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만남
2030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탑이 솟아오른다.
탑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실종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탑이 실종의 원인일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할 뿐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사람들이 실종되고 1년 후.
실종됐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탑은 총 10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층까지 클리어해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처음엔 믿지 못했던 사람들도 계속해서 돌아오는 실종자들의 똑같은 말을 들으며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실종 전과는 완전히 다른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돌아온 실종자들을 보며 자신도 탑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든 탑 안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탑 안 대기실 1층.
탑에 들어온지 한달이 지나도록 윗층으로 올라가지 못한 여자 나연이 파티원들에게 둘러싸여 욕을 먹고 있었다.
"씨발년아 너 때문에 우리 다 죽을뻔했어."
"미친년이 탱커라고해서 파티에 넣어줬더니 뒤에 숨어만 있어?"
"탑에 온지 한달이나 됐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됐는데. 역시 안 올라간 게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 못 올라간거였어."
나연은 방금 전까지 파티를 맺고 있던 동료들에게 온갖 욕을 들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부 다 사실이었으니까.
한달 전 자고 일어나 눈을 떠보니 나연은 탑 안 대기실에 누워 있었다.
이미 실종됐다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 알고 있던 나연은 자신이 탑으로 불려왔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겁이 많으면서도 초능력자가 되고 싶었던 나연은 은근히 탑에 들어오기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탑 안에 왔다는 걸 안 순간 환호했다.
하지만 나연의 환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탑에 불려 오는 순간 랜덤으로 각성한다던 실종자들의 말.
능력마다 차이가 엄청 나서 운이 나쁘면 평생 탑에서 살아야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소 운동을 즐겨하던 나연의 능력치는 나쁘지 않았다.
여성 평균보다 대부분 뛰어난 능력치였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스킬창을 본 순간 나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패시브스킬... 노출증...?"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스킬 설명.
"노출이 심할 수록 기본 방어력이 올라갑니다...? 이거 미친 거 아니야?"
나연은 진정하며 노출증 아래 나열돼있는 다른 스킬들도 하나씩 살펴봤다.
"섹시도발...? 섹시댄스나 노출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도발합니다. 수위가 높을수록 어그로 확률이 높아집니다...?"
나연은 황당하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남은 모든 스킬들이 노출 또는 성적인 것과 관련 되어 있었다.
"아니... 나 평소에 자위도 안 하고 노출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왜 내가 이런 스킬을 받은 거냐고..."
나연은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돌아온 실종자들이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나연은 자신의 역할이 탱커라고 생각했다.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역할과 능력을 부여 받는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연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돌아온 실종자들이 차린 학원을 통해 어떤 역할이든 대비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지만 이건 학원에서 배운 것만으론 극복할 수 없었다.
상태창을 다시 보니 노출도 10프로로 기본 방어력이 90프로나 깎여 있었다. 방어력을 높이려면 전부 다 벗어야하는데 나연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한다니. 최소 5인 이상의 파티를 구성해야 미션에 참여할 수 있는 탑의 특성상 혼자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다행히 물과 빵이 매일 새롭게 지급되어 죽지는 않을 수 있었지만 탑을 나갈 수도 없었다.
평생 탑에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연은 용기를 내 탑에 들어온 지 한달이 되는 날 파티에 들어가 미션에 참여했고 아무것도 못 한채 파티원들의 뒤에 숨어 있다 미션에 실패하고 말았다.
나연에게 온갖 욕을 퍼붓고 떠나간 파티원들 뒤에 남겨진 나연은 한숨을 쉬었다. 옷을 벗을 용기도 90프로나 떨어진 방어력으로 파티원들의 앞에 설 용기도 없었다.
나연은 힘 없이 걸으며 커뮤니티로 향했다. 탑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유롭게 글을 남기고 볼 수 있는 커뮤니티. 나연은 처음 탑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자신의 특성과 함께.
하지만 커뮤니티에는 오히려 나연을 희롱하는 글들만 남겨질 뿐 도움이 될만한 글은 하나도 없었다. 한동안 커뮤니티를 찾지 않았던 나연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다시 한번 커뮤니티를 찾았다. 이대로라면 평생 탑에 갖혀 사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
나연이 올린 글에는 여전히 자신이 100층까지 데려다줄테니 벗은 몸을 보여달라는 등의 희롱하는 내용들만 있을 뿐이었다. 자리를 뜨려던 그때 하나의 글이 돌아왔다. 자신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만들고 있다는 글. 몇번 속았던 적이 있어 무시할까 했지만 방금 전 파티에서 당한 상처 때문인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제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연은 커뮤니티에 적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인적 드문 곳. 세명의 여자와 한 남자가 다가오는 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가 밝은 미소로 다가오며 말했다.
"혹시 커뮤니티에 글 남기신 분이신가요? 스킬이 특이하신...?"
"네 맞아요."
나연은 경계가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다른 때와 다르게 여자들이 위주이긴 했지만 이미 여러번 속았던 나연은 여자를 쉽게 믿지 않았다. 나연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파티 리더인 지혜라고 해요. 저는 근접 딜러 역할을 맡고 있는데... 노출도에 따라서 데미지가 올라가는 패시브 스킬이 있어요. 그리고 쌍검난무라는 스킬은 사용 시 모든 장비가 벗겨진 채로 공격하는 스킬이구요..."
나연은 지혜의 말에 경계심이 풀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상황과 너무 비슷했으니까. 자신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보고 지어냈을 수도 있지만 지혜의 표정은 절대 지어내서는 나올 수 없는 씁쓸함과 민망함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연이라고 해요. 저는 탱커인데... 노출도에 따라서 방어력이 올라가고 도발 스킬이 있어요... 수위가 높을 수면 높을 수록 어그로를 잘 끌 수 있다고..."
나연이 민망해하며 대답하자 다른 파티원들도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민아에요. 마법사인데 노출도에 따라서 캐스팅 시간, 범위, 위력이 달라져요. 모든 마법을 다 다룰 수 있는데... 대신 마법마다 페널티가 좀 심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은비에요. 힐러인데 노출도에 따라 힐량이 달라지고... 자...위를 해야 실드를 생성할 수 있어요... 진짜 무슨 이런 스킬이 있는 지모르겠어요..."
나연은 얘기를 들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정이 격해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남자.
"안녕하세요 저는 지한이에요. 원거리 딜러... 궁수를 맡고 있는데... 하... 저는 제 성기를 복사해서 화살로 쓸 수 있어요... 무한 복제가 가능한 건 좋은데... 하아... 진짜..."
나연은 자신도 모르게 지한의 말에 풉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굉장히 수치스럽고 자괴감 느끼는 지한의 표정이 공감가면서도 웃겼다. 나연의 웃음을 시작으로 다른 파티원들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우는지 웃는지 모를 웃음이 한참 이어지다 지혜가 말을 꺼냈다.
"나연씨. 여기는 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저희는 나연씨가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나연씨는 어때요? 우리가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나연은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저도 좋아요. 그동안 저 혼자인 줄 알고 정말 힘들었는데... 여러분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지혜는 우는 나연을 끌어 안고 한참을 토닥여줬다.
나연이 어느정도 진정되자 지혜는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도 언제까지 1층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제 탑 공략을 시작해야죠. 우리는 서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에요. 탑 공략을 시작하면 부끄러움도 수치스러움도 모두 잊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야 우리가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파티원들은 지혜의 말에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의 말대로 계속 부끄러워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있다는 게 위안이 되는 지 한결 편안해보이는 파티원들의 표정.
"같은 층에서도 미션이 매번 달라지는 건 다들 알죠? 어떤 미션이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힘내서 100층까지 꼭 클리어해요."
지혜는 파티원들을 이끌고 1층 미션으로 들어가는 포탈 앞에 섰다.
"다들 장비 점검 해볼래요?"
나연은 처음 인벤토리에 있던 방패와 칼을 양손에 들었고 지혜는 쌍검을, 민아와 은비는 스태프를 들었다. 지한도 민망한 듯 활을 꺼내들었다.
지한의 활은 한눈에 보기에도 특이했다. Y자로 생긴 활 가운데 여자의 성기 모양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마 그 안으로 화살을 넣으면 쏠 수 있는 듯 했다.
"활이 좀... 그렇죠? 이건 제 패시브스킬 영향인데 어떤 무기로 바꿔도 이 모양이 유지된다고 하네요... 하하하..."
나연은 민망해 차마 지한의 활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지한의 활에 있는 여성의 성기 모양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지혜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지한씨는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넷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옷부터 벗는 거에요. 그래야 우리의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으니까요."
"네"
지혜를 제외한 세명의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지한이 남자라는 게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자라고 버리기에는 지한의 상황도 안타까웠으니까.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지혜가 말했다.
"이제 들어가죠."
다들 제대로 된 미션 경험이 없어 잔뜩 긴장한 듯 했지만 서로를 믿는 것 말고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다섯은 서로를 쳐다보며 포탈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