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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30. 백구 퀘스트 (3)


**** 해가 뜨기 전에 잠에서 깼다. 침낭을 열고 나오자 조금은 서늘한 기운이 강호를 맞이한다. 게란트에서 생활한 지 6, 7개월 정도 된 거 같은데도 아직도 계절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게란트에서는 오후에는 대략 20도에서 25도 사이의 기온을 유지한다. 그러다 해가 지고 새벽이 되면 15도 이하로 뚝 떨어지고, 장소에 따라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곳도 간혹 있다. 듣기로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같은 경우에는 연 평균 기온이 15도에서 20도 사이를 유지한다고 하고, 동남아 국가는 1년 내내 열대우림의 여름만 유지된다고 했다. 어쩌면 이 숲이 속한 지역 일대가 그런 식으로 계절의 변화를 겪기 힘든 특정 위치에 속한 곳일 수도 있다. 다만,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이곳에는 마법이라는 법칙이 존재한다. 이 세상의 마법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만약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았던 식의 마법이라면 물리법칙 외에 다른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의미다. 그런 세상인 만큼 어쩌면 정말로 이 게란트라는 세상을 중심으로 태양이 돌고 있다고 해도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을 지도 모른다. 침구와 텐트를 정리하고 백구와 함께 식사를 마쳤다. 이제 곧 라그놀과 전투를 벌일 것이라 생각하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변의 공기가 꽤나 무겁게만 느껴진다. 최전방에서 수색대로 복무하면서 DMZ 수색정찰 임무에 투입되기 전에 느껴지던 공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젠장!’ 전투헬멧, 전투복, 전투화, 거기에 방검복과 이런 저런 장비까지 몸에 걸치고 보니 정말로 재입대하여 실전 임무에 투입되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총을 들고 있지 않다는 것과, 수색정찰 임무가 아니라 뚜렷한 타격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섬멸 작전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느낌 때문에 오히려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다시 재입대를 한 듯한 느낌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주변의 무거운 공기를 낯설지 않게 느낄 수 있었고 보다 빨리 상황을 직면하고 적응하게 만든 것이다. “후욱! 좋아.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 하자 검은색 가죽 장갑이 화답하듯 뿌드득 거리는 소리를 토해내었다. “가자!” 백구를 향해 돌아보며 말하자, 오늘이 결전의 날이라는 것을 느낀 것인지 어스름 속에서 안광을 번뜩이는 백구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사납게 느껴진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아 주변이 어둑했지만 헬멧에 장착된 야시경은 그러한 불리함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야시경이라는 것은 써보지 않은 사람은 적응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물건이다. 야시경 특유의 색감이나 좁은 시야가 사물을 인식하는 데 장애를 주기에 이동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특히, 거리감을 인식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드물지만 멀미나 기타 두통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강호의 경우에는 군에 있으면서 야시경을 사용해 보았기에 적응하는 데에는 큰 무리는 없었다. 이동을 하면서 설치해 둔 함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숲에서의 게릴라전에 대한 경험이 사실상 전무한데다가, 숲이라는 곳이 원체 그곳이 그곳처럼 보이다 보니 직접 함정을 설치했던 강호조차도 쉽게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백구가 있었다. 분명 이 근처라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귀신같이 백구가 위치를 찾아내고는 강호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설치한 함정의 점검을 마친 뒤, 라그놀의 동굴 근처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느새 주변이 환하게 밝혀진 무렵이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나무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는 단망경으로 동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대략 5, 6백 미터 정도. 입구 주변에서 잠을 자고 있는 라그놀 몇 마리가 보인다. 순간 히트맨이나 어쌔씬 크리드 게임처럼 놈들이 자고 있을 때 몰래 접근해서 하나씩 암살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게임과 현실은 달라.’ 이따금씩 게임에서 배운 운전 실력으로 현실에서 진짜 차를 몰고 도심을 주행하는 미성년들에 관한 뉴스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크고 작은 사고로 귀결될 뿐이다. 하물며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은밀하게 암살하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이 그런 일을 쉽게 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해가 떠오르는 것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놈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동굴 주변의 숲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헤치기도 하고 용변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 어제 먹다 남은 동물의 사체를 뜯어 먹기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짐승의 모습이다. 먹이가 부족한 모양인지 어제와 달리 식사 시간이 꽤나 치열하다. 서로가 조금이라도 고기를 더 뜯어 먹기 위해 이빨을 드리우고 털을 세운 채로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놈들마저 있을 정도다. 그러다 기세에 밀려난 놈들이 숲으로 들어가 바닥을 파헤치고는 뿌리 열매를 캐어서 씹어 먹는데, 강호가 보기에는 더덕과 흡사해 보인다. 그에 반해 암컷에게는 그 어떤 제제도 하지 않는다. 동굴 안에서 암컷 두 마리가 나와 얼마 남지 않는 고기를 뜯어 먹고 있는 수컷 옆으로 다가서는데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암컷을 보호해야 자신들의 부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수컷 한 마리가 고기를 내려놓고는 암컷에게로 다가간다. 수컷의 가랑이 사이에서 축 늘어진 채로 덜렁거리던 물건이 어느새 빳빳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식사에 열중하는 암컷의 뒤로 다가간 수컷이 암컷의 등을 밀어 엎드리게 하고는 빳빳하게 선 물건을 움켜쥐며 그대로 올라타며 덮쳐 들었다. 발정 난 수컷이 등 뒤에 허리를 흔들어 대는 데도 암컷은 그저 식사에 열중할 뿐이다. ‘역시 짐승일 뿐이야.’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 수컷이 채 1, 2분도 되지 않아 사정을 하고 나가떨어지자 다른 수컷이 또 그 암컷의 등 뒤로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어 댄다. 그렇게 아침시간이 끝나자 또 다시 모든 암컷을 공터에 모아 두고는 수컷들이 한 바탕 번식 시간을 가진다. 확실히 숫자가 반 이상 줄어들어 위기감을 느낀 탓인지 번식에 꽤나 열정적인 모습들이다. 번식 행위를 마치자 드디어 수컷이 무리를 나누어 사냥을 나서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제 잡아 온 식량은 이미 바닥을 보인 상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도 아니고, 매일 이렇게 사냥을 나간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짐승으로서의 한계이기도 했다. 어제와 오늘 식사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놈들에게는 식량을 비축한다는 개념이 없는 듯 했다. 한때 동남아인들이 게으른 이유가 1년 내내 따뜻한 기후다 보니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사방에 먹을거리가 넘쳐 나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돈 적이 있다.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로 동남아의 기후가 농사를 하기에도 좋고 각종 농작물이나 과일이 자라기에 좋은 기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의 숲은 먹을거리가 사방에 넘쳐 난다. 지구에서라면 같은 기후대에서는 자라기 힘든 작물이 같이 자라고 있는 것은 예사고, 공터를 하루 이상 벗어나기만 하면 사방에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넘쳐난다. 강호가 발견한 붉은허브토마토가 그랬고 꿀사과가 그랬다. 그냥 지천에 마구잡이로 널려 있다. 동물들도 하나같이 잘 먹어서 그런지 덩치도 예사롭지 않고, 해변가에서 만난 톱니집게대게나 얼마 전에 보았던 거대한 지네처럼 일부 개체들은 대체 뭘 먹었기에 저렇게 자랐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기도 한다. 굳이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먹을거리가 넘쳐나니 비상시를 대비해서 음식을 비축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방금 전에도 보았다 시피 고기를 먹지 못한 놈들이 숲에서 바닥을 파헤치는 것만으로도 먹을거리가 튀어나오지 않던가. 그럼에도 사냥을 나서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들이 고기를 먹는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한 무리가 북쪽으로 사라지고 다른 한 무리가 서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강호는 슬슬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일단 놈들이 접근하기 전에 무조건 셋을 해치워야 해. 그리고 빠르게 후퇴하면서 하나씩 처치하는 게 최선이야.’ 사실 작전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작전을 세워본 적도 없고 이런 식의 전투를 치러 본 적도 없기에 계획이라는 것도 그저 두루뭉술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 잠깐!’ 갑자기 벼락처럼 스치는 생각에 강호가 인벤토리를 열어 가방을 꺼내고는 후추액이 든 손가락 크기 정도의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라그놀과의 전투를 대비하여 함정 설치를 위해 만들어 두었던 후추액 폭탄이다. 폭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깨지기 쉬운 소재의 유리병 안에 호신용품점에서 사 온 후추액을 옮겨 담은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강호가 잠시 침을 삼키고는 손에 들린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양이면 가스총으로 열 번 이상을 발사할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한 번 발사하는 양만으로도 반경 수 미터 일대를 지독한 가스로 뒤덮는 것이 가능하다. 밀폐된 공간이라면 화생방에 버금갈 정도의 고통을 주기에도 충분한 양이다. 그런 후추액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정도 양이라면?’ 유리병에서 시선을 떼어 저 멀리 떨어진 동굴 앞 공터를 바라보았다. 우두머리를 제외한 다섯 마리의 암컷이 동굴 입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 하나 둘 동굴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암컷마저 동굴 안으로 사라지자 강호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거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인벤토리에 보관된 잡동사니 가방에서 박스 테이프를 꺼내어 화살 앞에 유리병을 감았다. ‘어쩌면 이 전투, 생각보다 쉽게 끝날 지도 몰라.’ 남은 유리병은 총 다섯 개. 그 다섯 개 모두를 화살의 촉끝에 깨지기 쉽도록 부착했다. 자칫 실수로 깨어지면 이쪽이 곤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다행히도 강호에게는 인벤토리라는 무적의 보관함이 존재한다. 네 개의 화살을 인벤토리에 각각 보관 한 후 준비해 두었던 방독면을 착용했다. 방독면을 착용하자 조금은 숨 쉬는 것이 거북하기는 했지만 최루탄에 버금가는 후추액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생각하면 조심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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