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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화


#3 어린 하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처럼 장미 향유를 조금 덜어 목덜미에 발라 주었다. 저녁 만찬이니 특별히 꾸밀 것도 없었으나 다름 아닌 황태후를 뵙는 자리였다. 스타테이라였다면……. 그러니까 황제의 모친에게도 예쁨을 받았던 스타테이라였다면 그런 자리에 단순한 면직물 소재의 실내용 드레스를 입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황제와 정말로 부부였으니까. 보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어린아이들이 행여 학대라도 받을까 노심초사할 일도 없었겠지. 난나는 가슴 한편을 무겁게 하는 사실을 잊으려 노력했다. 새삼스레 다시 더듬을 필요가 없는 일을 두고 덤덤한 척 애를 쓰려 하는 것도 우스웠다. 이 결혼 같지도 않은 결혼 생활이 벌써 8년째였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난나는 스타테이라의 남편과 어린 자식들을 셋이나 두었다. 숱하게 동침했고……. 그녀의 아버지가 원한대로 황제의 자궁이 되었다. 그의 암컷이 되어서 밤마다 다리를 벌렸다. 드레스를 살그머니 들어 올렸다. 다이닝 룸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움직여 목가적인 분위기의 다이닝 룸에 도착했다. 황가의 식구들을 위해 마련한 기다란 식탁은 연분홍색 식탁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본래라면 무척이나 화려해야 할 공간은 여느 귀족 가문의 다이닝 룸보다 소박한 동시에 간결하고 단란했다. 웅장하고 위용이 넘치기보다는 말 그대로 가족을 위한 공간 같았다. 이 또한 스타테이라의 뜻이 반영된 공간이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공간만큼은 단란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 촛대며 식탁보, 커튼과 화병까지 하나하나 직접 그녀가 골랐다. 난나는 두 손을 모은 채 눈동자를 굴렸다. 시종이 그녀를 황제와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 착석시켰다. 그녀의 옆으로 작은 의자들이 나란히 세 개 놓여 있었다. 시선을 돌려 황제가 앉을 상석과 오른편에 자리한 황태후의 자리를 보았다. 그녀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 같았다. 이윽고 자리에 앉자 황태후와 황제가 차례대로 도착했다. 그런 다음 막내인 알렉시스를 안은 슈발렌 자작 부인이 슬란과 스텔라를 앞세우고 다이닝 룸에 입장했다. 난나는 여자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두 황자와 황녀가 자리에 착석하고 알렉시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슈발렌 자작 부인은 알렉시스가 울음을 터트릴 것을 예상해 다이닝 룸의 입구에 몸을 붙이고 서 있었다. 시종의 바로 옆자리였다. 난나는 여자를 흘긋 보았다. 예전에,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그녀가 서 있는 자리는 그녀의 자리였다. 시종의 옆에 서서 스타테이라를 비롯한 그녀의 아버지와 약혼자였던 황제가 필요한 것을 제공했다. 그러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윽고 기다란 식탁 위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와인에 재운 메추라기 요리와 어린 돼지를 손질한 요리. 전복과 한치. 구운 강꼬치고기. 또 각종 가금류와 폭신한 빵들이 셰리주와 함께 식탁을 촘촘하게 채웠다. 두 손을 모으고 있던 난나는 흘긋 황제를 보았다. 어젯밤 짐승처럼 그녀를 파고들던 남자는 세상 난잡함이라고는 모르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를 깨끗하게 걷어 올린 황제는 오늘도 몹시 기려했다. 반듯하고 명확한 선이 흠잡을 데 없다고 해야 할까.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준엄하고 고귀했으며 조악함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투박함이나 천박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얼굴. 심지어 금욕적이기까지 한 인상은 때때로 신실한 사제나 성 기사를 떠올리게 했으나 어찌 되었든 난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스타테이라는 제 약혼자가 귀부인만큼이나 섬세한 사내라 특별하다고 했으나 난나에겐 그저 겁박과 겁탈을 일삼는 사내일 뿐이니까. 그녀는 음울한 얼굴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황제의 호박색 눈동자가 그녀를 흘긋 보더니 이내 글라스를 들어 올렸다. 난나는 황제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대신 황태후를 보았다. 황태후 역시 썩 그녀를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으나 애초에 이런 자리를 만든 건 그녀였다. 황제가 그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도……. 그녀가 스타테이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에게 달리 바라는 것 또한 없다고. 그러니까 에버하르트 공작이 말했던 것처럼. 스타테이라의 아버지가 그녀를 양녀로 만들어 자신을 입궁시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황손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맘마-”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알렉시스가 콩소메를 향해 자그마한 손을 뻗었다. 그녀는 아기가 식탐이 강하다는 핀잔을 들을까 봐, 그러니까 황제의 눈총을 살까, 두려워 아기를 얼른 고쳐 안았다. 아기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작게 칭얼거렸다. 그녀는 자그마한 스푼을 들어 콩소메를 조금 떴다. 그러고는 아기의 자그마한 입술에 넣어 주었다. 부드러운 맛에 아기가 눈을 빛냈다. 황제를 닮은 호박색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보석 같았다. 만개한 프리지아를 한 송이 한 송이 꺾어 유리병에 모아 둔 것 같다고. 난나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아-” 알렉시스가 작게 옹알이를 했다. 난나는 살짝 식은땀이 났다. 맞은편에 황태후가 아기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으나 황제는 마치 아기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식사를 계속할 뿐이었다. 기계적으로 턱을 움직이는 남자를 흘긋 본 난나는 슬그머니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바둥거리는 아기를 고쳐 안았다. 본래 알렉시스는 주말마다 있는 저녁 식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 살도 안 된 아기라 예법을 모를 나이였고 너무 어려서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한데도 아기를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은 황태후의 명령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부성이란 게 없는 아드님 아니겠니? 황태자를 제하면 나머지 애들은 관심도 없는 듯하고.’ 황태후는 그 고귀하시다는 아드님을 생각하며 미간을 좁혔다. 우려와 근심이 깃든 얼굴이었다. 황제에게 아름다운 외관을 물려줄 만큼 태후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젊었던 시절에는 ‘새벽의 장미’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황홀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런 여자가 나이가 좀 들었다 한들 그 미모가 어디 갈까. 난나는 입을 떼지 않는다면 삼십 대 후반의 여성으로 보일 만큼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응시했다. 황태후의 말대로 황제는 장남인 슬란을 제하면 특별히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슬란에게 보이는 관심조차 그 애가 장차 황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재목인지에 대한 관심이었다. 좀 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가능성에 대한 탐구였다. 이리저리 재다가 쓸모가 없다면 적당한 나이가 되었을 때 전쟁터로 보내 버리겠지.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그 산지옥에서 꺼내 주지 않을 것이다. 난나는 그가 두려웠다. 차라리 그가 애들을 찾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황손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대를 잇고 손이 귀한 황가의 자손을 생산할 여자가 필요하다고……. 그리 말하면서도 황태후며 황제며, 황가의 종친들은 결코 그녀를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황제가 선사하는 고역과 모욕 속에서 황손들을 생산했음에도 그랬다. 그러나 난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난나는 처음부터 스타테이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녀가 스타테이라처럼 사랑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고귀한 신분이며 그 쾌활한 성격이며……. 작은 여자가 용감함과 담대함을 갖추기까지 했다. 난나는 발끝도 그 여자를 쫓아갈 수 없었다. 그러니 흉내 낼 수도 없는 것이다. 난나는 한 차례 겪었던 수모를 떠올리며 파드득 떨었다. 문득 황태후가 입술을 뗐다. “알렉시스를 그만 데려가. 자작 부인.” 알렉시스의 입에 콩소메를 조금씩 넣어 주느라 난나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여자가 입술을 뗐다. 이윽고 슈발렌 자작 부인이 다가와 난나의 품 안에서 아기를 데려갔다. 난나는 의례적으로 괜찮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유로워진 두 손과 품이 허전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상석에 앉은 황제를 흘깃 보다가 다시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메추라기 요리를 한 입씩 먹으며 남매가 저녁을 잘 먹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슬란과 스텔라 모두 평소보다 식사량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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