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여기는 이세계 ‘메테르’
“제 생각에 당신은 다른 세계에서 온 거 같아요.”
“다른 세계요?”
“네. 여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거든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귀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내 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제 귀는 평범한 ‘노른’처럼 쫑긋한 모양이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전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둥근 귀’죠.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행성의 사람들은 전부 쫑긋한 귀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처럼 ‘둥근 귀’를 가진 사람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전이자’들 뿐이죠.”
“전설? 전이자?”
나는 얼른 쓰러진 시체들을 바라봤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모두 쫑긋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엘프처럼.
역시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여기는 어딥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신단이라는 나라에요.”
“혹시 세계명이 있습니까? 제가 살던 곳의 행성은 지구라고 불렸습니다.”
“저희는 지구라고 부르지 않아요. 다만 ‘메테르’라고 부를 뿐이죠.”
믿기 힘든 일이었다.
자다가 붙잡혀 온 것도 황당한 일인데, 다른 세계라고?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요. 여기가 다른 세계라는 걸 믿는다고 치고, 이 소동은 또 뭡니까?”
내 물음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괴로운 기억을 더듬는지 안색까지 창백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 1년 전쯤이었어요. 갑자기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서로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괴인들에게 물어뜯긴 팔의 상처를 나에게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더라고요. 날뛰는 사람들이 죄다 이성을 잃고 상대를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겁니다. 게다가 그들에게 공격당한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면서 미쳐갔죠.”
그녀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내 손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물어뜯긴 손을.
‘마치 [좀비 판데믹]같은 이야기군.’
이런 비슷한 상황을 영화에서 몇 번 정도 본 기억이 있었다.
‘설마?!!’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바이러스?”
내 목소리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세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요? 네. 맞아요. 바이러스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사람들이 날뛴 거더라고요. 한 연구원이 목숨을 걸고 알아낸 사실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알아낸 것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걸 치료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세계 전이]만 해도 믿기지 않는데, [좀비 판데믹]이라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손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상처로 눈을 돌렸다.
‘잠깐, 정말 바이러스 때문이라면 나도 감염된 거?’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도 날뛰던 감염자에게 당했죠. 우리도 곧 그들처럼 변할 겁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외딴곳에서 눈을 뜨고, 목숨이 걸린 싸움을 벌인 것도 황당한 일이었다.
그런데 뭐?
내가 좀비가 된다고?
“아니, 그게 무슨!!”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그녀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저도 안타까워요. 전설에서나 듣던 전이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줄은.”
분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탓도 아니었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하니까.
그저 나 혼자서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방법이 되려나?’
나는 아쉬운 대로 손의 상처에 입을 대고는 힘껏 빨아냈다.
그리고는 피를 빨아내서 바닥에 뱉어냈다.
그런 내 행동을 지켜보던 여전사는 실소를 터뜨리며 나에게 말했다.
“하하하, 독사에 물린 게 아니에요. 바이러스라고요. 그런 방법으로는 소용없어요.”
“...저도 알고 있어요. 혹시나 통할까 싶어서요.”
나는 상처에서 입을 떼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상처와 시체들을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이 모든 것이 몰래카메라는 아닐까?’
아버지의 엉뚱한 인맥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를 단련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사람들과 작당을 하고 골탕 먹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여전사를 지나쳐서 천천히 시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체액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가볍게 문질렀다.
엄지와 검지에 비벼지며 미끄러지는 감촉이 묘한 점성을 가지고 있었고, 특유의 철 냄새가 났다.
진짜 피다.
‘손에 느껴졌던 감촉은 진짜였어.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는 않겠지.’
나는 강렬한 타격으로 상대의 뼈를 부쉈고, 여전사가 쏘아대는 총에서 진한 화약 냄새를 맡았다.
게다가 이렇게 직접 체액까지 만지면서 확인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제 곧 괴물이 되거나 죽는다는 소리였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죠?”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물리고 나서 10분 안에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경우에는 몇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죠.”
“사람마다 발병하는 시간에 차이가 있나요?”
“네.”
여전사는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그게 또 감염을 막는데 방해가 된 요소이기도 했죠.”
“사람들이 감염된 사실을 감추거나,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겠군요. 죽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테니.”
“바로 그거에요. 차라리 감염된 상태의 사람과 아닌 사람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사실을 감추는 사람도 많았고, 사람마다 감염되는 속도도 다 달랐죠. 결국, 정부와 군은 상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어요. 불과 일주일이었어요. 일주일! 정부는 그 짧은 시간에 기능 대부분을 상실했죠.”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직도 깨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 꿈은 아니었고, 오감으로 느낀 바로는 가짜도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소리다.
‘후~~. 어이가 없네? 그렇게 살아남는 훈련을 했건만, 이렇게 죽는다고?’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졌다.
나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겪었을 ‘잔인한 현실’을 마주했었다.
철과 불을 휘두르며 서로가 죽고 죽이는 야만스러운 인간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그런 후에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남기 위한 훈련]에 인생의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데 결국은 이렇게 되다니.
인생이 허무한 것이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억울하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놀아두는 건데.
“아, 참! 그러고 보니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르네요.”
“아, 네...”
여전사는 나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저는 레이나라고 합니다. 신단군 육군 소속의 군인이었어요.”
“저는 백진기라고 합니다. 지구에서는 대학생이었어요.”
“대학생? 우리로 치면 고급과정에 해당하는 건가...”
그녀는 나와 맞잡은 손을 흔들면서 읊조렸다.
손을 잡고 흔드는 것을 보니 이곳에도 ‘악수’라는 문화와 인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우리 치료부터 하죠.”
인사가 끝나자 그녀는 붕대를 꺼내서 내 손의 상처를 감기 시작했다.
나는 얌전히 그녀의 손길에 상처를 맡겼다.
능숙한 걸 보니 평소에 많이 해본 솜씨인 듯싶었다.
“이번에는 제 상처도 부탁해요.”
그녀는 애써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팔뚝은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서 근육과 혈관이 다 드러나 있었다.
그러면서도 큰 혈관은 당하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출혈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뚝에 붕대를 감았다.
“자, 이제 정리를 해볼까요? 좀 도와줄래요?”
응급처치가 끝나자 레이나는 천천히 시체들이 널브러진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주위를 아우르며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인데 좀 쉬면 안 될까요? 전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지 굉장히 피곤하네요.”
“하하하, 어차피 죽으면 계속 쉴 수 있다고요. 그러지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 나중에 올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정리를 해두고 싶거든요.”
화려한 외모와 서글서글한 태도를 가진 레이나였다.
하지만 반듯한 태도도 겸비한 것을 보니 역시 군인은 군인인 모양이었다.
‘뭐, 별수 없나. 다친 사람이 혼자 일하는 모습 보는 것도 내키지 않고.’
알 수 없는 곳.
갑자기 벌어진 싸움.
그리고 믿기지 않는 현실.
그저 두렵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레이나와 함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치사율 90%에 가까운 에볼라 바이러스. 그 치명적인 바이러스에도 항체를 가진 사람이 나타난 적이 있다고 했었다.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죽는 것도 좋겠지.’
나는 짜증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레이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레이나는 땋은 머리의 여자와 짧은 머리의 남자를 조심스럽게 수습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저와 함께 움직였던 전우였어요. 그런데 감염자들에게 당하고 그들도 괴물이 되었죠.”
“아, 그렇군요.”
“이 남자가 스티브. 이 여자가 뮤린.”
“...”
그녀가 갑자기 오열하며 주저앉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생사의 경계를 함께 가로지르며 전진했던 동료였다.
많은 어려움을 함께했던 사람들.
그런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처치했어야 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그녀를 도와서 그들을 수습했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까 무슨 누에고치 같네요.”
레이나가 가져온 비닐로 그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돌돌 말아서 밀봉한 모습이 마치 누에고치를 연상시켰다.
그녀도 그걸 느꼈는지 나에게 넌지시 농담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자, 그럼 밖으로 옮겨서 태우죠.”
나와 레이나는 그들을 밖으로 옮겼다.
“여기에서 태우죠.”
레이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뮤린을 내려놨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스티브를 내려놨다.
그녀는 그들의 몸에 손을 얹고는 눈을 감았다.
뭔가 기도나 추모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고개를 숙이며 묵례를 올렸다.
[콸~! 콸~! 콸~!]
그렇게 떠나는 이들에게 인사를 끝낸 레이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준비해온 액체를 그들 몸에 뿌렸다.
뭔가 휘발성을 띤 액체로 보였다.
액체를 모두 뿌린 후에 레이나는 자신의 몸을 뒤적거렸다.
뭔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흑, 흑. 점화기를 두고 왔네요.”
그녀는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불을 붙일만한 도구를 잊고 온 모양이었다.
지구로 치자면 성냥이나 라이터 같은.
그녀는 자신을 책망하는 표정으로 건물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불은 내가 붙일게요. 그냥 여기 있어요.”
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파이어 스타터’를 꺼냈다.
아버지께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던 그 생존 도구였다.
[차-칵-! 차-칵-! 차-칵-! 팃-! 화르르륵~~~!!!]
몇 번 정도 부싯돌을 비비자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은 그대로 누워있는 뮤린과 스티브로 향했고, 곧 거대한 화염이 되었다.
“잘 가! 나도 곧 갈게! 그때 보자 친구들아! 흐으-흑--!! 흑, 흑!!”
화염이 그들의 시신을 집어삼키며 거세게 타올랐다.
그러자 레이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안겨들었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그러면서 타들어 가는 그들의 육체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