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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화


2화 하지만 도련님은 왕비 소생도, 장자도 아니었다. 왕관은 하나고 권력은 경쟁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마엘 도련님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자작 부인의 여식을 한 번 가르쳐 본 경력이 다인 내가 그 자리를 맡게 된 것이었다. '혹 국왕 폐하가 서거하시고 나면 나도 위험해지는 게 아닐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마엘 도련님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돈도 돈이었지만 왕궁에서 친구 한 명 없이 겉도는 도련님이 안쓰러워졌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왕궁의 하녀조차도 그분과 말을 섞는 것을 꺼렸다. 왕비 전하를 지지하는 귀족 무리들은 마엘 도련님과 마주치면 큰 소리로 ‘저기 봐라! 비곗덩어리의 자식이 간다!'라며 방타두르 공작 부인과 도련님을 동시에 모욕하는 말을 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비곗덩어리의 자식?' 비곗덩어리란 단어가 풍만한 몸집의 공작 부인을 지칭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벼락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게 사람에게 할 말인가? 그것도 국왕 폐하의 애인에게? 국왕 폐하는 이 일을 알고 계신 것일까?' 하지만 마엘 도련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미 그런 모욕은 너무도 많이 들어 적응되었다는 듯이. 그리고 나는 곧 내게는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이 모든 일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엘 도련님의 가정 교사가 된 지도 2년이 넘어가던 해, 도련님의 공부방에 왕정 체제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알려진 한 계몽 사상가의 저서가 있다는 익명의 고발장이 왕궁을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 그만한 책을 알 만한 지식인인 동시에 책을 공부방에 반입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마엘 도련님의 사상을 더럽히려 했던 범죄자로 바로 내가 지목되었다. 나는 갑자기 방으로 들이닥친 경비병들에 의해 끌려가 지하 감옥에 갇히고 난 뒤 한참 후에야 내 죄목과 사건을 알게 되었다. “저는 그 책을 읽어 본 적도 없습니다! 그 책의 제목도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그 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호소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감옥에 갇힌 나는 며칠 후 약식 재판을 받게 되었고, 내게 내려진 벌은 유배형이었다. “죄인인 잔느 드 툴루즈가 불온 분자와 결탁하여 마엘 공자의 사상을 더럽히려 한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함이 마땅하나, 툴루즈 가문이 오랜 기간 동안 왕실에 충성해 온 점을 참작하여 죄인을 스카디 공작령으로 유배하도록 한다.” 재판관의 말에 나는 정신이 얼얼할 뿐이었다. '유배라니? 내가? 그것도 스카디 공작령으로?' 그러나 돌이키지도 못하고 바꿀 수도 없는 내 유형지는 야만족이 사는 땅, 삭풍이 불어오는 스카디 공작령이었다.     스카디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나는 뼛속까지 얼어붙었다. 스카디 공작령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곳은 몇백 년 전 바다 너머 얼어붙은 땅의 야만족들이 배를 타고 이 땅으로 건너와 수도의 턱 끝까지 침략했을 때, 그들의 목적이 단순한 약탈이 아니라 그들이 살 수 있을 만한 따뜻한 땅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아낸 선대 국왕 폐하께서 내려 주신 봉토였다. 야만족을 야만족으로 다스린다, 즉 그렇게 해서 차라리 그들의 힘을 빠르게 인정하고 신하로 삼아 이후 내려오는 야만족을 물리치고자 했던 것이다. 폐하는 그들 중 가장 강한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백작 작위와 함께 북부 일대의 험지를 영지로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이후 다수의 야만인들이 그곳에 정착하여 영지를 개간 및 확장하였다. 그리고 이 대에 이르러 우두머리 가문의 후손들은 다수의 전쟁에서 야만족들로부터 나라를 지킨 공적을 인정받아 공작이 되었다. 북부는 이제 그 야만족들이 득실대는 하나의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풍문에 따르면 그곳 사람들은 이 땅에 정착하고 나서도 잔혹한 습성이 피에 흐르기라도 하는 듯 사라지지 않아, 적들을 일부러 생포하여 나무꼬챙이에 꿰어 놓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마치 사냥감을 산 채로 나뭇가지에 꿰어 고정해 놓는 때까치처럼. '나더러 그런 곳으로 가라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재판 후 형벌 집행은 즉시 진행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가족의 얼굴을 보길 원했으나 즉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유배 길을 인도하는 호송관은 내게 온정적인 사람이었다. “마엘 도련님께서 보내신 물건입니다.” 그는 내게 마엘 도련님의 편지와 작은 자루 등을 건넸다. 나는 편지부터 읽어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마엘 도련님은 편지에서 이 모든 것이 왕세자 세력이 자신을 왕실에서 축출하기 위한 모략이었다 설명했다. 그리고 나를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고, 언젠가 반드시 나를 다시 사면시키겠노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그 편지를 읽는 나는 한숨만 나왔다. '도련님께 그럴 힘이 어디 있단 말인가?' 돌아가는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방타두르 공작 부인과 도련님조차 총애를 잃고 실각할지 모른다. 그런 마당에 일개 가정 교사에게 쏟을 정신이나 있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편지를 접으며 나는 마지막이 될 풍광을 가능한 한 눈에 담으려 애썼다. “말에 오르십시오.” 호송관이 말했다. '스카디 공작령의 겨울은 눈이라는 것으로 덮여 있고 산 사람도 얼어붙을 만큼 춥다 던데⋯⋯.' 랑시스의 수도 프랑은 여름도 겨울도 기후가 온화해서 하얀 눈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이 유배지에 알맞지 않은 것은 분명했지만 옷을 갈아입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부끄럽게도 말도 잘 타지 못했다. 그러나 걷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나는 호송관이 마련한 말에 간신히 올라타곤 호송관의 말을 따라 달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 볼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는 땅으로. '허벅지가 너무 아파. 속도 울렁거려. 죽을 것 같아.' 양 허벅지가 금세 뜨거울 정도로 화끈해졌고, 말이 흔들릴 때마다 허리부터 머리까지 엄청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말 위에 탄 채로 먹은 것을 다 게워 내야 했다. 이후 내 상태를 알아챈 호송관이 내 말에 바짝 붙어 대신 말을 끌었지만, 그건 내 낙마를 간신히 막았을 뿐이었다. 북부의 스카디 공작령으로 향할수록 날씨도 굳어져 갔다. 마치 내 미래처럼. 말을 타고 북쪽으로 달릴수록 점점 바람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지더니 부슬비와 소나기가 번갈아 가며 하루에 예닐곱 번씩 온몸을 적셨다. 밤이 되면 허름한 여관에 묵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휴식이 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내 몸 깊은 곳에선 갈비뼈를 부러뜨릴 듯이 격렬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호송관은 내 낙마를 막기 위해 말에 내 몸을 묶어야 했다. 숙련된 기승자가 말을 몰았다면 넉넉잡아 사흘 정도면 유배지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영지에 발을 디딘 것은 보름을 훌쩍 넘겨서였고, 그때 나는 완전히 빈사 상태였다. “공작령에 도착했습니다.” 자욱한 안개가 온 세상을 휩싸 앞이 보이질 않았다. '여기가 내 유배지인가?' 나는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가물거리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앞으로 내가 살 곳이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내 감옥인가?' 하지만 내 앞날처럼,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마주한 것은 그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자욱한 연기, 구름을 가둔 하늘의 제방이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 듯 사방을 둘러싼 짙고 빽빽한 연기뿐이었다. 이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거라곤 호송관이 나를 다시 허름한 여관으로 데리고 갔고, 그곳의 널빤지 침대에서 내 온몸이 불타는 동시에 얼음처럼 차디차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는 것뿐이었다. 열에 들뜬 머릿속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구해 낼 테니 그동안 제발 희망을 잃지 말아 달라는 제자의 애원 섞인 편지글이 어른거리기도 했고, 내 유배 소식을 뒤늦게 듣고 충격을 받을 가족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했다. '나마저 이렇게 되다니, 충격을 받은 어머니께서 쇠약해지시면 어쩌지?' 아버지를 원망하던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전철을 나도 밟고 말았다. '당장의 돈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쳤구나.' 가문을 건 모험을 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뒤이어 완벽한 절망이 나를 휩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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