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35. 삼식이 (5)
[줄무늬표범 – 게란트 동남부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 서식하는 맹수 중의 하나. 빠른 몸 놀림을 제외하면 딱히 눈 여겨 볼 만 한 점은 없다.]
표범의 정보창을 확인하며 강호는 새로운 정보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이 표범이 게란트 대륙의 동남부에서 서식한다는 내용이다.
‘이 말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대륙의 동남부라는 말이군.’
당장 이것이 유용한 정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현재의 위치를 아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컹! 컹!”
그때 뒤에서 백구가 짖는 소리에 돌아보니 자리에서 일어난 고블린이 다가오다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 보였다.
“킥! 키엑!”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무어라 언어라고 생각되는 말을 하기는 하는데 강호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놈의 동작에서 공격하려는 의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강호가 슬쩍 옆으로 비켜 주자 슬그머니 표범에게 다가간 고블린이 목에 박혀 있는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칼을 확인하기 무섭게 고블린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손에 들린 칼이 중간에서 뚝 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니 어떤 동물의 뼈를 갈아서 만든 것처럼 보였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쉽게 구하거나 만들 수 없는 듯싶다.
하기야, 칼이 온전했다면 대략 20센티는 넘어갈 듯 싶었는데, 그런 칼을 만들려면 꽤 큰 짐승의 대퇴부 뼈를 이용해야 한다.
표범 한 마리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런 뼈를 구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부러진 검이 영 안타까운 모양인지 고개를 떨군 채로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에 강호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강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예전에 들고 다니던 정글도를 고블린에게 내밀었다.
부러진 뼈칼을 들고 울상을 하고 있던 고블린은 강호가 내민 정글도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강호가 받으라는 듯 제스처를 하며 정글도를 내밀자 그 큰 눈을 껌뻑이던 놈이 조심스럽게 받아 든다.
정글도의 묵직한 무게에 놀라는 것도 잠시, 뼈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날을 확인하기 무섭게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키엑! 키루루루루!”
정글도의 크기는 대략 50센티 정도로 강호에게는 그리 큰 무기는 아니었지만, 고블린에게는 장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크기였다.
자리에서 껑충 뛰면서 좋아하던 고블린이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둘러본다. 그런데 팔의 길이가 유난히 길어서 그런지 생각 이상으로 위협적이다.
이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블린에게 선뜻 정글도를 준 것이 꽤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었지만 강호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공격적인 성향이 아니고 지능도 있다. 당장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짓으로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해. 그렇다면 적대하기보다는 친구로 삼는 게 이득이야. 무엇보다 지성체이고 약간의 의사소통도 가능하다고 했어. 만약 나중에라도 대화가 통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든든한 우군 하나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조금은 계산적인 호의였지만 그것을 굳이 나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정글도를 몇 번 휘두르며 매우 흡족한 얼굴을 한 고블린이 또다시 가방을 뒤적이더니 이번에도 가죽으로 감싸인 무언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고블린이 다가와 손에 든 것을 내밀며 가지라는 시늉을 한다.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
‘역시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돼.’
고블린을 만나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들어왔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들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고블린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의 의미가 크게 와 닿는다.
고블린이 내민 것을 받아 펼치자 빨간빛을 띤 엄지손톱 크기 정도의 열매 다섯 개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산삼 열매 – 숲에서 찾을 수 있는 산삼에서 나는 열매. 먹으면 어느 정도 기운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으며 잔병치례에도 효과적이다. 최초 복용 시 근력 +1. 지구력 +1, 정력+1 영구 상승]
오!
기본 약효 자체는 그리 뛰어나 보이지는 않지만 스텟을 무려 세 개나 올려 준다. 하지만 강호를 더 기쁘게 한 것은 스텟 때문이 아니었다.
‘산삼이 있다.’
산삼.
깊은 산에서 나는 야생 삼을 말한다.
아시아권, 특히 한국에서만큼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희대의 영약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산삼이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산삼과 인삼을 비교 연구한 과학자들에 의하면 미묘한 차이는 있으나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정도의 약효의 차이는 없다고 한다.
성분의 차이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임상으로도 딱히 증명된 사례가 현재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산삼이라고 하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산삼을 먹고 중병을 떨치고 일어났다거나, 오늘 내일 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지금도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곳은 게란트다.
단순히 카더라는 식으로 소문이 무성한 것과는 달리, 열매 하나에도 무려 3가지의 스텟을 올려주는 옵션이 붙어 있다.
하물며 산삼의 본체라면 어떤 옵션이 붙어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문제는 산삼이라는 것이 지구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약초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거. 이거 어디서 난거지?”
강호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물어 보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다 보니 원하는 대답을 끌어낼 수가 없었다.
‘근데 산삼에서 열매가 열리나?’
산삼을 실제로 본적이 없으니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다.
열매를 들고 당장 입 안으로 털어 넣으려다 일단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세 개는 누나에게 주자.’
일전에 나누었던 대화에서 강호는 매형인 임백현이 요즘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원래부터 성격 자체가 유순하고 한없이 착한 사람이다 보니 경쟁이 심한 직장 생활 자체가 사실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벌써 50줄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 차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진급도 물 건너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전에 누나로부터 매형이 부장 진급에서 떨어졌다면서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푸념을 내뱉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다음에 진급하겠지 했던 강호였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직장에서 나이 사십 중반을 넘어서면 알게 모르게 명예퇴직을 강요한다고 하는데, 눈치를 보니 매형 역시 그런 처지에 놓인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카페 하나 차려주겠다는 누나나, 아무런 내색도 없이 주변 사람들 먼저 생각하는 매형이나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매를 갈무리한 강호가 표범의 시체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지금은 그냥 두기로 했다.
‘도축 같은 것도 배워 볼까?’
도축을 배운다면 관련 스킬도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강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날려버렸다. 지금도 할 게 많은데 당장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팔 여유는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백구의 레벨을 올린다는 생각에 사냥을 하면서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멀리 이동했다.
이래서 조금만 더 라는 생각이 무서운 것이다.
결정을 내린 강호가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놈의 활동 영역이 이 근처인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무리 생활을 하는 몬스터다. 그 이야기는 이 고블린의 부족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고블린의 집이 어딘지 알아야 교류를 하든 뭘 하든 한다는 점이다.
‘대화가 통해야 뭘 하든 하지. 젠장! 생각이 짧았네.’
이래서야 정글도를 준 의미가 없다.
‘아니지. 산삼 열매를 얻었으니 오히려 이쪽이 이득이기는 하지.’
최초 복용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려 스텟을 올려주는 열매다. 정글도야 지구에서는 언제든 살 수 있는 물건이니 딱히 아까울 이유가 없다.
‘같이 가자고 해 볼끼? 이 놈도 집이 있을 건데 따라 오기는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이 깊어 졌다. 하지만 굳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질 않아 결국 고블린을 두고서 돌아서던 강호를 고블린이 슬금슬금 따라 나선 것이다. 그 모습에 놈을 바라보니 연신 고개를 숙이며 굽신거린다.
마치 자신도 같이 데려가 달라는 듯한 모습이다.
‘진짜?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린다고?’
그런 생각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자 이번에도 놈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캠프로 데려가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게란트에서 처음으로 만난 지성체다. 그 정도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보아하니 대충 말귀는 알아 듣는 것 같고 도구도 다룰 줄 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했으니 말을 가르칠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렇게 결론을 내린 강호가 빠르게 캠프로 이동했다.
캠프로의 복귀는 금방 이루어졌다.
캠프에 도착한 놈은 주변을 매우 신기한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캠프 주변을 두르고 있는 철조망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가시에 찔리며 기겁을 하기도 했고, 천막이나 주변에 놓여 있는 이런 저런 물건들도 신기하게 바라보며 만져보고는 했다.
하지만 공터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차원문은 보지 못하는 게 확실했다.
‘저것도 차원문을 같이 넘어갈 수 있으려나?’
백구는 품에 안고 있으면 같이 차원문을 넘을 수 있었는데 저 고블린도 가능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천천히 확인해 보기로 하고, 일단 캠프로 데리고 왔으니 집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천막이 있으니 임시 거처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안 되면 캠프 한 쪽에 천막을 하나 더 치던지 하면 된다. 하지만 이어진 고블린의 행동에 이번에도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