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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화 398화


페레니케 398화 이윽고 안테헤 강가에 이른 그들이 강가를 따라 난 긴 길을 질주했다. 당연하게도, 그늘 없는 뜨거운 해 아래 한 번의 긴 질주로 말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물가로 내려가 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그들도 강물에 얼굴과 팔을 씻었다. 커다란 은백양 나무들과 작은 오리 나무들이 강물을 내려다보며 늘어선 그늘 아래 소년들이 말들을 매어두었다. 하르모니아는 그들 뒤에 얌전히 서서 왕자들이 저를 챙겨주기를 기다렸다. 그것은 조랑말이 왕자들을 바실리오스의 하인 취급하는 데 지나지 않았지만, 왕자들은 마치 순서를 알고 기다리는 듯한 하르모니아의 의연하고 고고한 표정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똑똑하다. 공주 같다. 아탈란테가 곧잘 제 주인을 붙잡고 재수없다 흉을 보는 표정이 조랑말의 얼굴에 떠올랐다. “네 주인보다 나아, 하르모니아. 참을성이 좋구나.” “……제 주인과 똑같은 것 같은데.” 데우칼리온이 금세 강으로 다시 내려가버린 페레니케를 보며 다른 의미로 평했다. 왕자들에게 하르모니아의 시중을 들게 한 것이 누구겠는가? 이 하얀 조랑말은 시중 받기 좋아하는 고고한 주인을 닮은 것이다. “네 주인과 똑같이 훌륭해. 하르모니아.” 데우칼리온이 조랑말의 목을 톡톡 두드리며 칭찬하고는 물가로 내려갔다. 페레니케는 이미 물속에 반쯤 잠긴 채 서 있었다. “더 앞으로는 들어가지 마. 위험해.” “칼, 이리 와 봐.” “수상한데.” 그래도 싫다고는 하지 않고 데우칼리온이 강물을 가르며 그녀에게로 갔다. 가까이 들어가 보니 페레니케가 강물 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억류하고 있었다. 데우칼리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칼. 나 진짜 힘 세.” 그녀가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 빨라.” 그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감격한 표정이었다. 맨손으로 강물 속에서 물고기를 잡다니. “나는 이제 작살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어.” “원래 작살이 없어도 먹고 살잖아.” “그건 아버지의 노예들이 먹여 준 거고. 칼, 이제 날 세상 어디에 던져놔도 돼. 아무 데나.” “니케. 내가 널 세상 아무 데나 던져놓을 일은 없어……. 하지만 대단해. 어떻게 잡았어? 알테아를 썼어?” “이건 인간이 아니잖아. 그런 비겁한 짓은 안 했어.” 인간한테는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데우칼리온은 몹시 감명 받은 듯 물속에서 파닥거리는 불운한 물고기를 내려다보고는 물가에서 고상하게 손을 씻고 있는 형제를 불렀다. “악터, 이리 와. 여기 대단한 게 있어.” “옷이 젖잖아.” “우리는 이미 젖었잖아.” “나까지 젖을 필요는….” “빨리.” 형제의 재촉에 한숨을 쉰 악토르가 마지못해 강물에 발을 담갔다. 강물에 들어서기 전에는 옷자락이 젖을까 싫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뜨거운 몸을 식히는 시원한 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저 애들이 밀어붙이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대체로 이런 기분이었다. 언제나 승리보다는 패배가 행복했다. 햇살에 눈을 찡그린 소년의 얼굴에 은근슬쩍 떠오른 미소가 아이답지 못했던 음울한 흔적을 모두 몰아냈다. “악터. 이것 봐.”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봐요, 오라버니.” 페레니케가 강물 속에서 불쑥 메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와…….” 감탄과 비명을 겸한 소리였다. 고상한 왕자가 뒤로 물러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에서나 봤던 작은 메기가 펄떡거리며 페레니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것은 메기치고는 작지만, 그녀의 팔뚝만큼은 컸다. 페레니케가 적의 숨통을 조르는 전사처럼 발딱거리는 물고기의 몸통을 틀어쥐고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어디 가요?” “대체 그걸 왜 잡은 거야?” “……? 잡을 수 있으니까요.” 페레니케와 악토르의 눈에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이었다. 그 가운데 데우칼리온이 싱그럽게 웃으며 밝은 해 아래에서 메기를 관찰했다. “이제 니케가 우릴 먹여 살릴 거야. 악터. 우리가 세상 어디를 가든.” “……우리 어디 가?” 악토르가 불안하게 되물었다. 페레니케가 선을 그었다. “하지만 불신자에게는 메기 고기가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전하는 배가 고플 때마다 이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겠죠.” “그럴 일은……. 페레니케. 설마 왕궁까지 그대로 들고 갈 건 아니겠지? 그러다 죽을 텐데.” “죽는 게 왜요? 죽어야 먹죠.” “…….” 그렇기는 했다. “악시오테아 님이 드실 거예요.” 페레니케가 선언하는 찰나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아귀 안에서 펄떡거리던 메기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하필 그 방향이 악토르였다. 메기가 제 몸통으로 떨어지기 전에, 무뚝뚝한 얼굴 그대로 희게 질린 악토르가 물속으로 주저앉았다. 물속에서 질끈 감은 왕자의 눈앞으로 풍덩 빠진 메기가 유유히 도주했다. 가늘게 눈을 뜨자 빛이 산란하는 수면으로 드리운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악토르가 그것을 꿈처럼 바라보는 찰나, 물속으로 불쑥 두 손이 들어와 그의 팔을 양쪽에서 잡아당겼다. “바보같이.” 물에서 일으켜진 악토르는 제 양 팔을 하나씩 잡은 형제와 여자아이를 번갈아 보고는 문득 몹시 아이다운 충동을 느꼈다. 그것과 동시였다. 소년의 손이 그들의 팔을 역으로 잡아 물에 빠트렸다. 방심하고 있던 페레니케는 그대로 물속에 빠졌지만, 데우칼리온은 반사적으로 힘을 준 탓에 악토르를 같이 끌고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세 아이 모두 물에 빠졌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소년들이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켰다. 평복을 입고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악시오테아의 위병들이 끝내 참지 못하고 그들을 건지러 올 때까지. 스스로에게서 구조된 아이들이 말 위에 올라 얌전히 왕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여름날 해가 젖은 몸을 금방 따뜻하게 데웠다.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젊은 조랑말들이 한가롭게 비좁은 언덕길을 내려갈 적에, 하르모니아가 돌부리를 잘못 밟고 페레니케를 비탈길에 툭 떨어트리며 그날의 평화는 산산조각났다. “니케!” 아연실색한 형제가 동시에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페레니케가 비탈길을 얼마간 굴러 내려갔기 때문에 그들은 땅 위에서도 달려야 했다. 페레니케의 몸이 스스로 구르기를 멈추고 데우칼리온이 먼저 그녀를 붙잡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이윽고 그들을 따라잡은 악토르의 표정도 이상해졌다. “……바실리오스가 미친 걸까?” 숨도 못 쉬고 달려온 목격자들과 달리 페레니케는 하늘을 보며 웃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네.” 소녀는 담담하게 선언하고 데우칼리온이 받쳐 올린 몸을 반듯하게 세웠다. “폐하께서 낙마하셨어.” “…….” 대뜸 튀어나온 저주 어린 확신에 악토르의 눈이 정말로 미친 것을 보듯 가늘어졌다가, 페레니케 너머로 데우칼리온을 보았다. 저와 같을 줄 알았던 형제의 눈이 모호했다. “니케, 다친 곳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이미 그녀의 다리와 발에 난 생채기를 살피던 데우칼리온의 시선이 그녀의 팔로 올라왔다. 그가 물었다. “너, 왼팔이 이상한데.” “응. 구르다가 부러졌어.” 페레니케가 덤덤하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 기세에 악토르가 흠칫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왕궁으로 돌아가자.” “니케. 넌 바로 제사장에게 가야 해.” “스물일곱 번째가 어디에 있을 거 같아?” “너희 집이나, 헬리오도스 가에 있겠지.” “지금은 물론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집에 도착하면 그는 왕궁으로 가고 없을걸.” “무슨.” “네 부왕께서 낙마하셨다니까.” 페레니케가 생글거리며 하르모니아에 올라타려는 것을 데우칼리온이 기겁하며 막고는, 제 힘으로 그녀를 받쳐 하르모니아 위에 오르게 하고 그 뒤에 올라탔다. “아, 그 아까운 걸 구경했어야 했는데.” 제 팔 안에서 재잘거리는 약혼녀의 뒤통수를 보며 어른처럼 한숨 쉰 데우칼리온이 악토르를 흘끗 보았다. 악토르는 한 손으로 기수가 없는 카드모스를 끌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미친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제사장이 왕궁으로 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따라 그들이 결국 궁정에 돌아왔다. 물론 데우칼리온이 만일을 대비해 위병 중 하나를 바실리오스 가로 보내어 제사장을 왕비의 처소로 부르게 했으니 어느 쪽이든 그녀의 말대로는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왕이 낙마했다는 소문이 왕궁 문지기에게까지 닿아 있었다. “불신자.” 페레니케가 악토르를 돌아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어린 불신자의 눈과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이제 그녀는 그에게 예언자였다. 부왕의 발목이 부러졌다고 저들끼리 떠드는 시종의 말이 왕자들의 귀를 어지럽히고 멀어졌다. 데우칼리온이 조용히 물었다. “니케. 어떻게 한 거야?” “에우다이모니아. 선한 다이몬과 약속했어. 널 행복하게 해 주려고.”* * eudaimonia, 고대 그리스어로 행복을 의미하며, 행복은 선한 수호신(daimon)을 만나는 것. 소년이 황당한 듯 실소했다. “부왕께서 다치시면 내가 행복해?” “사실은 날 행복하게 하려고 했지. 내가 행복하면 너도 행복하잖아. 칼.” 그 말은 옳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의 선한 다이몬이었으므로. 데우칼리온이 소녀의 웃는 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해사한 살갗에 몰래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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