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52화:신연서
52화
이소연과 진행한 면담에서 이형섭은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게임들을 말했다.
다들 메가히트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 게임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게임들이 몇개 보였다.
"좋은데?"
내가 게임을 어마어마하게 다운로드 받아놨다고 해도 언젠가는 소모될 거다.
그럴 때 게임을 하나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다.
아니면 같이 게임을 기획해서 내 입맛에 맞는 게임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게임에 대해 나와 딥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하나만 해도 아주 좋은 인재다.
"크흠."
…사실 이건 단순히 내 개인적인 기호일 뿐이다.
근데…
'솔직히 이런 이기심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소연이도 게임 디렉터를 기술자 명단에 넣어준 거겠지.
내가 게임을 워낙 좋아하니까.
"나중에 한번 불러봐야겠네."
나는 이형섭의 프로필을 넘기고 다음 사람의 프로필을 보았다.
다음 사람도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이 근방에서 중국집을 15년 동안 운영했다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급식을 시작하면 이분도 급식 조리원으로 넣어드려도 되겠네."
15년차 중국집 주방장이면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할테니까.
'그리고 중식이면 또 재료 손질도 엄청 많이 하니까. 대량 조리에도 일가견이 있으시겠지.'
이정도면 나중에 생긴 각성자들의 숙소에서 제공할 급식 시스템을 굴리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 거다.
나는 그정도로 기억하고 넘긴 뒤 마지막 프로필을 보았다.
마지막 프로필의 주인공은 20대 후반의 여성, 신연서였다.
그녀의 직업은 의류 디자이너.
수작업으로 옷을 만들어본 경험도 많다고 한다.
"좋은데?"
사실 사는데 필요한 의식주 중 식량과 주거 시설은 확실히 안정되어있다.
그 중 가장 미흡하다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의'
바로 옷이었다.
나와 같이 사는 여자애들도 예진이의 옷장에서 옷을 빌려입고 있는 형편이었고 최근에는 빈집에서 조금 가져와서 그나마 나아졌지만 자체 생산이 가능한 다른 부분에 비해서는 좀 아쉬운 게 사실.
'물론 식량과 주거 시설에 비해서 덜 확보되어있다는 거지 그렇게 엄청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술자를 대우해주는 이유는 충족한다.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만들 수 없는 물건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기술직의 가장 큰 의미.
그걸 충족하는 한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술직은 대우해줄 생각이다.
"오케이…."
지금 당장 만나볼 사람은 정해졌네.
"신연서…. 이 사람은 지금 바로 만나봐도 되겠네."
만약에 옷을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다고 하면 공방도 만들어줘야할테니까.
"바로 가볼까?"
나는 신연서의 집 위치를 보고 집으로 출발했다.
아, 그 전에 선물이라도 하나 가지고 가야겠다.
이럴 때는 과일 바구니 같은 거 들고 가던데….
***
똑똑똑-
나는 신연서의 집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 신도윤입니다. 혹시 문 열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신연서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바로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일단 이것부터 받으세요."
현관문 안에서 나온 사람은 흑발의 긴생머리를 가진 예쁜 외모의 여성이었다.
귀엽거나 청순한 느낌과는 거리가 좀 있는 완숙한 미가 느껴지는 외모다.
뭐랄까 예진이나 유빈이, 가을이한테서는 느껴지지 않는 누나미를 풍긴다고 해야할까?
나는 과일바구니를 일단 신연서의 품에 밀어넣었다.
일단 선물 공세를 해놓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긴 하더라고.
"아니, 이런 귀한 걸…."
신연서는 화려한 색상의 아주 신선한 과일 바구니를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물품 중에 과일도 있으니까요. 생각하시는 것 만큼 귀한 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감사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신연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지저분해보였지만 이런 아포칼립스 세상이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드르륵-
신연서는 과일 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내가 앉을 의자를 빼주었다.
"손님한테 차라도 내어드려야하는데…."
"아뇨. 그런 거 절대 주지 마세요. 어차피 제 곳간에서 나오는건데 그런 것 때문에 부담드리고 싶지 않네요."
나는 솔직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그들이 먹는 음식이나 물은 전부 내가 생산해서 배급하는 거다.
괜히 내가 손님으로 왔다고해서 그들이 물자를 나에게 대접하느라 내 방문에 껄끄러움을 느끼는 건 막고 싶다.
내가 노리는 이미지는 친숙한 이미지다.
나는 정치를 배우지고 심리학을 배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많이 다뤄본 경험도 없고 그런 위치에 앉아본 적도 없었다.
사람들의 위에 서서 지휘하는 위치는 처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불만이나 여론을 컨트롤하는 게 미숙하다.
하지만 나도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다.
정치인들이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군중들을 컨트롤하는데 상당히 큰 영향을 가진다고.
그래서 나도 일단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이 방법에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전문성이 떨어져보인다던가….
특정 계층에게 오히려 반발심을 산다던가….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관없다.
사실 그 부작용들이 나에게 부정적으로 작용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문성?
전문성이고 나발이고 밥줄을 내가 쥐고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특정 계층에게 도리어 반발심을 산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소수고 이런 멸망한 세상에서 그런 반발심을 사봤자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다.
"뭐, 어떻게 지내실만 하세요?"
"당연하죠. 집에서 얌전히 일만 하면 먹을 것도 주고 몬스터한테서 보호도 해주고…. 덕분에 전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어요."
"다행이네요. 나중에 숙소가 완공되면 지금보다 다들 살기 좋아질 거예요."
일단 슬슬 본론을 꺼내볼까?
"제가 오늘 연서 씨를 찾아온 이유는 기술직으로 들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술직이요…? 저는 옷 만드는 것 정도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
나는 옷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가치를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우리 세력은 대부분의 생활이 안정되어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두배로 뻥튀기가 되어도 안정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 수준으로요."
"네…."
"그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요?"
생존의 기본이 갖춰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여가 생활을 찾게 된다.
스스로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취미 생활 같은 것 말이다.
"사람들이 마일리지로 옷 같은 걸 구매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그 마일리지는 소정의 수수료를 제하고 전부 지급될 겁니다."
물론 이런 게 의류에만 적용될 사안은 아니다.
천천히 이런 상품을 등록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마일리지를 통한 거래는 철저히 내 관할 아래에서만 이뤄지게 할 생각이다.
그래야 혹시 모를 불상사도 막을 수 있고 내 힘이 떨어지는 걸 경계할 수 있다.
"그럼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될 거고 생산 효율도 확 높아질테죠. 물론 주민분들의 삶의 질 또한 올라갈 거구요."
내가 그렇게까지만 말하자 신연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실만 차려주시면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손이 굳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작업실은 물론이고 나중에 기술자들을 위한 숙소가 완공되면 거기에도 자리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신연서와의 합의가 순식간에 끝났고 나는 작업실을 차리는데 필요한 물품에 대한 리스트를 정리해서 이소연을 통해 전달해달라고 했다.
그 물건들이 구해서 작업실이 완성되는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으아…. 드디어 끝났네."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기운이 쫙 빠졌다.
"원래 이럴 때는 침대에 박혀서 아무 생각없이 유X브 쇼츠나 넘기는 게 최곤데."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단 말이지.
나는 내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를 맞이한 건 평소와 달리 어두컴컴한 거실이었다.
뭐지?
지금 8시 밖에 안 됐으니 다들 자는 건 아닐테고….
안 그래도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자는 게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커튼까지 쳐서 어둡게 만들어놓고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거실 안으로 들어가서 각자 번데기처럼 이불을 하나씩 덮어쓰고 있는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연이까지 총 4명이었다.
"뭐해?"
""꺄아아악!""
내가 기척도 없이 다가가서 말을 거니 그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TV를 보니 다들 공포 영화를 틀어놓고 보고 있던 모양이다.
"아, 뭐야!"
"기척 좀 내고 다녀요…!"
어….
지금 내가 미안해야하는 상황인 건가?
"거기 멀뚱거리고 서있지 말고 너도 여기 빨리 와서 앉아."
"응?"
나 피곤한데….
하지만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4명의 여자 중간으로 들어가서 공포영화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