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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123화 지유의 볼이 질투로 부풀었다.


다행히 임지유가 들어온 건, 샌이 마음을 간신히 정리한 뒤였다. 눈이 마주친 순간, 샌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눈치채고도, 그는 애써 모른 척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직 준비 중이신지라 출발하진 않으셨어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어. 고마워. 요.” 짧은 동행 동안, 지유는 샌에게 다정한 태도를 보이며,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자신에게 물어봐도 좋다고 살짝 웃으며 전했다. “그리고 키트하나 들고가세요. 활동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담아놨거든요.” “키트?” “네.” 멀리서 한 길드원이 지유에게 두 손으로 무언가를 건네고는, 짧게 목례만 남긴 채 사라졌다. 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샌을 바라보며 그것을 내밀었다. 샌은 한동안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손끝에 닿은 순간까지 망설였지만, 곧 마음을 다잡듯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고마워.” 샌의 손에 쥐어진 키트는 철제로 단단하게 제작되고 검은색으로 칠해진 상자였다. 앞쪽 버튼을 살짝 옆으로 밀자, 날카로운 달칵 소리와 함께 뚜껑이 천천히 열렸다. “안에 보시면 물건을 넣고 활동할 일이 생길때를 대비한 조끼나 벨트도 있어요. 그 안에 수납하셔도 되구요.” 지유의 친절한 설명이 잇따랐지만 샌은 그것들을 조심히 주워담기에 어려웠다. 열자마자 그 안의 내용물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로 인해 샌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샌은 처음 봤음에도 그것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병들안에 담긴 내용물만큼은 생사와 직결될 만큼 귀중했다. 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고, 플레이어 옥션에서 고가에 거래된다는 사실이 그 중요성을 더욱 확실히 해주었다. “포…션?” “맞아요.” “그것도….” “D급 포션이에요.” “이렇게 비싼걸 이렇게나 많이 주는거야?” 못잡아도 하나에 천만원의 가격이 형성되어있는것을 떠올린 샌은 경악하며 지유를 쳐다봤다. “저희에겐 이게 보급품이에요. 들어오시길 잘했죠?” 샌이 경악하는 모습을 보며, 지유는 속으로 ‘이 맛이야!’ 하고 소리 내지 못한 채 쾌감을 느꼈다.샌 또한, 포탈 안에서 어느 길드로부터 대량의 포션이 흘러나가고 있다는 은밀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굳이 소문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체감을 하고 있었는데 전투사제의 파티가 구역기지에 방문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매번 올때마다 자신의 것인지, 자신의 것이 아닌지 모를 피를 전신에. 그 조차도 이미 말라 피딱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들어올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들어오더라도 어느정도 말끔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가선 물품을 챙기고 다시 떠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먼 발치에서 지켜본 샌으로서는 안쓰러워보였다. 동시에 악 진영에 대한 증오도 커졌다. 왜 클리어하지 못하게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인지,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같은 인간이 아닌지 등등의 항의를 떠올렸다. 이내 분노가 더 어리기전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내 떨쳐낸 샌은 생긋 웃으며 지유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워, 잘쓸게.” 갑자기 정수리를 보이며 금발을 커튼처럼 아래로 늘어트린 샌을 보며 지유는 웃음을 지었다. “저도 시은 부 길드마스터님을 잘 부탁드려요.” “응.” 계속 시은에게 붙는 '부' 길드마스터란 말에 샌은 길드 마스터가 남주가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곧 그 터무니없는 추측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주일 리 없었다. 자신이 직접 인솔해온 신입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독기 어린 순박한 눈빛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 * 검게 선팅된 밴 안에 앉아 있던 시은은, 다른 길드원들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서류 뭉치를 펼쳐 읽었다. 읽는 것을 마친 뒤, 그녀는 조심스레 서류를 내려놓았다. “지금 당장 나를 따라온다고?” “네.” “이제 온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 걸? 안에서 익혀야 할 것이 많지 않아?” 시은의 시선이 지유의 대답에 고정된 듯했지만, 그 뒤편에 서 있는 샌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미묘하게 흔들었다. 샌의 뺨에 살짝 번진 홍조, 그리고 그 미세한 몸짓—베베꼬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숨결처럼 가볍고도 나른하게 공기를 타고 흘렀다. 시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작은 소리가, 갑작스레 고요한 방 안에서 크게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랫배 깊은 곳에서 시작된 미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따뜻하고도 간지러운 그 감각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었고, 숨결은 한 박자 어긋났다. 샌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그 미열은 더 짙어져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여름밤의 습한 공기처럼. ‘나 또 젖고있네…그 퀘스트 이후로. 혹시 그건 악 진영 플레이어들이 무슨 수를 쓴걸까? 그래서 내게 그런 퀘스트가 내려진것이고? 도대체 왜?’ [! 탐욕 특전 샌(플레이어)과 섹스(0/1) 보상 : 보너스 스탯 + 3] [반복 횟수 제한이 없는 퀘스트 입니다.] 시은의 눈이 ‘섹스’라는 단어 위를 훑자, 마치 그 단어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의 뺨을 뜨겁게 물들였다. 복숭아 빛으로 은은히 달아오른 얼굴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 순간, 기억의 파도가 밀려왔다. 침대 위에서 얽히고설킨 뜨거운 숨결, 서로의 체온이 뒤엉키며 만들어낸 끈적한 공기, 그리고 손끝으로 전해지던 떨림까지. 그날의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나며 심장을 쿵, 하고 뛰게 했다. 눈앞을 스쳐가는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을 되돌린 듯, 시은을 다시 그 순간 속으로 끌어당겼다. ‘…탐욕이 뭐길래?’ 추측을 하면서도, 섹스가 조건인 퀘스트를 내릴 수 있는 자를 추려보자면. 이럴 만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플레이어를 추려보자면, 단 한명 뿐이란것을 떠올린 시은은 동시에 그 대상을 걱정했다. 갑작스럽게 길드하우스를 습격한 고위의 마물을 데리고 포탈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시은은 감각을 내면으로 집중해 스킬을 건드려봤다. 페널티와 관계없이 늘 존재하는 스킬, 그렇기에 스스로 발동할수도 발동 조건조차도 모르는 그 미지의 스킬 페이트 콜은 여전히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샌이 한 걸음, 한 걸음 시은에게 다가오자, 그 좁혀지는 거리만큼이나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점점 더 뜨겁고 무거워졌다. 샌의 아랫배에서 시작된 꿈틀거림은 이제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억누를 수 없는 미열로 활개쳤다. 그 열기는 마치 그녀의 몸을 휘감는 보이지 않는 불꽃 같았다. 상처를 치유할때, 그 부위에만 감각을 집중하듯 아랫배로 신경을 쏟아부었지만 허사였다. ‘…통제할 수 없어. 이런건…. 아….’ 그 순간, 샌의 투명한 벽안과 시은의 깊고 짙은 검은 눈이 마주쳤다. 시간은 한순간 멈춘 듯, 그녀들의 시선은 서로를 단단히 붙잡았다. 짧지만 강렬한 그 눈맞춤 속에서, 둘 다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그 작은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 울리며, 억눌린 긴장과 욕망이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서로의 숨결이 얽히는 듯한 그 순간, 둘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문득 누군가 질투어린채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아챈 시은은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 지유가 안그래도 통통한 볼을 부풀리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지유야 내가 데려가도 괜찮겠어?” 시은은 지유가 새로운 길드원들에게 각자의 수준에 맞춰 짧으면 3일, 길게는 몇주동안 무언가를 가르치기에 다시 한번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허나 지유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확인하는 것은 좋으나, 길드의 권력자라면 이런 것 쯤은 가뿐히 무시하며 데려가길 내심 속으로 바랬기 때문이다. “네! 괜찮아요. 언니 절대 다치시면 안되요.” “고마워, 지유야. 그리고 엄호조 한 조를 더 추가시켜줘.” “네!” 단호한 명령. 그것이 지유를 기쁘게 했다. 환희에 찬 지유의 눈빛을 받곤 고개를 끄덕인 시은은 샌에게 손짓하며 옆의 시트를 툭툭 쳤다. “이리와서 앉아.” 샌은 설레임과 망설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시은 옆자리에 착석했다. 그 광경을 지나치지 않은 지유는,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 작전을 통솔하는 건장한 남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샌은 시은의 옆자리에 앉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봤다. 지유의 키는 어림잡아도 160cm가 안되어 보이는데, 허리를 꾸벅 숙여 눈높이를 맞춘 남성은 190cm가 넘어보였다. 게다가 온 몸의 근육과 언뜻 보이는 흉터에서 그가 애송이가 아닌, 수라(修羅)를 지나온 노련한 숙련자라는 것을 유추해낼수 있었다. 그리고 힐끔보이는 문신들은 희미해지거나 번져있고, 어떤것은 리터칭을 받아 진해져있었다. 그것으로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자라는것을 살갗으로 와닿았다. 그런 자가 지유에게 깍듯이 대하며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모습에 새삼 저 소녀가 샌의 눈에 대단해 보였다. 대화를 마치고 다가온 지유의 시선이 향한곳은 샌이 아닌 시은이었다. “부 길드 마스터님. 수속끝났습니다. 이번 작전에 샌 길드원도 포함하여 수행될것입니다. 그녀를 위한 전속 서포터팀 3명이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작전 도중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길드원 한명을 이 밴에 같이 태워도 될까요?” 시은이 타고 있던 밴은 오로직 시은만을 위한 차량이었다. 앞 좌석에 운전을 맡은 길드원과 비상상황에 대비해 조수석에 앉은 길드원. 즉 셋을 포함하면 아무도 타지 않는 차량이었다. 남는 좌석이야 많았다. “좋아. 어차피 자리는 많아. 오도록 해.” 허락이 떨어지자 지유는 건장한 남성의 옆에서 잔뜩 긴장한채로 무언갈 듣고있던 여성에게 손짓했다. 그 여성은 표정부터 굳어있고, 몸이 뻣뻣했는데 원래 그런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굉장히 어색한 걸음걸이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지유는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한쪽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 “안녕하십니까! 다니엘 펠린입니다! 트레피트 대장님에게서 부길마님의 차량에 같이 동승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샌은 그녀의 말에서 길드원에게도 계급이 나눠져있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고, 나란히 앉은 채 출발했다. “우린 지금 회의를 하러 가는거야. 작전은 그 이후 실행하는거고. 그러니 지금은 듣지 않아도 되겠지?” 시은의 첫마디는 길드하우스를 떠나면 말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샌의 걱정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샌은 대답을 하면서 자신의 말 역시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네! 그럼 회의 이후에 브리핑하겠습니다!” 시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샌의 혼잣말이 나왔다. “회의?” 샌의 금발이 밴안의 검은 가죽시트와 대비대며 더 빛나는 듯 했다. “네게는 여신진영이란 말이 듣기 좋겠지.” 시동이 걸려있던 밴은 문이 닫히자마자 출발하기 시작했다. “악신진영들이 무너지고 있어. 반면에 우리 여신진영은 이전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지.” 차가 한번 흔들리며 샌과 시은의 팔뚝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 잠시사이의 미열이 서로에게 약간의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악신진영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산 제물을 바쳐 얻어오던 의식에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제동이 걸렸어. 몇몇은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담아 빌었다면 보답으로 PK(Player Kill)퀘스트를 받거나 혹은 던전을 탐사해야했지.” 샌은 묵묵히 시은의 말을 듣다 PK부분이 나왔을땐 숨길 수 없이 몸을 움찔했다. “놈들의 표정이 어땠을꺼같아?” “…괴로워 했을꺼 같아요.” 샌은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가 소중히 가지고 있었던 장비, 이제는 그 주인이 사라졌기에, 그렇기에 샌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던 그 피묻은 장비를 프렝코 구역장에게 넘길때를 떠올렸다. 프렝코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여신진영의 플레이어들에겐 장비 하나하나가 목숨과도 같은 생명줄인걸 알기에 눈을 꾹 감으며 기어코 넘겨줬었다. “반은 맞아.” “반은 틀린건가요?” 그 때 다니엘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며 말했다. “그 악신진영 플레이어들은 웃고 있었을 껍니다. 분명히요. 제 모든 남은 인생을 걸고 확신합니다.” 샌과 시은의 시선 속에 다니엘이 자신의 허리춤에 찬 전투벨트를 만지작 거리며 덤덤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가 이제껏 봐온 놈들은 하나같이 그랬습니다.” 입을 다문 다니엘이 샌을 처다봤다. 마치 길드하우스에 들어온 인물에게 하소연을 하듯. 그 눈은 이미 증오심으로 들끓고 있었다. “저것도 반은 맞아. 힐난은 아니야. 다만.” 밴은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나아갔다. 터널로 들어서자, 편광은 이젠 햇빛이 아닌 전등들의 불빛을 걸러내며 어둠과 빛을 반복적으로 쏘아냈다. “우리들은 모두 처음부터 인간이었어. 게임이 끝난 이후엔? 다들 모두 인간으로 돌아오겠지. 이후 그들이 다시 되돌아오길 바래야해.” 다니엘은 마치 오랫동안 준비되고, 곰곰히 생각해온 주제가 나와 잘됬다는 듯 증오어린 화색을 띄었다.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그런 말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네말도 맞아. 플레이어가 되면 퀘스트를 통해 변해가는게 아닌, 시스템적으로도 표시되지 않은 무언가가 우리들을 밀고있다는 말이지? 악 진영은 끊임 없는 살생욕망(殺生欲望)을, 선 진영은 끊 없는 유물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집착(一念執着).” “맞습니다. 만약 그런게 없었다면 진작에 나뉘어진 진영은 무의미하고 모두가 초인이 되어 사람의 원초적 욕구에, 사회화된 욕망에 충족하듯 이득만을 따졌을껍니다.” “샌, 네 생각은 어때?” 샌은 둘의 대화에서 소름이 돋았다. 따지고 보면 플레이어가 되기 이전에는 여신을 추종하지도, 심지어 종교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우리들은 족쇄를 찬 노예일까? 어느 초월적 존재에 놀아나는.” 샌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술을 파래지고, 눈이 팽팽 도는 듯 현기증이 일렀다. 차의 거칠지 않은 상하진동에도 금방이라도 몸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 순간 따뜻한 손이 샌의 손을 덮듯이 감싸주었다. 터널 천장에 늘어선 조명들이 차창 위로 연달아 흘러가며, 한순간 눈앞이 환하게 열렸다가 다시 음영 속으로 가라앉았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할 때마다 차 안도 숨 쉬듯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미소 역시, 조명의 리듬을 따라 반짝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피어올랐다가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빛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표정을 빌려 춤추는 것 같았다. 시은이었다. 그녀의 눈 밑에 드리운 짙은 다크서클, 그 속에서 한없이 깊어 보이는 칠흑 같은 눈동자.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번지는 상냥한 미소가 있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안도감과 함께 서서히 의식이 가라앉더니, 샌은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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