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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season2. 13. 집행부(2)


season 2 13. 집행부(2) 기찬은 다급해 보이는 혜수를 따라 학생회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자연히 의아함도 일었다. ‘오늘 첫 집행부 회의인데, 왜 선배들이 날 찾아?’ 아니 그보다, 애한테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사색이 돼 건물 밖에 나와서까지 자신을 기다린 건지가 더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그 잠깐의 시간에 여러 가지가 떠올랐고, 그중 ‘빠진 94학번’의 기강을 잡으려는 선배들의 의도가 가장 그럴 듯 했다. 기찬은 불길한 마음 뒤로 어떤 상황이든 세게 나가야겠다는 각오를 세기고 문을 열었다. 덜컥. 역시나, 예상대로 선배 다섯 명이 기찬이 소집한 몇 명의 동기들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기가 차고 화가 났지만, 일단 진정하고 깍듯하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인사와 동시에 선배들이 우르르 기찬에게 몰려들었다. ‘응? 뭐야, 다짜고짜 육탄전이야?’ 이유도 모른 채 주먹을 낼 수는 없고,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기찬도 살짝 당황했다. 그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근접한 인상 궂은 선배가 기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 방심했다!’ 민첩성이 유독 뛰어난 기찬이었지만, 어찌 해볼 틈도 없이 손을 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몸을 뒤로 슬쩍 빼며 들어올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야, 성기찬! 너 어제 혜수랑 같이 제이하고, 아니, 재영이하고 밥 먹었다며!” “… 네?” 기찬은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대답부터 하고 혜수를 돌아봤다. “아니, 내가 말하려고 한 건 아니고….” 그녀는 기찬이 자신을 책망한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한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그사이 또 다른 선배가 기찬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끌며 말했다. “야, 아직 연락되는 거면, 우리도 한번 보자.” “밥까지는 안 바란다. 어떻게, 커피라도 한 잔….” 정말 뜬금없고 황당한 상황에 기찬은 눈만 끔뻑였다. 그때, 뒤에서 굵고 거친 상남자의 목소리가 소란을 잠재웠다. “전부 조용히 해.” 묵직한 그 한마디에 한바탕 소란스럽던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돌아본 곳에는 웬 덩어리가 하나 떡하니 서 있었다. 기찬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산만한 중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봤다. ‘아, 정민수.’ 그는 학생회 부회장으로, 현재 3학년 선배였다. 기찬보다 한 학년 위지만, 그는 5수 끝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 나이는 한참 형님 벌이었다. 게다가 군대까지 갔다 온 탓에 남자고 여자고, 모두 그를 어려워했다. ‘가만있어 보자….’ 기찬은 그에 대해 조금 더 정보를 찾아봤다. 그러다가 금방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 최창섭 선배랑 친구 사이야?’ 저 덩치가 독사라는 별명을 가진 조교 선배와, 그러니까 미래의 서울대학병원 원장이 되는 그 최창섭과 친구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었다. 전생의 기록을 조금 더 뒤져보던 기찬은 깜짝 놀랐다. 둘은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닌, 평생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왜 직관적인 정보가 없나 했더니, 해외에서 활동했구나.’ 정민수는 시카고 대학병원 응급 센터의 소장을 역임하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기찬이 그와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아니,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좀 보자.’ 기찬은 학생회실에 들어오며 생각했던 대응의 수위와 방향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정민수는 수선을 피우던 다른 선배들을 질책했다. “선배라는 새끼들이 후배한테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아니, 형, 그게 아니라….” “어차피 제이, 아니, 재영이 얘기하려고 온 거니까….” 그의 나무람에 다들 확 쪼그라들어서 눈치를 보며 우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기찬은 작게 감탄했다. ‘카리스마 쩌는데.’ 정민수가 단지 나이가 많다거나 거칠어서 다들 그에게 고분고분한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외모도 그렇지만, 성격이나 성향이 독사 최창섭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공사 구분 못 해? 학교 선배입네 하면서 사인이나 받자고 재영이 보자는 거였어?!” 가만 보니,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었다. 원래 울림통이 큰 사내다. 가뜩이나 이목구비가 진해 우락부락한 인상인 데다가 체구도 크고 목소리 톤도 낮아 상대방이 느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기찬이 정민수를 관찰하는 동안에 그는 무게감 있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기찬에게 시선을 옮기며 조금 전 제 동기들에게 하던 것과 다르게 한결 차분해진 말투로 물었다. “네가 2학년 과대냐?” “네, 선배님. 성기찬입니다.” 그는 잠깐 기찬의 눈을 빤히 보다가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수선 피워서 미안하다.” 그러고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너, 재영이랑 아직 연락된다며? 부탁 하나만 하자.” 용건은 간단했다. 학생회에서 이번 학교 축제 때 가수를 섭외하려고 하는데, 재영이는 어떻게 된 게 아무리 수소문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사적인 채널을 통해서라도 섭외 요청을 해보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되겠냐?” 설명을 다 듣고 난 기찬은 즉답하지 않고 짧게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러고 보니, 회의실에 찾아온 선배들은 전부 3학년 집행부였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손익 계산이 바로 나왔다. ‘바로 위 기수, 가장 까다로운 선배들이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관계에 기름칠할 좋은 기회야.’ 어차피 기찬 자신이 2학년 과대다. 하기로 한 이상, 인상 깊을 정도로 잘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살았는지가 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지표가 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어느 시점에 누군가는 반드시 나를 기억한다. 내가 행한 일들, 말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박제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많은 공인과 연예인들이 미투나 학폭 등의 이유로 소멸하게 된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성공을 무너뜨리는 좋은 본보기였다. 계획상 앞으로 유명세가 필요한 기찬으로서는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 명심하고 주의해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그건 전생자로서의 깨달음 같은 것으로, 환생하면서부터 다졌던 각오였다. 다시 주어진 삶. 단 1분도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매 순간 치열하게 계산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성기찬의 진면목을, 그리고 2학년 과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면 되는 거겠지.’ 기찬은 이 기회를 살려 개인의 능력과 과대로서의 역량을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생각이었다. “이거….” 그는 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선배들에게 명함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그러면서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재영이 소속사 이사에요. 그런 문제라면 저 통해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얼떨결에 명함을 받아 든 선배들은 기찬의 행동과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응? 뭐?” “……?” “이사? 무슨 이사?” 내내 바위처럼 묵직하던 정민수도 놀라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찬이 준 명함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부리부리한 눈을 끔뻑이며 기찬을 바라봤다. “이거, 진짜냐?” “네. 사실입니다. 거기 회사 번호로 전화해 보시면, 사실 여부 금방 확인할 수 있어요.” 기찬은 여유롭게 대화의 주도권을 당겨왔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학교 축제 시즌이 가수, MC, 개그맨 할 것 없이 완전 성수기라….” 연락이 되고, 소속사 이사로서 영향력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가수 본인의 스케줄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다분히 정민수의 반응과 대응을 떠보기 위한 수였다. ‘과연, 어떻게 나올지….’ 그래도 학생회 운영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어선지, 정민수의 대응이 빨랐다. “그래. 알지. 어쨌거나 그런 부분은 조율해 볼 수 있는 거니까.” 태도며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진 그는 오히려 반색하며 기찬에게 다가와 섰다. 그러고는 마치 친한 사이인 것처럼 기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연락 자체가 안 되는 게 문제였는데, 그래도 다행히 네가 그 회사 이사라니….” 말을 마무리 짓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담고 있었다. 기찬은 즉답하는 대신 잠깐 뜸을 들였다. 해줄 수 있더라도 애를 태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한테는 뭘 해줄 건데?’ 기찬은 정민수의 눈을 가만 응시하며 마음을 읽어 주기를 바랐다. 그 정도 센스는 있으리라 기대하며 줄다리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다행히, 정민수는 기찬의 기대를 충족했다. “연락만 닿게 해줘.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진행할게. 그렇게만 해주면, 내 직권으로 3학년 개강 파티 장소, 2학년한테 양보한다.” 그는 후배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선배랍시고 공으로 얻으려 하거나 위계로 빼앗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정민수는 선배 대접 받을 자격을 증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기찬에게 제시한 대가는 기찬 개인을 위한 사적 이익이 아니었다. 그건 기찬을 2학년 대표로 인정하는 의미였고, 그 입지를 다지는 일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찬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마도 정민수는 기찬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의 수준을 떠 보고 시험해 보는 것 같았다. ‘제법이네.’ 최창섭이나 박혜수는 포섭 계획에 있던 사람들인 것에 반해, 정민수는 예정에 없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기찬의 마음에 들었다. ‘이거, 선입견 버리고 천천히 살펴봐야겠는 걸.’ 기찬의 계획상 의학계, 또는 의료계에 자신의 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난 그 제안을 담보로 당신 마음을 조금 사겠어.’ 기찬은 예정에 없던 인재 영입을 위해 빠르게 전략을 수정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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