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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51화


51. “프로젝트 코드 ECHO-07.” 하루타는 한참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듯 입을 열었다. “……청각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는 사례였습니다. 감각 처리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환경 자극에 대한 공명이 두드러졌습니다. 연구의 핵심은 그게 일회성인지 유전될 수 있는 특성인지 밝혀내는 것이었습니다.” 무혁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과거 1차 실험체의 연구 기록을 회수하고 그 결과가 이어졌는지 확인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특히 혈연으로 이어진 개체가 있는지, 있다면 생체 능력이 어떤지도 파악하라고 했습니다.” 하임의 생모의 실험 기록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후속 실험 대상으로 하임이 타깃이 된 것이었다. 혈통이 이어졌다면 동일하거나 변형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그래서.” 무혁의 시선이 미동 없이 고정되자 하루타는 더는 빼지 않았다. “프로젝트 코드 ECHO-07의 실험체였던 함명희 씨는 공식적으로 실패 사례로 분류됐지만, I.D.C 측은 Interim Report에 유전적 가능성을 무한으로 열어 둔 상태입니다.” “보고서 내용이 정확히 뭐지?” “……1차 피실험자에게서 관측된 비정상적 청각 공명 반응은 후천적 손상이나 환경 요인으로는 재현되지 않았다. 동일 계통 내 2세 개체에게서 유사 반응 발생 가능성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우연적 변이가 아닌 유전적 전달 구조를 전제로 할 경우에만 설명 가능하다.” “…….” “본 프로젝트는 개별 사례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목적은 공명 반응의 계통화 가능성 검증이며, 성공 시 해당 특성은 반복 생산 가능한 생체 전술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윤리적 위험 요소는 실험 효율 저하 요인으로 분류하며, 본 보고서에서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하루타는 두통을 쫓듯 머리를 흔들었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기억이 꽤 정리되어 있었는지 제법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처음엔 단순한 추적이 목적이었습니다. 그저 기록의 공백을 메우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기울인 무혁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단순한 확인에 가까운 어조로 물었다. “만약 니들이 찾는 계통이 I.D.C 쪽에 넘어가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지.” “격리부터 시작합니다. 이름은 지워지고 번호가 붙죠. 외부 자극을 최소화한 환경에서 반응값을 고정시키는 단계로 들어갑니다. 수면 주기, 식이, 청각 자극, 감정 반응까지 전부 통제됩니다.” “자유는 조금도 없다는 뜻이군.” “자율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선택지가 주어지는 순간 변수가 생기니까요. 의사 결정은 전부 상부 알고리즘이 대신하도록 해, 실험체는 완벽한 통제에 놓이게 됩니다.” 하루타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상태가 안정되면 반복되는 테스트에 들어가고, 공명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유지되면 분리 실험을 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밖으로는 나가지 못합니다. 평생.” 그 순간까지도 무혁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된 채로,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감정 반응이 강하면 약물로 억제합니다. 실험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기억조차 제거 대상이 되고요.” 하루타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골랐다. “……그곳에서 실험체는 사람이 아니기에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합니다. 그저 데이터고, 자원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표본일 뿐이에요.” 그는 말을 마친 뒤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방금까지 그저 절차를 설명했을 뿐인데 문장 하나하나가 입안에서 모래처럼 씹혔다. 익숙해야 할 언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I.D.C 생체 조사관으로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감정을 배제하는 법을 배워 온 그였다. 판단이 흐려지지 않도록, 연민이 개입되지 않도록 연구원들은 스스로를 관리했다. 정기적으로 감정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했으며 이는 죄책감과 공포, 의문을 눌러 버리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약효가 약해진 틈을 타 애써 밀어 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곳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장소였는지, 자신이 어떤 것들을 외면하고 묵인했는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던 목소리, 반응이 늦다는 이유로 투여량을 늘리던 손, 울음이 소음으로 분류되던 보고서의 문구들까지. “……그땐 몰랐던 척했습니다. 아니, 알았지만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루타는 천천히 손을 움켜쥐었다. 연구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때문에 목소리가 흔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아직 그 계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일지도요…….” 그는 그대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변명도 용서의 요청도 아니었다. 뒤늦게 살아난 양심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남긴, 늦은 후회에 가까웠다. * * * 무혁은 지하실을 나오자마자 하임을 발견하고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간발의 차로 막 1층 계단에 발을 디딘 그녀는 아직 얼굴에 잠이 가득 묻어 있었다. “왜 내려왔어요.” “깼는데 천종 씨가 없어서요.” “천종?” “아니, 무혁 씨…….” 잠결에 한 실수에 하임이 민망해하자 무혁이 픽 웃었다. “아직 날 밝으려면 멀었으니 좀 더 자요.” “더 잠이 안 오는 걸요. 무혁 씨, 혹시 제 핸드폰 보셨어요?” 하임은 할아버지가 걱정된다며 핸드폰부터 찾았다. 곧장 전화를 거는가 싶더니 무탈하다는 소식에 안도했는지 이곳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옆에 다가간 무혁은 스피커를 통해 새어 나오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하며 부스스한 그녀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할아비는 잘 있으니께 우리 손녀는 잘 먹고 잘 자기만 혀. “할아버지도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드셔야 해. 나 없어서 적적하진 않아?” -걱정하지 말어. 종일 삼동이가 하도 알짱거려서 귀찮을 정도니께. “삼동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 시건방진 놈이 우리 강아지 못살게 굴면 이 할아비한테 바로 연락혀. 하임이 흘긋 무혁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 변화 하나 없는 그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시치미를 떼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 할아버지.” -우리 하임이는 천년만년 이 할아비 품에 있을 줄 알았는디. 네 신랑은 생긴 건 기생오라비에 속은 시커먼 능구렁이여. 봉주의 툴툴거림에 어처구니없는 무혁은 속으로 실소를 삼켰다. 그런데 크게 당황하는 하임은 다른 단어에 꽂힌 듯했다. “응? 할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야. 시, 신……랑이라니.”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반응에 손가락에 머리칼을 배배 꼬던 손짓이 멈췄다. 무혁이 지그시 바라보자 하임은 더욱 당혹스러워했다. 그녀는 잠시 스피커 부분을 감싼 뒤 핸드폰을 아래로 내리며 해명하듯 말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가 괜한 소리를…….” “…….” 하임이 다시 통화를 이어 가는 동안 무혁의 눈은 내내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봉주는 마치 무혁이 듣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 험담을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손녀를 뺏긴 허탈함을 조롱으로 마무리했다. -그놈이 별로다 싶으면 그냥 깽판 치고 나와. 이 할아비가 더 좋은 신랑감 알아봐 줄 테니께. “아이, 할아버지도 참. 그런 호칭은…….” 스윽. 무혁이 여전히 시선을 하임에게 고정한 채 핸드폰을 가져갔다. “접니다, 영감님.” -스벌, 역시나 입만 산 놈이었구먼. 우리 손녀는 니놈을 그 뭐다냐, 그저 엔조이인지 뭔지로 생각하는 모양인디. 못 들었을 리 없는 하임이 기겁하며 두 손을 마구 저었고, 무혁은 타격 하나 없는 낯으로 대꾸했다. “제가 신부 마음에 드는 신랑이 될 수 있도록 더 잘 보살피고 노력하겠습니다.” -어디 한번 성심을 다 혀 봐. 우리 하임이가 싫다고 하면 나도 얄짤 없으니께. “유념하겠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쉬십시오.” 무혁은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하임 씨. 날 정말 엔조이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럴 리가요!” “신랑 취급 안 한다며.” “네? 아, 그, 그러니까 제 말은…….” 하임이 얼굴을 붉히며 말꼬리를 흐렸다. 오히려 결혼은 제 욕심이고 말도 안 되는 설레발이라 착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무혁이 가만히 기다리자 그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무혁 씨랑 결혼하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그런데 결혼은 너무나 중대한 사안인데 저 같은 사람이 무혁 씨를 욕심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무혁이 나른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 좆까지 먹어 놓고 욕심 버리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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