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84화
84.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녀가 심각하게 물었다.
“음... 솔직히 생각을 깊게 해 봐야 할 시기인 것 같아. 시작은 했지만, 아직도 그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도 어떻게 장모를 어떻게 내 여자로 만들지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어. 이대로는 그냥 흐지부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
“그리고 장모만 내 여자로 만드는 과정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해서 되는 문제도 아니잖아. 그러면? 그다음은? 장모만 완전히 꾀어서 날 못 잊게 만들고 그리고 헤어지면 끝인 거야? 그렇게 장모의 마음만 아프게 만들면 끝? 이상하지 않아?”
“......”
“애초부터 이 행동의 결정이 뭔가 목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행복해하거나 뭔가 성취했다는 그러한 것이 없는 거 같아. 그러니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만족하는 결과가 어디인지를 잘 모르겠다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거. 그런 도달 지점이 없는 거 같아.”
그녀는 말없이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니깐 그런 목적이 없으니 방향성도 잃어 버리는 것 같아. 당연한 거겠지. 목적지가 없는데, 어떻게 방향이라는 것을 잡아? 그러니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채우는 것 같아.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말이지...”
그녀는 무엇인가 고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 허벅지 쪽을 바라보면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공사기간에 조금 깊은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도달하고 싶은 목적이 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음... 복수하겠다면 무엇에 도달하면 내가 스스로 만족하면서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 말이지.”
“... 그럼 당신 혼자 여행을 가보는 건 어때?”
“여행?”
“응. 우리, 즉 나와 언니도 아니고, 혼자, 오롯이 혼자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 많은 생각해보는 것이 어때? 기회도 좋잖아. 어차피 화장실도 못 쓰는 거...”
“아...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네. 역시 당신은 나에게 뭔가 항상 해결책을 주는 것 같아. 너무 고마워.”
난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
내 얼굴이 다가가자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입술을 내밀며 내 입술을 마중 나왔다.
“내가 여행지에 대해서 좀 알아볼게. 그리고 숙박부터, 아니 의식주 전부 해결해 놓을 테니 당신은 그곳에서 고민만 해 봐.”
“음... 어디로 하려고?”
“이제 정해 봐야지. 내 생각엔 외국도 좋을 것 같아. 빌라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곳도 있고 하니... 동남아 같은 경우는 그런 신혼여행 팩키지도 있다고 알고 있거든. 관광이나 그런 거 없이 비행기표와 숙박 및 식사만 할 수 있고 나머지 시각은 자유시간으로 보장받는 그러한 패키지 말이야. ”
“음...”
“그러니 거기서 머리도 식히고 그리고 충분히 식히면 완전히 몰입해서 생각도 해 보고 말이야.”
“음... 그런데...”
“응?”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왜? 여행 가는 게 싫어?”
“아니. 여행가는 것은 완전 찬성이야. 더 좋은 제안은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정말 좋은 제안 같아. 여기 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생각해 보는 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그런데 당신이 정해주는 건 싫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정해서 가고 싶어.”
“응. 그렇게 해. 가고 싶은데만 말해주면 내가 나머지는 알아서...”
“아니 그것도 싫다고...”
“아니 왜?”
“내가 정해서 내 돈으로 내가 잘 곳과 먹을 곳을 정해서 다니고 싶어.”
“음... 그러고 싶어? 번거롭지 않겠어?”
“물론 번거롭겠지. 불편도 하고... 반면 당신이 전부 준비해주면 정말 최고의 환경이 조성될 것 같아. 그런데 그런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같이 겪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아아~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불편함을 일부러 겪고 싶다는 거. 마치 오지에 여행을 가는 그런 심정으로 말이지?”
“응. 비슷해.”
“그래도 내가 걱정할 만한 곳으로는 가지 마. ”
“풉... 뭐야. 내가 오지라도 갈까 봐? 아니야. 외국으로는 가지 않을 거야.”
“왜?”
“주객이 전도될 것 같아. 그러니깐 비행기 시간 지켜서 타고, 숙박업소 예약해 둔 곳 찾아가고, 체크인하고, 주변 관광하고, 그리고 당연히 당신과 수혜 기념품도 사고 싶어서 돌아다닐 것이고... 그러면 그건 그냥 놀러 가는 거지 뭔가 생각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
“풉... 웃기기는 하겠다. 깊이 생각하러 갔는데, 쇼핑몰 돌면서 우리 선물 사는 모습. 큽... 상상만 해도 웃긴다.”
“그래. 그래서 내가 알아서 정해서 갈게. 다만, 아마 이번 주 주말부터나 내가 안 보여도 그렇구나 하고 생각만 해. 그리고 내가 먼저 연락은 안 할테니 궁금한데 상황이 되면 문자하고... 전화기도 웬만하면 꺼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응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래도 어딜로 갈지 정해지면 알려 줘.”
“당연하지. 당신은 나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그런데 당신이 모르게 뭔가를 하지는 않을 꺼야.”
“응응. 믿어.”
“그런데 우리 이렇게 오래 있어도 되나? 시간 안 늦어?”
“응. 지금 출발하면 충분할 것 같아.”
“그래. 이제 나가자.”
“아니야. 당신 씻고 화장실도 쓰고 가. 집에 가면 또 못 씻을 거 아니야. 오늘 이렇게 내 애액으로 더러워졌는데도 말이야.”
“당신이 입으로 다 청소해줬잖아?”
“뭐야~ 그건 그냥 상징적으로 해준 거고. 빨리 씻고 화장실 쓰고 준비하고 나와.”
“알았어.”
그녀의 말이 정확하다.
난 지금 집에 가면 화장실이 없다.
난 빠른 시간 안에 화장실의 용무를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나왔다.
빨리 씻는 거?
여자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난 10분이면 충분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내 말에 다들 공감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무슨 10분이나 걸리냐고 타박을 줄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그런 곳에 다녀오는 것이다.
난 오랜만에 속도를 내며 씻었다.
머리를 감으며 몸에 비누칠하고 동시에 문지르면서 물을 틀고 헹궜다.
내 행동에 거추장스러운 부분은 단 하나도 없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하는 행동이지만,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다.
몸이 완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 이렇게 빨리 씻어?”
“응. 당연. 급하면 더 빨리도 가능해.”
“정말? 그런데 다 씻은 거야? 물만 묻힌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비누칠도 다 했어. 못 믿겠으면 맡아봐.”
“비누만 바르고 나온 건 아니고?”
“아이~ 뭐야~ 더 빨리도 가능하다니깐? 이런 건 군대에서 본능적으로 다 체득하게 돼.”
“우와. 대단하네. 풉...”
“웃지 마. 내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니까.”
“알았어. 알았어. 대단해. 대단해. 인정해~ 이제 나갈까?”
“응.”
그녀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자기 옷을 다 입고 내 옷도 정리해서 나에게 주었다.
난 옷을 받아서 입고는 그녀와 함께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언제쯤 갈 거야?”
그녀는 차가 출발해서 모텔을 나와 도로로 진입하자 나에게 물었다.
“뭐?”
“여행말이야.”
“아... 그것도 내 맘대로지 뭐. 다만, 다음 주 수요일 전에는 돌아와야지.”
“음... 알았어. 그런데 뭐 필요한 건 없어? 돈은 넉넉해?”
“응. 필요한 거 없고, 돈도 충분해.”
“그럼 정말 아무 걱정 안 한다?”
“응 알았어. 정말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그녀는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내내 나의 안전에 대해서 계속 확인했다.
누가 보면 내가 어디 죽으러 가는 것 같을 정도의 비장함이었다.
아파트 근처 공원에 그녀를 내려다 주고 난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사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아.. 과장님 오셨네요. 첫날은 안 계시길 잘하셨어요. 계셨어도 어딜 가셔야 할 정도로 시끄러웠거든요.”
“아. 네.”
집은 완전히 공사장이었다.
물론 사장님 자체가 워낙 꼼꼼한 스타일이어서 화장실에 비닐로 된 가림막까지 치고 공사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재 등으로 집안이 가득 차서 공사 중임을 완전 실감 날 정도였다.
화장실은 변기, 세면대 등을 포함해 타일까지 전부 뜯어낸 상태였다.
“오늘은 전부 뜯어내기만 했구요. 내일은 배관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아... 배관을 다른 곳으로 잡아야 하는 거죠?”
“그렇죠. 욕조, 아니지 욕탕을 만들려면 세면대와 욕탕 자리로 배관을 다시 잡아야 하죠.”
“괜히 공사를 크게 만들어서 죄송하네요.”
“아. 아닙니다. 공사 중에 바꾸신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딱 정해져 있었던 거고, 기존에 조적 욕조 공사라는 것과 비슷한 거라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히 미안스럽네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인건비 좀 줄이려고 다른 곳하고 같이 하고 있어서 기술자가 거기 작업이 또 있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이 알아서 다 해주세요.”
“예. 내일 뵙겠습니다.”
사장님은 그렇게 오늘 공사를 마무리하고 기술자와 함께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난 황폐해진 집 안에서 어떻게 오늘을 보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공사라고 해서 화장실만 못 쓰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크게 착각이었다.
당장 물도 나오지 않았고, 집 안도 먼지로 상당히 더러울 것이라 저녁으로 뭔가 만들어 먹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일단 저녁은 나가서 사 먹기로 결심하고 나서 침대 방에서 홋이불을 가져와서 소파 위로 덮었다.
물론 티비니 소파 등에 전부 비닐로 싸져 있어서 먼지가 묻을까 하는 걱정에 홋이불을 덮은 것은 아니고,
내가 당장 앉을 곳이 필요해서 비닐 위해 홋이불을 깔았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난 서랍장에서 새로운 잔을 꺼내 진을 조금 따르고 비닐에 싸져 있는 소파 테이블에 내려놓고 앉았다.
‘여행이라...’
난 나름대로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뭔가를 주저하면서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왔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대단하냐고?
그렇지 않다.
단지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러한 내 머릿속의 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결국, 내가 하려는 모든 일에 내 스스로가 납득이 될 만한 이유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납득 할만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따라 담배가 나의 폐 속 깊이 들어온다.
내가 갑갑한 마음에 깊이 들이쉰 것이라라.
하지만 오늘은 그 연기가 나의 가슴 속에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 눈 앞에 보여주지 못했다.
점점 답답해졌고, 결국 담배를 껐다.
그 답답함을 담배 연기로 끄집어 낼 수 없다면 진으로 내려보내 보려고 마셨다.
하지만 그것은 목에 걸려 있는 생선 가시처럼, 나오지도 그렇다고 내려가지도 않았다.
-따르르릉~
내 핸드폰의 전화가 울렸다.
난 당연히 밑집 여자나 그녀의 언니일 것이라 생각하고 들었으나, 아니었다.
철우였다.
이 녀석이 갑자기 전화를 하다니...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약간 걱정스러웠다.
-여보세요?
-응. 나다.
-응 알아.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야! 누가 들으면 내가 자주 전화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이겠다. 내가 항상 먼저 하잖아!
-그게 아니라. 지금 오후 늦을 때면 제일 바쁠 시간 아니야? 그런데 전화하니까 그렇게 물어본거지.
-응 바빠. 많이 바빠.
-응. 그래? 알았어. 그럼 끊어~
-야이 씨~
-큭큭큭
-아...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진짜.
-잘 살아야지. 돈 많이 벌어두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냐?
-너너너.. 아휴... 일단 그건 그거고... 오늘 뭐 하냐?
-그냥 집에 있지. 백수가 뭐 하겠냐?
-그래? 그럼 저녁에 집에 좀 와라. 우리 집에.
-나? 왜? 내가 왜 네 집에 가?
-니 형수가 널 보고 싶다고 한다. 난 전해주는 전달자일 뿐이고...
-아... 지혜 씨가? 휴... 또 남편 반품해 달라는 거네..
-아후~ 오늘 너 많이 공격한다. 진짜~
-큽... 저녁에 별일 없다. 갈게. 밥은 주냐?
-당연하지. 너 밥 챙겨 준다고 오라는 건데?
-너. 혹시 내 상황을 벌써 재수씨에게 말했냐?
-음... 어쩔 수 없었다.
-야!
-미안.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 줄게. 일단 너희 집 주소 찍어서 보내줘.
-알았다.
난 통화를 끊고 우리 집을 문자로 보내줬다.
내 사정을 듣고 아마 그 활발하고 정이 많은 제수씨가 걱정돼서,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을 것이고,
철우는 나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혜 씨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자식은 그런 멋진 여자를 두고 딴 여자를...
어휴... 천벌 받을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