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62화
62.
“따뜻할 때 먹어, 형아들.”
3인조는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듯한 눈으로 삼동이를 보며 옥수수를 받아 들었다. 크게 한입 베어 문 경조가 물었다.
“야, 삼동아. 너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왔냐?”
“그냥.”
“그냥?”
삼동이는 옥수수 껍질을 주워 모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사람들 다니는 길은 저쪽이야. 근데 형아들은 사람들 다니는 길로 잘 안 다니잖아. 나무에 선도 긋고.”
“……표식을 알고 있다고?”
“응. 나무에 살짝 긁어 놓은 거. 위로 가면 하나, 옆으로 꺾으면 두 개. 그런 거잖아.”
세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굳었다. 산에서 일일이 좌표를 확인하거나 장비를 꺼낼 일 없이 단순하고 쉽게 경로를 공유하는 방식이라 3인조 외엔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
삼동이가 하늘을 힐끗 올려다봤다.
“저 위는 새가 앉아 있었는데, 이쪽은 없었어. 사람 있으면 잘 안 와.”
그는 정말로 그게 전부라는 얼굴이었다. 더는 새참을 입에 넣지 못하는 3인조 사이에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오갔다.
* * *
그날 이후로 삼동이는 틈틈이 3인조의 자질구레한 일을 도왔다. 품삯을 줄 테니 심부름꾼을 해 달라며 삼동이를 꾀어 냈기 때문이다. 한창 외롭던 차에 내심 형들의 관심이 좋았던 삼동이는 그들을 곧잘 따랐다.
3인조의 심부름은 겉보기엔 별다른 일도 아니었다. 산 아래를 한 바퀴 돌고 오라거나, 마을 입구에 오늘 평소와 다른 게 있는지 보고 오라는 식이었다. 능선 아래 길목에 어제와 달라진 게 있는지, 장터에 외지 사람이 있었는지 등을 묻기도 했다.
“오늘 마을 회관 앞에 차 한 대 더 있었어.”
“낯선 차야?”
“응. 흰색 차인데 왼쪽 범퍼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어. 그리고 마을 첫 번째 골목이 오늘따라 조용해.”
“원래도 조용하지 않냐?”
“응. 근데 낮인데도 개가 안 짖었어. 점례 할머니네 개가 없어졌다는 뜻이야.”
삼동이는 묻는 말에 막힘없이 대꾸했다. 불안해하는 기색도 의미를 부여하는 표정도 없었다.
3인조 역시 그가 대답한 것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궁금했던 건 정보 자체가 아니었다. 저런 사소한 변화를 훈련이라곤 받아 본 적 없는 삼동이가 짚어 낼 수 있는가였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관찰하고 어떤 말로 정리하는지 지켜보았다.
삼동이는 대게 먼저 결론을 단정하지 않았다. ‘낯설다’, ‘수상하다’ 같은 말을 붙이지 않고 본인의 눈에 들어온 것만 순수하게 입에 담았다. 불필요한 말은 덧붙이지 않은 사실 위주의 명료한 답변이었다.
“…….”
경조가 옥수수를 씹으며 삼동이를 흘끔 보았다. 정환과 바울도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보이는 대로 말하는 데 필요한 건 다 들어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 뒤로 심부름의 결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들은 같은 길을 이틀 연속 보내 보기도 하고, 일부러 평소와 비슷한 시간대에만 묻기도 했다. 혹은 대답을 일부러 끊거나 잘못된 정보로 혼동하게 만든 뒤 떠보기도 했다. 그러나 삼동이는 늘 똑같았다. 틀린 정보에 맞춰 말을 바꾸지 않았다. 보지 않은 건 입에 담지 않되, 본 건 빠뜨리지 않았다.
관찰력은 훈련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타고난 감각은 대게 출발점부터 달랐다. 게다가 삼동이는 자신이 그런 특기를 가졌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3인조는 어느 날 삼동이에게 대놓고 훈련용에 가까운 걸 내밀기도 했다. 장소는 같지만 날짜는 다른 정찰 사진, 위성 및 항공 사진, CCTV 캡처 연속 프레임, 산악지도 위 미세 표시 등이었다.
삼동이는 처음 보는 형식의 인쇄물을 낯설어하면서도 시험 삼아 묻는 말에 술술 답했다. 이로써 그의 잠재력에 대한 결론을 내린 3인조는 더 묻지 않았다. 이제는 충분하다는 듯 각자의 계산을 끝낸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삼동이는 아침부터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산에 올랐다. 오늘따라 여담 마을이 유독 조용했다. 원래도 한적한 곳이지만 오늘은 소리가 통째로 빠져나간 듯했다. 대문 앞 평상도, 골목 어귀도 잠잠했다.
“영감님 빼고 다 가셨나 보네.”
삼동이는 며칠 전부터 마을 회관 입구에 걸려 있던 현수막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농촌 상생 프로젝트
XX 기업 후원 장수마을 건강 지원 행사
최 이장이 기업 사회 공헌이라며 크게 떠들어 댔더랬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내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은 뒤, 근처 관광지까지 둘러보고 돌아오는 일정이라고 했다. 참여 가정에는 별도로 생활 지원금 및 상품권도 지원해 준다나.
하여 평소였다면 망설였을 어르신들도 한 명씩 신청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검진도 받고, 관광도 하고, 돈까지 받는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을에서 이 혜택을 거절한 이는 오직 봉주뿐이었고, 최 이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능선 아래를 스치듯 지나가던 중, 미세하게 이질적인 무언가가 삼동이의 시야 한쪽에 걸렸다.
‘…….’
조금 두툼해 보이는 바위 옆 그림자. 나뭇가지 사이 각 또한 어색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삼동이는 그곳을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풍경 속에 섞여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이제 제법 익숙했다. 하지만 저건 세 명의 형들이 자연에 스며드는 방식과는 달랐다. 그는 직감적으로 다른 누군가임을 알 수 있었다.
‘한 명이 더 있다고는 안 했는데…….’
삼동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 형들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인지 이대로 넘기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자연스레 방향을 튼 삼동이는 3인조가 있을 고개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조용히 산을 빠져나왔다.
‘영감님한테 말씀드려야 해.’
곧장 봉주네 대문을 밀고 마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매일 보던 그대로였고, 처마 밑에 걸린 풍경도 바람에 유유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코끝에 낯선 냄새가 걸린 것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들었다.
봉주에게선 맡아 본 적 없는 담배 향과 기름기 섞인 금속 냄새. 삼동이의 머릿속에 삐뽀삐뽀― 경고음이 울렸다. 막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등 뒤에서 의문의 기척을 느낀 삼동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
생전 처음 마주하는 낯선 얼굴들이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두 명의 남성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번갈아 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녕. 형아들은 누구야?”
* * *
처음 기업 후원 행사 소식을 접했을 때, 무혁은 폐분교 지하에 임시 통제실을 차려 놓았다. 이곳은 봉주가 사제 무기를 숨겨 두었던 공간이었다. 무혁은 내부를 정리하고 간이 전원 장치와 통신 중계기를 설치했다. 외부 전파를 최소화하는 차폐막이 덧대진 벽 한쪽에는 마을 지도가 붙어 있었다.
아침 공기가 아직 덜 풀린 시간, 무혁의 단말기가 짧게 진동했다. 그는 암호 채널이 뜬 화면을 내려다보며 잠시 눈을 좁혔다.
<A조 보고. 북서 사면 비인가 침입 흔적 확인. 인원 3 이상 추정. 반복 이동 흔적 있음.>
무혁이 곧장 버튼을 누르자 통신이 연결되었다.
“자세한 상황 보고해.”
-북서 사면 3구간. 어제 1회 통과 흔적 확인했는데, 오늘 동일 지점 재진입 흔적 추가로 식별됐습니다. 보폭 일정, 동선 겹침 없음. 최소 3인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민간인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일반 산행 동선과 다릅니다.
흔적의 신선도로 보아 두 시간쯤 된 것 같다는 보고에 무혁의 시선이 지도로 옮겨 갔다. 북서 사면이면 하임의 집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였다. 우연히 스친 동선이라 보기에는 각이 지나치게 정확했다.
무언가 더 물으려는 순간, 문이 급하게 열리며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캡틴, B조 교신 왔습니다. 비상 상황입니다.”
실내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B조는 무혁이 별도로 배치한 잠입 요원들로, 봉주의 경호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통신 채널을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