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37화
37화
속닥속닥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후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과 선생님의 발걸음을 번갈아 보면서 기초적인 발걸음을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 오늘이 첫 수업이긴 하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생님과 함께하니 더요! 선생님! 공작 각하께 이 수업을 추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수업이 끝난 후 아나는 재미있었는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지만 나는 허망할 뿐이었다.
'이걸 또 해야 한다고?'
내가 춤에 재능뿐만 아니라 흥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뜀걸음이나 승마는 체력 증진이라는 목적이라도 있지, 춤은 대체 왜⋯⋯?'
이것도 체력 증진이 목적이라면 그냥 그 시간에 승마를 하면 될 게 아닌가? 그리고 나는 평생 무도회장을 밟을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건 너무, 너무 쓸모없는 짓이야. 이럴 시간에 책이나 읽고 잠이나 더 자지.'
마음 같아선 공작님의 집무실 문을 두드린 뒤 다음 수업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개 가정 교사인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는 원하는 때 나를 불러서 대화할 권리가 있었지만, 고용인인 내게 주인을 방해할 권리는 없었다.
'다음 만찬 때가 되면 항의하자. 아무리 내가 죄인이라도 날 마음대로 교육시킬 권리는 없다고⋯⋯.'
그날 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수업에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공작님께서 나 또한 춤 수업에 참석시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미뉴에트의 기본 스텝을 몸에 익혔으니 이제 본격적인 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잔느 양은 남자 역할을, 아나 아가씨께서는 여자 역할을 맡아 진행하도록 하지요.”
그렇다. 미뉴에트를 포함한 모든 궁정 무용에는 두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자 역할을 할 사람 한 명, 여자 역할을 할 사람 한 명. 내가 춤 수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나의 파트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등을 똑바로 펴고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자, 시선은 정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호흡을 맞추세요, 박자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렇군, 이유를 알게 되자 화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춤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춤 스텝도 익숙해지자 춤을 추는 것이 첫 수업만큼 싫지는 않았다. 여전히 진도를 따라가는 데 급급하고 재미는 그다지 느낄 수 없었지만 말이다.
춤 수업이 끝난 뒤,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하녀 아이가 와 있었다.
“편지구나, 그렇지?”
내심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녀가 손에 든 것을 확인한 뒤 펄쩍 뛰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편지를 전해 준 데 대한 선물로 아이에게 동전을 쥐여 준 뒤,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
편지 봉투는 봉인이 뜯겨 누가 먼저 읽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가족들에게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줬다는 것이고, 또 그에 대한 답장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편지를 꺼냈다.
'세상에⋯⋯.'
읽기 전부터 눈물이 쏟아지려 해서 나는 급히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어 나갔다. 첫 장은 어머니가 쓴 편지였다. 어머니께서는 내 편지를 읽고 정말 기뻤 노라고, 이 모든 게 신의 도우심이 분명하다고, 우리는 잘 살고 있으니 자신과 동생 걱정은 하지 말고 거기서 번 돈은 모두 나를 위해 쓰라고 당부하셨다. 또한 가능한 한 희망을 잃지 말고, 무엇보다 건강에 유의하며 매일 기도하라 적어 놓으셨다.
'하지만 신께서 날 도우셨다면 애초에 유배당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불경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어머니께서 내 편지를 읽고 마음을 놓은 듯해 다행이었다. 편지의 다음 장부터는 동생의 성미 급한 필체가 보였다. 동생은 어머니의 편지에 쓰인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였다.
언니의 편지를 읽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
언니가 갑자기 유배당한 후 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고.
하지만 언니도 그렇게 될 줄 몰랐겠지.
그리고 갑자기 계좌에 알 수 없는 돈이 들어오질 않나.
아,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던지.
그런데 소문보다 그곳이 살기 좋다니 정말 다행이다.
하긴 소문과 같은 곳이라면 어떻게 사람이 살겠어.
우리가 걱정을 할까 봐 좋게 써 놓은 건 당연히 알지만 편지에 써 놓은 게 다 거짓이라면 애초에 편지도 보내지 못했겠지.
은행의 계좌에 그 많은 돈을 쌓아 놓지도 못했을 거고.
언니가 밥 굶지 않고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우리 둘 다 살 것 같아.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봐.
그 공작님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유배를 간 건 엄청난 불행이지만 말이야.
언니, 언니가 번 돈을 우리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언니를 위해 써.
여긴 우리 둘이지만 그곳에서 언니는 혼자잖아.
언제까지 가정 교사를 할 순 없을 테니 언니에겐 돈이 필요해.
걱정을 덜기 위해 적자면 우린 정말 잘 지내고 있어.
사실 지금까진 잘 지내지 못했지만, 언니 편지를 읽은 다음부터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돈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정말이야. 얼마 전부터 내가 어머니를 모실 만큼 충분히 벌고 있거든.
그러니 언니는 그곳에서 언니 인생을 살아. 우리 걱정은 절대 하지 말고.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없더라도 내 마음은 언제나 언니와 함께야. 알고 있지? 내가 언니를 사랑한다는 걸.
나도 언니가 날 사랑하고 있단 걸 알아. 그럼 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인 거지. 서로의 마음 안에서.
쓸 말이 많지만 언니의 편지를 가지고 우릴 방문한 메신저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이만 줄일게.
또 편지할 날이 있을까? 그날을 위해 편지를 쓰며 메신저를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을 담아. 언제나 언니의 듬직한 동생, 안 드 툴루즈가.
동생의 편지를 읽은 나는 정말 울기 직전이었다. 가족이 너무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그런데 동생이 돈을 벌고 있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 내가 사라진 뒤 동생도 가정 교사 일을 시작한 걸까?
'아니, 이게 제일 중요한데, 얘는 대체 왜 중요한 건 자세히 적어 놓지 않니. 정말.'
중요한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상세한 내용을 적지 않아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다시 또 편지를 전할 일이 있을까? 이번에 편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나를 구한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랄 수도 없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나는 급히 읽어 내렸던 편지를 이번에는 천천히 음미하듯 읽었다. 그러고 나니 그제야, 나머지 한 통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두 통의 편지가 각각 어머니와 동생이 보낸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봉투 하나에 어머니와 동생의 편지가 모두 들어 있었다.
'그럼 이 봉투는 뭐지?'
뜯어진 편지 봉투의 봉인에는 아무런 문장도 찍혀 있지 않았다. 부모님, 동생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내게 편지를 보내려 할까? 나는 의아해하며 편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펼쳐 보았다.
그리운 잔느 선생님께.
그것은 마엘 도련님이 보내온 편지였다.
[그간 편지를 보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을 잊은 것이 아니라 편지가 선생님께 전달되기 전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망설였을 뿐입니다.
저의 적들은 어디에나 있고 모두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스카디 공작은 괜찮습니다. 그는 그 누구의 편도 되길 원하지 않으니까요.
왕당파도 귀족파도 그를 자신의 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실패했습니다.
잔느 선생님, 선생님이 떠나신 후 저는 오직 선생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잘 지내고 계시지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버티어 주시라는 것뿐입니다. 신께서 다시 우리를 선택해 주실 때까지.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살아 있는 한 기회가 오기 마련입니다.
편지를 다 읽고 나는 짧은 숨을 토해 냈다. 그곳에서 나를 잊지 않아 준 마엘 도련님이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워,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고 보니 잘 지내실까, 방타두르 공작 부인도, 마엘 도련님도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이 위축되었겠지.'
나는 잠시 방타두르 공작 부인과 마엘 도련님의 처지를 걱정했다.
어쨌든 두 통의 편지는 내게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