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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마사지 1 (6/6 수정: 일러추가)


32화. 마사지 1 (6/6 수정: 일러추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술 냄새와 향수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체온이 뒤섞인 공기가 폐부로 밀려 들어왔다. ​ 가게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곳곳에 낮은 탁자와 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붉은 천과 은은한 촛불이 장식처럼 걸려 있었다. 그 안에는 거의 헐벗다시피 한 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은 누군가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가까이 다가온 여자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 다행히 막 들어온 우리에게는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눈앞의 여자들에게만 시선을 빼앗긴 채, 우리가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처럼 굴고 있었다. ​ “…….” ​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이런 곳에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를 데리고 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목을 조여왔다. ​ 그때 안쪽에서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여자가 다가왔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노출이 거의 없는 검은색 복장이었다. 아마 이곳의 종업원인 듯했다. ​ “손님이신가요?” ​ 루크레치아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품 안에서 루멘시아에게 받은 편지를 꺼내 종업원에게 건넸다. ​ “이걸 전해달라고 들었어요.” ​ 종업원은 편지를 받아 들고 봉인을 확인했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그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안쪽 복도로 사라졌다. 우리는 입구 근처에 선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가게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헐벗은 여자들은 웃으며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 손끝으로 어깨를 쓸고,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익숙한 동작으로 팔짱을 꼈다. 그러면 남자들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한 명씩 안쪽 복도로 데려갔다. ​ “카엘군.” ​   엘레노아가 아주 작게 나를 불렀다. ​ “너무 굳어 있어.” “안 굳었어.” “거짓말.” ​ 그녀는 억지로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평소 같은 여유가 많지 않았다. 루크레치아 역시 말없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평범한 로브의 후드를 눌러쓴 모습이었지만, 자세와 분위기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 그때였다. ​ “어머?” ​ 옆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얇은 옷차림의 여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셋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 “여기까지 들어와서 그렇게 멀뚱히 서 있는 사람들은 오랜만이네.” ​ 루크레치아가 별다른 대꾸 없이 그녀를 살짝 쳐다봤다. 그러자 여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 “흐응….” ​ 여자는 천천히 루크레치아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루크레치아의 후드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 “그런데 이런 곳 안까지 들어와서 후드를 눌러쓰고 있는 건 좀 수상하지 않아?” “그만 다가오세요.” ​ 루크레치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여자는 그 경고를 장난처럼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그녀가 능숙하게 대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착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녀 역시 나만큼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큼 다가와 품에 안기듯 달라붙는 여자를 그냥 두었을 리가 없었다. ​ “에이. 얼굴 좀 보자고.” ​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 휙. ​ 루크레치아의 후드가 벗겨졌다. 짧은 금발과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불빛 아래 드러났다. 순간 주변의 소란이 아주 잠깐 낮아진 것 같았다. ​ 아까까지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던 몇몇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루크레치아는 천천히 여자를 바라봤다.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여자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듯 미소를 굳혔다. 나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 “죄, 죄송해요.” ​ 여자는 곧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마자 몇몇 남자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 “뭐야. 저 여자도 이 가게 사람이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새로 들어온 애인가? 왜 저런 걸 숨겨놨어!” ​ 그들의 눈빛은 노골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각자 앞에 있던 여자들에게 정신을 빼앗겨 있던 자들이, 이제는 전부 루크레치아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야, 직원! 저 여자 예약 되냐?” “얼마면 돼? 오늘 밤 통째로 빌릴 수 있어?” “옆에 남자는 뭐야. 손님이야? 아니면 호위야?” “호위면 비켜. 돈은 충분히 낼 테니까.” ​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들의 모습에 나는 다급히 루크레치아의 앞을 막아섰다. ​ “물러나십시오.” ​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그들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술기운과 흥분으로 얼굴이 벌게진 남자 하나가 내 어깨를 거칠게 밀치려 했다. ​ “비켜. 여긴 그런 거 하러 오는 곳 아니야?” “저 여자가 싫다고 한 적 없잖아!” “가격부터 물어보자는 건데 뭘 그렇게 막아?” ​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가온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비틀었다. ​ “아악!” ​ 비명소리가 가게 안에 울렸다. 평범한 사람과 제국 기사의 육탄전이 성립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남자가 흥분해서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가 그의 팔을 잡아당기고, 균형을 무너뜨린 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혔다. ​ 쿵! ​ “윽!” “더 다가오지 마십시오.” ​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제야 남자들은 멈춰 섰다. 하지만 완전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채로도 그들은 여전히 루크레치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보듯 훑고 있었다. ​ 불빛 아래 드러난 짧은 금발. 차갑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 로브로 가리고 있어도 숨겨지지 않는 몸의 선. 그 모든 것이 이곳의 남자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이었던 모양이었다. ​ “젠장…….” “진짜 가게 애가 아닌가?” “아니면 귀한 손님 전용인가 보지.” ​ 낮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안쪽 복도에서 아까 편지를 들고 들어갔던 종업원이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들과 굳어 있는 분위기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아주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 종업원은 우리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주변의 남자들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이분들은 일반 손님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세요.” ​ 그 말에 남자들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러났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끝까지 루크레치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종업원은 그 시선들을 확인하더니 우리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그녀는 조심스럽게 복도 방향을 가리켰다. ​ “이쪽으로 오시죠.” ​ 루크레치아는 말없이 후드를 눌러썼다. 나는 묘하게 불쾌한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두 사람과 함께 종업원을 따라 안쪽 복도로 들어갔다. ​ “이쪽입니다.” ​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 안에는 한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길쭉한 곰방대를 손에 든 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후우우…….” ​   얇은 연기가 천천히 허공으로 흩어졌다. 붉은 머리카락은 타오를듯이 아름답게 빛났고, 보라색 눈동자는 나를 느긋하게 올려다봤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마치 귀족과도 같았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묘한 기품이 있었다. ​ “어서 오렴.” ​ 그녀는 우리를 한 번 훑어본 뒤, 곰방대를 입에서 뗐다. ​ “루멘시아의 소개장이라…….” ​ 마담은 손에 들린 편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 “그 여자의 부탁은 거절하기가 어렵지. 귀찮은 부탁만 골라서 가져오는데도 말이야.” “당신이 이곳의 주인입니까?” ​ 내 질문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 “다들 그냥 마담이라고 부르니 너희도 그렇게 부르렴.” ​ 그 호칭이 이 장소에는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나는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마담이 먼저 웃었다. ​ “긴장할 필요 없어. 소개장 내용은 대충 읽었으니까.” “그럼…… 저희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 겁니까?” ​ 내 질문에 마담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 “마사지 가게에 왔으니 마사지를 받아야지.” “예?” ​ 내가 멍청하게 되묻자, 마담은 작게 박수를 쳤다. ​ 짝짝. ​ 그러자 문이 열리고, 남자 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둘 다 상반신은 드러낸 채 하의에는 수건 하나만 두르고 있었다. 한 명은 탄탄한 근육질을 가졌고, 다른 한 명은 상당히 체구가…, 그러니까 뚱뚱했다.   ​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마담은 아무렇지도 않게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를 가리켰다. ​ “이 두 사람을 맡아.” “…….” “기본적인 마사지부터 시작해. 절대 손님들이 원하지 않는 행위는 하지 말고.” ​ 남자 둘은 고개를 숙였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눈치껏 해. 오늘 손님들은 평범한 손님이 아니니까.” ​ 그 말에 두 남자의 시선이 아주 잠깐 우리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마치 훈련된 병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마담은 이번에는 옆에 서 있던 여종업원을 불렀다. ​ “준비실로 안내해.” “예, 마담.” ​ 여종업원은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 “두 분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마사지 받기 편한 상태로 준비를 도와드리겠습니다.” ​ 그 말에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분명 여기까지 오기로 한 건 우리 셋의 결정이었다. 강요도 아니었다.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막상 눈앞에 상황이 닥치자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 “카엘군.” ​ 엘레노아가 먼저 작게 웃었다.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려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 “너무 그런 얼굴 하지 마.” ​ 루크레치아도 조용히 말했다. ​ “괜찮아요. 카엘.” ​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편지를 받을 때처럼, 그 차분함 아래에 숨겨진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 “원하지 않으면 바로 멈춰.” ​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알고 있어.” “그렇게 할게요.” ​ 여종업원은 두 사람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나와 마담만 남았다. 마담은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 “표정이 아주 죽상이구나.” “…….” “그러게. 루멘시아가 보낸 손님들은 늘 골치 아프다니까.” ​ 나는 닫힌 문을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담은 그런 나를 한동안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런데 너는 뭐 하니?” “예?” ​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마담은 곰방대를 입에서 떼고,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여기까지 와놓고 혼자 멀뚱히 앉아 있을 생각이었니?” “그게…… 저는…….” ​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너무 갑작스러웠다.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가 다른 방으로 안내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제 나까지 무언가 해야 한다는 듯 말하니 사고가 따라가질 못했다. 마담은 내 반응이 우스운지 낮게 웃었다. ​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며?” “……!” ​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루멘시아가 아주 자세히 적어놨더구나.” “그 여자는 도대체…….” “그러니까 너도 준비해야지.” ​ 마담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 “보러 왔으면 볼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치심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마담은 그런 내 반응을 조금 더 감상하듯 바라보다가, 곧 작게 박수를 쳤다. ​ 짝. ​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종업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남자였다. 그는 별다른 표정 없이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나는 잠시 마담을 바라봤다. 마담은 곰방대를 다시 입에 물고 어깨를 으쓱했다. ​ “원하지 않으면 여기서 그만둬도 돼.” “…….” ​ 그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 종업원은 말없이 나를 방 밖으로 안내했다.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밖의 소란이 두꺼운 벽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발소리만 희미하게 울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작은 방 앞에 도착했다. 탈의실이었다. 종업원은 문을 열고 안쪽을 가리켰다. ​ “이곳에서 옷을 벗으시면 됩니다.” “전부…… 말입니까?” “예.” ​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문 옆에 선 채 내가 들어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 “하아…….” ​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좁은 공간에 혼자 남았다. 벽에는 옷을 걸 수 있는 걸이가 있었고, 한쪽에는 얇은 천과 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나는 잠시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벗었다. 몸을 가리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이상하게 현실감도 함께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자, 나도 모르게 살짝 발기되는 것 같았다. 수건을 허리에 둘러 대충 가린 뒤 탈의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은 내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는 듯, 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숙였다. ​ “이쪽입니다.” ​ 나는 괜히 수건 끝을 한 번 더 움켜쥔 채 그를 따라갔다. 복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소란은 점점 멀어졌다. 대신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꽃향기 같기도 하고, 약초를 달인 냄새 같기도 한 묘한 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은 복도 끝에 있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 “들어가시면 됩니다.” ​ 그가 문을 열었다. 안쪽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 방 한가운데에는 커튼으로 반쯤 가려진 마사지용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침대 사이에는 작은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각종 병과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 향유가 담긴 유리병, 접힌 수건들,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 ​ 침대 위를 덮은 얇은 커튼은 사람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비칠 정도로만 투명했다. 완전히 가려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난 것도 아닌 애매한 거리감.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며 숨을 삼켰다. ​ 두 개의 침대와 그 사이에 놓인 의자. 그 의자가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는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나는 천천히 그 의자를 바라봤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그곳에 앉아 모든 걸 지켜보도록 준비된 자리 같았다. 나는 결국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나무 의자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나는 몇 번이고 문 쪽을 바라봤다. 내 반대편에 있는 두 개의 문. 각자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걸까…….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 그때 문 너머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기척. ​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가 드디어 온걸까…?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무릎 위에서 움켜쥐어졌다. 곧 문 앞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 끼이익.   ​ 문이 천천히 열렸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루크레치아였다. 그녀는 새하얀 나신을 커다란 수건 한 장으로 겨우 덮고 있었다. 하지만 수건은 이미 따뜻한 물에 적셔진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천이 피부에 달라붙은 탓에 오히려 몸의 선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 쇄골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곡선. 풍만한 가슴의 윤곽. 잘록한 허리와 단단하게 단련된 허벅지까지. 가리기 위해 두른 수건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녀의 몸을 그대로 비춰내는 얇은 막처럼 보였다. ​ “카엘…….” ​ 루크레치아는 방 안에 앉아 있는 나를 보자 아주 작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고 가늘었다. 그녀는 곧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평소라면 어떤 전장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이 낯선 방 안에서, 내 시선 하나에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 “루크레치아…….” ​ 그때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 들어왔다. 아까 보았던 근육질의 남자였다. 하의에 수건 하나만 두른 채였지만, 태도만큼은 지나치게 정중했다. 그는 루크레치아의 뒤에 조용히 서더니,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손을 올렸다. ​ 그리고 양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루크레치아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 남자는 곧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의 손은 무례하지 않았다. 그저 손님의 상태를 확인하는 전문가의 손길처럼 조심스러웠다. ​ “불편하신 점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원하지 않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네.” ​ 루크레치아는 작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도 여전히 긴장이 배어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엘레노아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괜히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 그때 문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두 명의 기척. 아무래도 엘레노아와 아까 본 그 뚱뚱한 남자인 걸까…. ​ “또 말썽이군.” ​ 그때 근육질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곤 루크레치아의 어깨에 올린 손을 내리며 문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문을 벌컥 열었다. ​ “손님 동의 없이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손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하으…. 하읏….” ​ 안쪽에서 엘레노아의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장난? 도대체 무슨 장난이기에……. ​ “허허. 미안해. 미안해. 늦어서 죄송합니다. 손님.” ​ 곧 뚱뚱한 남자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 “여성 손님이 너무 굳어 계시길래 조금 도와드렸습니다. 어이쿠, 아직 못 나오시네. 부끄러우신가 봅니다. 제가 모셔 오죠.” ​ 남자는 다시 문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 “손님. 천천히 나오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다들 처음에는 조금 긴장하시니까요.” ​ 문 너머에서 엘레노아가 작게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엘레노아가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젖은 수건 너머로 솟아오른 가슴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몸을 잘게 떨며 휘청거렸다. 순간 앞으로 넘어지려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르게 문 너머에서 양 손이 뻗어 나와 그녀의 몸을 꽉 쥐었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역겨울 정도로 뜨거운 감각이 치밀었다. 분노인지 흥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꽈악!   ​ “어이쿠! 조심하셔야죠. 아직 긴장이 덜 풀리신 모양입니다.” “하으응…!” ​ 뚱뚱한 남자의 양손은 잡아주는 척, 수건 위로 그녀의 가슴을 쥐고 있었다. 한 손은 그녀의 유륜 주위를 움켜쥐듯 쥐어 마치 젖을 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얼굴은 그녀의 쇄골에 깊게 박은 채 그녀의 살내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 “하읏…. 그마안…. 카엘군이 본다고…….” “이런 이런. 잡아드린다고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미안함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는 듯, 살짝 상기된 채 엘레노아의 몸을 바로 잡아주고 가슴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그녀의 양어깨에 두터운 손을 올려둔 채,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손님. 그럼 안마를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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