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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 만년 3급 살수는 살행을 떠난다.


#13. 만년 3급 살수는 살행을 떠난다. *** 헌터의 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무엇일까? 우월한 신체 능력? 희소한 특수 능력? 마력의 활용 능력? 마력의 총 량? 장비의 우수성? 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다.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신체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실전 훈련을 하며 마력의 활용과 응용 특수 능력의 사용법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전반적인 교육을 받는다. 그렇다 생존이다. 예로부터 인류의 주 적은 인류였다. 피라미드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있는 인류는 전쟁이라는 행위를 통해 제한적인 자원을 빼앗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고 서로 상잔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성도 작아졌다. 생태가 존재하는 게이트도 드물게 발생한다. 국가가 게이트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능력만 된다면 유한했던 지구의 자원이 무한해지는 것이다. 당장 자국에 열린 게이트를 막지 못하여 범람하는 외계 생명체들로 인해 삶의 터를 잃고 망국의 길을 걷는 곳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국가적인 위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게이트는 무한히 증식하고 그 안에 인간을 단순히 식량으로 생각하는 외계의 생명체 또한 무한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 중 각성자라는 인적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작금의 국가도 자본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능력이 높아 차별화 되는 인력은 업적에 따라 그만한 대우를 보장 해야 했으며, 그것이 반복된다면 생존과는 거리가 있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자손이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자는 자신의 자식을 절벽에서 떨군 후 기어올라오는 자식만 키운다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낙원에서 행복과 부의 영위를 바랄 뿐.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 있는 헌터들은 너도나도 사업체를 확장하고 많은 재력과 인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누군가는 도태되고, 누군가는 자신의 가문의 영위를 위한 가업을 확장하며 이어 나갔다. 그렇게 여태까지 게이트,헌터와 관련하여 등록 된 사업체만 수십만 개 그 중 손에 꼽을 만한 재력과 인력을 가진 기업은 사회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력을 끼친다. 그렇다면 내가 추구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 클랜을 형성하여 나와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모은다? 한계가 분명하다. 옛 말에 '다구리엔 장사가 없다.' 라는 말이 있다. 괜히 옛 말이겠는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아주 훌륭한 교훈을 담은 말이다. 아무리 각성자가 초인이라지만, 현대화기를 무장한 일반인과 또 비슷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의 물량공세에 무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행위이다. 기업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륜을 져버리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부패한 정부와 비인간적인 기업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뜻을 함께할 동료도 분명 필요하지만 그보다 차별화 된 무엇이 필요하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스스로 바위를 깰 수 있는 무언가가 되면 어떠한가. 계란에 불과했던 동료들은 바위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가속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뿐이다. 잡을 수 없고 언제든지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사신과 같은 무력을 지닌 자가 부패한 자들을 차근차근 암살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보이지 않는 제약에 묶여 그들에겐 지옥 같은 세상이지만, 그들에게 착취 당하던 민간에는 조금 더 이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인력과 재력을 능가할 필요도 국가를 전복 시킬 만한 압도적인 무력까지도 필요 없다. 나는 동료들과 언론에 비치는 모습에서는 철저한 화이트 나이트가 되고, 그 뒷면에는 사회적인 규칙이나 사소한 도덕적 문제는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다크 나이트가 되어야 했다. 천마가 되어 스스로의 사상을 강요하고 복종을 추구하며 세상에 군림하겠다는 목표는 그것을 표출함과 동시에 좌절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대사회는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기를 원하지 않는다. 너무도 중2병적인 발상이고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이다. 화이트 나이트가 되기 위한 준비는 현재로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카데미에 입학과 동시에 차근차근 진행해 가야 한다. 지금 부족한 것은 다크 나이트가 되기 위한 무력과 범죄에 대한 내성. 풍운무림전에서의 내 위치는 3급 살수 그것도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이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일면식도 없는 선량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형상을 굳이 죽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2D캐릭터에 키보드와 마우스로 자행하는 살인과 실체화 된 아바타로 인간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든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살수는 독하다고 잔인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나야 했다. 마치 사이코패스가 인간을 죽이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나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죽음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했다. 자유시간에 할당 된 일정을 모조리 취소했다. 당분간은 풍운무림전에서 마교 3급 살수로서의 퀘스트를 적극적으로 행하며 살인에 인간의 죽음에 익숙해지기로 한다. 특급 살수까지 오른다면 어쩌면 천마동에 출입할 기회를 얻거나, 상위 무공을 그에 걸맞은 기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제한적인 회귀능력은 나의 숙명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자 가슴이나 만지고 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굳이 그 좋은 것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세상 모든 처녀의 가슴을 탐할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그 황홀한 복주머니에는 절대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가슴은 많으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사색의 마지막은 겸허한 인정으로 마무리한다. *** 당분간 집도 비었겠다, 수면은 캡슐 안에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걸로 결정했다. 계획의 변경으로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게만 느껴진다. 풍운무림전은 타 게임에 비해 뇌에 과부하를 많이 주는 편이지만, 수면모드로 진행하면 뇌파의 약화로 인해 응답시간이 느려져 약간의 렉과 같은 현상을 야기해 첨예로운 디테일한 컨트롤은 불가능해 지지만, 회귀능력으로 간단한 실수는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 캡슐방에 도착했다. "어 선호냐. 뭐야, 부모님이 여행이라도 가셨어? 웬일로 이 시간에 다오냐." 삼촌이 딱 교대자에게 인수하고 퇴근을 하려는 찰나 아슬아슬 세이프다. "삼촌, 항상 하던걸로요. 7시 반에 알람설정 좀 부탁해요." 캡슐에 누워 헤드기어를 쓰고 조금 기다리니 익숙한 로딩창을 지나 시야가 바뀌었다. 익숙한 낡은 목재 건물의 천장이다. 시간과 메인퀘스트 주간퀘스트 일일퀘스트를 확인한다. 시간은 7시 메인퀘스트의 진행이 가능한 시간이다. 낙원은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퀘스트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시피 했다. 누구나 모험가라는 설정에 따라 살아가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됐다. 하지만 풍운무림전은 메인퀘스트라는 것이 존재한다. 주어진 메인퀘스트를 깨다 보면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무림의 약육강식의 생태 속으로 빠져드는 형식이다. 한참 서비스가 진행되던 때에도 무림일통을 하거나 스토리가 종료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낙원도 마찬가지 이지만 무림이라는 곳 또한 개인의 힘으로 무언가 세상에 변화를 만들기에는 너무도 험난한 곳이었다. 그저 오픈월드의 톱니바퀴로써 내게 주어진 역할만 한다면 그 뿐이다. 현재 내 상태는 마교 내부에서 일일 퀘스트만 주구장창하고 수련만 한 상태라 메인퀘스트의 수준이 현저히 낮다. 초보마을에 99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50레벨 쯤 되는 고수가 뚝 떨어진 것과 흡사할 것이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빨랐다. 메인 퀘스트를 뼈대로 삼되 캐릭터가 지닌 숙운을 뒤흔든다. 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당장은 큰 의미가 없더라도, 전체적인 판도에서는 큰 폭풍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살수들을 총괄하는 교관에게 향했다. 그는 메인 퀘스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표 교관님. 살행을 떠났으면 합니다." "3급 74호 로군. 흠.. 보자.. 너는 살행이 처음이군? 그렇다면 멧돼지라도 일단 한 마리 잡아 와라." [메인 퀘스트] 멧돼지를 잡아라! 내용: 멧돼지를 잡아, 살수로써의 자질을 증명하시오. 위치: 뒷 산 보상: 동 1냥 풍운무림전의 화폐 가치는 동 10푼이 1문,동 10문이 동 1냥이다. 그리고 동 10냥이 은자 1냥이고 은자 10냥이 금 1냥과 같다. 4인 가족의 한 달 쌀 소비량이 4~5가마 정도고 이는 은자 1냥으로 살수 있다고 하니 동 1냥은 대략 10만원 정도의 가치라고 보면 됐다. 첫 퀘스트 치고는 나름 후하다. 동 1냥이면 괜찮은 객잔에서 배터지게 10끼는 먹을 수 있다. 살수가 표 교관을 찾으면 대충 이런 식으로 퀘스트를 준다. '근데 이 시벌롬이, 멧돼지부터 잡으라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표 교관님, 멧돼지 잡는 것은 너무 시간 낭비 입니다. 그냥 사람을 죽이게 해주십쇼." "네 놈의 뭘 믿고? 교칙을 어길 순 없다. 자격을 증명해라." 이런 식이다. NPC라도 이런 누가 봐도 엑스트라같은 놈들은 정해진 역할에 정해진 말만 할 수 있다.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런걸 보면 그제야 내가 서 있는 곳이 게임이라는 게 실감이 된다. 하지만 소위 네임드라고 불리는 놈들은 이러한 틀에서 많이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확실히 인공지능이 달리 적용되는지 변수도 많고 성격도 풍부해서 그냥 지 맘대로다. 예측할 수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문제없던 네임드가 갑자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돌변해서 나를 죽인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동네라는 거다. 그래서 네임드를 대할 때는 항상 언행에 주의를 해야 한다. 반면에 네임드가 편리한 점도 있다. 일반인이나 엑스트라 NPC들은 말도 잘 안 통하고 여성이라고 강간이라도 한 번 했다가는,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경비나 사문의 추적자들이 와서 목을 벤다. 정파의 네임드 여NPC들의 경우 사문과 자신의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하기 때문에 강간을 하더라도 협박이 먹히거나 해서 이를 숨길 수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왜 이런 것까지 자세하게 아냐고? 한국인의 탐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라는 건 좆도 안하고 멀쩡한 미연시나 성인게임 놔두고 여기서 강간을 어떻게 하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연구하는 놈들이 더러 있었다. 심지어 방송까지 해 가면서. 물론 그런 TMI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어디까지나 나의 몫이다. 잡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뒷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이 씨부래 돼지새키. 대체 어디 짱박힌겨?' 오늘 내로 살인을 해보는 게 목표였는데, 아무래도 빡셀 거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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