있어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생각이 하나씩....
꼬리를 물고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맴돌며....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밤이란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누우면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던 그 시간이....
마치 환상 속에 있었던 일인 양....
멀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어떤 방법을 써도....
그런 잠자리를 맞이할 수 없었다.
낮에 많이 움직이고....
피곤하게 나 자신을 밀어 붙이거나...
운동을 힘들게 해도....
금방 잘 것만 같아도....
자리에 눕기만 하면....
두통에 머리가 아파올 뿐....
잠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잠이 안 오면....
차라리 일어나서 책을 읽었다.
그냥....
자는 것을 포기하고 창이 밝아올 때까지....
그렇게 무언가 하고 있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했다.
그래도....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반찬을 만들며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도....
번잡하게 내 마음을 흔들만한 일을...
자꾸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 속에서 날 멈추고...
벽에 기대서서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곤 만들었다.
창문 건너편....
검은 어둠이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붉은 기운과 함께....
밝아올 때까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붉은 태양이 지평선에서 떠오르고 나서야....
조금은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마치...
저주에 걸린 흡혈귀가 된 것처럼.....
**************
오늘도 잠을 들 수 없다.
원래...
우태 오빠 아버님을 뵙고 오면 그날은....
언제나 잠들기 어려운 밤이 되기는 했었다.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또....
아버님과 같이 산책 갔었던....
하늘이 푸르고 맑았던 그 날이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번잡하고 어지러웠다.
그런데 오늘은....
우태 오빠까지 봐서....
더더욱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차라리....
그때 오빠와 술이라도 한잔 했으면....
조금 나았을 것일까.
아무 말 없이....
함께 서울까지 올라오던 시간도...
너무 짧기만 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마음이 따듯했었다.
그런데....
어머니와의 저녁시간을 보낸 뒤....
순식간에 차가워져서는....
더욱 마음이 어지러웠다.
문득.....
시댁에서....
예전에 들었던 말.....
그때의 기억까지 피어올라서...
지끈거리며 머리가 아파왔다.
" 아니 올케는 왜 애가 안 생긴데? "
" 그러게... 병원에서도 별 이상 없다고 하는데... 에효.... 진짜 속이 상해서.... 석진이 녀석은 지가 알아서 한다고 하지만... 그게 알아서 한다고 되는 일이라냐.... 아휴..... 부부 사이에서 노력을 해야지... 대체 낳을 생각은 있는지 모르겠다...... "
" 흐음... 올케 다녔던 학교가.... 한성 대학교라고 하지 않았어? "
" 응. 맞아. 근데 언니 그건 왜? "
" 아니... 아는 사람이 그 대학에 다녔는데... 묘한 얘기를 들어서.... 그게 울 올케 소문인 거 같기도 하고.... "
" 아니 이건 또 먼 소리래? 주연이 너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 "
" 아하하.. 아니야. 아무 것도... 아무튼... 애가 생기지 않아서 큰일이다... 아빠도 말은 안하지만 신경 쓰시는 거 같던데.... "
" 아니 얘가 무슨 얘기인데 하다 말아? 응? "
" 에이...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히히... 참! 우리 올해 해외여행은 언제 가기로 한 거야? 올해는 꼭 가자고 했잖아? "
" 아휴.... 그것도 석진이가 바빠서 될지 모르겠다. 요새 걔 회사가 영... 힘들다고 하잖니... 에효... 참.... 걱정꺼리가 하루 건너 하루 생긴다.... 얘. 올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더니만.... 역시 그때 부적을 좀 썼어야 했나 보다... 쯧쯔....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