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35. 삼식이 (3)
‘지능이 있다.’
동물들도 지능이 있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사고를 하고 판단을 할 줄 안다는 점이다.
‘지성종족일지도 몰라. 어쩌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지도...’
정말 지성종족이라면 대화를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추측만으로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분명한 것은 게란트에 넘어 온 후 처음으로 발견한 지성체일 수도 있기에, 강호는 저도 모르게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침착하자. 외모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돼.’
초등학생 수준으로 보이는 덩치인데다 전체적으로 신체는 꽤 마른 편이라 첫인상은 유약해 보인다는 느낌이었지만, 게란트라는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이 아니다.
공작새처럼 보이던 새가 섬뜩한 칼날 같은 깃털을 날려 보내기도 하는 곳이고, 토끼처럼 보이던 동물이 엄청난 점프력이로 돌진해 맹수 같은 이빨로 물어뜯는 곳이기도 했다.
저기서 바닥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생명체에게 어떤 능력이 숨어 있을 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지능이 있어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존재가 신체적 능력까지 비상하다면 그 위험성은 더욱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놈을 살필 때였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한 참이나 바닥을 살피던 놈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큰 귀를 팔랑 거리듯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놈이 고개를 발딱 치켜 들고는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들켰나?’
어쩌면 자신의 기척이 발각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쥐고 있던 활에 시위를 먹이고는 언제든 당길 준비를 마쳤다.
쫑긋 세운 귀를 팔랑거리듯 주변의 소리를 살피던 놈이 돌연 한 곳으로 시선을 멈추고는 자세를 한껏 낮추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놈이 경계를 한 방향이 이쪽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다.
동시에 놈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커헝!]
맹수의 포효를 터뜨리며 달려드는 놈은 마치 표범을 연상케 하는 짐승이었는데, 나무를 박차고 허공으로 5, 6미터 높이까지 솟구쳐 올라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떨어져 내리는 표범의 공격에 칼을 휘두를 틈도 없이 놈이 바닥을 구른다.
[퍼억!]
아마 가까이 있었다면 표범이 바닥을 후려갈길 때 그런 소리가 들렸을 거라 생각하며 시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닥을 후려갈긴 표범이 주르륵 미끌어지며 거리가 벌어지자 바닥을 굴렀던 놈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칼을 휘두른다.
‘빠르다.’
외모로 보자면 꽤나 보잘것없어 보였는데, 표범을 상대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그야 말로 눈 깜작할 사이에 수 미터의 거리를 좁혀 버린 것이다.
하지만 표범도 만만치 않았다.
하얀 궤적을 그리며 노려오는 칼을 유연한 몸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피하는 것이다.
[키에엑! 키엑!]
놈이 껑충 뛰며 표범을 향해 다시금 칼을 휘두른다. 그런데 그 궤적이나 빠르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저 막무가내 식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 어떤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다.하지만 놈의 신체적인 능력 보다 표범의 능력이 더 앞선 모양이다.
칼의 궤적을 이리저리 피하던 표범이 한 순간에 땅을 가르듯이 달려 들어 휘두른 앞발에 몬스터의 손에 들린 칼이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케에엑]
외마디 괴성을 내지른 몬스터가 바닥을 뒹굴며 거리를 벌리고는 돌연 허리춤의 벨트에서 주머니 하나를 집어 들고는 냅다 집어 던졌다.
땅 바닥으로 날아간 주머니가 바닥에 닿기 무섭게 터지더니 검붉은 색 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순간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던 표범이 사방팔방 날뛰며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데, 그 모습을 보며 강호가 입을 쩍- 벌렸다.
‘최... 최루탄?’
땅에 코를 처박고 몸부림치는 표범의 모습은 그 누가 보아도 최루탄 가스를 들이 마시고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표범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이 몬스터가 몸을 돌려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기회다.
그런 강호의 예상대로 칼을 집어 들기 무섭게 바닥을 차고 껑충 뛰어 오른 몬스터가 검붉은 가루로 흩날리는 대기를 가르고 표범에게로 떨어져 내리더니 단숨에 목덜미에 뼈칼을 쑤셔 박았다.
‘그렇지!’
칼이 표범의 목덜미에 틀어박히는 것을 보며 강호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공격은 오히려 표범의 성질만을 돋구었을 뿐이다.
원래라면 목덜미의 숨통에 꽂아 넣으려고 했던 공격인데, 표범이 몸부림을 워낙 심하게 치는 통에 어깻죽지 부근에 틀어박힌 것이다.
그 바람에 일격에 숨통을 끊지 못하고 되려 반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퍼억!]
표범이 휘두른 공격에 몬스터가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그런데 이후 웃긴 상황이 벌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몬스터가 목을 움켜쥐고는 격한 기침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구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표범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같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는 것이랄까.
그나마 표범 보다는 몬스터가 검붉은 가루를 덜 들이 마신 탓인지 일찍 정신을 차렸다.
얼굴이 한 순간에 눈물 콧물에 침 범벅이 된 몬스터는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바닥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표범에게서 등을 돌려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표범이 아직 정신을 차리기 전에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것이 이득일 것이라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방향이 좋지 못했다.
‘시팔!’
강호가 나지막이 욕을 내뱉고는 화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몬스터가 도망친 방향이 하필이면 자신이 숨어 있던 방향인 까닭이다.
달려오고 있는 몬스터와의 거리는 50여 미터. 그 뒤를 어느새 따라붙고 있는 표범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좁혀지자 강호는 결국 바닥에 일어나 활시위를 당겼다.
덕분에 정면에서 달려오고 있던 몬스터의 큰 눈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놈이 무어라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 동작과 표정이 말하는 바는 명백했다.
살려달라는 행동.
‘침착하자!’
그동안 몇 번의 생사를 건 전투를 치렀고, 라그놀과의 전투 이후 다시 한 번 성장한 강호다.
물론, 그 성장이 한 순간에 큰 깨달음을 얻어 현자가 되었다는 식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은 개돼지와 처음 전투를 벌일 때와 비교하면 충분히 일취월장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후우!’
조금 긴장하기는 했지만 손의 떨림도 없고 호흡도 평온하다.
[피잉!]
가볍게 놓은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섬광처럼 날아가 몬스터의 머리를 꿰뚫어버릴 것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화살의 목표는 몬스터의 머리가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몬스터의 오른쪽 귀 옆을 한 뼘 차이로 스쳐 지나간 화살이 바로 뒤에서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들고 있는 표범의 우측 어깻죽지 부근에 틀어박혔다.
[카앙! 크아아앙!]
강호의 손에 들린 활은 강철묵궁이었고, 쏘아낸 화살은 당연히 검은 빛을 띠고 있는 강철묵시였다.
화살의 무게 자체만 해도 굉장한 상황에서 강철묵궁의 위력까지 더해지자 화살에 담긴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묵시가 표범의 어깨에 틀어박히기 무섭게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날아가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화살의 절반 이상이 몸에 틀어박혔다. 그 정도면 이미 내부의 뼈가 부서지고 장기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듯 바닥에 처박힌 표범이 벌떡 일어나려다 말고 비틀 거리더니 다시 바닥에 기우뚱 하고 쓰러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며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강호가 시위를 당기는데 도망치던 몬스터가 놈에게 달려 드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는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 놈의 목덜미 부근에 박혀 있던 칼을 뽑아 들고는 다시금 내리쳤다.
칼이 이번에는 정확하게 숨통에 틀어박힌다.
[푸악!]
피가 솟구치는 것과 함께 표범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휘두른 앞발에 몬스터가 뒤로 튕겨 나갔다.
다시 한 발의 화살이 강호의 손을 떠났다.
[핑!]
표범과의 거리는 겨우 20여 미터 남짓.
찰나의 순간에 거리를 좁힌 화살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표범의 머리를 정확하게 관통하며 박혀 드는 것과 함께 상황이 종료되었다.
동시에 강호의 눈앞으로 알림창 하나가 떴다.
[백구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백구의 레벨은 6입니다.]
백구의 레벨이 5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표범 하나 잡았다고 순식간에 6이 되어 버렸다.
‘역시 강한 몬스터를 잡아야 해.’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강호는 눈을 껌벅였다.
‘잠깐! 백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런데 레벨이 올랐다.
이 말인 즉, 반려동물 시스템은 펫으로 등록되기만 하면 전투의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강호가 죽이기만 해도 경험치를 얻는다는 이야기다.
게임으로 치면 버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완벽한 버스 시스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