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78화 외전 17화


외전 17화 잔느 드 툴루즈는 마엘 드 랑시스에게 단순한 가정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가정교사로 제 앞에 처음 나타난 잔느 드 툴루즈를 사랑했다. 돌이켜 보면 그녀가 이 왕궁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정부의 소생으로 태어난 마엘에게 그가 나고 자란 왕궁은 사막처럼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마치 분수대 같은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맑은 샘물이 솟아올라 주변을 적시는 분수대. 마엘에게는 바로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다정함이 넘쳐흘러 주변에 흩뿌리고 마는 그런 사람을. 그래서, 목이 너무도 마른 그에게도 그 다정함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을. 잔느는 그의 가정교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고 새로웠으며, 잔느는 책 속에 든 지식뿐만 아니라 마엘이 전혀 알지 못했던 왕궁 밖 세계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잔느는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다. 왕궁에 있는 모두가 자신을 무시하던 시절에도. 오히려 그녀는 자신을 편견 없이 보살펴 주었다. 그렇다. 사랑했다기보단,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적절하리라. 왕궁에서는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마음에 목을 매느라 아들인 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니, 그때의 잔느는 오로지 마엘이 열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어느 새부터인가, 마엘은 그녀를 제 것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장차 그녀를 자신의 메트레상티트르로 삼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잔느를 메트레상티트르로 삼는다면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절대로 남의 우셋거리가 되게 하지 않을 것이고, 왕비의 손에 함부로 놀아나게 하지 않으리라,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입지가 변하고 왕세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마엘 드 랑시스는 잔느를 프랑으로 불러들인 뒤 여러 실책을 저질렀는데, 그중 가장 큰 실책은 잔느를 다 잡은 물고기라고 착각한 것이다. 잔느는 이미 자신의 것이고 그녀 역시 자신을 거부하지 않을 게 분명하며, 그 누구도 자신만큼 그녀를 탐내지 않을 것이라고. 이 세상에 더는 자신의 적수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그 오만이 그에게 치명적인 실책을 연달아 일으키게 만들고 말았다. 만약 마엘이 프랑에서 멀고 먼 북부에, 자신에게 대적할 만큼 강력한 연적이 있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다면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잔느 드 툴루즈에게 고백한 그날,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을 터였다. 왕궁의 방 하나를 골라 그녀를 가둔 후, 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의 정부가 되겠다는 대답을 받아 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받고 나서도 결코 잔느를 왕궁에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제 곁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엘은 비록 왕세자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었고, 결국 그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잔느가 그의 고백을 거절했을 때, 마엘은 한발 뒤로 물러나는 여유를 부렸다. 실제로는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이제 선생님을 지켜 드릴 힘이 있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부터 제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왕세자 전하⋯⋯.저는 왕세자 전하의 메트레상티트르가 될 수 없습니다. 왕세자 전하께서는 저보다 훨씬 좋은 분을 아내로 맞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분을 아내로서 존중하고, 온전한 사랑을 주십시오. 메트레상티트르를 두지 마시고.'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결정을 내려 달라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제가 왕위를 이어받을 때까지 제 곁에 계셔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사랑을 증명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다 보면 분명⋯⋯ 저를 사랑하게 되실 겁니다.' 마엘은 잔느에게 한 말대로,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라 확신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마엘은 국왕인 자신의 아버지의 총애를 얻기 위해 지체 높은 귀부인들이 암투를 벌이는 장면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럴 만도 한 게, 모두가 원하는 자리 아닌가? 아무리 똑똑하다 할지라도 아는 것만큼만 보이기 마련이다. 태어나서부터 왕궁에서만 살아온 마엘은 여인이라면 누구나 메트레상티트르가 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불어 당시 마엘의 가슴속은 뜻밖의 행운으로 인해 자만심에 가득 부푼 상태였다. '나는 행운아다. 나는 행운의 여신에게 선택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견고했던 내 적들이 제풀에 쓰러졌겠는가? 비록 내 이전의 삶은 고난과 오욕으로 얼룩져 있었으나, 그조차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여신의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아들인 그는 원래대로라면 현 왕세자가 왕위에 오를 때 제거되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정치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아버지는 나날이 늙어 갔고 왕비는 자신의 어머니를 증오하며 언젠가 마엘을 죽이고 말리라 공공연하게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이 역병이란 가면을 쓰고 나타나 어머니와 그의 적들을 쓸어 버렸다. 마치 그가 처음부터 왕이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행운의 여신이 그의 편에 서 있는데 구태여 무엇을 더 걱정하겠는가? 마엘은 이 행운이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맹목적인 믿음은 사람을 눈멀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마엘은 다시 만난 잔느 드 툴루즈의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그토록 험난한 소문이 도는 곳에서, 기약 없는 유배 생활을 거쳤음에도 그녀는 더 아름다워져 있었는데, 그 모순을 몰라보았다. 마엘은 대체 무엇이 유배 생활 중 잔느를 변화시켰는지 아무 의문도 품지 않았다. 대체 유배 생활 중 잔느에게 대체 무엇이 의지와 활력소가 되었는지.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 제안을 선생님 안에서 소화시킬 시간이.' 그래서 마엘은 잔느를 다시 마차에 태워 집으로 곱게 보내 주었다. 그녀에게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알량한 자비라 해도 좋았다. 그는 잔느가 집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이 제안이 그녀에게도 그녀의 가문에도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잔느가 깨달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느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자신을 남자로 보아 주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에 마엘은 그녀를 자신의 발아래 굴복시킬 계획도 이미 다 세워 두었다. 그녀의 주변에 압력을 넣고 들들 볶아 피를 말려서라도 말이다. 마엘이 알기로 잔느가 가정교사가 된 이유는 툴루즈가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만일 그가 잔느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도록 뒤에서 손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잔느와 어머니, 동생까지, 그 어디서라도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당연히 얼마 버틸 수 없으리라. 물고기가 살려면 물이 필요하듯 사람이 살려면 빵이 필요하니까. 수조의 물이 마르면, 물고기는 새로운 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으리라. 잔느를 집으로 돌려보낸 뒤 마엘은 한동안 잔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를 잊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병석에 누운 그의 아버지가 숨만 간신히 붙어 있을 뿐 의식이 없었기에, 그는 국왕의 업무를 대리했고 동시에 새로이 벌어지는 국가의 경사도 진행해야 했다. 그 국가의 경사란, 마엘 자신의 혼인이었다. 랑시스의 국왕, 마엘의 아버지는 명과 암이 분명한 통치자였다. 아버지는 랑시스의 건국 이래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지만, 그와 동시에 왕권 강화를 위해 무리했다. 너무 많은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전쟁은 랑시스의 영토를 외부로는 좀 넓혔을지는 몰라도 많은 국가를 적으로 만들었다. 영토를 빼앗긴 국가들은 랑시스에 맞서기 위해 서로 동맹을 맺었고, 그 동맹을 바탕으로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다시 전쟁을 걸어 왔다. 전쟁이 잦아진 탓에 농민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고, 상인 또한 타국에 물건을 팔러 나갈 수 없었으니 자연히 경제는 파탄이 났다. 마엘은 왕자였던 시절부터 적을 아예 죽일 수 없다면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었다. 하지만 그때 마엘은 일개 서자에 불과했으므로,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섭정에 오른 마엘이 가정 먼저 한 일은, 전쟁광이었던 국방부장관과 외교부장관을 온건파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그는 전쟁 중인 타 국가에 사절을 급파하고 전쟁으로 얻은 영토 일부 등을 돌려주는 등 평화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르데냐 왕국과의 혼인 동맹 또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취했던 방침 중 하나였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