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두 여자의 기쁨
23편. 두 여자의 기쁨
“진짜 김희원 번호 맞아. 그리고 걔 이름도 바꿨더라?”
“번호 뭐냐고.”
이사라가 코웃음 쳤다.
“너는 김희원... 아니지. 이제 김나희라고 해야겠네. 태영이 너는 김나희한테만 너어무 쉬운 남자야.”
“대체 그 년이 뭐라고.”
“나 솔직히 네가 바로 번호 알려달라고 말해서 좀 실망했어. 유태영 너 그런 남자 아니잖아. 왜 헤어진 지도 오래된 그년한테 아직도 그렇게 목숨 거는 거야?”
목숨 건다는 말은 너무 과장이었다.
이유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김희원한테 쉬운 남자인 건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다.
“어떻게 그렇게 바로 알려달라고 해? 너 내가 번호 알려주면 바로 연락해서 바로 만나자고 할 거지? 진짜 뻔해.”
담배 하나를 새로 물었다. 이사라는 이 와중에도 나한테 불을 붙여줬다.
내가 김희원한테 쉬운 남자면 이사라는 나한테 좆나 쉬운 여자다.
그리고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김희원에게 연락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알려 줄 거야, 말 거야?”
이사라가 내 자지를 문질렀다.
“그런 걸레 년한테 질투하게 만드는 네가 너무 미운데 네 자지는 너무 좋아. 아까 하는데 너무 좋아서 네 자지를 위해서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사라는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데도 담배 피는 내 얼굴 가까이에 제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나 기특하지 태영아?”
“알려주면.”
“내 보지가 맛있어, 김나희 보지가 맛있어?”
“좆나 유치하네.”
“응. 나 유치한 거 맞으니까 말해 봐.”
“네 거.”
고민도 없이 바로 나온 무심한 대답이었는데도 단순한 이사라는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진짜 이유 딱 하나만 알려주면 안 돼?”
“무슨 이유.”
“걔를 네 여자친구로 인정했던 이유.”
“너 김희원 좋아하냐?”
이사라가 바로 표독스럽게 나를 째려봤다.
“아, 씨발. 그딴 걸레 년을 내가 왜 좋아해!”
“근데 왜 그렇게 김희원한테 집착해.”
“몇 번을 말해! 네가 그 년이랑 사귄 이유가 궁금하다니까!”
“사귀었다고 해서 너랑 크게 다를 것도 없었어.”
“그러니까! 다를 것도 없는데 왜 걔는 네 여자친구로 인정 한 건데?!”
별것도 아닌 이유였다. 하지만 이사라에게 말하기는 조금 그랬다.
이사라가 계속 나를 노려봤다. 어차피 알려줄 거면서 이렇게 유치하게 굴면서 힘 빼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가 내 고집을 못 이기듯, 이사라도 결국 나한테 매번 져준다.
“번호 알려줄게. 대신에 조건이 있어.”
역시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면 그냥 대충 들어주자 싶었다.
어떻게든 김희원 번호를 알아내려고 하면 알아낼 수야 있겠지만 손쉽게 얻을 방법이 눈앞에 생기니 굳이 그래야 하나 싶다.
게다가 김희원 번호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직도 김희원한테 미련 있냐, 걔 술집 나간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던 터라 다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뭔데.”
이사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만약에 김희원, 그러니까 김나희가 너한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면 나랑 사귄다고 해.”
정말 너무 유치하고 한심해서 진심으로 크게 웃어버렸다. 하지만 이사라는 굉장히 진지했다.
“사라야.”
“그거면 돼. 대신에 김나희가 진짜 믿을 수 있게 거짓말 잘 해야 해. 걔 눈치 빠르잖아.”
내가 단지 김희원과 사귀었다는 이유로 이사라가 아직도 이렇게 김희원한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진짜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나? 그러면 이사라는 정말 미친년이 맞다. 우리가 못 볼 꼴 다 보면서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5년이다.
김희원이 내 여자친구였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김희원과 내 사이의 관계가 이사라와 내 사이의 관계랑 크게 달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김희원과 사귀면서도 나는 다른 여자들이랑 맨날 섹스하고 다녔으니까.
유일한 차이는 다른 사람들이 이사라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면 친구라고 대답하고,
김희원이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면 여자친구라고 대답한 것밖에 없었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김희원에게 잘해주긴 했었다.
이사라에게 하는 말투나 행동보다 조금 더 다정하고 덜 거칠었던 건 맞다.
그게 그렇게까지 서운해서 아직도 이러나?
“어려운 거 아니잖아.”
“그게 네가 원하는 전부야?”
“응.”
어이없긴 했지만 어려운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오히려 이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지 않아 내심 안도했다.
“알았어.”
“진짜지? 대신에 김나희 그년이 진짜 믿게 거짓말 잘 해야 해. 응?”
“알았다고.”
“약속했다?”
“나 너랑 한 약속 잘 지키잖아.”
“맞아. 세 번 박아준다고 하면 꼭 세 번씩 해줬어 너는.”
이사라가 내 목을 세게 끌어안더니 징그럽게 볼에 뽀뽀를 해댔다.
“아, 씨발. 하지 마.”
얼굴을 밀치는데도 이사라는 그렇게 좋은지, 내 볼에 지 볼을 비비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좋냐?”
“응. 좆나 좋아. 좆나, 좆나, 좆나 좋아! 좆나 좋다고! 태영아, 진짜로 김나희가 속을 수 있게 해줘야 해. 응?”
“어.”
이까짓 게 대체 뭐라고 이사라는 정말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참 만족시키기 쉬운 여자다.
만약 김희원을 만나게 되면 이사라를 위해 정말 그럴듯하게 보이게 연기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태영아 내가 자지 빨아줄게.”
“그래라.”
“입에다 좆물 좆나 많이 싸줘. 다 먹을래.”
이사라가 밑으로 내려가 자지를 한입에 삼켰다.
좀 빨더니 혀가 회음부로 내려갔다.
신음소리를 내며 이사라의 이름을 부르자 아예 얼굴을 처박고 열심히 핥았다.
사귄다고 거짓말해달라는 조건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사라랑 사귄다고 했을 때 김희원의 반응이 궁금해지긴 했다.
김희원 역시 이사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본인이랑 사귀면서도 내가 이사라랑 계속 섹스하는 것을 영 못 마땅해했다.
그렇다고 그거에 대해 뭐라고 한다던가, 지나치게 신경 썼던 거 같지는 않다.
혹은 내가 눈치채지 못 챘을 수도 있다.
물론 김희원은 나도, 이사라도 다 잊고 사귀든지 말든지 이제 아무런 감정도 없을 수 있겠지만...
그런데 왠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
나를 어색해하며 피하는 엄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음식 하는 엄마 곁에서 얼쩡거리는 데도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저렇게 냉랭하면 나도 말 걸거나 장난칠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두루치기를 만들고 있으니까 용기를 냈다.
“맛있겠다.”
“이따 점심에 먹어. 햄버거 같은 거 시켜먹지 말고.”
“응. 나 엄마한테 줄 거 있는데.”
엄마가 슬쩍 나를 쳐다보며 '뭔데?' 하고 물었다.
“그거 다 만들고 나서 줄게.”
계속 엄마 옆에 있기 무안해서 방으로 왔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선물을 보자 포장을 할 걸 그랬나 잠시 후회됐다.
음식을 다 만든 엄마가 방으로 향하는 걸 확인하고 나도 얼른 따라서 들어갔다.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하는 엄마한테 선물을 내밀었다.
“뭐야 이게?”
“머리에 뿌리는 거.”
“머리에?”
“응. 저번에 머리카락 촉촉해지라고 뭐 뿌린다며. 그거 샀어.”
엄마가 선물을 받아들고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내내 굳어있던 표정이 이제야 조금 풀리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비싼 거 아냐?”
“안 비싸.”
“이런 거 사지 말고 돈 모으라니까...”
“그래도 일해서 처음으로 돈 번 건데 치킨만 사주기는 싫었어.”
“진짜 안 비싸? 태영아, 힘들게 일해서 번 거 막 쓰지 마. 응?”
“아니야, 쫌. 한번 써봐.”
아예 안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엄마를 위해서 이 정도는 쓸수 있다.
엄마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나랑 선물만 번갈아 봤다.
“뭐해, 엄마. 한 번 써보라니까.”
엄마는 머뭇거리다가 머리에 대고 헤어 미스튼지 뭔지 하는 걸 칙칙 뿌렸다.
향긋한 꽃 냄새가 확 퍼지자 엄마가 활짝 웃었다. 엄마가 마치 저 향이 나는 꽃 같았다.
“향 너무 좋다. 어떻게 이렇게 잘 골랐어?”
“마음에 들어?”
“응. 너무 마음에 들어.”
“다행이네.”
내가 고른 건 아니고 이사라가 골라준 거였다.
엄마 선물이라고 하는데도 이사라는 절대 안 믿으면서 김희원한테 주려는 거 아니냐고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근데 엄마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이사라한테 도움받기를 잘 했다 싶었다.
“엄마가 진짜 좋아하는 향이야.”
기쁜 얼굴을 한 엄마가 대견하다는 듯 나를 봤다.
나도 마음이 엄청 뿌듯해졌다.
엄마가 계속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따라서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져봤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냥 평범했다.
“어때? 부드러워졌지?”
“응.”
기분이 좋은지 계속 방긋방긋 웃는 엄마가 38살 여자가 아니라 꼭 소녀 같아서, 순간 내 또래의 여자처럼 느껴졌다.
“고마워 태영아. 진짜 마음에 들어. 아껴서 잘 쓸게.”
“아끼지 말고 써. 다 쓰면 또 사줄게.”
엄마는 이번에는 돈 아끼라는 잔소리 대신 내 허리를 토닥여줬다.
이왕이면 한 번 안아주지...
“퇴근하고 장 볼 건데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랜만에 꽃게탕 해줄까?”
“장 보러 가? 나랑 같이 가.”
“같이?”
“응.”
엄마는 마지막으로 머리를 한 번 더 매만지고 일어섰다.
움직일 때마다 엄마한테서 꽃향기가 났다.
현관으로 향하는 엄마를 따라갔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운전해서 엄마를 학원까지 바래다주고 싶었다.
“퇴근 시간 맞춰서 내가 학원 앞으로 갈게. 마트 같이 가.”
엄마가 나를 잠시 바라봤다. 아무래도 백화점에서의 일 때문에 망설여지나 보다.
“집에서 그냥 쉬지...”
“같이 가자니까.”
“알았어. 그러면 연락 줄게. 학원으로 와.”
“응.”
꼭 데이트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퇴근하고 박서현의 집으로 곧장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외박이 잦아졌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엄마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데, 이러다 섹스는커녕 사이가 멀어질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일을 쉬는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웬만하면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엄마를 배웅해주고 다시 엄마 방으로 와 침대에 누웠다. 손가락 끝에 꽃향기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있다.
설레는 마음 한켠에 김희원 생각이 계속 났다. 과연 연락한다고 해서 받아줄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잠수를 탄건 앞으로는 엮이지 않겠다는, 나름의 확고한 의지였을 테니까.
기대되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으로 김희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내 번호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김희원은 아마 내 번호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루한 연결음이 한참 이어지다가...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
곧바로 이어서 두 번 더 해봤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우리는 사이도 좋았고, 섹스도 괜찮았다.
뭔지는 모르겠고 이해도 안 가지만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고 잠수탄 김희원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신할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는 건 김희원이 나를 싫어하진 않을 거라는 점이다.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해도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김희원도 나를 잊지 못 했을 것이다.
결국 못 이기는 척 연락을 받을 거고, 만나자고 하면 또 싫은 척해도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받지 않는 연락 대신 문자를 남겨두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말주변이 없는 게 아쉽다.
내가 여자를 잘 꼬시는 이유는 자신감, 좋은 몸, 자지 덕이다.
만약에 오로지 입 터는 것으로만 여자를 꼬셔야 했다면 나는 모태솔로 아다였을지도 모른다.
‘김희원. 잘 지내냐?’
한참 고민하다 딱 이 한마디를 보냈다.
나는 지금 김희원이 무척 필요한데, 계속 연락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