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긴급 의뢰
44화. 긴급 의뢰
두 사람이 나를 위한 이벤트를 해준 이후로 우린 조금 더 문란(?)해진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욕망을 채우려고 서로를 탐하고 내 성도착증에 맞춰 야외에서 자위하거나 아니면 같이 몸을 섞기도 했다.
“적당히 욕망을 해소하라고 했지. 욕망의 노예가 되라곤 안했던 것 같은데…….”
옛 신의 정수에 대해 얘기할 게 있다고 해서 루멘시아를 만나러 가니 들었던 소리였다.
그녀는 내가 욕망을 편하게 해소할 수 있게 여러가지 도움을 줬는데, 처음 마사지 가게나 두 사람이 준비한 이벤트의 보조 역할을 해줄 화가나 옷가게들을 소개해준 것말고도 여러 시기 적절한 도움을 주곤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얼마나 하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때 한 병만 마셔. 딱 한 병. 약효는 딱 하루야.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무조건 바로 해소해야해. 안그러면….”
루멘시아는 자신의 머리가 터지는 시늉을 했다.
급한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응급약 같은 걸 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네가 미궁에서 흡수한 기운은 천만 다행으로 심연의 사도의 기운은 아니야. 만약 심연의 사도의 기운을 또 흡수한 거였다면, 지금쯤 네 욕망은 내가 손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 거야….”
“그래서 다른 옛 신도 있다는 겁니까?”
“너도 책을 읽어봤잖아. 거기에 적혀 있는 애들…. 네가 미궁에서 흡수한 기운을 살펴봤는데 살점의 범람이라는 녀석이야. 원래는 피그미라는 아인종의 신이었는데 그들이 제국에 의해 멸족당하고 타락했지.”
“……또 그런 녀석의 기운이…….”
“하지만 걱정마. 당장 눈에 띄는 변이나 정신 침식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피그미들의 세력도 원래부터 약했고 그 녀석들의 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오히려 조금 더 괜찮은 걸 얻을 수도 있어. 예를 들면 살점의 범람이 만들어낸 마물들을 조종한다거나”
“그런 걸 조종해서 어디다 쓰죠?”
루멘시아는 싱긋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글쎄? 그건 네가 알아봐야겠지?”
그 뒤로도 그녀는 내게 살점의 범람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건네주었다.
“그 녀석은 미궁이나 지하 던전 같은 곳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니까 조심하면 돼. 거기다가 놈이 하는 거라곤 자신의 힘으로 마물을 만들어내는 것 뿐이라 심연의 사도하곤 비교가 안될정도로 무해한 놈이야. 거기다가 성질이 다른 두 기운이 네 몸을 차지하려고 서로를 밀어내고 있어. 덕분에 심연의 사도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건 막아주겠지.”
“그렇다면 다른 옛 신들의 기운을 흡수하면 심연의 사도의 힘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나요?”
루멘시아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다간 네 몸 안에 있는 옛 신들의 기운이 서로 손잡고 네 몸을 찢어버릴거야.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너무 많은 기운을 흡수할 생각은 하지마.”
끔찍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졌다.
루멘시아는 그런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더니 곧 나가보라고 손을 훼훼 저었다.
루멘시아가 건네준 약병을 챙겨 숙소로 돌아왔을 때 방문 안쪽에 처음 보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문틈 아래로 밀어 넣은 모양이었다.
고풍스러운 종이 위에는 제국 기사단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멋드러진 문양과 고풍스러운 종이.
제국 기사단 지부에서 보낸 편지였다.
-내일 해가 뜬 직후 기사단 지부로 모일 것.
그 아래에는 지부장의 서명과 기사단 인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접어 들고 곧장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를 찾았다.
“기사단에서 연락이 왔어.”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
나는 편지를 펼쳐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유도 없이 모이라고만 했네요?”
“응. 시간하고 장소만 적혀 있어.”
루크레치아는 편지 아래 찍힌 인장을 확인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공식 명령은 맞아요.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네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아.”
“그럼 오늘은 일찍 쉬는 게 좋겠네요.”
엘레노아가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늦잠은 안 잘게요.”
그날 저녁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우리는 편지에 적힌 대로 이른 아침부터 아르세인 기사단 지부로 향했다.
아침의 아르세인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온했다.
하지만 지부에 가까워질수록 묘하게 공기가 달라졌다.
정문 앞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출입하는 사람도 적었고, 문을 지키던 경비의 표정도 유난히 굳어 있었다.
우리가 신분을 밝히자 그는 짧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곧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분위기가 이상하네.”
엘레노아가 목소리를 낮췄다.
“가벼운 일은 아닌 것 같아. 카엘군.”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지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그 느낌은 더 강해졌다.
아르세인은 치안이 안정된 도시라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제국 기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항상 지부는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라면 지부원 한두 명이 서류를 정리하고 의뢰를 마친 기사 몇 명이 조용히 보고를 올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의 고요함은 그런 평소의 한산함과 달랐다.
접수대에 앉은 직원은 우리를 확인하고도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복도에 서 있던 지부원들 역시 굳은 얼굴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마치 지부 전체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말없이 중앙 홀로 향했다.
발소리 하나하나가 넓은 홀 안에 또렷하게 울렸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낯선 얼굴들이었다.
둘이나 셋씩 짝을 지은 파티도 있었고 혼자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기사도 있었다.
누구 하나 크게 떠들지 않았다.
대부분은 굳은 표정으로 서로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서 안쪽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안쪽 문이 열렸다.
홀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지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따라 지부원 몇 명이 줄지어 나왔고, 그중 한 명은 커다란 종이 두 장을 들고 있었다.
지부원은 말없이 홀 중앙 벽으로 다가가더니, 종이 두 장을 나란히 걸었다.
한 장은 지도였다.
아르세인 남부와 도시령 외곽, 그리고 그 아래쪽 경계 구역까지 표시된 지도.
다른 한 장에는 두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제국 기사 정복을 입은 두 사람.
그 순간 홀 안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지부장은 우리를 천천히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모여줘서 고맙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딱딱했다.
“이번 일은 일반적인 의뢰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였기에 그대들을 불렀다.”
홀 안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부장은 벽에 걸린 두 초상화를 바라봤다.
“저 두 사람은 아르세인에서 활동하던 제국 기사들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확히는, 제국 기사였다고 말해야겠지.”
그 한마디에 주변의 기류가 바뀌었다.
나는 벽에 걸린 초상화를 바라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지부장은 잠시 침묵을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평소 행실이 모범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맡은 의뢰는 성실히 수행했다.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지.”
그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제국 기사는 쉽게 배신하지 않는다.
평민 출신에게 제국 기사는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황제의 검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보호받고, 신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며, 공을 세운다면 준귀족에 가까운 대우까지 받을 수 있다.
몰락 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을 다시 일으킬 마지막 기회.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다시 중앙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발판.
루크레치아와 엘레노아가 그랬고, 어쩌면 아카데미에 들어온 수많은 몰락 귀족들이 그랬을 것이다.
황제에게 충성하는 귀족 출신 기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제국 기사의 이름은 가문의 충성을 증명하는 상징이었다.
황제의 신임을 얻고 정적들을 견제하며 제국 안에서 자기 가문의 위치를 더욱 단단히 만드는 수단이었다.
“사흘 전.”
지부장은 벽에 걸린 지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은 아르세인 외곽 마을의 마물 출몰 의뢰를 받고 출동했다.”
지부원의 손가락이 지도 위 작은 마을 하나를 짚었다.
“쉽게 해결될거라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의뢰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다.”
지부장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그들은 마물 대신 마을 주민들에게 검을 들었다.”
홀 안에서 낮은 숨소리가 번졌다.
“마을 남성 대부분이 살해됐다. 저항한 자들은 물론이고, 무기를 들지 않은 주민들까지 베였다.”
누군가 작게 욕설을 삼켰다.
“그리고 일부 여성들이 납치됐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홀 안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제국 기사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범죄였다.
“그들은 이후 인근의 소규모 도적단과 합류했다.”
지부원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따라 아르세인 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움직였다.
아르세인 도시령의 외곽.
그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산림 지대.
그리고 더 아래에는 이종족과의 마찰이 잦다고 표시된 경계 구역이 있었다.
“도적단에 합류한 뒤 그들은 아르세인 도시령 외곽을 통해 남하했다.”
지부장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현재 추적은 여기서 끊겼다.”
지부원의 손가락이 지도 한가운데 멈췄다.
“이종족과의 마찰이 잦은 남부 경계 구역 인근이다.”
홀 안이 조용해졌다.
아르세인 주변은 제국 안에서도 상당히 치안이 안정된 편이었다.
하지만 도시령의 경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곳은 제국의 정복전쟁 당시에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지도 위에는 제국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숲과 산지 곳곳에 이종족들의 근거지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제국이 내전으로 숨을 고르는 사이 이종족들의 움직임은 다시 활발해졌다.
그런 곳으로 변절한 제국 기사들이 도적단과 함께 사라졌다.
좋은 징조일 리가 없었다.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국경으로 향했어야 한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약탈 후 흩어졌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굳이 도시령 외곽을 지나 이종족과 마찰이 있는 남부 경계 구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나 더.”
지부장의 말에 홀 안의 시선이 다시 집중됐다.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보고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술렁임이 제법 크게 번졌다.
“소수지만, 의뢰를 수행하러 나간 제국 기사들이 남부 경계 구역 방면으로 향한 뒤 실종된 사례가 있다.”
“그들도 변절한 겁니까?”
한 기사가 물었다.
지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정할 수 없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행방이 끊긴 방향이 지나치게 유사하다.”
단순한 배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미 계획된 것처럼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의뢰를 수행하던 제국 기사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사라진다.
그중 일부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일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행방이 끊긴다.
그리고 그 끝은 모두 이종족과의 마찰이 잦은 남부 경계 구역을 향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그들은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전.
제국이 가장 오래, 가장 깊게 피 흘렸던 단어.
이미 여러 번 제국을 찢어놓았던 악몽
그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실종된 다른 기사들에 대한 인상착의와 상세 기록는 곧 다시 전달할 예정이다.”
지부장은 홀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지금은 우선 확인된 두 명을 중심으로 추적한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건 단순한 도적 토벌이 아니다.”
그는 벽에 걸린 초상화를 바라봤다.
홀 안의 기사들은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무게를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같은 제국 기사였다.
“잠깐.”
그때 홀 한쪽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슬슬 소란스러워지던 홀 안의 목소리들이 일제히 잦아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손을 든 남자에게 향했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기사였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크게 주눅 들지 않았다.
“말씀대로라면 이미 여러 명의 제국 기사가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는 벽에 걸린 초상화와 지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중 둘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도적단과 합류했습니다. 다른 자들도 아직 변절했는지 확인되지 않았을 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고요.”
지부장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기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상대가 정말 계획적으로 기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면, 지금 이곳에 모인 인원으로 충분합니까?”
홀 안이 술렁였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물론 이곳에 모인 기사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단순한 도적단이 아니라, 변절한 제국 기사들과 그 배후에 있을지 모를 누군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목적지는 남부 경계 구역.
이종족과의 마찰이 잦고 제국의 통제력이 약해지는 곳이었다.
지부장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다.”
그의 대답에 홀 안의 소란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 역시 그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부장은 손을 들어 벽에 걸린 지도를 가리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충분하지 않다.”
짧은 대답이었다.
홀 안에 작은 동요가 번졌다.
지부장은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남부 경계 구역 전체를 수색하고 변절 기사들과 도적단, 그리고 그 배후까지 한 번에 토벌하기에는 지금 이곳에 모인 인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들 입을 열기보다는 지부장의 말을 기다렸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본격적인 토벌이 아니다.”
지부장은 지도 위 남부 경계 구역을 가리켰다.
“여기 모인 기사들은 1차 선발대다.”
선발대.
그 말에 홀 안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지부장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첫째, 변절 기사들과 도적단이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를 확인한다.”
“둘째, 남부 경계 구역 인근에 임시 거점을 확보한다.”
“셋째, 납치된 민간인과 실종 기사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생존자가 확인된다면 구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상대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거나, 배후 세력이 확인될 경우 무리해서 교전하지 않는다.”
그 말에 아까 질문했던 기사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즉, 교두보 확보와 정찰입니까?”
“그렇다.”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에는 이미 보고가 올라갔다. 인근 지역 지부에도 지원 요청을 넣어둔 상태다.”
그의 손끝이 지도 위 몇몇 지점을 짚었다.
“본부와 다른 지역에서 지원 기사들이 도착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토벌 작전으로 전환한다.”
홀 안의 공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무작정 사지로 몰아넣는 작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탓이었다.
물론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 길을 열고 뒤따라올 본대가 그 길을 따라 들어온다.”
지부장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이 아니다. 무리한 돌파도 아니다. 살아서 정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는 홀 안의 기사들을 하나씩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처음 손을 들었던 기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지부장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향했다.
“여기 모인 자들 중 누가 같은 식으로 변절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홀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불쾌한 질문이었지만 틀린 질문은 아니었다.
실종된 다른 기사들은 몰라도 당장 저기 걸려 있는 두 명은 확실하게 배신이 확인된 자들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모인 모두는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이곳에 저 둘의 조력자가 있다면…?
“장담할 수 없다.”
짧은 대답이었다.
몇몇 기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지부장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 모인 자들은 최대한 선별했다. 아르세인 인근에 머무는 기사들 중 최근 행적이 분명하고 지부 기록상 문제가 적으며 동료나 파티를 통해 신원과 동선이 확인되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불렀다.”
그는 홀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완벽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인원들이다.”
그 말에도 손을 든 기사는 완전히 납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지부장 역시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제국 기사의 편력행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의 목소리가 홀 안에 낮게 울렸다.
“낯선 길, 낯선 땅, 낯선 의뢰. 그 모든 곳에서 제국 기사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때로는 마물보다 인간이 더 위험하고 때로는 동료라 믿었던 자가 검을 겨누기도 한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멈춰 설 수 없다.”
지부장은 벽에 걸린 두 초상화를 바라봤다.
“황제 폐하께서 우리에게 검을 맡기신 이유는 단순히 마물을 베고 도적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다. 제국의 질서를 지키고 제국의 백성을 보호하며 제국의 이름이 더럽혀졌을 때 그것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 두 사람은 그 이름을 더럽혔다.”
홀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만약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검을 거둘 수는 없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부장은 손을 들어 홀 안의 기사들을 가리켰다.
“이번 작전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 믿을 수 있는 동료를 확인해라. 기존 파티가 있다면 그대로 움직여도 좋고, 부족하다면 다른 기사들과 임시로 조를 구성해도 좋다. 내일 아침에 함께 행동할 인원을 보고해라.”
그 말을 끝으로 브리핑은 마무리되었다.
제국 기사들은 하나둘씩 굳은 얼굴로 홀을 빠져 나갔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