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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32화


32. “윽, 대체 누, 누구…… 아니, 사, 살려 주십시오……!” “시끄럽게 하면 이번엔 혀가 잘릴 거야. 그러니 묻는 말에 대답만 해.” 무혁은 무료한 한숨을 내쉬며 칼등으로 장 씨의 턱을 받쳐 올렸다. “다시 한번 물을게. 갑자기 산에는 왜 기어들어 갔어.” “자, 잘못했습니다. 저, 저는 그저 더덕을 캐려고…….” 큭. 같잖은 변명에 비소를 흘린 무혁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래서 상황 판단이 느리고 눈치 없는 것들은 심문하기 더 성가신 구석이 있었다. “아. 역시 의미 없나.” “…….” “어차피 이빨 까 봤자 명줄만 짧아질 텐데.” 무혁이 일어나는 기척에 마지막 기회가 왔음을 깨달은 장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프, 프러포즈를 하려고…….” “뭘 해?” “프, 프러…….” “이봐, 아저씨. 씨발, 개수작질에 그런 경건한 단어를 갖다 붙이면 어떡해.” 하아.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는 무혁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불거졌다. “차라리 프로포폴이라 씨부린 게 나았겠어. 응?” “예, 예, 마, 맞습니다! 제, 제 말은 프로포폴을…….” “개새끼가 수 쓰네?” 웃기지도 않는 발악을 경멸 어린 눈으로 쏘아보는데 성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해.” -메시지 지금 봤어요, 형. 지금 설마 장기덕 납치한 거예요? 제발 몸 좀 사리시라고요……. “너야말로 일 처리 제대로 못 한 벌은 나중에 받자.” -아, 혀엉― 안 그래도 한 번 더 조지러 가려고 했어요. 죄목을 늘려야 저도 당당하게 좆 깔 거 아닙니까. “무슨 죄목.” -지난번에 장기덕 폰에 스파이웨어 깔았는데, 이제 보니까 완전 악질 중의 악질이에요. 어떻게든 임하임 씨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끔 판을 짜 놨더라고요. 그 이장이란 인간이랑 통화한 내용이 존나 가관이에요. 무혁은 장 씨의 입안에 천을 쑤셔 넣은 뒤, 뱉는 순간 니 인생도 끝이라며 나직이 경고했다. “계속 얘기해.” 스피커 폰으로 돌리자 성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요약하자면, 계속 결혼을 거부하면 임봉주 씨에게 알리고 어떻게든 자극해서 뒤지게 맞는다. 그리고 폭행죄로 임봉주 씨를 고소한 뒤에 합의를 빌미로 빚을 추가한다. 또 돈으로 협박하겠다 이거죠. 안 통하면 빚 깎아 주는 대신 다리라도 벌리게 해서 임신시키면 된다는데요. “…….” -딱 폐쇄적인 시골에서 일어날 법한 삼류 범죄 시나리오잖아요, 이거. 죽여도 시원찮을 씹새끼. 애초에 빚을 다 갚는다고 해도 결국엔 이럴 작정이었던 거예요. 성기의 말이 끝날 무렵 무혁의 얼굴에는 모든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어두운 음영이 진 시선이 장 씨에게로 느리게 내려갔다. 재갈 너머로 흘러나오는 흐느낌이 이제는 거의 낙담한 자의 절규에 가까웠다. 죄인을 어떻게 처단할지 고민하던 무혁이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은 음성을 내뱉었다. “프로포폴 좀 가져 와.” -프로포폴이요? 갑자기요? “우리 고객님이 요새 잠이 부족했는지 새벽부터 프로포폴을 찾으시더군.” 무혁은 칼등 끝으로 장 씨의 이마부터 턱끝까지 나른히 훑으며 말을 이었다. “흐, 하으억, 흐억…… 하, 하혀후에요…….” 살려 달라고 흐느끼는 주둥이 안에 단도를 쑤셔 넣고, 칼의 옆면으로 허연 백태가 낀 혀를 지그시 눌렀다. 칼끝이 닿은 지점에 피가 맺히자 장 씨의 숨이 꺽꺽 넘어갈 것처럼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혁은 자를 범위를 가늠하듯 유심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였다. “죽지 않을 정도만 재워 드리게 넉넉히 챙겨 와. 지금 당장.” * * * 하임은 오늘도 기분 좋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제 수확물을 높은 가격에 쳐주는 민간인 고객이 한 명 늘었기 때문이었다. 약속 장소인 읍내 대형 마트 주차장으로 향하자, 모자를 푹 눌러쓴 젊은 남자가 냉동 탑차에서 내렸다. 사흘 연속으로 구매 중인 단골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한 남자는 필요한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소극적인 성격인지 하임과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오늘 채취한 것들이에요.” “그렇군요.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자루를 받아 든 남자는 안을 들여다보는 시늉만 하고선 돈 봉투를 내밀었다. 부모님에게 드릴 거라면서 품질 확인조차 안 하네. 보아하니까 약초에도 그다지 지식이 없는 듯한 젊은이는 자칫하면 호구 잡히기 딱 좋은 타입이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하임이 생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약용 버섯 말린 것도 몇 개 넣었어요. 꽤 귀한 건데 어르신들 기침에 좋아요.” “아, 예. 그럼 제가 추가금을…….” “아니요, 괜찮아요. 이건 단골 손님한테만 드리는 서비스예요.”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하임은 웃돈을 얹으려는 남자를 정중히 거절하고는 마저 약초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가만히 듣다가 모자챙을 더 깊이 눌러쓰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항상 좋은 값으로 사 주시잖아요.” 남자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함이 스쳤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필요할 때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냉동 탑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 후, 하임은 장 씨에게 금액의 일부를 송금하기 위해 읍내 ATM을 찾았다. 오늘은 넉넉한 금액을 보내도 될 것 같았다. 남은 돈으로는 다 같이 구워 먹을 삼겹살을 사 갈 예정이었다. ‘삼동이도 있으니까 최소 1.5kg는 사야 하는데. 다른 부위도 섞는 게 나으려나.’ 들뜬 얼굴로 평소처럼 수취인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데 오류가 났다. 없는 계좌라는 문구가 뜬 것이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몇 달 동안 매주 송금해 왔는데 없는 계좌일 리가. 하임이 다시 한번 시도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뭐지?” 은행 시스템 점검 시간도 아닌데. 고개를 갸웃한 하임은 내키지 않지만 장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이어질 뿐 그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독촉 문자도 보내 놓고선 갑자기 왜 이러신담. 하임은 계속해서 연락이 닿지 않자 결국 장 씨네로 걸음을 옮겼다. 직접 돈을 전하고 자필 영수증을 받을 생각이었다. ‘설마 장 씨 아저씨가 괜한 꼼수 쓰는 건 아니겠지?’ 돈은 안 받을 테니 시집을 오라는 둥, 또 헛소리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들었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장 씨 아저씨네 다다랐을 때였다. “……어?” 집 바로 앞에 커다란 이사 트럭이 서 있었다. 짐칸 문이 활짝 열린 채였고, 인부들이 분주하게 오르내리며 가재를 나르고 있었다. 하임은 걸음을 멈추고 주소를 재차 확인했다. 익숙한 대문, 담장, 마당. 분명 장 씨 아저씨네 집이 맞았다. ‘지금 이사 가는 건가?’ 느닷없는 광경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가가는데, 마침 길 건너편 집에서 나오는 심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 장 씨 아저씨 이사 가요?” “그러게 말이야. 아침부터 저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정말 이사 가는 갑네.” “왜요?” “나야 모르지. 갑자기 도망치듯이 싸 들고 나가는 거 보면 뭐 죄라도 지었나.” “…….” 할머니가 중얼거리며 멀어지자 하임이 담장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마당엔 이미 비워진 화분 자국과 급히 끌어낸 가구 자국이 어수선하게 남아 있었다. “집주인 아저씨는 어디 계세요?” 인부에게 묻자 집 뒤편 지하 창고 쪽을 가리켰다. 하임이 건물을 돌아 그곳으로 향하자 열린 문 사이로 부산한 기척이 들렸다. 무언가를 급히 쓸어 담는 소리였다. “장 씨 아저씨?” 조심스레 부르자 갑자기 쨍그랑―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얼어붙은 듯 굳은 장 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아저씨? 이사 가세요?” 손에서 놓친 공구가 덜그럭거리며 굴러갔지만, 장 씨는 그것조차 줍지 못했다. 눈이 화등잔만 해진 채 하임을 공포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송금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없는 계좌라고 뜨고 전화도 안 받으셔서요. 오늘 치 금액 가져왔는데…….” “오, 오이 마……!” “…….” 질겁하는 외침에 하임이 우뚝, 멈춰 섰다. 장 씨는 그녀가 다가간 만큼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손사래를 쳤다. “피, 피요 어뜨니까 가더가!” 반이 뚝 잘린 듯한 발음에 당황한 하임이 두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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