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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89)


503. " 아침에 지리산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일출 보러 간다고 했는데 나 때문에 못 간 거 아니야? " " 푸하... 왜 오빠 때문에 못 가? 나도 방금 일어났다고 했잖아.... 늦게 일어나서 갈 수도 없었어. 절...대! 오빠 때문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오빤 자꾸 뭘 그렇게 미안해하려고 해? 히..... " " 하...하... 미안해하려고 하긴.... " 할 말이 없어진 우태는 괜스레 뒤통수만 긁적일 뿐이었다. 민희는 그런 그의 모습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우태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아. 그러니까.... 괜한 생각은 하지 마, 오빠..... "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이마에 쪽 소리를 내어 입술을 맞춰 주었다. 그리곤 부끄러웠는지 훌쩍 뒤로 물러서서는 얼굴을 붉혔다. " 그럼 오빠 어서 씻고 나와. 나.... 배고파. 나가서 우리 아침 먹자. " " 아.. 알았어. 후딱 씻고 나올께. " 우태는 바로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 군대에 있을 때처럼 빠른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머리만 말리고는..... 민희와 함께 호텔에서 빠져나왔다. 그래도 훌쩍 11시가 다된 시간이라 가게들도 하나둘 열기 시작했는데..... 그 중 제일 만만한 것이 국밥집이었다. 들어가니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곳에서 시원스럽게 소머리 국밥 한 그릇씩 먹고는.... 지리산을 향해 출발했다. 3시간 정도 걸려서 닿은 곳은 성삼재 휴게소. 휴게소 올라가는 길에도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더니만.... 주차장 안도 마찬가지였다. 몇 바퀴 돌고 나서야 간신히 자리를 찾아서 주차할 수 있었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등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잔뜩 보였다. " 훗... 여기서 천천히 올라가면 노고단까지 갈 수 있데. " 민희가 우태의 팔짱을 끼고는 방긋 웃었다. " 그렇구나... 이렇게 올라가는 방법이 있었던 줄 몰랐는데? " 우태는 옛날 선배에게 들었던 지리산 산행을 떠올리며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다. 일단 자신도 문제지만 민희 체력에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때 듣기론 올라가는데 5시간 넘게 등산하느라.... 고생 제대로 했다는 경험담과 그리고 온갖 역사에 나왔던 지리산의 명성을 생각하며.... 간신히 체력을 보충한 민희가 그 험한 산을 어떻게 올라갈지.... 염려하는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산에 올라오는 방법이 있다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민희는 피식 웃으며 놀려댔다. " 오빠 방송 일도 한다면서 이런 것도 몰라? 훗.... " " 하..하... 나하고 분야가 다른 걸.... 그럴 줄 알았으면 여행 관련 프로그램 일도 할 걸 그랬네. " " 푸하... 그랬음 나도 오빠 덕분에 좋은 곳 많이 다녔을 텐데.... 아깝다. " " 크흐.... 알았어. 나중에 꼭 그런 프로그램에 자리 생기면 옮겨볼께. " 말하면서도 진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도전하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민희와 꼭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이 마음 한구석 자리를 잡았다. 산 위로 향하는 사람들을 쫓아서 올라가는데.... 생각 이상으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정상을 갔다가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을 지나가면서 살펴보는데.... 힘들어하는 표정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우태와 민희 또한..... 천천히 주변 풍경도 즐기며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산책하는 듯 노고단을 향해 올라갔다. 어제 갔던 강천산도 나름 즐거웠지만.... 지리산의 모습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하긴 산 자체 크기나 높이가 다른데 그 느낌이 같을 순 없었다. " 봄꽃 보러와도 좋았겠다. 아니.... 가을 단풍이 더 보기 좋았을까? " " 둘 다 좋은데? 산은 계절마다 날씨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하잖아.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언제 와도 보기 좋았을 거 같다. " " 훗... 그렇겠지? 바다도 좋지만 산은 산대로 좋은 거 같아. " " 그러게. 그래서 사람들도 바다하고 산으로 호불호가 나눠지는 거겠지. " " 웬 호불호? 둘 다 좋아하면 되지! 난 둘 다 좋아. " " 하하.. 나도. "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올라가다 보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예전엔 이곳에서 숙식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둘 다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앉아서 쉬면서 물 한잔 마시고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출발했다. 그간 왔던 길보다는 가파른 경사가 조금씩 숨을 차게 만들었다. 우태와 민희는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탁 트인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한 무리 보이는데.... 돌들이 한 무더기 높게 쌓여 있는 곳이 보였다. " 여기가 노고단인가 봐? " 천천히 걷던 민희가 어느새 우태를 이끌며 앞서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태도 걸음을 서두르며 쫓아갔다. 하지만 돌탑으로 향하기 전..... 매표소 같은 건물 앞에서 실랑이 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안 된다고??? " " 네. 미리 예약 안하시면 올라갈 수 없어요. " 척 봐도 산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분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인가 들어보니.... 매표소 같은 곳을 지나서 올라가야.... 진정한 노고단 봉우리를 올라갈 수 있는데....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되자.... 우태와 민희의 고개가 서로를 향하고 마주보았다. " 에? 예약까지 해야 하는 건 몰랐는데 어떡하지? 우리도... 노고단 정상에 못 올라가나 봐. " " 그러게? 예약 같은 것도 있나 보네? " 검색을 해보니 산림 보호를 위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 이론.... 여기까지 왔는데... 아쉽다..... " 어제에 이어서 노고단도 가보지 못하다니.... 민희가 섭섭한 모양이었다. 우태는 그녀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는 위로했다. " 다음에 예약하고 꼭 일출도 보자. 그땐.... 내가 운전해서 올께. " 그의 말에 민희가 환하게 웃었다. " 하하... 오빠 운전 배우게? " " 응. 운전 꼭 배워서 너 데리고 올게, 여기. " " 푸하하~~! 오빠 초보 운전일 텐데 여기까지 올 수 있겠어? 나 무서워서 안전벨트 꽉 잡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 " 크흐.... 그런 일 생기지 않게 연습 많이 하면 되지. 나... 자동차 운전하는 게임은 잘했어, 아주 어려서부터! " " 하하하하.... 뭐야.... 웃겨... 게임하고 실제는 완전 다른 걸. " " 훗... 뭐.... 해보면 알겠지. 암튼 믿어. 나 한번 한다고 하면 또 잘했잖아. " 우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폼을 잡자.... 민희는 킥킥 거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치발까지 하면 쓰담쓰담 하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웃겨서.... 우태도 피시식 웃고 말았다. " 알았어. 다음 꼭 기대할께! " 어찌 됐든 우태의 말 때문인지.... 민희의 얼굴에서 섭섭함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같이 풍경을 즐긴 뒤 다시 천천히 차가 있는 휴게소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더 짧게 걸린 듯 싶었다. 하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것이니.... 올라가는 것보다는 덜 힘들고 더 빨리 내려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노고단을 갔다 오는데 걸린 시간이 짧은 건 아니었다. 천천히 걸었다고는 해도 빠르게 내려온 시간이 무색하게도.... 거의 3시간 반 정도 넉넉하게 걸린 듯 싶었다.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내리 쬐는 햇살이 벌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 아무래도 통영 케이블카 타러 가는 건 힘들겠다, 그치? " 이미 노고단 고개에서.... 다음 가고 싶은 곳으로 통영에 대해 들었을 때 먼저 검색은 해봤는데.... 혹시나 야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확인해보는 우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야간 운행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운행 시간이 빨리 끝나서.... 지금 서둘러가도 마지막 케이블카를 탈 수 있을까 말까....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내비로 통영까지 가는 길을 재확인해보아도.... 퇴근시간에 맞물리며 제시간에 도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왜 이리.... 민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지.... 우태는 안타까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 우리가 지리산에 온 게.... 너무 늦었었나 봐. " 아침에 일어나면서 가졌던 미안함이 다시 고개를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민희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번 들썩이곤 툭.... 말을 던졌다. " 괜찮아, 뭐. 그럼 진주성 보러 가지, 뭐. 거기.... 야경이 진짜 예쁘데. " " 엉? 진주성? " " 응. 우리... 천천히 야경도 구경하고 거기서.... 오늘밤 자자. " " 그...럴까? " 순간.... 하마터면 서울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냐고.... 물을 뻔 했다. 우태야 아예 며칠 휴가를 받았지만 민희는 휴가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아니... 가정주부에게도.... 직장인 같은 휴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민희가 말하지 않는 이상 먼저 얘기하지 않도록....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그녀의 남편이 나중에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그건 우태 혼자서 다 감당할 작정이었다. 또.... 선을 넘는 일은 하지도 않았으니.... 찾아온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었다. 도덕적인 비난은 그렇다고 해도.... 법적인 책임은 질 것도 없었으니까. 물론.... 민희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든.... 그 몫도 자신이 짊어질 작정이었다. 그렇게 진주를 향해 출발했다. 지도상으로는.... 통영에 비해 분명 가까운 거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리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예상대로 퇴근시간이 겹쳐지면서.... 길에 차량도 많아지고 어두워지면서.... 가는 동안 저녁 시간이 되어 버렸다. " 우리 먼저 저녁이라도 먹을까? " 민희의 말에 우태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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