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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69화


69. “네, 캡틴.” “그리고 배소진 히스토리 전부 훑어. 가족, 지인, 예전에 근무했던 지역, 접촉 기록까지.” “확인했습니다.” 무혁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만일 하루타가 하임을 데리고 움직이고 있다면 필시 소진에게 전달받은 목적지가 있을 것이고, 그곳이 어딘지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또한 하임이 하루타와 단둘이 있다는 전제 또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변수였다. 하루타가 배신을 할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다. 무혁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결코 하루타를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달리는 차 안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쉼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던 성기의 손이 잠깐 멈췄다. “동해와 관련된 지역은 두 곳으로 추정됩니다. ‘설동리’와 ‘해망리’라는 어촌 마을이요. ‘설동리’엔 누나의 외가가 있고, ‘해망리’엔 누나 부모님이 땅을 하나 사 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은 소유주 명의가 자매분으로 바뀌어 있고요.” “…….” 무혁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공식 루트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곳. 국정원과도 작전 기록과도 관계없는 보잘것없는 장소였다. 만약 정말로 소진이 그곳까지 끌어들인 거라면 그건 상황이 매우 급박했다는 뜻일 터였다. 내심 차를 돌려야 하나 고심했던 무혁은 이번에도 제 촉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해망리’로 좌표 찍어.” * * * 바닷바람이 스며든 공기가 차 안으로 희미하게 들어왔다. 하임은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가볍게 고르고 있었다. 아까보다 소리는 덜 거슬렸지만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도심을 벗어난 뒤로는 머리를 짓누르던 압력이 조금 가신 느낌이었다. 어느새 창밖 풍경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높은 건물 대신 낮은 집들이 이어졌고, 길가에는 오래된 방파제와 작은 어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들어왔다. 하임은 그제야 소진이 말했던 곳이 이 근처일 거라고 짐작했다. “거의 다 온 거예요?” 조심스럽게 묻자 하루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선은 계속 도로 위에 붙어 있었다. 그때였다. 차량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알렸으나, 하루타는 별안간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차가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자 하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왜 그러세요, 하루타 씨?” “…….” “안내 방향은 저쪽인데…….” 왠지 표정이 눈에 띄게 굳은 하루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그대로 점점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외진 도로가 펼쳐졌다. “하루타 씨?” 하임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린 뒤에야 하루타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마을 입구에 서 있던 차 봤어요?” “어떤 차요?” “검은 승합차.” 하임은 잠깐 기억을 더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요. 못 봤어요.”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어쩌면 소진 씨를 잡아간 놈들이 이곳에 먼저 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타는 다른 차량과 달리 유독 선팅이 짙었던 승합차를 떠올렸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낡은 트럭이나 오래된 승용차 사이에서 이질적인 광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닷바람에 색이 바랜 차체들 사이에서 그 승합차만 유난히 반질거렸고, 그 자체로 이미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승합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하루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같은 차종의 검은 승합차 두 대. 서로 다른 골목에 세워져 있었지만 위치가 묘했다. 비스듬히 마주 보듯 각도를 틀어 두고, 건물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연이라 보기엔 배치가 지나치게 계산적이었고, 하루타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I.D.C에서 근무하던 시절, 작전을 준비할 때마다 등장하던 익숙한 패턴이었다. 차량 두 대를 갈라 세워 시야를 나누고, 도로와 골목을 동시에 감시한다. 외부에서 보면 그저 주차된 차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서로의 사각을 메우며 움직임을 포착하는 방식. 그 승합차들이 마을 주민의 차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하임의 얼굴이 덩달아 딱딱하게 굳었다. “하임 씨, 운전할 줄 압니까?” “아니요. 면허도 없는걸요.”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하루타가 혀를 짧게 찼다. 소진은 제 딴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차선책을 제시한 듯하나 그마저 간파당한 모양이었다. 전 연인이라는 놈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듯싶었다. 하루타는 말없이 핸들을 몇 번 더 꺾더니 어딘가에 차를 세웠다. “내려요.” “……네?” “얼른.” 하루타는 소진의 블랙폰을 하임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들 따돌려 볼 테니 하임 씨는 어떻게든 숨어 있어요.” “…….” “위치 추적을 피하려면 전원 켜자마자 바로 설정을 바꿔야 합니다. 네트워크 차단하고 ‘오프 그리드 모드(Off-grid Mode)’로 전환해요. 위치 송신은 꺼짐 상태 유지, 필요할 때만 수동으로 켜요. 전화 와도 받지 말고 메시지 먼저 확인하고 응답하고요.” 하임은 당황한 얼굴로 그 말을 들었다. 급변하는 상황에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빠르게 이어지는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블랙폰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미끌거렸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하루타 씨는 어쩌시려고요?” 조심스레 묻자 하루타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가 짧게 덧붙였다. “울프독이 연락할 겁니다. 연락처 맨 위에 등록돼 있을 거예요. 그 사람한테서 오는 메시지만 확인하세요.” 하임의 시선이 블랙폰 화면으로 떨어졌다. “하임 씨 개인 폰을 포함해서 다른 전자기기는 전부 꺼 두는 게 좋습니다. 괜히 건드리면 신호 잡힐 수 있어요.” 하루타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울프독이라면 하임 씨를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하루타는 더 말을 붙일 틈도 없이 그대로 빠르게 나아갔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하임의 심장은 점점 더 세차게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이렇게 멍하니 서 있을 때가 아니야.’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 그녀는 블랙폰 전원부터 눌렀다. 곧장 설정을 바꾼 뒤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철판의 떨림, 전깃줄의 미세한 울림. 도심보다 훨씬 조용한 곳이었지만, 하임의 귀에는 여전히 수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 그녀는 다소 조급한 마음으로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때, 아주 멀리서부터 엔진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하임의 눈이 커졌다. 엔진은 하나가 아닌 두 대였다. 그녀는 더 고민할 틈 없이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오래전에 쓰다 만 수산 창고인 듯했다. 바닷바람을 오래 맞은 벽면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입구에는 녹이 번진 철문이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간판이 있었을 자리에는 색이 바랜 틀만 남아 있었고, 바닥에는 말라붙은 소금기와 모래가 뒤섞여 있었다. 하임은 더 살필 겨를도 없이 철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예전에 생선을 손질하던 곳인지 거칠게 닳은 바닥이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쪽에는 낡은 스티로폼 박스와 플라스틱 통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그 사이로 몸을 낮췄다. 엔진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자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제발.’ 곧 차가 도로를 스치는 소리가 들리자 하임이 눈을 꼭 감았다. 차는 금세 멀어졌고,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려다가 얼어붙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다른 차가 바로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이내 엔진이 꺼지며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철컥― 미닫이문이 거칠게 열렸다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낯선 발걸음이 바닥을 울리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패닉에 빠진 하임의 숨이 순간 가슴 어딘가에서 막힌 듯 멎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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