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34. 북부 영지로 (2).
북부 영지로 떠나기 하루 전, 이른 아침이었다. 아직 고개를 다 들지 못한 태양 덕분에 하늘은 붉은 남색 빛을 띠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든 탓에 남들보다 빠른 아침을 맞이했다. 숙소 식당에 내려와 아침을 주문하고 홀로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
허파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답답한 심경을 희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내뱉었다.
나의 생생정보통이나 다름없는 허크 씨가 파병 중인 까닭에 마땅히 정보를 얘기해 줄 사람이 없다.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커뮤니티나 카페 같은 게 존재하지 않으니 어디 질문을 할 곳도 마땅히 없었다.
물론 베이린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최근 처가에서 내가 북부 영지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저택에 출입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진 상태라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난다.
니미 시부럴….
암만 그래도 만나게는 해 줘야 될 거 아냐…. 우리 장인어른은 진짜 너무 까탈스럽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제는 우리를 아주 그냥 견우와 직녀로 만들어 버렸다.
어디서 까치라도 잡아 와서 다리 하나 만들고 싶은 심정이다.
그나저나 대공이라는 사람에 대해,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한데 어디서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단편적인 정보는 제법 들은 것이 있었다.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정보들이지만 종합해 보자면 ‘두문불출한 무인’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자기 영지인 북부 영지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으며, 자신이 국경을 수호하는 검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가족 관계가 어떤지, 뭘 좋아하는지, 호위는 달고 다니는지 등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시팔… 또 너무 쉽게 생각했나.’
아무리 쓰라고 있는 능력이지만,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능력을 쓰더라도 단둘이 있는 상태에서 써야 하는데, 대공 정도의 직위 라면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어떻게든 틈을 만들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다.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맥주를 마시려던 찰나.
“여 귀남쓰 오랜만이다!!”
제프 녀석이 팔을 흔들며 기운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여~! 이 새끼 존나 오랜만이다?”
“그래 새꺄. 요즘 뭐 위버 상단에서 일한다며?”
이 새끼가 그걸 어떻게 알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녀석이 두 손을 펼쳐들며 말했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내 인맥 개쩔거든? 네가 이 동네에서 뭘 하던 다 아는 수가 있지. 고로 넌 내 손바닥 안이라는 거다 좆밥 오크여.”
이 새끼 또 지랄이네.
근데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새끼 붙임성이 워낙 좋아서 제법 인맥이 넓은 편이었지 참.
술 좋아하고 취미로 도박도 간간이 하는 새끼지만. 그런 데가 또 판타지 세계에서는 만남의 장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
‘나는 커뮤니티 댓글 창이 만남의 장이었는데 말이야….’
화두가 하나 던져지면 온갖 드립들이 난무했던 댓글 창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무튼 모처럼 만나서 몹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제프는 자연스럽게 내 맞은편에 앉으며, 내 입에 물린 담배를 뺏어 물었다.
“후~ 그나저나 아침부터 웬 한숨이냐?”
녀석이 물었다.
나는 녀석에게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베이린과 관계를 맺은 것부터 해서, 상단에 들어간 이유까지.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제프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변해 갔다. 마지막으로 베이린이 내 아내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소리쳤다.
“이 시발 그럼 그 도도한 아가씨가 네 와이프라고? 그럼 엘프 누님은?”
“세라? 세라는 내 둘째 와이프지.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이 새끼가.”
“두, 둘째라고…? 어미 씨부랄꺼… 그럼 도대체 아내가 몇 명이라는 소리여?”
손가락 네 개를 펼치며 말했다.
“네 명.”
“이 시발 쳐망할 오크 새끼!! 확 발기부전이나 처 걸려 버려라 씹새야!!”
“응 꼬우 면 네도 오크 해.”
이 새끼 하고 얘기하고 있으면 존나 재밌다. 반응이 시발 살아 있단 말이지 이 새끼 이거.
아무튼 주문한 아침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나 내일 일 땜에 북부 영지로 가야 되는데 말이야…. ”
“뭐? 북부 영지? 거기 내 고향인데?”
뭐라고…? 제프 이 새끼 거기 출신이었어?
“야 제프 그럼 거기 영주님… 그러니까 대공님에 대해서도 좀 아냐?”
“아~ 루이즈 누님? 좀 아는 정도가 아니라 꽤 잘 알지. 어릴 때 그 누님이 동네 애들이랑 자주 놀아줬었거든.”
누님이라는 호칭까지 쓰는 거 보면 제법 친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자식이 조금 허세 끼가 있는 편이긴 하지만 구라 칠 놈은 아니니, 정말 친분이 있어서 누님이라는 호칭을 쓴 것이리라.
나는 바로 제프에게 말했다.
“야 그럼 대공님에 대한 정보 좀 풀어봐.”
그러자 제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누님에 관한 건 왜? 설마… 너 이 새끼 루이즈 누님한테도 손대려고 그러냐?”
-뜨끔!
이 새끼 눈치 하나는 존나 좋네 진짜.
녀석의 말대로 나는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것도 그냥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좆방망이로 뷰지부터 함락시킬 생각이다.
언제나 그랬듯.
하지만 이건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제프 새끼한테 배때기에 칼 빵을 맞을 수도 있으니깐.
“야야 그런 거 아냐 인마… 이번에 그 단주님이 대공님한테 영업 좀 해 보라고 해서 물어보는 거야. 시발 영업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할 거 아냐.”
나는 그렇게 둘러댔다.
뭐 구라는 아니니까 괜찮겠지.
그러자 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새끼 그래서 그런 거였냐? 근데 이놈 이거 부탁하는 자세가 왜 이래? 오크들은 부탁할 때 대가리 빳빳하게 들고 하나보다?”
이 씹새끼가…!
나는 바로 테이블에 대가리를 박으며 말했다.
“제발 이 미천한 제게 썰 한번 풀어 주십시오 제프 형님!!!”
“맨입으로?”
이 시발 새끼가 진짜!!
“다녀와서 술 한번 오지게 사겠습니다 형님!!”
“한번?”
“두, 두 번… 아니 세 번 사겠습니다 제프 형님!!”
“오케이 콜!”
이 좆부랄 새끼 닌 진짜… 돌아와서 보자!
제프는 한 번 더 시익 웃은 후 서두를 열었다.
“그럼 정확히 어떤 게 알고 싶은데?”
“그 대공님에 관한 모든 것?”
“음 그렇게 말하니깐 좀 이상한데…. 뭐 아무튼 그 누님에 관해 서면 뭐든 상관없지?”
“그래. 대신 남들이 잘 모르는 대공님의 과거사나 뭐 그런 거면 더 좋지.”
“과거사라….”
녀석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시선을 옮겼다. 마치 과거의 일을 회상하듯 저 멀리 있는 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루이즈 누님이 어렸을 땐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지….”
“어떻게?”
“지금이야 철의 여인이니, 국경을 수호하는 검이니 뭐니 그렇게 불리지만, 예전엔 진짜 잘 웃고 상냥하고, 또 잘 우는… 딱 그 나이대의 여리여리한 여자아이였거든. 딱 영애 님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딱 그랬지. 거기다 영주님 가문이 엄청 단란한 집안이기도 했고, 누님이 외동딸인 것도 있고 해서 사랑을 아주 듬뿍 받고 자랐어.”
“호오….”
확실히 내가 들었던 얘기들 중에서는 이러한 얘기가 없었다. 그것보다 예전에는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라…. 근데 왜 지금은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게 된 거지?
의문을 품은 채로 계속해서 녀석의 말에 귀 기울였다.
“거기다 엄청 예뻤어. 오죽하면 북쪽 땅의 보석이라고 불렸을 정도거든. 물론 지금도 끗발 나게 예쁘지만. 아무튼 그래서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영지 사람 모두에게도 많이 사랑받았지.”
“그래? 근데 그런 분이 지금은 왜 그렇게 된 거야?”
나는 물었다.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지만, 그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은 여자가, 완전 무인처럼 변했다면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흠… 글쎄다.”
“엥?”
“뭐 누님이 변한 이유는 알지만, 솔직히 이건 말해주기가 좀 그렇다. 그건 네가 직접 알아봐라. 난 이제 슬슬 일어나 봐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야 하던 얘기는 마저 하고 가야지!! 어? 야 사람을 빡치게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말하다 말고 끊는… 야 제프!! 이 씹새끼야!!”
녀석은 손을 흔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시발… 가장 중요한 얘기를 안 해주고 가다니!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
다음 편을 내놓지 않는 작가는 용서치 않는다!!! 넌 갔다 와서 보자 제프! 닌 진짜 뒈졌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그녀에 대한 정보가 늘었으니,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튿날.
상단의 직원들과 함께 분주히 움직이며, 마차에 짐을 실었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잠깐 쉬고 있는데, 멀리서 세라가 거대한 맘마통을 출렁이며 달려왔다.
“낭군님!!”
세라가 달려와 내 앞에 서자,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세라야.”
“낭군님 이거 받으세요.”
세라가 내게 보따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북부 영지는 몹시 추운 곳이에요 낭군님. 그래서 따뜻한 외투랑 이것저것 좀 챙겼어요. 추우시면 꼭 꺼내 입으셔야 해요 아시겠죠?”
그렇게 말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세라.
그 눈빛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세라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세라. 역시 우리 세라가 진짜 최고다!”
“후훗… 그럼 다녀와서 뜨겁게 안아주세요. 아시겠죠?”
“아… 물론이지!!”
진짜 내 여자들 하나같이 너무 사랑스럽다.
내 비록 운이 없는 놈이지만, 처복 하나만큼은 타고난 것이 분명하다.
-발깃!
세라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자마자 발기해 버렸다. 이건 진짜 어쩔 수가 없다. 세라의 크고 아름다운 젖가슴이 닿는데 이걸 시발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다 때려치우고 세라랑 오붓하게 섹스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는 것이 매우 비통하고도 원통스럽다.
“자 자 이제 출발합시다!”
이번 행렬의 책임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쉽지만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세라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아쉬운 마음이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것은 세라도 마찬가지였다.
“네… 낭군님 부디 몸 성히 다녀오세요.”
“사랑해 세라.”
"저도 사랑해요.”
뜨겁게 입맞춤한 뒤 나는 세라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가 볼까 북부 영지로.”
기다려라 대공! 널 반드시 내 암컷으로 만들어 주마.
각오를 다지며 북부 영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