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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EP0082-0077화-도움의 손길


엘렌브룩. 발테른 공왕가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머물렀다는 동부의 작은 시골 마을. 낮은 구릉과 넓게 펼쳐진 들판,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맑은 개울…. ​ 직접 바라본 엘렌브룩은 듣던 것 이상으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풍경은 다른 이들에 의해 짓밟혀 있었다. ​ 마을 곳곳에는 로엔덤을 상징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무장한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과 마주칠 것 같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집 밖으로 나온 이들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밝은 햇살 아래 펼쳐진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온 곳은 엘렌브룩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였다. 아이들이 비밀 창고로 사용했던 낡은 건물은 우거진 수풀과 나무 사이에 가려져 있었다. 그 덕에 밖에서 쉽게 찾기 어려워 보였다. ​ 언덕 위에 서서 내려다보니 엘렌브룩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인근의 제국 기사 지부를 찾아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로엔덤 가문의 말과 평민 출신 기사인 내 말 중 어느 쪽을 믿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발테른 지역의 기사 지부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무작정 찾아 나선다고 해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 방금 떠오른 방법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려는 찰나, 마을 외곽으로 은밀하게 움직이는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복장만 보면 평범한 마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병사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스레 움직이며 하나둘씩 마을 외곽의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뭘 하려고 모이는 걸까…. 로엔덤 병사들을 경계하는 걸 보니 그들이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닌 듯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봐야 했다.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춘 채 수풀 사이를 지나 언덕을 내려갔다.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건물 뒤편까지 도착한 뒤 벽에 바짝 붙어 안쪽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 당장 미래시나 투시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만 했다. 일단 나는 잠시 몸을 숨긴 채 주변을 살폈다. 한동안 기다려도 더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순찰하는 병사들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담벼락을 넘었다. ​ 안뜰에 발을 디디자 건물 안쪽에서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벽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비교적 선명하게 들리는 창문 아래에 몸을 낮췄다. ​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요?” ​ 누군가 답답한 목소리로 물었다. ​ “공주님을 구해야지.” “그러다 공주님을 구하려는 움직임이 들켜 붙잡혀 간 사람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 곧바로 날카로운 반박이 돌아왔다. ​ “발테른은 이미 무너졌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우리가 희생해야 하는데?” “옛날 일을 벌써 잊은 건가? 공왕가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 마을은 진작 굶어 죽었어. 우리가 지금까지 먹고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분들 덕분이야.” “하지만 그 공왕가는 결국 우리를 버리고 떠났잖아!” “떠난 게 아니야.” ​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 “배신당해 쫓겨난 거지.” “우리가 나선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 누군가 헛웃음을 흘렸다. ​ “칼을 쥐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병사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 로엔덤의 후계자는 제국 기사입니다.” “그래서 공주님이 붙잡혀 있는데도 가만히 있자는 겐가?” “대들었다가 반송장이 된 사람들을 벌써 잊었습니까?” ​ 서로 다른 의견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각자의 생각을 설명하던 사람들이 점차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를 겁쟁이라 비난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셈이냐며 삿대질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건물 안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담장 밖에서 들려왔다. ​ 타다닥! ​ 나는 혹시라도 모습을 들킬까 몸을 더욱 낮췄다. 곧 누군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 “큰일 났습니다!” ​ 소란스럽던 내부가 일순 조용해졌다. ​ “로엔덤 놈들이 잡아간 사람들을 내일 처형하겠다고 합니다! 반란을 일으킨 죄라면서요!” “뭐라고?!” “안 돼! 여보!” “우리 아들이 거기 있어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 심장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 “이래도 가만히 있을 겁니까?” ​ 처형 소식을 전한 남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 “공주님은 둘째 치더라도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 전부를 죽음으로 몰아넣자는 거요?” ​ 곧바로 반박이 돌아왔다. ​ “우리가 무기를 들면 로엔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 전체를 반란군으로 몰아갈 거요!” “그럼 가족들이 죽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요?” “잠깐! 잠깐!” ​ 쿵! 쿵! ​ 처형 소식을 전한 남자가 주먹으로 벽을 두드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그가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한 가지 소식이 더 있습니다.” “뭔데 그러시오?” “내일 공주님께서 직접 나서신다고 합니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 “붙잡힌 사람들이 반란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그들을 구명하겠다고 하셨답니다.” “정말입니까?” “공주님께서 직접?” ​ 웅성거리는 소리가 번져 나갔다. ​ “그렇습니다!” ​ 남자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자신도 붙잡힌 처지인데 우리 가족들을 살리겠다고 나선 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공주님을 버릴 생각입니까?” “하지만 우리가 대체 어떻게 싸운다는 거요?” ​ 누군가의 물음에 다시 의견이 엇갈리려던 순간이었다. ​ “우선 기다려보세.” ​ 연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서로를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 “내일 잡혀간 사람들이 풀려난다면 그때 다시 모여 이야기해도 늦지 않네. 가족들이 저들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 싸우자고 한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만약 내일 정말로 처형당한다면요?” “지금까지 로엔덤이 마을 사람을 함부로 죽인 적이 있었나?” “그건…….” “그놈은 우리를 죽이는 것보다 공주님을 몰아세우는 데 이용하려는 게야. 고통을 주고 겁을 먹일 수는 있어도 공주님 앞에서 쉽게 목숨을 빼앗지는 않을 걸세.” ​ 노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그러니 지금은 마음을 단단히 먹게.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아.” ​ 결국 그들은 내일 상황을 확인한 뒤 다시 모이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려는 기척이 들리자 나도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언덕 위의 비밀 창고로 돌아왔다. ​ 내일 엘레노아가 그들을 구명한다고? 조금 전 구멍 너머로 보았던 엘레노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아마도 그 두 명이 잡혀들어간 마을 사람들중 일부일 것이다. 그들에게 유린당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한데 그런 그들을 위해 구명한다니…. ​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 ​ ​ ​ * * * ​ ​ ​ ​ ​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아도 엘레노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흐느끼며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까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 날이 밝자 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비밀 창고를 빠져나와 마을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마을 사람이 거리로 나와 있었다. 평소와 달리 북적이는 인파 덕분에 그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 “비켜! 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 ​ 마을 내부의 병사들은 사람들을 양옆으로 밀어내며 마을 중앙에 넓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며 사람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때…. ​ “온다!” ​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향했다. 나 역시 그곳을 바라봤다. 무장한 병사들이 밧줄에 묶인 사람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인파 곳곳에서 애타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 “여보!” “아버지!” “제발 우리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 붙잡힌 이들의 가족들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병사들은 창대를 내밀어 그들을 거칠게 밀어냈다. 끌려온 사람들 역시 가족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으나 병사들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밧줄을 잡아당기며 마을 중앙에 마련된 단상 위로 끌고 갔다. 단상 위에는 이미 여러 개의 교수대가 세워져 있었다. 병사들이 끌려온 사람들의 목에 밧줄을 걸고 발판 위에 세우자 마을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더욱 커졌다. ​ “안 돼!” “그 사람은 아무런 죄도 없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 그때 병사들 사이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 “조용히 해라!” ​ 그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사람들의 울음과 고함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 쿵! 쿵! 쿵! ​ 병사들이 일제히 창대를 바닥에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자 소란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지휘관은 마을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 “지금 이 자리에 선 자들은 로엔덤의 정당한 통치를 거부하고 반란을 획책한 죄인들이다!” ​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 “그러나 로엔덤의 후계자이신 볼프람 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목숨을 구할 기회를 허락하셨다.” ​ 지휘관이 단상 위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 “반란의 주동자이자 구심점인 전 발테른 공왕가의 후계자가 직접 이곳에 나타나 이들의 결백을 증명한다면 볼프람 님께서는 친히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실 것이다.” “공주님이 직접……?” “정말 엘레노아 공주님이 오시는 건가?” ​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병사들이 창대를 바닥에 세차게 내리쳤다. ​ “하지만 그전에 볼프람 님께서 정하신 규칙이 있다.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구명은 즉시 철회될 것이다.” ​ 지휘관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 “지금부터 이곳에는 마을의 성인 남자들만 남아라.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 ​ 쿵! ​ “정오까지다!” ​ 지휘관의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 “정오가 되기 전까지 마을의 성인 남자들만 이곳에 남고, 전 발테른 공왕가의 후계자가 직접 나타나 구명을 요청한다면 이들을 살려 주겠다. 이것이 볼프람 님의 전언이다!” ​ 지휘관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번지던 수군거림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모두가 불안한 얼굴로 엘레노아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 “갑자기 아이들하고 여자들은 들어가라니?” “정말 나타나는 걸까?” “공주님. 제발 저희 가족을 구해주세요!” ​ 지평선 가까이에 걸려 있던 태양은 어느새 하늘 높이 떠올랐고 사람들의 발밑에 길게 늘어져 있던 그림자도 점차 짧아지기 시작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마을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광장에서 떠나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 그때 마을 어귀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 타닥 타닥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한 순간, 누군가의 경악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 “공주님……!” ​ 말 한 필이 광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말에는 교수대에 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온 엘레노아가 타고 있었다. 다만…. ​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완전히 나체인 데다 양손은 등 뒤로 단단히 묶여 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 “…이, 이게….” ​ 마을 남자들은 모두 당황한 듯 말문을 잃었다. ​ “으읏….” ​ 재갈 사이로 엘레노아의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 “고, 공주님…?” ​ 말이 광장에 점점 가까워지자 남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몇몇 남자들은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거나 바닥을 쳐다봤지만 대다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엘레노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 타닥 타닥 ​ 말의 걸음에 맞춰 허공에서 유혹하듯 흔들리는 분홍빛 유두는 밤새 잔뜩 자극되었는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말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모유를 흩뿌리고 있었다. 게다가 가슴 곳곳에는 이빨 자국과 손자국이 가득 남아 있었다. ​ “어…?” ​ 길가에 서 있던 한 남자는 뺨에 튄 모유의 감촉에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혀로 모유를 핥아 먹었다. ​ “아…!” ​ 남자는 순간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곧 다시 엘레노아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저게 공주님….” “어느새 저렇게 자라신 거지…?” “젖 크기가 장난이 아니야.” “거기다가 젖을 흘리고 있어.” “자, 잠깐…. 말 안장에서 애액이 흐르고 있다고….” ​ 마을 사람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던 엘레노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들이 사랑하던 소중한 공주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마치 매혹적인 창부를 바라보는 것처럼 음심과 정욕이 가득했다. ​ “꿀꺽…. 젖 한번만 만지고 싶어.” “저 정도 크기라니…. 거기다가 이빨 자국 봐. 볼프람한테 당하신건가?” “어쩌면 이미 볼프람과 했을지도 몰라….” ​ 그녀의 존엄성이…. 엘렌브룩을 말하며 옛 과거를 행복하게 추억하던 그녀의 기억이…. 철저하게 더럽혀지고 있었다. ​ 그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수많은 사람의 시선과 말로 조리돌림당하는 그녀를 보며 미칠 듯한 흥분을 느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올랐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짙은 배덕감이 피어올랐다. ​ 꽈악! ​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둔 벽면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을 주었다. 손 안에서 돌조각들이 분쇄되는 게 느껴졌다. “정지!” ​ 그때 지휘관이 앞으로 나와 다가오던 말의 고삐를 잡아 세웠다. 아직 중앙 광장까지 가려면 한참 남아 있었다. ​ “반란의 주동자가 말을 타고 편하게 갈 순 없다. 내려서 걸어가도록.” “으읏…!” ​ 엘레노아의 눈동자가 그 말에 요동쳤다. 승마를 할 줄 아는 그녀에게 말에서 내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손이 등 뒤에 묶인 상태였다. 게다가 평소에 타던 말들과 달리 지금의 말은 체구가 상당히 커서 자칫하다가는 넘어져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 모습에 지휘관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을 남자 몇몇을 지목했다. ​ “너희들. 반란의 주동자가 말에서 내리는 걸 도와라.” “……네?” “뭣들하느냐. 정오가 되기 전까지 중앙 광장에 도착해 구명을 요청하지 않으면 저들 모두 교수형이다. 그걸 보고 싶은거냐?” ​ 서슬 퍼런 지휘관의 명령에 남자들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열에서 빠져나와 말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침을 꼴깍 삼키며 엘레노아를 올려다봤다. ​ “공주님….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 남자들은 연신 사과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고된 농사와 노동으로 굳은 거친 손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 “……! 이, 이게 사람 피부인가?” “부드럽잖아….” ​ 엘레노아의 피부 감촉을 느낀 남자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녀의 다리를 매만졌다. 어느새 그들은 엘레노아를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녀의 살결을 만지는 데 정신이 팔린 듯했다. ​ “아흑…!” ​ 그 거친 손짓에 엘레노아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재갈을 뚫고 흘러나온 야릇한 신음에 남자들은 일제히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땀과 침으로 범벅이 된 재갈과 헐떡이는 숨소리, 거기다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음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일…. 일단 내려야겠지.” “잘못 내리면 다치시니까…. 최대한 몸을 받치자고….” ​ 엘레노아의 몸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손이 등 뒤에 묶인 상태로는 그들의 도움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 “천천히 내리겠습니다.” “흐읏…!” ​ 그녀는 천천히 몸을 기울여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말에서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남자들은 곧바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몸을 기울인 엘레노아를 앞에 둔 채 먼저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주변의 마을 남자들은 음욕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뜬 탓인지 그중 몇몇은 대놓고 바지춤 안에 손을 넣고 있었다. 그 광경을 확인한 순간, 남자들의 얼굴에 남아 있던 망설임마저 사라졌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엘레노아를 향해 거칠게 손을 뻗었다. ​ 꽈악! ​ “흐으으읍!!!” ​ 푸슈슛! ​ 허공에 뿌연 모유가 거칠게 뿜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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