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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외전 4화


외전 4화 평범이란 대체 무엇인가. 아나와 공작님의 외모, 그리고 아나의 방금 말로 짐작하건대 그들의 미모는 스카디가의 유전인 듯했다. “물론, 선생님도 예쁘고요.” 아나가 힘주어 말했다. “그렇구나. 고마워요.” “그런데 할아버지 서재 이야기는 뭐예요?” “아.” 질문 공세가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아나의 집요한 질문에 못 이겨, 결국 공작님과 있었던 그간의 일을 모두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그럼 이제 공작님과 결혼하시면 우리는 가족이 되는 거죠? 나는 공작님의 양녀고, 선생님은 공작님의 아내이니까?”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뒤, 아나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대답을 듣자마자 아나는 다시 내품에 폭 안겨 허리를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요! 이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선생님.”     이후 우리는 한참 동안 더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나는 내가 이곳을 떠나 있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는지에 대해 열심히 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갑자기 떠나시고 나서부터는 매일 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무엇으로도 그 구멍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선생님은 제가 보고 싶지 않으셨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요, 너무.” “제게 다른 사람은 필요 없었어요. 아시죠? 저는 사실 그때 선생님이 왜 여길 떠나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작님께 가서 부탁했어요, 처음으로. 다시 선생님을 이곳에 데려와 달라고요. 그리고 얼마 후 공작님은 사라지셨죠. 그리고 오늘 선생님과 함께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저는 공작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러 가신 거라 생각했어요!”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나는 아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선생님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을 때 공작님도 저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공작님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몰랐어요. 나는 공작님이 슬픔 같은 건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나, 공작님에 대해 알아야 할 게 정말 많군요.” 아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앞으로 여기서 할 일은 데면데면한 공작님과 아나의 사이를 이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진짜 가족이 되도록 말이다. 가정교사였던 시절에는 감히 할 수조차 없던 생각이었다.     아나는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서도 떨어지기를 아쉬워하며 나를 떠나갔다. 혼자가 된 나는 응접실의 소파에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큰 산을 넘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두 눈을 감고 벽난로의 장작이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귀에 들어왔다. 두 눈을 뜬 나는 걸어가 문을 열었다. 세 번째 방문객, 이번에야말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좀 쉬었소?” 그였다. “예.” 대체 이전엔 어떻게 참았을까? 잠시 헤어진 동안에도 이렇게 보고 싶다니. 공작님을 바라보니 내 마음에도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불씨는 곧 커다란 불길이 되어 내 가슴 속에 넘실거렸다. 나는 온몸이 따스해지는 동시에 황홀해질 만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다니, 그도 그럴까? 지금 나를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나는 진정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들어가도 되겠지?” “그럼요.” 자신의 저택인데도 그는 약간 주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차를 드시겠어요?” “괜찮소, 여기 앉아도 되겠소?” “물론이에요.” 그는 소파에 앉았고 나도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공작님의 옆에 앉고 싶지 않았다거나 쑥스러워서가 아니라 단지 정면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들고 왔는지는 전혀 보지 못했다. 잠시 그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이 흐르는 동안 마음껏 그의 얼굴을 감상했다. 아나와 닮았으면서도 남자다운 얼굴이었다. 그는 내 시선에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이 방이 너무 좁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방에서 묵어도 좋소.” “예?” 그게 무슨 소리일까? 나는 흠칫했다. 잠시 후 그도 자신이 내뱉은 말에 뒤늦게 화들짝 놀랐다. “물론 나는 다른 방에서 묵고 말이오!” “⋯⋯” “내 말은, 이 방이 불편하다면 나와 방을 바꾸자는 소리였소. 이 저택에서는 내 방이 가장 좋은 방이니⋯⋯ 물론 우리가 혼인한 뒤에는 그 방을 함께 쓰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러자는 뜻은 아니었소!” 잠시 또 침묵이 흘렀다. 그는 머쓱했는지 굵고 긴 목을 긁적였다. 나는 그 귀여운 반응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 오는 동안 한방에서 묵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말의 속도로 달리던, 덜컹거리는 방말이다. 마차 안에서 몇 날 며칠 우리는 단둘이 있었다. 청혼이 이루어졌다는 흥분에 휩싸여 우리는 거의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맞댄 것은 얼굴뿐만이 아니었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내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세상에⋯⋯.' 나는 마차에서 그와 끌어안았을 뿐만 아니라 키스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아마도, 마차 안이 아니었더라면 그보다 좀 더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그 키스는 내 정신을 날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절실하게 키스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그렇게 보드라운지도⋯⋯. 사실 그때 그는 거의 나를 잡아먹으려고 들었다. '⋯⋯정말 얼마나 대단하던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언제 다시 키스할 수 있을까?' 급기야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상념에 사로잡혔다. '혹시 여기에 찾아온 것도⋯⋯ 키스하러 오신 건가?' 혼인을 약속한 남녀가 한방에 단둘이 있는데 그것 말고 할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맞은편이 아니라 옆에 앉을 걸 그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상상만으로도 내 머릿속은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청혼 예물을 주기 위해서요.” 공작님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예? 예물이요?” “그렇소. 내가 청혼할 때 아무것도 주지 않지 않았잖소. 그때 빈손이었던 게 어찌나 마음에 걸리던지.” '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니?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엄지에 걸린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이건 뭐야?' '그대가 나와 혼인해 주길 바라오.' '나와 혼인하겠소?'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 주겠소.' 청혼 예물은 받았다. 그것도 엄청 대단한 물건으로. 공작님의 반지 말이다. 묵직한 무게를 지닌 반지는 순금이었고 중앙에 박힌 커다란 자수정의 매끄럽게 깎인 표면에는 공작가의 문장이 섬세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나는 이러한 반지가 가문에서 발행하는 공문서나 편지를 봉인할 때 도장의 용도로 쓰인다는 것도 알았다. 이 반지의 가치는 보석과 금을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가 청혼하며 반지를 내밀 때 흠칫했었다. “그대가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내게 상자를 열어 보여 줬을 때에야 나는 그가 상자를 가져온 줄을 눈치챘다. 상자 안에 든 것을 보고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 상자 안에는 비현실적인 크기의 보석으로 이뤄진 장신구 세트가 들어 있었다. 다이아몬드와 자수정이 알알이 박힌 장신구들은 여러 가지였는데, 어느 것 할 것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까 겁이 날 정도로 영롱했다. “이건, 내 어머니의 파뤼르(parure)요. 그대에게 청혼 예물로 주고 싶소.” 파뤼르는 왕관과 귀걸이, 목걸이, 팔찌까지의 장신구 한 세트를 이르는 단어였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잃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왕관도 귀걸이도 목걸이도 보석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문양을 이루었고, 포도에서 갓 짜낸 것 같은 진한 색의 커다란 자수정은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걸이에도 왕관에도 팔찌에도 아낌없이 쓰인 큼지막한 자수정의 둘레에는 여왕을 보좌하는 시녀처럼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이 장신구를 그대가 결혼식에 착용해 주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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