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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화 40. 모녀의 하루 (1)


게란트에서 오래 생활할수록 생존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늘어나는 만큼 필요한 장비와 도구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 역시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신발 하나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대충 쓸 만 한 등산화나 전투화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었지만, 숲이라는 환경에서 오래 지낼수록 보다 튼튼하고 실용적인 신발을 찾게 된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가장 적합한 무기나 도구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특히, 전투와 관련하여 강호의 관점을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삼식이가 사용했던 붉은가루폭탄, 일명 고추폭탄이었다. 삼식이의 종족인 고블린은 이곳 게란트의 토착 생물이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생존하는 방식을 터득하며 살아왔다는 말이다. 게란트의 토착 생물이자 야생에서 오랫동안 생존해 왔을 고블린이 자연스럽게 그런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성능이 입증되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고추폭탄에 당한 표범이 일시적으로 무력화 된 것만 보아도 효과는 확실했다. 금방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공격하기는 했었지만, 만약 삼식이 혼자가 아니라 동료가 하나라도 같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전투를 대하는 강호의 인식도 조금 바뀌었다. 무작정 강해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라그놀과의 전투에서 최루탄을 사용했던 것처럼 자원을 어떤 식으로 응용하여 활용하는 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검은 피부의 괴물이나 덩치가 큰 놈들에게도 최루탄이 효과가 있을까?’ 강호의 머릿속으로 일전에 남쪽 해안가의 절벽지대를 탐사하던 중에 만났던 검은 피부에 근육질을 한 괴물이 떠올랐다. 상당히 큰 덩치에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던 괴물이 라그놀 무리를 순식간에 때려잡는 모습을 떠올리자 다시금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당시 최루탄을 팔았던 사람도 그게 만능은 아니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 특수부대원들이 최루탄을 맞고도 참아내는 장면들이 등장을 하고는 한다. 훈련에 따라 충분히 참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생물의 종에 따라 최루탄의 효과가 미비하거나 충분히 참아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만약 최루탄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를 자극시킬 경우에는 이쪽이 더 위험해 질 수도 있다. ‘그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게 좋아.’ 그런 생각은 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총기는 특성상 소음이 매우 심하고, 소음기를 장착해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면 소음기를 단 권총의 발사음이 ‘틱! 틱!’하는 수준으로 매우 작게 들린다. 하지만 이는 영화적 표현일 뿐이다. 실제로 소음기를 장착한 총이라고 해도 생각 이상으로 소리는 꽤 크고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특히 이런 숲이라면 메아리가 일어 더 멀리까지 퍼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리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화약 냄새다. 야생의 정글과도 같은 곳에서 이질적인 냄새는 숲의 짐승들에게 금방 발각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짐승들은 청각보다 후각이 발달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총기를 구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총기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다, 탄약 같은 경우에는 소모품이다 보니 지속적으로 보급까지 해야 한다. 군대를 다녀온 이들은 잘 알겠지만, 사격 훈련 중에 탄피 하나가 사라져도 비상이 걸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총알을 구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총기를 떠올리는 것은, 생존 수단이라는 것은 없는 것 보다는 그래도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생존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뒤가 어찌 되든 급박한 상황에서는 당장의 죽을 위기부터 모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활이나 검보다 총이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총기 스킬을 올릴 생각은 왜 못한 거지?’ 비록 일반인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기를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실탄 사격장이 서울에도 있고, 영화 촬영 때문에 직접 가서 권총 사격을 해본적도 있었던 강호다. 당시 권총 10발을 쏘는데 2만원이라는 가격으로 인해 딱 한 번 가본 이후로 두 번 다시 찾지 않은 곳이었지만, 일단 스킬을 생성하고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중요했다. 문제는 적당한 수준의 레벨까지 올리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엄두가 안 난다는 점이다. 거의 10개월이 넘는 시간을 게란트에서 보내며 올린 스킬의 레벨이 이제 겨우 5에서 6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악착같이 매달려서 올린 전투 스킬들이 그렇고, 나머지 대부분의 스킬들은 아직 5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 말은 총기 관련 스킬의 레벨을 5까지 빠르게 올리려면 수 백 혹은 수천 이상의 돈이 깨질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총을 구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인벤토리다. 인벤토리를 이용하면 마트 하나를 터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방식으로 가능할 것 같았다. 미국과 같은 총기를 허용하는 나라로 가서 총기를 훔치든 아니면 구입을 하든 어떻게든 구한 후에 인벤토리에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구하는 게 어렵지 한국으로 반입하는 것은 사실상 누워서 떡먹기라는 이야기다. ‘잠깐! 이거 밀수 사업에 뛰어 들면 떼돈을 버는 것도 시간문제겠는데?’ 만약 돈이 될 만한 밀수 사업에 뛰어 들면 순식간에 돈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밀수는 아니다. 한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 범죄에 뛰어드는 것이 쉬울 리도 없을 뿐더러, 뭘 하려고 해도 그쪽에 대한 사정을 알아야 하는 하는데 강호가 밀수나 범죄에 대해 아는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래도 총기는 정말로 미국에 가서라도 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진짜 고민되네.’ 언제고 게란트에서도 총기를 사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날을 대비해서 총기 스킬을 미리 올려두기는 해야 한다. “시발! 그 놈의 돈이 역시나 문제구만.” 갑자기 눈앞이 촉촉하게 젖어 들며 시야가 흐려지려고 한다. 아무래도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고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그런 모양이다. ‘눈 딱 감고 보석함을 팔아 치울까?’ 사람의 마음이 이래서 간사하다. 언제는 게란트의 유물은 게란트의 것이니 마음대로 팔아서는 안 된다면서 멋있는 척은 다 해놓고는, 막상 또 돈 새어나갈 곳이 생기니 딴 마음이 생겨난다. “하아! 시팔.” 낮게 욕설을 내뱉은 강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슬슬 캠프를 벗어날 준비를 했다. 게란트에서 지내는 동안 북쪽을 제외한 방향은 닷새에서 열흘 정도의 거리까지는 대부분 둘러보았다. 하지만 북쪽의 구역은 아직도 미지의 구역이다.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는 산맥이 위치한 방향인데다가, 일전에 발견했던 야량족의 화살이 이어진 흔적도 북쪽 방향이었기에 최대한 탐사를 미루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백구가 반려동물로 등록되고 레벨 시스템도 생겨난 상황인데다가 삼식이라는 새로운 동료도 영입했다. 아직 삼식이에 대한 친밀도와 관련하여 어떤 퀘스트가 뜨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동료가 생긴 만큼 서서히 북쪽 지역을 탐험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움직일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일단은 사나흘 거리 안까지의 지역을 둘러보며 지형지물을 숙지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었다. 사나흘 거리라고 하지만 하루에 평균 6-8Km 정도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북쪽 방면 일대를 대충 살펴보는 것만 해도 한 달 이상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표가 중요했다.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드론으로 지형을 살피고 거점으로 삼을 만한 곳을 먼저 찾아야 했다. 그곳을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산맥 방향으로 길을 떠나볼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겸사겸사 백구의 레벨도 올리고 삼식이와의 호흡을 맞추면서 전투력의 수준이나 싸움의 방식을 파악하는 목적도 있다. 뒤를 돌아보자 언제나 든든한 백구가 꼬리를 흔들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옆으로 삼식이가 정글도를 등에 맨 채로 서 있다. 삼식이는 강호가 지구에서 사온 전술조끼와 작은 배낭. 그리고 전술 벨트를 착용한 상태다. 벨트에는 단검과 함께 정체 모를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는데, 확실히 장비빨 때문인지 삼식이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 난다. 처음 장비를 지급 받고서 그 용처를 알게 되었을 때, 믿기지 않는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매우 감격해 하던 모습을 보면서 당시에는 친밀도가 조금은 상승하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은 계산적인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겠는가. 둘의 모습을 살핀 강호가 자신의 장비를 점검했다. 강호의 장비는 라그놀과 전투를 할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최근 한 가지 추가된 장비가 있었다. 바로 액션캠이다. 가슴팍에 달린 소형 카메라가 그것인데, 손바닥보다도 훨씬 작은 액션캠을 무려 6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구입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추가 배터리에 추가 메모리 카드에, 액션캠을 착용하기 위한 가슴 벨트에 기타 등등 해서 90만원이 넘는 돈이 지출되었다. 총기 스킬 레벨을 올릴 생각을 하며 보석함을 팔 생각을 했던 것도 이 액션캠을 사면서 지출된 돈 때문이었다. 액션캠을 산 이유는 역시나 생존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착시 현상에 노출되기도 쉽고,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거나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카메라는 다르다.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영상으로 담기에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한 것, 혹은 착시현상으로 잘 못 보았거나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그대로 담아낸다. 즉, 숲을 탐색하는 중에 실수로 놓친 것들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가 1차 목적이었고, 촬영된 영상을 통해 숲에서의 행동 양식이나 전투를 복기하고 고치기 위한 것이 2차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좋은 제품을 고르다 보니 자꾸 장비 욕심이 나서 결국은 꽤 비싼 놈으로 구입하고 말았다. ‘이걸로 게란트를 촬영해서 미튜버로 용돈벌이 하면 짭짤할 텐데. 아니, 구독자 100만은 가뿐할 지도 몰라.’ 만약 게란트의 짐승이나 몬스터 따위를 촬영해서 올리면 구독자 100만이 아니라 수천 만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구독자가 10만 정도만 되어도 수입이 짭짤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에 혹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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