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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25화


25. 누구야, 이 새끼는? 핸드폰을 확인한 성기가 미간을 좁혔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게임 대결 신청이 와 있었다. 그건 둘째 치고, 메시지에 요원들이 사용하는 약어가 노골적으로 박혀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세워 앉았다.   TS/SCI. M.Active. Respond. (Top Secret / 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 Mission active. Respond. 최상위 기밀. 임무 진행 중. 응답 요망.)   성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가 장난질하는 것 같진 않은데, ‘samdonge’라는 아이디가 무척 낯설었다. 샘동이? 삼동이? 그게 누군데? 그렇다고 무시하고 넘기기엔 내부 언어에 익숙한 누군가가 보낸 것이 분명했다. 아리송해하던 성기는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멈칫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알아들으라는 듯한, 불친절한 메시지 형식이 묘하게 익숙했다. Mission active.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느리게 굴러갔다. ‘설마…….’ 고개를 든 성기가 무심코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사무실은 평소처럼 조용했고, 보안 카메라는 정해진 각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모니터에 떠 있는 분석 화면을 최소화한 뒤, 핸드폰을 책상 아래로 살짝 내렸다. 답장을 적기 시작한 성기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하늘로 솟은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진 인간. 그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ACK. Identify yourself. (Acknowledge; 수신 확인. 신원을 밝혀라.)   메시지는 50자 이하로만 작성할 수 있었다. 짤막하게 보낸 답장에 다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Eyes only. -Jindo- (당사자 외 열람 금지. -진도-)   “…….” 진짜 형이잖아. 성기의 낯빛이 그대로 굳었다. 진도는 진돗개(Jindo dog)를 함축한 말이었다. 무혁의 공식 코드 네임은 울프독이지만, 그 외에 비공식적인 별명이 여러 개 있었다.   ACK. State situation required. (수신 확인. 상황 보고 요망.)   In cover. JS turned. Stay alert. (은신 중. JS 배신. 경계할 것.)   성기는 대번에 입안이 버석하게 마르는 걸 느꼈다. JS의 배신이라니. JS면 같은 날 실종된 중성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중성의 배신이라니. 무혁이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할 리는 없었다. 저야 원래 중성을 아니꼽고 재수 없게 여겨 왔지만, 그가 무혁을 배신했다는 건 올해 들은 소식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미친.’ 애초에 중성은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는 자발적 외톨이였다. 성기는 그와 친분을 다질 기회는커녕 의지도 가져 본 적이 없었으나, 어쩌다 필요에 의해 말을 섞으면 기분이 찝찝하기 일쑤였다. 무혁은 대놓고 말본새가 험하고 거칠지만, 묘하게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성은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혁은 애초에 제 임무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라 요원 개개인의 성향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편이었다. ‘하긴, 울프독도 성깔이 좀 별나야지.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성기가 서둘러 답장을 썼다. 어떻게든 무혁이 있는 곳을 알아내야 했으나 사무실에서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기엔 무리가 있었다.   ACK. Will recontact at 1830. (수신 확인. 18시 30분에 재접촉.)   주변 기류를 살피며 황급히 화면을 끈 그가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이틀 후, 여담 마을. 야심한 시각에 홀로 산을 오르게 된 성기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몸을 움츠렸다. “왓더…… 존나 무섭잖아.” 어디서든 귀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산속은 어둡고 음산했다. 작은 손전등과 디지털 좌표 맵에만 의지해야 하는 이 상황이 좆 같을 뿐이었다. 현재 성기의 위치는 무혁이 말해 준 지점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 주여. 그는 연달아 성호를 그으며 걷는 것으로 두려움을 잠재워 보고자 했다. “형은 왜 이딴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거야.” 살생이 일상인 무혁과 달리, 성기는 몸보다 머리로 싸우는 쪽에 가까웠다. 정보와 숫자, 패턴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 이런 공포스러운 것들에 면역이 부족했다. 암흑 속 어딘가에서 스슥― 미세한 바람 소리만 나도 심장이 철렁했다. 성기는 앓는 신음을 흘리며 목표 지점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머지않아 도착한 성기가 주위를 둘러봤으나 무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방을 고쳐 매고서 빽빽한 나무 사이를 손전등으로 비추어 보았다. 그때. “아, 씨팔, 깜짝이야……!” 나무에 기대 서 있는 시커먼 형체가 시야에 들어오자 성기가 기겁하며 몸서리쳤다. 하지만 금세 무혁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형?” “…….” “미친. 깜짝 놀랐잖아요.” 무혁은 성기가 혼자라는 걸 확인하듯 서늘한 눈으로 주변을 훑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져오라고 한 건.” 흔한 인사치레 하나 없는, 무정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아 제가 아는 진무혁이 맞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성기가 짐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그가 내용물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달라고요, 형. 이중성이 형을 죽이려 하기라도 한 거예요?” “내 집 주변에 쥐새끼들 붙었다고 했지. 사진도 찍어 왔나?” “아이씨, 진짜…….” 성기는 툴툴거리면서도 그간 자신이 보아 온 것들에 대해 전했다. 지독히 덤덤한 얼굴로 듣던 무혁은 그제야 짤막하게 그간의 상황을 요약했다. 무열과 이연은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성기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진짜라고요? 정말 이중성 그 새끼가…….” 그가 넋이 나가건 말건, 무혁은 노트북부터 켰다. 성기의 개인 서버로는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굴러가는 상황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현금은.” “검은색 파우치 안에요.” 성기는 자신이 무혁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미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벌어 둔 인간이 아니던가. 게다가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무혁이 받는 연봉은 제 연봉과 단위부터가 다를 터였다. 무혁은 성기가 가져온 공기계에 유심을 끼운 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이건 단순 연락용이에요. 위치 공유, 클라우드, 백업 전부 차단해 놨고요.” “본부 쪽 움직임은.” “조용해요. 너무 조용해서 문제지만.” “…….” “요새 좆만이가 유독 예민하긴 한데, 그래도 좆만이가 이중성과 한패는 아니지 않을까요?” NEXA 총괄 책임자인 강종만 실장은 무혁에게 유일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다지 정이 가는 상사는 아니라 팀원들에게는 ‘좆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실종 보고서는 이미 사고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예요. 뭐, 이런 식으로 덮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부리던 개가 죽으면 다른 개를 데려오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이 바닥에선 작전 중 사망한 요원들에 대한 공식적인 애도 따윈 없었다. 애초에 이 집단과 요원들의 존재 자체가 외부에 드러나선 안 되는 것이었기에. 그저 소모품을 폐기 처리하듯 흘러가는 과정이 씁쓸하긴 하지만, 이 판에서 버티려면 그런 감정에 발목을 잡혀선 안 됐다. 성기는 그렇기에 진무혁이라는 존재가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무혁은 조직이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교본 같은 요원이었고, 동시에 그 교본을 아무렇지 않게 벗어나는 인간이었다. 생사에 별다른 무게를 두지 않는 데다가, 목숨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개쯤은 여분으로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두려움이나 슬픔이 아예 결핍된 건지, 아니면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정상의 범주엔 속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소모품 취급하는 냉정함, 한계를 시험하듯 위험을 끌어안는 버릇. 자기 보호 본능이 결여된 듯한 태도.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고, 한편으론 닮고 싶기도 했다. 강종만 실장을 비롯해 해외 셀 책임자들조차 무혁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실적과 생환율, 임무 난이도를 따지지 않는 대담함까지 따지면 울프독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카드이자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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