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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101화 야니, 웃다.


바헬무토 공작과 타이먼 수사관을 따라,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가슴 속까지 스며들었다. 금속이 떨리는 진동과 함께,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한 숨을 쉬는 간격만에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 도착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벽에 새겨진 숫자와 함께, 거대한 철문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B30 종이 냄새와 금속의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바헬무토 공작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타이먼 수사관 또한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등 뒤를 따라 걸었다. ◁30~34 35~39▷ 우리는 조용히, 왼쪽 복도를 따라 걸었다. 회색빛 조명이 천천히 깔린 긴 회랑은, 싸늘한 정적을 깊게 머금고 있었다. 그들의 구두 밑창이 딱딱한 바닥에 닿을 때마다, 마치 금기된 영역을 침범하는 듯한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문이 진행중인듯, 닫긴 방문에선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몇 걸음 지나자, 세 번째 방 앞에 다다랐다. 문패에는 간결하게 ‘33’이라 적혀 있었다. 하지만 타이먼은 그 문을 흘긋 보기만 한 채, 그보다 한 걸음 뒤편에 자리한 또 다른 문으로 향했다. 33-2 철컥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방 안은 숨소리조차 삼켜버릴 듯한, 낮게 가라앉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면 벽을 가로지르는 두터운 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더 많은 구속이 몸을 얽매이고 있는 야니. 그리고 마주한 한 여성. 여성은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있었는데 보라색 머릿결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고개를 젖힌 채 지친 웃음을 흘리고 있었는데, 피곤함이 극에 달한 사람이 억지로 쥐어 짜내어 입꼬리를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 웃음은 허탈하고, 어딘가 쓸쓸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공허한 미소. 반면 야니는 해맑은 표정을 띠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 순진하게 상대를 바라보며. 그 표정은 기괴할 만큼 평온했고, 그 평온은 오히려 섬뜩했다. 그리고 침묵을 깨뜨리듯, 야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죠?" 공간을 가득 메운 침묵이 깨지며, 모든 시선이 다시 한 곳으로 모였다. “당신이 참 웃겨요.” 수사관으로 보이는 여성이 피식, 조롱 섞인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왜죠?” 야니가 고요히 되물었다. "자살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아니, 혼자서 죽는 것도 아니죠. 일족의 자살." "무슨 뜻이죠?" "진짜 이해가 안 가나요?" "네." 짧고도 담담한 답에 여성이 혀를 찼다. "당신이 따르던 전 루시퍼 군주. 그가 사용하던, 천족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템을 사용했다고 방금 증언했죠." "네." 야니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별것 아니라는 듯. 내가 보기에도 변한 분위기. ㅡ무엇이 야니를 이런 꼴로 바꿔놨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지금 자각하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어요." "천족과 내통한 마족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도?" "네, 압니다." 그토록 쏟아지는 질문에도, 야니는 미동조차 없었다. 차분하고, 또 어딘가 위험할 정도로 순순했다. 여성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툭 치더니,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지치고 무너진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전 루시퍼 군주. 특이하게도 플레이어 출신이라 그의 일족의 멸절이 불가능하지만.” …레이더가 건넨 자료를 읽었나 보다. 야니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여성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천진난만했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가히, 광기(狂氣) "당신은... 당신과 당신의 출신, '어금니 부족' 전부가 멸망할 겁니다. 하나도 빠짐 없이. 도망간 자는 추살(追殺)을 당할껍니다. 좋은 본보기가 되겠죠." "그런데요?" 말끝을 흐리며 올라가는 야니의 목소리는, 오히려 상대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여성은 미간을 좁히더니, 짧고 건조하게 웃었다. "하하, 미치겠네요." 그녀는 숨을 고르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묻는다. "두렵지 않아요? 미안하지 않아요?" 방 안에 흐르는 공기가, 확실히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왜죠?" 야니가 담담히 물었다. "당신 때문에 어금니 부족이 마대륙 지도에서 사라지게 됐어요." 야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기울이며, 흡사 작은 동물이 생전 처음 보는 장난감을 살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바헬무토 공작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곁에 선 타이먼을 향해,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무어라 낮게 중얼거렸다. -천족은오로직멸절그것말고는답이없는… 그것을 알아챈 바헬무토 공작이 타이먼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복수는 피를 부르고, 또 피를 부르지. 그래서 멸족하는 거야. 타이먼, 진정하게." 하지만 타이먼은 듣지 못한 듯했다. 야니와 여성의 입에서 '천족'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의 어깨는 눈에 띄게 경련했다. 거칠고 짧은 숨을 몰아쉬며, 마치 금방이라도 과호흡에 빠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더러운것들의날개를산채로뽑아내… …천족. 놈들 중 누구일까. 내 머릿속에는 이미 얼음처럼 차가운 추리가 어지럽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멸마의 단검(1/3)] 마를 멸하는 검입니다. 2번 사용되었습니다. *천(天)족전용 내 가슴에 박혔던 끔찍한 것의 아이템 창이 떠올려졌다. 단검에 박혔던 소름돋고 몸서리쳐지는 서늘했던 감각! 손끝에 느껴졌던 그 저릿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이 가공할만한 권능이 베여있는 단검을 던질만한 천족은 도대체 누구일까. 분명 낮은 계급은 아닐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긴장감이 목을 죄어왔다. "그래서," 여성이 나직하게 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소모성 아이템을 이용해 천족과 대화를 주고받았고, 아이템은 사라졌다는 사실은 인정했죠. 여제 아스테라에게 단검을 던진 천족, 누구입니까?" 핵심 질문이었다. 그래야, 정식으로 지목하여 따질 수 있을테지. 천족 놈들이 수긍할진 미지수지만. “….” 방 안이 얼어붙었다. 야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작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망설였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단지 좌표만 전송했을 뿐." "정말 그게 전부입니까?" 여성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야니를 노려보았다. 야니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작은, 하지만 결코 순진하지 않은 미소였다. 증거물품 하나 없이, 증언과 목격담에만 의존하는 수사. 야니를 추궁하던 심문관은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그것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주먹이 깔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졌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던 심문관의 입술 틈새로 새어 나온 숨결은 낮고 거칠었다. 억눌린 분노가 묻어나는 목소리. 냉정해야 할 그녀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 쥘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불확실한 목격담과 진술만이 공허하게 떠돌 뿐이었다. 심문관은 답답함을 삼키지 못한 채, 다시 서류를 짓눌렀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미쳤군... 전부 다 미쳤어. 마왕님의 권능 밖이었다면 이런 미친년 따윈 금방… 에휴." 그녀의 목소리는 방 안을 파고들며, 마치 오래된 금이 간 유리를 덮는 균열처럼 퍼져갔다. 강함을 숭배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드물게 태어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족 사회. 그 안에서 야니의 행동은 '이질적'. 그녀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관찰실 문을 밀어 열었다. 문틈으로 스며든 그녀의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침잠해 있었다. 타이먼이 자리에서 물었다. “셀르티, 그래서 알아낸건?” 셀르티라는 이름의 심문관은 입술을 꾹 다물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짧은 움직임 안에서도 무력감이 묻어났다. “…없어요. 증거라곤 증인들의 목격담들, 그리고 신성력을 지닌 단검에 맞았다는…” 말을 잇던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방 한편에 조용히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자군요. 셀르티 수사관입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잠시, 우리의 시선이 교차했다. 셀르티는 금세 시선을 거두고, 다시 차분히 말을 이었다. “신성력을 담은 단검을 맞았다는 증거는 어떻게 입증해야할까요?” 타이먼이 입을 움찔대자 바헬무토 공작이 나서서 말했다. "간단하게 해결 될걸세. 만약 단검에 맞은 이후, 마족인 그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겠나?" 바헬무토 공작, 미친 건가. 혹은 내게 기어오르는 건가. 나를 시험하는 건가. "네...? 마족이... 신성력을 사용한다고요?" 셀르티와 타이먼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고, 공작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 그대로일세. 비유따위가 아니야.” 그러면서 내 쪽을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떻게든 실마리를 풀기위해 몸을 비틀어가는 애처로운 후배들을 돕고 싶어하는 노인의 눈빛. 젠장할. 이런것엔 약하단 말이다. 갑작스러운 공작의 돌발 행동에 받아쳐야 하는 건 내 몫. 그래. 내 입장은 이들의 수사에 협조하는 척 하며, 진실에 분노하고 마왕의 이목을 끄는 것. ...에휴.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손바닥을 펼쳤다. 순간, 손 위에 작은 구슬만 한 신성력이 번뜩이며 피어올랐다. 숨죽인 방 안. 희미한 하얀빛이 물결치듯 출렁이며 퍼져나갔다. 어둠 속에 일렁이는 그 빛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모두의 숨결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고, 신성력은 잔물결처럼 퍼지다 이내 허공으로 사라졌다. “시, 신성력! 미쳤군요, 정말 미쳤어요.” 셀르티가 숨죽이며 중얼거렸다. “이곳은 마왕님의 권역이 아니던가요? 마력조차 억제 당하는데 더군다나 신성력이라니! 아니, 오히려 신성력이라 사용이 가능했던건ㅡ” 순간 무언가를 느낀 바헬무토 공작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호통쳤다. “말 조심하게!” 하지만 이미 셀르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태였다. “천족아니에요?! 마족으로 변신해서 …이 기분 나쁜 새끼ㅡ!" “셀르티ㅡ!!!” 빠르게 내뱉는 그녀의 말을 바헬무토 공작이 크게 꾸짖는 호령으로 다급하게 끊으며 외쳤다. 이미 내뱉어진 말이 주워지겠는가. 나는 다 듣고야 말았는데. 나는 그녀의 사과를 바라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손바닥을 펼쳤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내 손 위로 짙고 무거운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마력은 수면을 거슬러 오르는 거대한 심연처럼, 빠르게 응집되고 또 압축되었다.덧씌워지고, 뒤덮이고, 다시 농축되었다. 그 모든 과정은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났다. 숨을 들이쉴 틈도 없이. 내 손끝에서 피어오른 마력은 짙고, 묵직했다. 마치 중앙마석 성의 심장부에 자리한, 터질 듯한 힘의 정수 그 바로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관찰실 안을 가득 메운 긴장. 그곳에 있던 모두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공포가 비쳤다. 제발—— 그 마력이 눈 먼 분노로 폭주하지 않기를. 제발—— 그 힘이 자신들을 향해 쏘아지지 않기를. 조용히, 떨리는 기도처럼. 열심히 놀려대던 아가리 처 꾹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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