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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9화


9화 그러고 보니 처음에 음식을 먹다 토악질도 했었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웃을 수도 있으면서?' 그는 가정 교사의 어둑한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낮에 양녀와 놀고 있을 땐 밝은 미소를 짓고 있어 지금보다 훨씬 보기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미소 짓고 웃을 일이 있어야 웃는 것이다. 가정 교사의 표정을 어둡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눈앞에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발드르는 전혀 몰랐다. 그는 단지 그녀를 칭찬하러 여기 부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 그가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얹은 손으로 턱을 괸 채 한참 말이 없자 가정 교사의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듯이 굽어졌다. “어떻게 했소?” 발드르는 물었다. “예?” “내 양녀를 어떻게 가르쳤냔 말이오?” 칭찬하려 던진 물음인데 가정 교사는 사색이 되었다. “아나 아가씨께서 혹시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요?” “그게 아니라⋯⋯.” 가정 교사는 완벽히 상황을 오해하고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아이를 잘 가르쳤는지도 모르나? 그 모양 그 꼴인 걸 봐 놓고?' 발드르는 이 상황에 대해 좀 더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까지 세 명의 가정 교사가 아나를 거쳐 갔소. 가정 교사 중엔 아나더러 지적 장애가 있다거나 글을 읽을 수 없는 병에 걸렸다던 자도 있었지. 그런데 그대는 몇 달 만에 아나가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었더군. 물론 철자는 틀린 것이 많았지만 말이오.” “⋯⋯.” “게다가 역사도 가르쳤고. 그대는 내 기대를 한참 뛰어넘는 성과를 냈소. 어떻게 한 것이오?” 발드르는 몹시 그 방법이 알고 싶었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그리고 그게 그녀가 그 젊은 나이에 사생아라지만 왕자의 가정 교사가 된 비법일까? “저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질문에 곰곰이 뭔가를 곱씹는 표정을 짓던 가정 교사는 곧 구부정한 등을 곧게 폈다. “그저 아가씨의 친구가 되어 드렸을 뿐.” 그리고 처음으로 두려운 기색 없이 또박또박 말했다. “아가씨는 정말 많이 영특하십니다. 다만 그동안 많이 주눅이 들어 계셨지요. 외부인인 제가 말씀드리기 외람됩니다만 지금 이 저택에는 아가씨께 관심을 가져 주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아가씨는 많이 외로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가정 교사들은 아마도 그런 아가씨를 다그쳤겠지요, 단시간에 성과를 내려고.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공작 각하께서 원하시는 바셨으니까요.” 발드르는 그녀가 갑자기 달리 보였다. “그런데 공부란, 공작 각하께서도 해 보셨으니 아시겠으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쉬이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외롭고 슬픈 와중에 자신을 닦달하는 낯선 사람들이 시키는 것을 아가씨가 왜 하고 싶으시겠습니까? 아가씨는 슬픔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셨고 그런 아가씨를 전의 가정 교사들은 아마 보고 싶은 대로 보았겠지요.” 그 태도가 자못 당당하여 위엄마저 느껴졌던 것이다. “저는 아가씨와 공부를 하는 대신 아가씨를 알아 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제게 마음을 열어 주기를 기다렸지요. 시간은 좀 걸렸습니다만 아가씨께선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나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니까요. 마치 공기나 물처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녀의 가치관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으나 발드르는 일단 말없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열리자 자연히 제 수업을 따라오셨습니다. 제가 한 수업은 다른 가정 교사도 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녀의 그 생각이 양녀를 변화시켰고, 또 그 당당함이 그의 마음에 꽤 들었다.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이 무척 반짝인다고 그는 생각했다. '저렇게 등을 곧게 펴니 한결 낫군. 게다가 전에 보았던 비굴함도 없고, 훨씬 나아.' 갸름한 턱선, 녹색과 갈색이 섞인 빛나는 눈동자, 이제 보니 목도 길어 마치 늘씬한 사슴과 같았다. 태도와 자세를 바꾼 것만으로도 발드르는 확신이 섰다. '바로 이 여자야.' 눈앞의 이 여자라고.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라 했지?” “잔느 드 툴루즈입니다.” “잔느 드 툴루즈. 나는 그대를 내 양녀의 정식 가정 교사로 삼고 싶소.” 그 말에 가정 교사의 큰 눈이 더 크게 떠졌고, 입술도 살짝 벌어졌다. “저는 이미 가정 교사가 아닙니까?” “'임시'였지.”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임시요?” “그대가 맡은 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진지 공사를 시킬 생각이었소. 전에도 말 했다시피 일손이 부족한 곳이라서. 곡괭이 한 번 안 쥐어 본 여인의 손이라 해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그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잔느는 아직 겨울도 오지 않았는데 추운 것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럼 만약 아가씨께서⋯⋯.” “아나가 일찍 마음을 열어 다행이오. 그렇지 않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 딴엔 장난으로 한 소리였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인력을 왜 진지 공사하는 데 보내겠는가? 그것 말고도 시킬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은 데. 발드르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법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고양이에겐 장난인 것이 쥐에겐 사활이 걸린 공격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 그 말에 여자가 급격히 움츠러드는 것을 보고 발드르는 그의 말이 단순한 농담으로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이 생쥐만 한 것 같군.'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괘념치 마시오. 어쨌든 나는 그대를 높이 평가했소. 허투루 왕족의 가정 교사가 된 것이 아니군. 나는 그대가 내 양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작의 여식으로서 가져야 할 교육과 교양 전반, 품위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오. 그 대가로 매달 10두카트를 주겠소.” 두카트는 그의 공작령에서 발행되는 순도 높은 금화였다. 왕실 가정 교사로 봉사하고 받은 봉급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금화 열 개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평범한 가정 교사가 30년을 일하면 그 돈을 만져 볼 수 있을까? 그는 말하면서 눈앞의 가정 교사가 이 행운을 믿지 못하다, 그만 펄쩍 뛸 정도로 기뻐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 그러나 가정 교사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무척 오묘했다. 잔느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아름다운 이마를 찡그리며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갸웃갸웃하기만 했던 것이다. 하도 그 갸웃거림이 오래 이어지자 결국 짜증이 난 발드르가 물었다. “왜? 금액이 적소? 왕궁에서 받던 것보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많습니다! 더 많습니다!” 잔느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바보 같은 질문을 제발 용서하십시오. 제가 유배가 처음 인지라, 저를 신용하시고 제게 이토록 많은 봉급을 주시는 것은 기쁘기 한량없는 일이지만 제가 이 돈을 받는다 한들 어떻게 쓸 수 있습니까?” “뭐?” “그게, 저는 유배인이 아닙니까? 각하의 허락 없이는 이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그런데 이 돈을 무슨 수로 쓸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제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지라⋯⋯.” 가정 교사의 호소에 그는 팔짱을 꼈다. “저는 더군다나 그 큰돈을 보관할 능력도 없습니다, 각하. 돈은 많을수록 좋다 알려져 있으나 양날의 검처럼 다룰 수 없는 돈은 주인에게 불행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제가 봉급을 제 방에 보관할 때 일어날 수 있을 일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일리가⋯⋯ 있군.' 금화가 가정 교사의 방에 굴러다니고 있단 걸 알면 일어날 일들이라⋯⋯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유배범을, 그것도 정치범을 가정 교사로 들인 적은 처음이라 말이지.' 잠시 이 가정 교사의 특수한 위치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여자는 어쨌거나 정치범이었고 그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 통제되고 있었다. '그럴 리야 없겠으나'라는 가정은 언제나 위험하다. 앞선 편지에서 마엘 공자는 여자의 누명을 주장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정말 왕정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계몽 세력의 일원이라면?' 사람은 겉으로 봐선 모르는 법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사생아 출신의 왕자를 왕위에 올리려는 비밀 세력이 존재하고 여자는 그 세력의 일부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여자가 이곳에서 탈출해 세력에 합류한다⋯⋯는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설령 그렇다 해도 어렵게 구한 가정 교사를 뺏길 수는 없지.'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이 희귀한 고급 인력을 저택 밖으로 내돌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봉급을 주지 않고 다른 유배인에게 하듯 무급 노역으로 부릴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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