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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81화


81. 무혁은 그를 고요히 내려다보며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최이연과 이무열 시신 어떻게 했어.” “…….”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중성의 입은 내내 굳게 닫혀 있었다. 숨을 고르는 기색조차 없이, 맞은 충격을 그대로 삼킨 채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무혁은 그 모습을 경멸스럽게 내려다보다가 한 번 더 주먹을 꽂았다. 중성의 몸이 힘없이 옆으로 무너지자 그가 천천히 한 발 물러섰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네 부모가 죽었을 당시, 그때도 청명국 내부에선 자국민을 실험체로 넘기거나 장기를 적출해 외부로 넘기던 시기였다. 대상은 전부 부모 없는 애들이었고, 쓸모 있다고 판단된 애들만 골라 조용히 밖으로 빼냈지.” “…….” “근데 당시에 유일하게 그걸 문제 삼은 이들이 네 부모였다더군. 작전 자체를 막으려 했고, 최소한 선을 넘지 않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알다시피 거긴 명령에 이유를 묻는 순간 불순분자로 낙인찍히는 구조다.” 중성의 부모는 간첩 활동을 위해 해외에 파견되었다가 귀환한 직후였다. 외부를 보고 돌아온 만큼 시야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상부는 그들의 충성심을 의심했다. 사상이 흐려졌다, 정신이 오염됐다, 그런 식의 평가가 내려졌고, 판단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쓸모가 다했다고 결론 내리자마자 바로 폐기했다는 거다. 죽이고 나서는 작전 중 사망으로 처리하고 관련 기록은 전부 봉인. 그걸 직접 집행한 놈이 전(前) 청명국 총무관, 림영일이고. 네가 부모만큼 신뢰했던 인간이었다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중성이 턱을 단단히 다물었다. “그 새끼, 그때도 똑같았다는 걸 아나? 고아들 나이 차면 하나씩 빼돌려서 중국으로 넘기거나 해외로 보내고, 쓸모 있으면 팔아먹고 아니면 버렸다더군. 애초에 너도 자라면 팔아넘길 대상이었을 뿐이야. 가축처럼.” 취조실 안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차게 내려앉았다. “그런데 넌 네 부모를 죽이고 널 팔아넘기려 한 새끼를 위해서 인생을 바친 것도 모자라, 네 부모가 목숨 바쳐 막으려던 짓을 대신 해 주고 있었던 셈이지. 웃기지 않나?”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중성을 보며 무혁이 싸늘한 비소를 흘렸다. “팩트를 믿고 안 믿고는 네 선택이야. 다만 그 선택으로 어디까지 추락할지는, 그 또한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이내 그는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의자를 발로 밀어 치우고 문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뒤에 남겨진 건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떨군 중성과, 바닥에 흩어진 그의 핏자국뿐이었다. * * * 퇴원한 이후, 하임은 낯선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녀의 새 거처가 된 주택은 전에 머물던 곳보다 규모나 구조적으로 더 컸고, 특이점이 하나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형태의 주택이 ‘ㄷ’ 자로 나란히 이어진 것이다. 데칼코마니처럼, 혹은 마치 거울을 맞댄 듯 똑같은 배치였다. 그리고 바로 옆집엔 봉주와 삼동이가 들어와 있었다. 이 집을 통째로 매입한 무혁이 하임이 걱정할 일이 없게끔 봉주와 삼동이를 데려다 놓은 것이다. 그녀가 혼자 떨어져 지내지 않도록, 그렇다고 완전히 한 공간에 묶이지도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붙여 놓은 배치였다. 무혁의 배려에 하임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촉촉해진 눈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방도 더 많고 창도 더 넓은 새집은 단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까지 계산된 듯 공간이 환하게 열려 있었다. 처음엔 너무 커서 좀 어색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는 동선이 자연스러워졌고, 마당으로 이어지는 문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게 됐다. 청각도 거의 돌아온 상태였다. 말소리는 또렷하게 들렸고, 일상적인 소리를 구분하는 데도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예전처럼 사방에서 밀려드는 정보가 없었다. 들을 수 있는 범위가 분명히 줄어든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그게 답답하기도 했다. 집 밖에서 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다가도 끊기거나, 멀리서 부르는 소리를 놓칠 때면 저도 모르게 귀를 열려는 습관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랐다. 소리가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다가, 머릿속을 파고들던 잡음도, 억지로 밀려 들어오던 자극도 없었다. 외출 시에도 이런 평온함을 느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나란히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큰 의미였다. 무혁과 집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평범하게 걷고, 멈추고, 다시 움직이는 그 단순한 일이 제게도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았다. ‘이제 슬슬 벚꽃이 필 것 같은데.’ 오늘 아침 식사 중, 무혁이 한 말로 인해 하임은 내내 들뜬 상태였다. [결혼식은 완전한 봄이 되면 올리는 게 좋겠군요. 그때까진 신혼집에서 요양한다고 생각하고.] 무혁과의 결혼이 또 한 발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그녀는 새로 고용된 도우미에게 옆집에 다녀오겠다고 전한 뒤 집을 나섰다. “할아버지!” “우리 강아지는 오늘도 에너지가 넘치는구먼.” 반갑게 외친 하임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성기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임 씨. 점점 안색이 좋아지셔서 다행입니다.” 언제 온 건지 성기는 봉주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약초 캐는 비법 전수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하임이 조그맣게 웃었다. 제 수확물을 높은 가격에 쳐주던 단골 고객이 무혁의 심복이었단 사실을, 이제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삼동이는요?” “삼동이는 뒷마당에 있습니다. 녀석이 그새 실력이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하임은 그대로 거실 테라스 문을 지나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엔 살이 꽤 빠진 삼동이가 묵묵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양손에 복싱 글러브를 낀 채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예전처럼 힘만 잔뜩 들어간 투박한 움직임이 아니라 중심을 잡고 정확하게 꽂아 넣는 타격이었다. 하임은 발걸음을 멈춘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삼동이의 이마에 붙어 있었고, 숨을 고르는 타이밍마저 일정했다. 게다가 체중이 줄면서 드러난 윤곽도 확연했다. 둥글게 흐르던 얼굴선이 정리되고, 눈매와 콧대, 턱선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어깨와 팔은 타고난 체격 덕에 금세 균형이 잡힌 데다가,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얼굴과 몸의 선 자체가 전보다 훨씬 굵어지면서, 무표정으로 있을 때는 선뜻 말을 걸기 어려울 만큼 묵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 친구 삼동이가 맞나…….’ 익숙한 얼굴임에도 어딘가 낯설었다.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타격음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의 삼동이가 겹쳐 보이면서도 지금 눈앞에 있는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삼동이가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싶을 만큼 새삼스럽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카리스마. 삼동이를 보면서 이런 단어를 떠올리게 될 줄은 평생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 하임이다.” 이어서 하임을 뒤늦게 발견한 삼동이가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해맑게 웃는 선한 미소는 그녀가 잘 알던 그 미소였다. 분명한 건 이 모습마저도 전보다 더 근사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삼동아, 안 힘들어? 요즘 들어 운동을 더 열심히 하네.” “응, 열심히 해서 경호원 될 거야. 하임이랑 영감님 지켜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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